홍인갤러리, 월간미술세계 기획전

 

윤석임 展 | Hyerim Yoon, Suk Im

 

오월의 아침정원_164x130cm_한지에 채색

 

 

공아트스페이스 3F

 

2012. 6. 13(수) ▶ 2012. 6. 19(화)

Opening 2012. 6. 13 PM.6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98-31 | T.02-735-9938

홍인갤러리 기획초대전

 

2012. 6. 21(목) ▶ 2012. 7. 4(수)

Opening 2012. 6. 21 PM.6

대전시 유성구 봉명동 536-9 | T.042-252-2453

 

짝_66x90cm_한지에 채색

 

 

채색화에서 풍기는 은은한 수묵의 향취

 

 

글 이경모 미술평론

혜림 윤석임은 전통 채색화를 근간으로 작업해 왔으면서도 이에 못지않은 열정과 기량으로 수묵산수화로 지평을 확장함으로써 예기치 않은 작업적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웅혼한 산세의 표현에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자연의 힘과 활력을 은연중에 드러내는가 하면 자연의 일부를 포착한 화조화에서는 가녀린 피조물의 존재형태와 의미에 대하여 새삼 사유케 한다. 그래서 어떤 특정한 기법에서 자유로운 혜림의 그림은 단순한 ‘자연의 재현’이라는 회화의 일차적 목표를 뛰어넘어 관객들에게 새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유도하는가 하면 관객스스로 애잔한 감동을 느끼도록 방임한다.

공교한 재현의 미학

과거 윤석임은 대상을 특수한 시공간적 배치구도로 포착하여 사실적으로 재현한 정치(精緻)한 채색화로 화단의 주목을 끌었다. 그가 그린 화조와 영모는 무심하게 관자(觀者)를 응시하거나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는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이의 주인공으로서의 아우라를 갖는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 이를테면 그가 1980년대부터 그려온 공작시리즈는 대상이 지닌 찬연한 색채가 자연과 어우러져 대상을 대상 이상의 존재로 부각시키거나 화가와의 영적 교감을 통하여 일체화된 물아(物我)의 경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때 색채는 수목에 매달린 꽃처럼 보색의 빛으로 눈부시게 광채를 발하거나 반대로 숲의 일부에 침잠하여 동일화된 미미한 존재로 은둔한다. 한 쌍으로 혹은 홀로 존재하는 공작들은 화가의 개인사적 트라우마에 의해 상처받고 치유되는 반복적인 흐름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의 심적 변동을 보여주는 한 양상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세심한 관찰력과 묘사력에 따른 장인적 공교함과 대상과의 정신적 교감을 통하여 사물의 영역을 예술적 경지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작가정신이라 할 것이다. 그는 사물을 사람 그리듯이 그린다. 대상에 대한 지고한 애정과 겸손한 마음이 외적으로 ‘정지된’ 사물에 내적으로 생명 충만한 것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욕심 없는 작가가 있으려니 만은 윤석임은 그의 주변과 삶에 친근하게 스며있는 소박한 대상들에 애착을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하면 몰아(沒我)적이고 정적인 것에 관심을 갖다보니, 그야말로 자연에 가치를 부여하고 긍정적 시각으로 사물을 관조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새와 사슴 같은 동물은 물론 산이나 계곡 같은 풍경에 이르기까지 생명 있는 대상으로 만들 줄 안다. 그것은 기법이나 법칙에 구애됨이 없이 대상을 관조하는 순수성이 그의 그림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필휘지로 사물을 표현하는 경지보다는 차분히 화면 앞에서 대상을 음미하고 마치 양탄자에 수를 놓는 듯한 ‘더딤의 미학’이 그의 작품에 스며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은 삶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예술이라는 것이 숙명적으로 인공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윤석임의 그림에서 우리가 인위적인 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러한 그의 정서가 예술과 육화되어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높았어라_25x70cm_한지에 채색

 

 

육화된 대상

 

한편 필자는 작가가 이전에 보여 온 채색화의 연장선상에서 표현한 화조 혹은 초충도에 주목한다. 남다른 감성과 감각으로 표현한 그의 그림에서 새와 나비, 그리고 잠자리 등은 주변의 초목과 어우러진 동물들 간의 교감과 사유를 생경한 리얼리티와 함께 보여준다. <오월의 아침정원>은 윤석임이 지속적으로 그려온 장미, 그리고 한 쌍의 비둘기가 모티브이다. 장미넝쿨은 푸른 생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면서 수줍고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넝쿨 그늘 바위 언저리에는 한 쌍의 비둘기가 초여름의 망중한을 보내고 있다. 이 그림은 여백이 거의 없이 경물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음에도 깊은 공간과 돌출된 오행감을 보여줌으로써 수채와 수묵의 기법적 틀에서 자유로운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의 또 다른 주인공인 한 쌍의 비둘기는 시선을 한곳에 모아 관심사를 공유함으로써 유대감 혹은 친밀도를 과시하고 있는데 이는 작가의 애환과 향수를 은연중에 나타낸 것일 수도 있다.

