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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세상, 도시 해석 展
김준기_Reflected Landscape 1108_106.7x60.8cm_Silver Mirror, Mirror ink, Laminate, RGB LED_2011
갤러리 나우
2012. 6. 6(수) ▶ 2012. 6. 19(화)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92-13 3F | 02-725-2930
김준기_Seen City 1029-Urban Utopia_106.8x114cm_ Sliver Mirror, mirror ink, sand blasting, EVA Film laminate_2010
[전시 서문] 또 다른 세상, 도시 해석 빛으로 물든 도시의 기억과 감성 현대 사회 속 이면의 공간, 도시 풍경을 따뜻한 감성으로 담고 기억의 조각으로 읽어내다.
- 도시의 재발견,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본 현대 도시의 풍경 산업혁명 이후, 세계는 급속하게 발전해가며 거대하고 화려한 도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많은 자본과 사람들이 도시로 유입되면서 오늘날 도시는 현대 사회. 문화와 분리 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이런 관계적 특성은 도시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생활 모습에서 살펴 볼 수 있다. 특히, 현대 사회와 닮아 있는 일상적 도시의 이중성을 살펴보면 화려한 이면에 감춰진 인간적 관계의 부재, 자연을 향한 동경 등의 현대인들의 공통된 감정과 다양한 가치, 삶을 엿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대 사회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현상을 형상화 할 수 있는 다채로운 풍경이다. 이번 전시회는 현대 도시를 자신만의 색깔로 표현하는 작가들을 통해 도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하고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이미지를 조합, 해체, 변형함으로써 독창적인 표현과 주관적인 해석으로 재현하고 구체화 한다. 눈에 보이는 도심 속 가로수 길, 빌딩 등 도시적 풍경 이미지를 단순히 재현하거나 느끼는 감정을 표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면적 공간이 가지고 있는 도시의 이중성, 상징성을 빛과 실루엣으로 다채로운 이미지로 재창조한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많은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본 현대 도시의 풍경을 통해 새롭게 해석하고 재발견 할 수 있는 감상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
박미선_2007년 가을 봉천동 길_93x131cm_캔버스위에 디지털 출력과 유채_2008
[작가 노트] ■ 김준기 -2011년 "Seen City" 시리즈의 작업은 지금 이 순간, 바로 거기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이다. 넘치는 소비와 욕망의 과잉으로 감성과 이성을 잠식하는 도시와 낯선 시간을 사이에 둔 자연의 모습이 혼재된 거울 속 풍경… 그 앞에 서 있는 나와, 나와 마주선 생각의 편린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내 작업이 시작되며 관객과의 소통도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일상의 삶에서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과 내부적으로 바라보는 것의 차이와 관계에 관심을 갖고 그로 인해 전개되는 사고의 과정을 작품에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애초에 모든 사건의 현상과 사고의 과정은 서로 다른 이해와 상황 속에서 발생하고 전개 되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개인의 시각과 생각의 흐름을 관찰하고 성찰하는데 주목하였고, 나의 시각과 생각의 필터를 거친 일상의 모습을 작품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먼저 시도한 것은 우리가 쉽게 바라봤던 도시의 쇼윈도우에 비친 낯선 도시의 풍경을 거울 속에 담아내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의 풍경을 표현하기도 했었다. 이번 전시에 보여 지는 Reflected Landscape(반영된 풍경)은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을 넘어 내부적으로 바라보는 심상을 유도한다는 맥락에서는 변함이 없지만 지난 작업들에 비하면 현실을 관조하는 내면의 풍경에 훨씬 더 가까워진 표현이다. 역사와 전통, 과학과 문명, 자연 환경이 함께 어우러진 도시의 가시적인 현실 풍경을 바라보고 선별적으로 조합하여 재현한 이번 거울작업이 이후 만나게 될 작품 앞의 시간과 공간을 담아내는 시각적인 자극을 넘어 현실의 삶에서 함께 호흡하고 살아 가야 하는 일상의 모든 것들의 체온이 담겨진 풍경이 되길 기대한다. <2010년 작가노트>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각자의 가치관과 이해를 포함하고 있다. 보는 것은 선택이며 이 선택에 따라 우리가 보는 것을 이해 할 수 있듯이 이번 작업에서 나의 시선은 이미지가 현실을 대신하는 시대, 이미지와 콘텐츠를 소비하는 도시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고정되어 있다. 이번 작업에서 주목하는 것은 표피적이고 현상적인 현실의 모습 속에서 자기애정과 자기유희에 몰입된 디지털 세대의 소비와 욕망, 그리고 그것의 일회성에 관한 것들을 생각해보는데 있다. 우리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현대는 미디어가 생산하는 무수한 복제 이미지와 사운드, 다양한 콘텐츠 속에서 혼돈을 겪고 있다. 현대인들의 시각과 청각은 복제된 이미지와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가상의 세계로 몰입되고 흡수되어 버렸다. 그들의 마음, 즉 감각, 정열, 기억, 생각, 의지까지도 가상의 세계에 잠식되어 통제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현실의 삶은 가상과 현실의 모호함 속에 해체되어 사라지고 있으며 혼돈은 증폭되고 있다. 