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한원미술관 그리기 즐거움전

 

畵歌 : 고전은 숨 쉰다

 

김예찬, 변혜숙, 이소발, 정빛나, 정헌칠, 최미연, 최현석

 

김예찬作_숨겨진 이야기 Behind story 도자기 각각_28x51cm,32x50cm,31x65cm

영상 1분25초 도자기에 영상_2011

 

 

한원미술관

 

2012. 4. 12(목) ▶ 2012. 5. 11(금)

Opening 2012. 4. 12(목)  오후 4시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449-12 | T.02-588-5642

 

www.미술관.org

 

 

변혜숙作_월동준비_130x162cm_장지에혼합재료_2009

 

 

그리기 즐거움 평문

 

고전은 살아 숨 쉰다.

-세번째의 “畵歌 展”에 부쳐

 

 

長江 박옥생, 한원미술관 큐레이터, 미술평론

고전의 의미: 뿌리가 되어 꽃으로 피어나는..

미디어와 첨단 과학기술의 시대에 고전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종이와 먹을 사용하여 세계의 우주론적 철학의 구조를 견고히 한 동양 회화에 있어 고전을 들추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따라서 작금에 한국화로 명명되고 있는 우리 그림들의 가치 기준을 마련하고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한국화는 조형에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 종이에 먹을 다루는 연습부터 이루어진다. 동양화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있어 중요시되었던 것은 전(前) 시대의 모본(母本)을 학습하고 체화(體化)시키는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淸)이었는데, 이는 산, 나무, 꽃, 돌, 인물에 이르는 자연의 모습을 그리는데 있어, 형상의 본질을 드러내는 법칙을 중국역사상에서 오래도록 형성시킨 화본(畵本)이었다. 이러한 류(類)의 화보를 통해 학습된 형상의 구성들은 화가의 개성과 시대의 양식적 변모들을 받아들임으로써 독창적인 회화로 완성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조형의 기초는 자연의 형상을 뽑아내는데 있어 정신성을 강조하게 되고, 그 정신성은 부감법, 3원법, 역투시도와 같은 구도법으로 드러난다. 또한 발임이나 준(峻)과 같은 필(筆)의 운용을 보여주게 된다. 때로는 궁중장식화나 민화, 풍속화와 같은 회화의 특징적인 장르로 잉태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고전”이라 불리는 이 시대의 남겨진 전통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되고 있다는 것이다. 깊이 이해되고 체화된 전통은 시대와 화가의 개성이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된다는 것이다. 역사성, 철학성, 문학성이 버무려진 고전은 튼튼한 뿌리가 되어 땅 속으로 스며든다. 그 스며든 뿌리 위로 찬란하게 피어나는 것이 현대이고 그것이 고전의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인 것이다. 따라서 고전은 생명을 자라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며 정신성이다. 또한 우주의 본질을 바라보는, 시각을 창출해 내는 독특한 시각의 움직임인 것이다. 동양의 정신은 자연과 하나임을 강조하는 자연합일(自然合一), 물아일체(物我一體)가 그 대표인데, 이는 사물의 형상을 뛰어넘는 세계를 구성하는 본질의 현현(顯現)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신성은 시대의 물질적 발전과 정신적 영역의 확장과 다양성이 만나 새로운 고전으로, 현대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이소연(이소발)作_신윤복의 초상화 portrait of Shin Yunbok_72x50cm_종이에 혼합재료_2011

 

 

한국화의 길(道)에서 만난 7인의 화가

3번째의 화가(畵歌) 전에서 만난 김예찬, 변혜숙, 이소발, 정빛나, 정헌칠, 최미연, 최현석 7인의 작가들은 한층 두드러진 고전의 의미들을 되새김질 한다. 김예찬은 작가가 직접 구운 조선시대 도자기들에 영상을 투사한다. 투사된 영상들은 조선백자의 항아리에서 튀어나온 잉어들처럼 살아 움직인다. 꽃이 되고 물고기가 되고, 한 줄기 드리운 인연의 끈이 된다. 사실 이들의 움직이는 영상들은 조선 백자에 어느 이름 모를 화가가 그린 명작들에 기초한다. 견고하게 구워진 태토(胎土)위에 고착된 이미지가 김예찬의 작품에서 다시 생명을 갖고 살아나고 있다. 조선의 아름다운 문양들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현재의 미디어를 통해 관객과 호흡하는 작가의 화면에서 이 시대의 고전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관하여 음미하게 된다.

변혜숙은 한지에 섬세하게 찍어낸 점들로 옷장 속의 표정을 포착한다. 드레스, 바지, 치마와 같은 아이의 유년기를 추억케 하는 옷들은 점과 점이 만남으로써, 종이 속에 부드럽게 스며들거나 화면 밖을 부유한다. 옷장속의 풍경들은 부드럽고 온화하고, 아득하고 그립다. 한지위에 올려 진 안료의 흔적들은 우리의 어릴 적 추억처럼 깊숙이 침투되고 있다. 이는 한지의 물성이 가진 깊이와 고요, 무게감이 피부의 체온과 닮음에서 오는 결과인 듯하다. 그의 밀도 높은 묘사는 화론(畵論)에서 말하는,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얻어내는 정신성 즉, 전신(傳神)과 닮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정빛나作_전철의 창가에서 조용히 중얼거렸다_72.5x60.5cm_한지에 채색_2012

 

 

