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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태 展
<Trace of Eternal>
Trace of Eternal_60x106.67cm_Inkjet printed on White Velvet_2011
갤러리 이마주
2012. 3. 15(목) ▶ 2012. 3. 24(토)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20길 12 AAn tower b1 | 02-557-1950
Trace of Eternal_60x106.67cm_Inkjet printed on White Velvet_2011
갤러리 이마주는 2012년 3월 15일 부터 3월 24일 까지 정영태 개인전 『Trace of Eternal』을 진행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수십 번을 찾아가 찍은 전북 고창의 이미지를 담아낸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쉽사리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갯벌과 바다,,, 수 차례 허탕을 치는 건 당연한 일,,, 그럼에도 정영태작가가 바다로 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을 보는 순간 이 의문에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찰나의 순간, 최고의 장면과 조우하는 작가의 벅차는 감정이 한 장의 사진으로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있다. 옛날 중국 전설에 어떤 화가가 자기가 완성한 그림을 보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처럼, 이번 개인전에 소개된 정영태의 작품들 앞에 서서 바라보면 자신도 모르게 작품 속으로 빠져드는 감동을 느낄 것이다. 이번 전시는 총 17여 점의 사진 작업으로 구성되며 오프닝 파티는 3월 15일 6시에 갤러리 이마주에서 진행된다.
Trace of Eternal_60x106.67cm_Inkjet printed on White Velvet_2011
근대 이후의 사람들에게 시간은 균질 하게 분할된 시간이다. 사람들은 자기, 먹기, 일하기, 사랑하기 등을 위해 시간을 나누어 살아간다. 그리고 살아진 시간은 그저 흘러가 버린다. 사라지는 시간을 보존하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시간을 박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을 넘어서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 사이에는 사진이 시간을 박제하는 도구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즉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기억의 저 너머로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을 포르말린 속에 담그는 행위다. 포르말린에 담긴 대상들의 시간은 정지되어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늙지 않으며, 사진 속에서는 영원히 같은 모습으로 살아있다. 어찌 보면 인간의 한없는 욕망을 보여주는 것이 사진이다. 정영태는 <Trace of Eternal>전을 통해 이와는 달리 시간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존하고 있다. 정영태의 갯벌은 박제되어 정지된 시간 속의 갯벌이 아니라 태초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 또한 담고 있는 갯벌이다. 갯벌사진에서 과거, 현재, 미래는 서로 공존하면서 끊임없이 돌고 돈다. 이러한 영원 속에서 인간의 욕망은 사라지고,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모습으로 자연앞에 서게 된다. 영원의 흔적을 쫓으며 정영태는 일 년 이상의 시간을 쏟았다. 그리고 만 장 이상의 사진을 찍었다. 그러한 지난한 과정이 있었기에 정영태는 역설적이게도 찰나의 순간에 그 영원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 순간들이 바로 이번 개인전에서 보여주는 사진들이다.
Trace of Eternal_60x106.67cm_Inkjet printed on White Velvet_2011
수평선이 하늘과 바다를 나누고 다시 바다와 뭍을 나누고 있다. 가로로 분할된 단색을 기조로 하는 화면은 어떠한 긴장도 없는 평온과 고요 그 자체를 드러낸다. 최소한의 표현요소들만 남겨진 갯벌의 사진에서 쉽게 미니멀리즘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정영태의 사진을 미니멀리즘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은 그의 사진이 형식만 남은 대상이라고 하기에는 의미와 내용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즉 그의 사진이 형식적으로는 서구의 한 사조를 따르는 듯 하지만, 그러한 형식을 취하게 된 것은 동양적인 내용의 논리적인 귀결이기 때문이다. 그 내용이란 처음이자 끝이고 끝이자 처음인 시간이다. 또한 지금의 순간은 이전의 순간이었으며 앞으로의 순간이다. 즉 시간을 넘어선 시간 즉 영원이다.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서 갯벌의 이미지는 정지한 듯 하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비워있는 듯 하면서도 꽉 채워져 있고, 한계 지워진 듯 하면서도 무한으로 향해가고 있다. 동양사상에서 비움은 없음이 아니다. 채움의 다른 말이다. 갯벌은 바다와 뭍의 중간에서 수많은 생명체가 삶을 꾸려가는 터전이다. 인간까지도 포함해서 말이다. 생명의 풍성함으로 채워진 갯벌이 정영태의 사진에서는 비움으로 표현되어 있다. 갯벌은 사이에 놓여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비움/채움의 양 개념을 동시에 갖고 있다. 사이에 놓인다는 것은 어느 한쪽도 될 수 없지만 따라서 양쪽 모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정영태 그 자신이 갯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과 인간 사이, 영원과 순간 사이에 서서 양쪽을 매개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가운데서 그는 아마 영원과 순간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그 둘 모두를 향유했을 것이다. 우리도 정영태의 사진 앞에서 찰나를 통해 영원을 경험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갯벌 앞에서 끊임없이 낮아지면서도 한없이 풍성해 질 수 있을 것이다.
Trace of Eternal_60x106.67cm_Inkjet printed on White Velvet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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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20315-정영태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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