그러나 가상의 세계에 빠져있는 현대인들은 이러한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일회적인 소비와 욕망의 충족 속에서 자아를 망각하며 자기 자신마저 소모시켜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현실의 삶이 주는 ‘기대’, 그리고 그것의 충족과 좌절로 이어지는 삶의 긴장에서 비켜 서고자 하는 현대인들이 찾아가는 일회적 자아 공간은 반복된 소비와 일회적 욕망의 충족 속에서 그 가치와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 작업에서 다루어지는 디지털 시대의 도시라는 화두는 이제 식상한 테마일수도 있다. 이미 유비쿼터스족이 도시를 점령하고 사회를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며,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라는 신생어가 말해주듯이 사회는 디지털 세상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사회 전반에 걸친 아날로그적 감성의 회복을 설득력 있게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미 밝혀진 낡은 구호와 이미지들로 단순화된 디지털 세대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말 그대로 식상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속성의 깨질 수도 있는 거울과 날카로운 칼로 컷팅한 디지털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현대인의 현실적 표정과 욕망의 한계를 극대화 시킨 것으로 디지털의 경계에서 태어나 디지털의 후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적 표현으로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조차 어렵다는 판단이 앞섰고, 디지털의 속성을 보면 볼수록 생겨나는 아날로그적 향수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작업하기 때문이다. 나의 작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디지털 시대의 문화 콘텐츠인 게임과 음악 등 모바일 콘텐츠를 향유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들의 관심은 주변의 현상에 있지 않고, 현실을 외면 하면하거나 현실과 분리되어있으며 단지 최소한의 의식과 동작으로 오로지 기계가 보여주는 이미지와 소리에 빠져 가상세계와의 간격을 좁혀가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현실과 가상세계와의 모호함 속에 서 눈이 멀고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를 겪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건전지와 충전지에 의지한 일회적 소비와 욕망의 반복된 충족의 삶에 중독되어 있는 모습이다. 결국 이번 작업들은 기계의 이미지와 사운드에 몰입된 현대인의 모습 속에서 현실의 상황과 문제를 더 현실적으로 바라본 것이고, 현대인의 일회적인 소비와 욕망의 반복적 충족이 주는 한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이다. 다양한 조합을 통해 변형된 은박접시와 일회용 접시는 일회적 한계를 상징하면서 감춰버리는 인간의 욕망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디지털 홀릭 상태의 현대인들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과정에서 출발하여 확대된 이번 작업이 디지털화 되어가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욕망의 한계와 일회적 속성을 확인하고 자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길 기대한다.
박미선_바람이 불어오는 나의 길_162x122cm_캔버스에 유채_2011
■ 박미선 길을 찾는 길에서 본 풍경 나의 그림 속 장소는 대부분 내가 경험한 일상적인 주변 풍경들이다. 그곳의 객관적인 정보는 많이 지워져 있고 때로는 지형도 전혀 다른 곳처럼 변형되어 현실적인 장소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제목으로 실제 지명이나 그때의 날짜, 시간 등을 드러내기도 한다.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치게 되는 도심 속의 가로수와 아스팔트길이지만 그 풍경에 내재된 아름다움과 의미가 새롭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자 했다. 길을 걷다가 어느 순간 나무의 형태와 색, 그것들의 움직임, 빛을 담아 반짝이는 길만이 나의 시야를 가득 채우며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사람들은 아무런 동요 없이 가던 길을 가고 있는데 나는 내 앞에 펼쳐지는 그 모습에 말을 잊고 그저 바라볼 뿐이다. 나의 깊숙한 중심에 자리 잡은 무엇을 두드리는 것 같은 그러한 장면들을 잘 포착하여 온전히 바라보고 음미하며 기록하고 싶었다. 내게 보이는 그대로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그 세계를 붙잡기 위해 사진을 찍지만 내가 다시 보고자 하는 모습은 그러한 경험으로 마음의 망막에 새겨진 상이다. 어렴풋한 그 인상을 좀 더 분명히 보기 위해 사진작업과 드로잉을 번갈아 하며 그때의 경험을 되살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간다. 그것은 어쩌면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이미 자리하고 있었던 곳, 항상 꿈꾸고 그리워하는 세계일지 모른다. 해가 뜨고 지고, 아름다운 잎사귀를 가진 나무가 흔들리는 곳, 빛나는 강물이 흐르고 바람이 나의 머리 결을 스치는 곳, 주위의 모든 것들이 미묘히 진동하며 우주의 이야기를 전하는 곳, 내가 본 것은 오래된 기억 속의 유토피아 같은 곳이기도 하고 또 그 동안 예민하게 느끼지 못했던 세계의 본래 모습이기도 한 것 같다. 이 아스팔트로 뒤덮여진 도시 속에서도 강렬하게 느껴졌던 이러한 경험은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보다 광대하고 놀라운 세계 안의 존재임을 느끼게 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마음으로 길을 헤매던 나에게 근본적인 마음의 위안과 해답의 실마리를 주었다. 나의 작업은 내가 걷고 있는 이 거리의 풍경에서 보았던 나의 인생의 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진정한 행복과 진리를 찾기 위한 여행에서 보았던 풍경을 그리고자 했다. 모든 것이 부조리하고 혼란스런 문제들로 가득 찬 세상 속에 아무것도 모르는 보잘것없는 존재가 나인 것 같을 때 먼 곳을 바라보는 눈을 돌리고 잠시 숨을 고르면 주위엔 환한 빛이 가득하고 부드럽게 이마를 스치는 바람이 나의 상념을 걷어간다. 여기서부터 길이 다시 시작되었다.
