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웅선 展

 

[2012 신진작가 창작지원전시] - 선인장, 존재의 유비

 

두 개의 선인장_43x43x26cm_대리석_2012

 

 

갤러리 라메르 제2전시실

 

2012. 3. 21(수) ▶ 2012. 3. 27(화)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94 홍익빌딩 | 02-730-5454

 

www.galleryLAMER.com

 

 

빛을 품은 선인장_28x28x55cm_대리석_2011

 

 

2012 갤러리 라메르 신진작가 창작지원 전시 작가로 선정된 문웅선의 개인전이 2012년 3월 21일 부터 3월 27일 까지 열린다. 작가는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선인장에서 현대인과의 닮은꼴을 본다. 사람들이 선인장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선인장이 불모가 무색하게 한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도 마찬가지이다. 환경이 열악해 사람이 살 수가 없는 또 다른 불모지다. 이를 작가는 선인장을 현대인의 표상으로 유비적 거울로 상징하여 물질경제에 의해 변방으로 내몰린 현대인의 실체를 보고하고 또 외적 풍요에 가려 팍팍해져 가는 현대인의 삶의 질을 각인 시키고자 한다.

 

 

빛을 품은 선인장_28x28x55cm_대리석_2011

 

 

선인장, 존재의 유비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불모지가 있다. 환경이 열악해 사람이 살 수가 없는 곳이다. 사막이 이런 불모지를 상징한다. 불모 곧 아무 것도 생산해내지 못하는 이 척박한 땅에도 생명체가 있다면 그 생명체는 당연 눈에 띌 것이다. 사람들이 선인장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사람들이 선인장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선인장이 불모를 무색하게 하며 환경이 그어놓은 한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 그것은 곧 생존의 문제이다. 이처럼 한계를 넘어 생존하기 위해서 몸은 경제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선인장의 몸은 경제적이다. 에너지를 소비하기보다는 축적하기에 용이한 몸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단순하고 닫힌 몸통이 그렇고 가시로 최소화된 잎이 그렇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적응시키고 변형시킨 결과일 것이다.

여기에 또 다른 불모지가 있다. 마찬가지로 환경이 열악해 사람이 살 수가 없는 곳이다. 현대가 이런 불모지에 해당한다. 현대는 현대인을 불모로 내몬다. 모든 것을 경제적인 잣대로 재단하고, 경제성이 없는 것들은 도태를 강요 받으며, 새로운 사막의 변방, 자본의 변방으로 내몰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것은 경제성이 없는 것들이다. 몽상과 상상의 소산들이며, 꿈과 독백의 결과들이다. 현대에 이런 개인적인 자질에 투신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불모를 증거 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보다 적극적으론 현대가 강요하는 불모에 저항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렇게 현대가 내모는 불모에 효과적으로 저항하기 위해서 현대인의 의식은 경제적이어야 한다. 물질적인 경제에 의식적인 경제로 대처하는 것이다.

문웅선이 선인장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작가는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선인장에서 현대인과의 닮은꼴을 본다. 물질경제에 의해 변방으로 내몰린 의식의 실체를 보고, 그 외적 풍요에 가려 오히려 더 팍팍해져만 가는 현대인의 삶의 질을 본다. 물질경제의 맹목적 관성에 맞서 어떻게 의식을 경제적으로 운영할 것인가? 어떻게 선인장이 현대인의, 의식의, 존재의 유비적 표현일 수가 있는가? 선인장은 최소한의 물만으로도 생존할 수가 있고, 덩달아 몸 역시 최소한의 생존조건에 적응하도록 구조화돼 있고, 특히 가시는 물질경제에 맞선 의식을, 자기 방어적이고 공격적이고 첨예한 의식을 암시한다.

여기에 선인장이 있다(마을과 선인장). 그 선인장은 한눈에도 좀 크다. 가장자리에 집들을 아우르면서 가운데 우뚝 솟은 선인장이 예사롭지가 않다. 중심성이 강한 구도가 자연 집들보다는 선인장에 주목하게 하고, 집들과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선인장의 존재 의미를 묻게 한다. 단순히 선인장 자체를 재현하는 것 이상의 어떤 의미론적 지평 위에 선인장을 재설정하고 있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선인장은 무슨 기둥처럼, 지주처럼, 토템폴처럼, 마을을 지키는 신목처럼 한 가운데 우뚝 서서 마을을 굽어본다. 여기서 마을은 일종의 소우주 곧 세계의 축소판이며 존재의 메타포에 해당하며, 선인장은 세계수(세계의 중심에 심겨진 신령한 나무로서 현세와 내세를 잇는 가교역할을 하며 그 상징적 의미가 신목 과도 통한다)를 상징한다. 작가는 이렇게 자신이 생각하는 우주관을 선인장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며, 그 이면에는 전통적인 자연관과 우주관이 반영돼 있다. 이 선인장은 이런 상징적 의미와 함께 일정한 서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한데, 선인장이 무슨 집들이 꾸는 꿈같다. 정작 집보다 크게 웃자란 선인장이 집(현실)보다 큰 꿈(이상)을 상기시킨다. 색깔도 형태도 없는 꿈에 형태를 부여해준, 꿈을 가시의 영역으로 불러낸 경우로 볼 수 있겠다.

