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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 展
이현옥_보따리(설치)
공동체박물관계남정미소
2012. 4. 20(금) ▶ 2012. 6. 17(일) Opening : 2012. 4. 20(금) PM 2:00 전북 진안군 마령면 계서리 191-1 | 011-683-2730
김지연_보따리 1_2000
<<보따리>> ‘보자기’는 청홍의 비단 천에 한 땀 한 땀 곱게 수를 놓아 혼약의 표시로 정성스런 예물을 담아 신랑 댁에서 보내는 겉싸게가 그 으뜸일 것이다. 청홍은 음과 양의 조화로 행복한 백년해로의 복을 비는 마음이 담겨있다. 그래서 보자기는 ‘복을 싸다’는 속뜻이 있다.
옛적 우리의 삶은 보자기처럼 평면이었다. 어찌 보면 우리들 집도 평면이었다. 방문만 열면 마당이고 곧 들판이었다. 그 사이에 있는 싸리 울타리는 그저 다소곳한 마음의 경계고 한자락 바람 막이었을 뿐이다. 우리네 한복도 평면이다. 서양식 복장처럼 치수를 재고 가봉을(수제품) 하여 몸통이라는 틀에 꼭 들어맞아야하는 입체적인 형식의 옷이 아니다. 치수도 대충 눈대중으로 하고 자 한두 번 대서 만들어도 옷이 맞는다. 그 만큼 옷의 형태보다는 옷을 입는 맵시가 중요했다. 한복은 다리미질도 다르다. 펴놓고 눌러가며 다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잡고 다림질을 했다. 한복은 옷걸이에 걸기보다는 차곡차곡 개두기에 알맞다. 그래서 여러 가지 요란한 가구가 필요 없었다. 앞닫이 궤 하나면 옷이며 버선을 차분차분 넣어둘 수 있었다. 그리고 아랫목에 횟대 하나 걸어두어 옷을 걸쳐놓으면 되었다. 그러니 방의 삼분의 일 정도나 차지하고 없는 집 잦은 이사에 짐 덩어리인 가구 같은 것은 필요가 없었다.
김지연_보따리 2_2000
우리네 삶이 평면이었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축약과 간결함과 은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3차원의 입체적 공간을 만들었다가 필요하면 2차원 평면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은 삶의 지혜와 내면의 자유와 검허를 의미한다. 아, 보따리 이야기를 하자. 길 떠나는 이들의 필수품인 괴나리봇짐에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장사를 하던 보부상에 이르기까지 옛 생활 주변에서 꼭 따라다니던 보따리, 어릴 때 책과 공책 양철필통을 둘둘 말아 허리에 두루고 냅다 뛰면 필통 안에서 연필들이 달그락대던 책보. 장날이면 할머니가 참깨, 들깨, 계란꾸러미를 넣고 싸서 머리에 이고 나섰던 보따리 등등. 그 보따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개화기 들어서면서 소위 ‘하이칼라’라는 사람들이 보따리 대신에 가방이라는 것을 들고 나타나면서 손쉬운 운반도구로 가방이 대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명품가방이 이슈인 시대가 되었다.
김지연_보따리 3_2000
보자기는 아무 곳에서나 스스럼없이 펼치고 그저 손 가는 데로 마음 가는 데로 차근차근 얹어서 싸메고 머리에 둥실 이고 다니던 이동에 용이한 물건, 그것이 ‘복을 싸는 것’이 아니라 ‘설음을 싸는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예전의 우리네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이며 삶의 정서였다. 이제 보자기는 혼례 때 예단을 담아 보내거나 명절에 선물 싸는 물건으로 그 명맥만 남아있다. 이 중에는 실용적인 생각에서 나중에 사용하기 좋게 예단을 보자기 대신 가방에 넣어서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그 역할도 장담하기 어렵다. 이번 전시는 주변에 있는 이웃 사람들의 짐 보따리를 만들어 보았다. 이제는 보따리 하나에 챙길 물건도 없다고 애석해하는 내 가까운 시골이웃들의 평범하고 느린 일상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어서이다. 그 분들이 만든 보따리 속의 물건들을 살짝 열어보고 머리에 이어보고 잊혀진 삶의 정서를 되새기면서 우리마음 속에 있는 민족의 정체성을 생각해보는 전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옛 보자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만든 보자기(이현옥) 몇 점과 사진(김지연)도 함께 전시된다.
김지연_보따리 4_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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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20420-보따리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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