장원영_(Detail)Do you remember.. No.1_50x150x10cm_ Digital C-print on acrylic layers_2012
■ 장원영 보이는 것 과 존재하는 것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북아현동을 알게 되고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생활한지 벌써 9년이다. 그 9년의 생활을 이곳에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북아현동은 내게 있어 ‘추계예대가 있는 낙후된 동네.’딱 이 정도였다. 왜 북아현동에는 다른 대학교 근처라면 모두 있는 패스트 푸드점, 대학생들만을 위한 술집 하나 없을까? 왜 이 동네는 깨끗하지 못하고 모든 게 낡았으며 새벽이 되면 쓰레기 냄새로 동네가 가득 찰까? 모든 게 불만이었다. 그러던 중 내게 들려온 반가운 단어. ‘뉴타운.’ 됐다. 이거면 이제 나도 다른 대학 다니는 친구들처럼 이제 깨끗한 환경에서 공부 할 수 있어. 저 지긋지긋한 달동네가 사라지는 그날, 나도 그 특혜를 누릴 수 있을까? 카메라를 들고 처음으로 북아현동 골목에 들어섰다. 이제 곧 사라질, 그리고 나를 위해서라도 사라져야만 하는 달동네를 기록하기 위해서. 첫 인상은 생각보다 더 비좁고 더 낙후되어 보였다. 그리고 골목에 들어서곤 처음으로 한 사람을 지나쳤다. 카메라를 들고 두리번거리는 나를 몹시도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 사람의 눈빛에 주눅이 든 나는 도망치다시피 그 달동네를 빠져 나왔다. 분명 그들은 자신들이 ‘일회성 대상화’가 되는 것이 몹시도 불쾌했던 모양이다. 그들과 함께하는 예술이란 걸 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조직적으로 북아현동에 올랐다. 골목을 오르는 계단 옆으로 지붕이 있었고 발 밑으로 집의 창문이 있었다. 반지하의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통과해야만 하는 대문은 어린아이 한 명이 딱 들어 갈만한 크기였다. ‘주민들과의 소통’을 전제로 하고 있었기에 조금 더 편하게 오를 수 있었고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보기 시작했다. 우리 팀이 만든 새 티셔츠를 주민들이 입던 헌 옷가지들과 교환하기 위해 그 수많은 골목들 중 한 골목 바닥에 우리의 옷들을 깔아놓고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무작정 말을 걸던 것이 그 시초였다. 그렇게 만나게 된 수많은 북아현동의 주민들. 그렇게 하나하나 이야기를 안고 모인 그분들의 옷가지. 괜찮다던 나를 끌고 기어코 집안으로 들어가셔서 손에 귤 하나를 쥐어주시던 아주머니, 꽤나 춥던 날 방바닥에 발이 닿던 순간 ‘너무도 차갑다고’느껴지던 그 방에 혼자 살고 계시던 할머니, 아랫목을 내어주시곤 앨범을 꺼내 함께 자신의 화려했던 지난날을 회상하시던 할아버지까지.... 숨이 막힐 정도로 붙어있던, 닭장 같던 집들에는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지난 9년간‘지긋지긋한 달동네가 사라지는 그 날이 오면’이라고 생각했던, 없어져야 할 것만 같았던 그 낙후된 모습의 골목’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들도 한 가정의 아버지이고, 그들도 아이들의 어머니이다. 그들도 일터로 나가고 가족끼리 대화를 나누며, 그들도 이웃과 나누는 시간을 기다린다. 골목 곳곳에는 밥 짓는 냄새와 아이를 다그치는 엄마의 목소리, 저녁 TV드라마를 보며 가족끼리 나누는 대화도 들린다. 그들도 유난히 하늘이 맑은 날에 기분 설레어 하고, 그들도 자라나는 아이를 보며 많은 이야기와 꿈을 꾼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지금까지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지 않고 있었다. 그곳에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은 완전히 배제한 채 갈아엎어져야만 하는 지저분한 풍경 정도로만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 다가서자 하나 둘씩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았을 뿐, 그들은 그곳에서 계속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를 위하여 '보이는 것과 존재하는 것' 연작은 작업시작과 과정 그리고 마무리 단계까지 모두 많은 사고와 고민을 하게 해주었고, 이후 내게 습관을 하나 선물했다.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을 몇 시간이고 앉아서 관찰만 하는 습관. 오후 10시가 넘은 늦은 시각, 손전등 불빛 하나에 발걸음을 의지해 서울 근교의 산에 올랐다. 이 넓은 산 속에 나 홀로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외로움의 절정에 다다른 느낌이다. 