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관 탄생 1백주년 기념 특별 展

 

 

남관_130x88.5cm_oil on canvas_1968-77

 

 

수성아트피아 호반 갤러리

대백프라자갤러리 전관

 

2012. 4. 10(화) ▶ 2012. 4. 22(일)

대구시 중구 명덕로 210 | 053-420-8014

 

www.debecgallery.com

 

 

무제_53x45.5cm_oil on canvas_1989

 

 

남관 탄생 1백주년 기념 특별전 개최

한국 추상미술의 1세대 화가이며 경북 청송 출신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서양화가 남관(南寬, 1911~1990) 화백의 탄생 1백주년을 맞아 대규모 회고전이 오는 4월 10일 부터 22일까지 대구 수성아트피아 호반갤러리와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이원 전시로 마련된다.

남관 화백의 탄생 1백주년 기념해 서울전시(환기미술관 2011. 11. 11~2012. 1. 15)에 이어 대구전시로 마련되는 이번 탄생 기념특별전에는 남관 화백의 50년 화업(畵業)을 정리한 화집 ‘念.像.幻想-남관의 예술과 생애’도 함께 출판되어 그의 한국 미술사적 의미를 재조명해 보는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수성아트피아가 주최하고 청송군과 대백선교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이번 특별전은 대구전시에 이어 경북 청송에 순회전시가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기념전에는 유족과 개인소장가 등이 출품한 작품 총120여점이 전시 된다. 1940년대 ‘호박(1945)’과 ‘향원정(1947)’을 비롯해 1954년 도불이후 추상적 미술양식을 보였던 ‘파리야경(1955)’과 ‘허물어진 고적3(1963)’, ‘역사의 흔적(1963)’, 1966년 망통회화비엔날레에서 대상(大賞) 수상 후 귀국해 제작된 작품 ‘옛 형태(1972)’, ‘회고(1980)’등 함께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미술관 1층 중앙홀에 전시된 ‘흑백상(1984)’은 가로 720cm의 대형 작품으로 남관의 예술생애에 있어 최고의 절정기에 이른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표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그리고 별관 전시실에는 수묵 드로잉과 수채화, 펜화, 판화, 과슈화 등 50여점의 다양한 작품들을 새롭게 만나 볼 수 있다.

그의 작품들에 있어 무엇보다 큰 특징은 색채적인 면을 수 있다. 그의 초기작품에는 어두운 화면에서 벗어나 점차 밝아지며 독특한 기법으로 오랜 시간의 경과와 흔적의 시각적 효과를 나타내기 위한 얼룩이나, 발묵, 드리핑(dripping), 데깔코마니(decalcomanie), 꼴라쥬, 데꼴라쥬 또는 네거티브 꼴라쥬 기법의 작품들을 꼽을 수 있겠다. 또한 동양의 전통 색채인 쪽빛(푸른색)의 풍부한 감성과 무한한 깊이는 남관 예술의 독특한 아름다움과 요체의 색채로서 신비와 영원, 불멸을 상징으로 표현되어지고 있다.

 

 

묵상_92x73cm_oil on canvas_1978

 

 

남관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주는 시대적 의미

20세기 초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맞이했던 우리의 근대화는 정치.경제.사회의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했고,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1910년 국권상실 얼마 전에 국내에 들어 온 각 계층의 서양인들과 그들에 의해 유입되어진 미술.음악.영화 등 새로운 양식들은 기존 우리가 추구했던 예술적 가치관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고 보아진다. 그 중에서도 시각적 조형예술인 ‘미술(美術)’양식의 새로운 도입과 전개는 동.서양의 미학적 사고 변화에 가장 깊은 관계가 있어 보인다.