이소발은 안경을 통해 드러나는 기억과 삶의 단상들을 표현한다. 안경속의 풍경들은 작가의 지나 온 삶의 편린들과 작가가 감동받은 이중섭의 회화, 보테로와 같은 특정한 의미를 지닌 이미지들이다. 이들의 장면들은 작가 특유의 우의화(寓意化)를 통해 재탄생되고 있다. 신윤복의 고전은 명쾌한 선묘로써, 명작을 바라보는 관자의 시선처럼 확장된 호기심으로 드러난다. 이는 작가가 느끼고 바라보는 삶의 감도(感度)가 밝고 건강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작가에게 있어 그리기의 세계는 설레는 기대와 유쾌를 동반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안경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자신의 삶과 이미 체화된 고전들은 거울과 같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규준과도 같다. 이는 곧 세계를 인식하는 정밀한 가치평가의 하나로써 작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빛나는 두 개의 화면을 겹침으로써 하늘같은 풍경화를 보여준다. 이는 고려불화에서 볼 수 있는 배채(背彩)의 효과를 두 장의 바탕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배채는 즉물적인 색의 표면감을 눌러주고 깊은 정신 영역에서 느끼는 맛을 보여주게 된다. 밑색이 칠해진 화면과 구체적인 사물을 선묘로 묘사한 바탕의, 이중으로 겹쳐진 종이에서 바람이 불거나 구름이 아득한 우물 같은 세계의 풍경이 열린다. 그 풍경에는 익숙한 동네 어귀의 담장과 지붕, 그 위로 흘러가는 구름과 피어나는 꽃이 담담하고 조용히 펼쳐진다. 작가의 화면에서 완성되는 무한히 확장하는 풍경은 시인이 노래하는 정겨운 시(詩)의 심상(心像)과도 닮아 있다. 즉, 그의 화면은 청신하고 맑은 바람이 이는 시적 상상력의 세계로 가득한 것이다.

 

 

정헌칠作_청음 淸音_145x85cm_한지에 수묵담채_2012

 

 

정헌칠은 우리 땅에서 자라 온 삽살개를 그린다. 정교한 세필로 터럭 한올 한올을 묘사한 강아지에서 사실성을 뛰어넘는 삽살개의 정수가 감지된다. 그가 묘사한 터럭 한올 한올의 탄력 있는 붓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숙성된 정신의 정화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사실 이러한 강아지의 표현은 조선후기 김두량의 강아지 그림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겠다. 김두량은  <<흑구도(黑狗圖)>>와 같은 그림을 통해 정밀한 세필묘사와 사실적인 강아지의 동체 움직임을 포착해내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18세기에 일었던 실경산수의 유행과 사실적인 형상의 묘사를 통해 내재한 정신성을 가시화시키는 전통화법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정헌칠의 작품에는 뿌리 깊은 전통성이 내재하는 것이다. 그 전통성은 주제와 묘사기법에 이르기까지 견고한데, 이를 통해 정신성과 관계하는 전통의 긍정적인 감동을 느끼게 된다.

최미연은 산과 나무로 구성된 도시 풍경을 그린다. 금강산도에서 볼 수 있는 뾰족하게 솟은 산과 바위는 현대 도시가 되고, 이 거대한 도시는 작은 자동차가 끌고 움직이기도 한다. 작가의 작품은 겸재(謙齋) 정선의 진경산수에서 기원하고 있다. 부감법으로 바라보는 산수도시의 풍경은 진경산수의 수직준(垂直埈)과 같은 뾰족한 산수의 밀도 높은 필법의 구현으로 인하여 드넓고 무한히 확장되고 있다. 이 늘이고 줄인 관념의 도시를 자동차가 싣고 떠난다! 사실 이는 장자(莊子)에서 말하는 피라미(鯤)가 대붕(大鵬)이 되는, 사고의 놀라운 전복을 보여주는 상상력이 내재되어 있다.

 

 

최미연作_In my city_194x130.5cm_한지에채색_2011

 

 

최현석은 궁중기록화의 기법을 통하여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보여준다. 궁중기록화는 조선왕실에서의 중요한 행사를 엄정하게 기록한 왕실문화의 꽃이다. 혼례, 행차, 연회와 같은 궁중의 사건들은 참여 인원, 소요 경비, 공간의 꾸밈 등과 같은 세부적인 사항들에 관하여 빠짐없이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다. 최현석의 작품 또한 이러한 궁중기록화에서 보여주는 부감법과 사실성을 계승하고 있다. 천안함 침몰사건, 구제역 매몰과 같은 중요한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은 작가 특유의 단순화된 필의 운용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인물과 사물과 배경이 사건이라는 시간 속에 용해되어, 하나의 서사적인 스토리로 구성 되고 있다. 작가의 작품 속에서 기록화의 기법적, 내용적 의미가 다시 살아나고 있는데, 이는 곧 21세기 현대기록화로 볼 수 있다.

이렇듯 7인의 작가가 보여주는 살아 숨 쉬는 고전의 향기는 다양하고 흥미롭다. 이들은 고전의 정신성을 계승하거나 기법적 구성의 계승을 보여주는데, 이들에게 있어 전통은 창작의 근간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들의 창작 양상을 통하여, 고전 속에 용해되어 있는 정신과 본질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고전의 계승이 아닌가 싶다. 이때의 고전은 생명력으로 정신성으로 다시 살아 숨 쉬는 것이다. (2012.3)

 

 

최현석作_신묘년 구제역순환도_194X112cm_마(麻)에 수간채색_2011

 

 
 

 

 
 

vol.20120412-고전은 숨 쉰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