그리고 이 크고 넓은 공간에 서있는 '나'라는 한 사람이 너무도 작게 느껴진다. 12시가 넘어 도착한 그 정상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을 내려다보자 눈앞에는 그 어떤 자연 풍경에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한 장관이 펼쳐지고 셀 수도 없는 무수한 불빛은 밤하늘의 별처럼 각자의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 이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도시의 야경을 보고 있자니 문득 두 시간 전 산속에서 느끼던 그 감정이 다시 살아난다. ‘이 압도적 거대함 앞에 나라는 존재는 이렇게 한없이 작을 수 밖에 없구나...‘ 갑자기 나를 압도하는 이 화려한 도시와 나 사이의 괴리감이 생기며 이 도시는 내게 너무도 차갑게 다가온다. 가만히 앉아있자 내 눈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 불빛들을 따라간다. 그 불빛들은 깜빡이기도 하고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하기도, 어디론가 움직이기도 한다. 그렇게 멍하니 바라보며 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안녕하세요!? '이 아저씨가. 오줌 쌀 뻔했잖아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 새벽에 산에 오른 이유를 물어보니, 손가락으로 저 멀리 아파트 하나를 가르키며 저곳에 살고 있다 하신다. 가족과 다투고 바람 쐬러 나오셨다고. 그러고 보니 저 아파트, 아까 내가 바라보던 불빛 중 하나였다. 저 불빛이 있는 곳에 이 아저씨의 가족이 있구나. 아까 내가 바라볼 때 즈음에는 내 옆의 이 아저씨도 그 불빛 하나를 함께 이루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때는 가족과 다투고 있으셨겠지. 가만, 그럼 지금 저 불빛 쪽에는 내 친구가 늦은 밤 맥주를 한잔 하고 있을 테고, 조금 떨어진 그 옆에는 그 녀석의 여자친구가 TV를 보며 잠을 청하고 있을 것이다. 저쪽 불빛에는 큰아버지, 큰어머니가 계실 테고, 그 옆의 불빛은 또 다른 누군가다. 불빛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르키자 불빛은 우리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불빛 둘을 손가락으로 가르키자 불빛은 우리 둘이 되었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수많은 불빛은 깜빡 거리기도, 작아졌다 커지기도 하고 어디론가 끊임없이 움직이기도 한다. 하루하루 웃다가 울다가, 한없이 작아지기도 하고, 각자의 꿈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며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다. 이 거대함과 화려함 밑바탕에는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녹아 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혹은 이미 살았었던 우리 내 아버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있었다. 내게 더 이상 이 거대한 도시는 차갑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먼 곳까지 날아가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가졌던 우리 내 아버지, 작은 손으로 하루 16시간 재봉틀을 돌리며 살아가는 어린 소녀였던 우리 어머니, 모두를 놀라게 한 붉은 물결을 만들던 젊음과 88년 세계가 바라보는 가운데 기합을 내지르며 발차기를 하던 열정, 군인과 학생, 계엄군과 시민군이라는 껍질 때문에 친구가 친구를 쏴야만 했던 슬픔과 나의 아이에게는 지금보다 조금 더 좋은 세상을 선물하고픈 마음.... 이 모든 우리의 삶이 녹아 만들어낸 이 도시는 너무도 따뜻한 최고의 작품이었다. 소외되었다고 생각되던 우리 개개인의 삶은 사실 작고 초라하지 않다. 비록 보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 아름답고 화려한, 그리고 따뜻한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본질이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으로 만들어낸 작품을 바라보자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울컥한다. 곳곳에서 이 커다랗고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내고 있는 우리를 위하여.
장원영_Do you remember..No.1_50x150x10cm_Digital C-print on acrylic layers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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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작가 : 김준기, 박미선, 장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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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20606-또 다른 세상, 도시 해석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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