한국에서 서양미술이 유입된 이후 한국인 화가에 의해 독자적으로 전개된 최초의 서양화가라면 고희동(高羲東, 1886~1965)을 꼽을 수 있다. 1908년 한국인 최초로 미술 유학을 통해 서양화를 익혔고, 1915년 귀국한 이후 전개된 ‘서양화(西洋畵)’가 이제는 우리의 보편적인 미술양식으로 자리 잡는 데에는 불과 1백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동안 우리의 미술은 서양미술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과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이 발전을 거듭 해 왔다. 그 중에서도 우리의 서양화 역사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했던 1세대작가들에 대한 연구사업과 재조명작업은 최근 들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올해는 한국 추상미술의 1세대 화가이며 경북 청송 출신인 서양화가 남관(南寬, 1911~1990)의 탄생 1백주년이 되는 해이다. 1911년 11월 25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구천리에서 태어 난 남관이 한국미술사에 주는 의의는 인간의 희로애락, 생명의 영원성 등을 정제되고 세련된 색채에 담아, 인간상을 마치 상형문자와 같은 형상으로 표현한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비극적 체험의 실존적 내면세계로 마스크와 상형문자와 같은 기호화된 인간형상, 꼴라주의 다중적인 효과의 독특한 마티에르 그리고 청색을 주조로 한 서정적이며 동양적 신비의 색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동양의 정신과 문화적 전통을 서양화 기법을 통해 현대적인 추상회화로 발전 시켰다는 점과 당시 세계미술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에서 동양의 정신과 자신의 체험을 서양의 추상기법과 재료를 통해 독자적인 심상적 추상세계를 표현을 통해 국제 화단에서 당당하게 인정을 받았다는 점은 당시 국내 미술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독보적 작품 경향과 수상경력이었다. 1958년 살롱 드 메의 초대를 시작으로 5차례의 초대출품과 1966년 망통회화비엔날레에서의 대상 수상은 이후 유럽의 유명화랑과 미술관의 개인전과 초대전으로 이어져 한국미술의 새로운 가능성과 독창성을 인정받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은 남관이 얼마나 세계적인 작가였는가를 보여주는 업적들이다. 이는 한국 현대 미술사상 처음으로 국제적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그의 미술사적 의미를 크게 들 수 있겠다.

 

 

옛뜰의 인상_162.2x130cm_oil on canvas_1984

 

 

한국미술사에 있어 남관의 예술적 의미

한 사람의 화가로서 남관의 생애를 돌이켜 볼 때, 그의 생애는 곧 이 나라가 겪은 고난과 시련의 혼란한 역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그것은 곧 우리나라가 겪은 격동기에 산증인이며 그 시기에 태동한 한국 현대미술의 전개에 대한 증언이자 이정표이기도 한 것이다.

국내 미술계에서 이미 확고한 중견 내지 중진작가로 위치를 굳히고 있던 3~40대의 서양화가들 중에서 1960년 무렵까지 자기도약의 정열로 도불(渡佛)이 가능했던 작가는 파리의 체험을 통해 국내에서의 작품이나 화면태도를 완전히 버리고 출국 전에 다짐하였던 새로운 자기 도약을 실현시키며 그 뒤의 국내의 현대미술 전개에 직접, 간접의 영향과 고무의 배경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남관 역시 외국에 체류하여 서구 추상작가들의 작품으로부터 많은 영감과 자극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적인 모더니즘의 정착과 한국적 미의식에 대한 자각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의 고유한 미적 특성은 우리의 풍토와 자연미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더라도 그 내면에서 드러난 정신적 풍토성은 우리 고유의 특질을 잘 반영하고 있다. 남관 작품의 실질적인 성공도 여기서 비롯된다. 그것은 논리적인 접근방법보다는 체험적인 사실과 직관에 의한 원천적 감성의 방법으로 형태를 찾아내는 방법이 그러하다. 거기에 본래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작품을 제작한다는 점이 특징으로 이는 앵포르멜이 절정에 다다라 있을 무렵인 1954년부터 1968년까지 남관의 13년간의 기나긴 체불 창작생활을 경험한 작품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의 화면들에 신화를 환기시키는 우수적 분위기와 색조, 그리고 갑골문이나 부적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은 상징성 등이 동양을 선명하게 확인 시켜 주고 있다.