<어느 봄날에>나 <응시>, <어느 고추잠자리의 꿈> 등의 경우 문인화적인 형식과 내용을 취하면서도 일필휘지의 감각적 묘사보다는 형사(形似)와 사의, 진채와 담채, 그리고 농묵과 담묵을 적절히 조화시켜 리얼리티를 강화하고 대상의 외양을 통하여 내면을 표상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말하자면 육화된 대상을 통하여 영육간의 소통을 보다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고 려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응시>라는 작품은 적막과 고독 속에서 자신의 삶을 지켜가고자 하는 존재들의 고뇌에 대한 환기로 비쳐진다. 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고(離諸染汚) 연꽃에는 한 방울의 오물도 머무르지 않는다(不與惡俱). 연꽃 위에서 물속을 응시하고 있는 물총새는 세파에 물들지 않고 본연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고고한 인격체이자 자연계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실존적 주체이기도 한 것이다. 이를 통하여 작가는 주변과 자연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물아(物我)의 상태로 실존을 고민하는 이타적(利他的) 사유와 실천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상에서 본 윤석임의 그림은 형사를 통하여 자연의 생명성을 표현하고 수묵의 변주를 통하여 회화적 실험을 지속하면서 자신을 대상에 육화시킴으로써 한 차원 높은 사유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삶과 자연에 대한 긍정이자 주변과 자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의 방증이기도 하며 결국 예술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안식에 대한 거역할 수 없는 순리를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맨드라미_52x42cm_한지에 채색

 

 

개성적 수묵산수

 

이번에 윤석임은 주목할 만한 수묵산수화를 선보이고 있다. 우선 그는 기존 산수화의 아카데믹한 방법론을 지양하고 형태와 공간, 재료와 물질, 묵과 선렴, 선과 색의 실험에 몰두하고 있다. 그가 최근에 발표한 작품 <독도>는 첨예한 대립의 지표이자 민족단결의 매개이기도 한 독도의 풍경을 반부감적 시선으로 포착한 것이다. 화면 중앙에 동, 서도를 중심으로 근경에 암초대를, 원경에 동해와 하늘을 구분 없이 정의함으로써 망망대해에 외롭게 떠 있는 독도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원경의 하늘과 중경에 주 대상을 배치한 구도법은 친숙한 구성이지만 작가는 화면에 별도의 공간을 두어 재료가 스스로 빛을 발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 그러나 이 공간은 바다로 정의되어 있고 꿈틀거리는 파도와 이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섬이 대립과 조화를 이루면서 재료의 물성을 은연중에 드러내 보인다. 말하자면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풍경화임에 분명하지만 부분적으로는 추상의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먹의 번짐이라든가, 빛의 파장에 대한 관심, 형태의 실험, 유동치는 선의 변주를 통하여 작가는 ‘현대적 수묵’이라는 새로운 회화적 실험 안에 자신의 그림을 정초시키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발표한 몇몇의 돌섬 풍경에서도 이러한 개성과 실험적 재현이 반복되고 있는데 담채화의 담백하고 투명한 효과는 물론 수묵화의 깊고 은은한 효과를 한 화면에 구사하는 그의 색채감각은 선택된 대상들의 감각적인 배치에 따른 안정된 구도, 그리고 작가의 자연관이 어우러져 회화의 진정한 속성이 무엇인가 자문케 한다.

이를테면 작품 <황산소견>의 경우 중국 남송대에서 청대에 이르는 관학파 산수화의 구도법과 일치하는 것이다. 반부감법을 조망된 산자락의 경물(景物)들은 오후의 햇빛을 머금어 찬연히 빛을 발하고 기법에 연연하지 않고 감각적으로 처리된 화면은 생기가 가득하다. 그런데 작가는 여기에 개성적인 선과 준(皴)으로 형태와 명암을 정의함으로써 자신의 작업을 여전히 변화의 주기에 위치시키고 있다. 결국 과거에 윤석임이 채색기법을 통하여 한국화의 방법적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표현적 가능성을 탐색해왔다면 근래에는 사심 없이 자연에 몸을 던지고 이를 담아내는 몰아일체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그가 선택한 대상풍경은 화가를 품에 안은 하나의 실경으로 존재론적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화가에 의해 포착된 자연이라기보다는 스스로 화가를 끌어안고 빛을 발하는 실존적 주체라는 말이다. 이는 화가가 표현의 주체로서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스스로를 은폐한 채 대상에 생명을 부여하여 새로운 가치로 거듭나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어느 고추잠자리의 꿈_136x70cm_한지에 채색

 

 

 
 

■ 작가 윤석임은 지금까지 대전, 서울, 중국, 파리 등지에서 6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노르만디전, 한몽회전, 대전광역시 초대작가전, 시카고전, 영암 아천미술관 개관 8주년기념 초대작가전, 대전광역시 초대작가전, 월간미술세계 창간 25주년 한·몽 수교 19주년기념 특별기획 초대전, 대전시립미술관 10주년 기념전, 현대갤러리 15주년 기념초대전, 대전광역시 대덕문화회관 개관기념 초대전, 대전광역시 시립미술관 개관기념 초대전 등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현재 대전광역시, 충남 초대작가, 한국미술협회, 심향회, 한몽회 회원, 대전광역시 여성미술가협회 고문이며 배재대학교 평생교육원에 출강하고 있다.

 
 

vol.20120613-윤석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