이렇듯 선인장과 더불어 꿈꾸는 집들은 일정한 풍경적인 요소를 그 이면에 포함하고 있으며, 이로써 일종의 풍경조각으로 부를 만한 지평을 열어놓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풍경조각은 소재 자체의 특정성에서 나아가 일종의 관계 개념을 매개로 조각의 표현영역을 확장하려는 시도로 볼 수가 있겠다. 이 작업의 경우에 풍경조각의 개연성은 마을과 선인장과의 관계를 매개로 우주와 존재의 됨됨이를, 꿈과 이상을 상형한 예로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 가능성은 전작 중 특히 2008년 제작된 일련의 조각들에서도 확인되는데, 크고 작은 집들이 정경을 이루고 있는 <마을>, 구름과 집을 하나로 연결시킨 <비>, 단순화된 기하학적 단면 위에 또 다른 작은 단면처럼 덧붙여진 <집> 같은 작업들에서 조각의 전망은 풍경을 향해 열리고 확장된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작가의 조각에는 이런 풍경조각의 요소와 함께 일종의 상황조각으로 정의할 만한 경우 역시 발견된다. 풍경조각이 전망으로 열리고 확장되는 특성상 자연을 소재로 한 경우와 관련이 깊다면, 상황조각은 아무래도 인간의 조건과 인체를 소재로 한 경우에서 그 적절한 예가 발견된다. 작가의 작업에선 인체를 소재로 한 일련의 전작들 중 특히 2009년 <욕망2>가 그런데, 문이나 벽을 두드리고 있는 사람이 한계상황에 처한 인간의 실존적이고 보편적인 존재론적 조건을 떠올리게 한다. 추후로도 이런 풍경조각과 상황조각이 작가의 조각의 지평을 확장시키고 심화시켜줄 상황논리 내지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이외에도 작가는 다양한 형태와 경우의 선인장들을 예시해주고 있다. 무슨 봉우리인양 선인장의 정상에 앉아있는 새를 형상화한 <선인장과 새>, 마찬가지로 선인장 꼭대기에 둥지를 튼 새 둥지를 상형한 <휴식>, 꽃 인양 몸통에 덧붙여진 작은 개체를 조형한 <선인장>들이다. 이 일련의 선인장들에서 작가는 선인장 자체의 소재적인 특성을 재현하는 것에 덧붙여 일종의 의미를 파생시키는데, 주로 휴식이나 쉼의 계기를 전해준다. 선인장 본래의 형태와 상황논리를 가급적 유지하는 한에서의 순수하고 천진한, 그리고 동화적인 상상력을 매개로 팍팍한 살림살이와 현실원칙을 넘어서게 하는 힘과 유머를 감지케 한다.

이 일련의 작업들에서 작가는 무엇보다도 선인장 고유의 형태적 특정성에 주목하는데, 선인장 자체가 이미 일정정도 추상적인 형태를 띠고 있어서 그 형태를 자의적으로 변형시키기보다는 가급적 형태 그대로를 충실히 옮겨놓는 것만으로 오히려 조형화에 성공한 드문 경우로 보인다. 여기에 그 자체 유기적인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선인장 고유의 메스 역시 조각적 접근과 재현과 해석을 용이하게 해주는 효과적인 계기로 작용했을 것이다(주지하다시피 메스는 조각의 핵심적인 본질에 속한다).

그리고 특히 <휴식>에서는 길고 통통한(그리고 때론 기룸한) 몸통과 함께 그 표면에 스트라이프 줄무늬를 새겨 넣어 선인장 고유의 형태적 특성이 어필되게 했다. 여기에 몸통에 부가된 붉은 색채가 팍팍하고 건조한 사막의 기후마저 전달해주는 느낌이다. 나아가 초록색 선인장이나 붉은색 선인장처럼 색채를 도입해 조각의 표현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는데, 비록 이런 색채의 도입 자체가 현대조각에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를 통해서 회화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돌의 표면에 유사 큐빅이나 금속을 심어 넣는 것으로써 가시를 대신한 일종의 상감기법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다양한 조형과 기법을 동원해서 선인장 고유의 형태를 상형하고 변주한다.

선인장의 특질은 무엇보다도 가시에서 극대화된다. 가시가 사막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적응하고 변형시킨 극단적인 예를 형태로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선인장은 현대인의 표상이며 유비적 거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까칠한 가시 하나씩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 가시가 세계를 찌르고 존재를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작가의 조각은 선인장이 갖는 이런 유비적 의미와 특히 가시의 존재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선인장과 새_26x20x62cm_대리석_2012

 

 

 

 

■ 문웅선

 

2002  국립 목포대학교 미술학과 조소과 졸업 | 2010  이탈리아 까라라 국립 미술원 조각전공 졸업

 

개인전  | 2010  apt 마리나 디 마싸 이탈리아, MASSA CARRARA | 2009  galleria petrate pietrasanta 삐에트라산다, 이탈리아 | 2006  galleria satura, ASSOCIAZIUONE CULTURALE, 제노바

 

단체전  | 2010  suono del cuore, apt massa carrara | 2009  까라라, gom studio | 2009  제노바, galleria satura | 2009  ristorante ciccio | 2006  galleria marina di pietra santa

 

수상  | 2010  la bottega arti arezzo 공모전 입상 | 2007  concorso cesare 공모전 입상

 

 

 

vol.20120321-문웅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