1958년 남관은 당대 저명한 대가들을 초대하는 살롱 드 메로 피카소와 브라크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쌀롱 드 메가 1958년 이후로 5차례에 걸쳐 남관을 필요로 했듯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랑으로 알려져 있는 독일 함부르크의 맨슈 화랑, 이탈리아 밀라노의 코티나 화랑, 프랑스 파리의 베르카메르 화랑, 벨기에 블뤼셀의 랑그르 에귀 화랑들이 그의 작품을 앞 다투어 전시하기도 하였다.

1966년의 국제적인 명성의 작가임을 학인케 해 준 망통회화 비엔날레 대상 수상은 세계적인 작가들과 경합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명예상에는 타피에스, 시대상에는 폴리아코프가 선정되었음을 보더라도 대상 수상자의 국제적인 위치와 그 예술성을 가치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파리 국립현대미술관과 파리 시립현대미술관에 소장을 두고 있는, 1970년대까지의 단 한사람의 한국 예술가였다.

 

 

정시(精視)_89x130cm_oil on canvas_1977

 

 

남관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후원하며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타고르 명제의 전형적 실천자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남관이 지역성의 표출만이 아니라 자신의 독창적인 미의식과 방법의모색이 없이는 결코 유럽화단에서 우뚝 설 수 없었을 것이다. 슈라즈나 마네시에, 폴리아코프, 피카소 등과 필적하여 뒤지지 않았던 그의 예술적 성과가 한국이라는 지역성의 표출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님을 그가 깊이 유념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의 예술적 성과를 더욱 빛내주고 있는 것이기도 한다.

남관은 오직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의 인생이었으며, 이 일을 평생 동안 지켜왔다. 성실과 인내심으로 작품제작에만 주력해 온 남관은 미술계에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한국 현대미술에 많은 영향력을 주었다. 특히 유영국, 김환기와 함께 한국추상미술의 선구자로서, 또한 한국현대미술사에서 처음으로 국제적인 성과를 이룩한 작가로는 남관의 미술사적 위치를 말해 주고 있다 하겠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탁월한 예술정신과 창작에 불구하고, 정작 우리 미술사에는 그의 업적을 소외시 하거나 축소하려는 부분이 매우 안타까웠다. 이번 기념전을 통해 그의 미술사적 위치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남관

 

남관(南寬, 1911~1990)은 일본 태평양 미술학교 졸업(1937)하고, 프랑스 파리의 아카데미 드라그랑드쇼미에르(1955) 입학, 추상미술에 몰입하였다. 1958년 한국인 화가로는 처음으로 살롱 드메에 초대되었고, 이어 H. 아르퉁, A. 마네시에 등과 함께 플레브 화랑 초대전에 참가하여 국제적인 화가로 인정받았다. 일찍이 세계적인 평론가 가스통 디일로부터 '동.서양 문화의 어느 일부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둘을 융합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대예술가'라는 찬사를 받았다. 인간의 희로애락, 생명의 영원성 등을 정제되고 세련된 색채에 담아 인간상을 마치 상형문자와 같은 형상으로 표현하였다. 우연과 절제가 만들어 내는 상징적 아름다움을 구현해 내고 있는 추상화로, 환상적이고 유동적인 움직임과 미묘한 변이를 느끼게 한다.

남 관은 국전심사위원, 한국미술대상 심사위원, 홍익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초기에는 변형된 인상주의 화풍으로 인물을 그리다가 파리에서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는다. 1966년 망통비엔날레 1등상을 수상하고, 그 후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왕성한 작품활 동을 한다. 암울하고도 상징적이었던 화면은 귀국 이후 더욱 투명한 색채의 뉘앙스가 풍부한 톤으로 발전되었고, 앵포르멜에서 출발하여 독자적인 세계로의 도달하여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얼룩이나 발묵, 뿌리기, 데칼코마니(decalcomanie) 등의 혼합적 기법을 적극 활용하면서 화면 속에 시간의 경과와 각 재료들의 마모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흔적들을 남겨 놓았다.

 

 

 

vol.20120410-남관 탄생 1백주년 기념 특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