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연 展

 

[2012 신진작가 창작지원전시]

삶과 죽음의 순환 그리고 보편적 원칙

 

Real accident_145.5x89.4cm_한지에 먹과 채색_2012

 

 

갤러리 라메르 제4전시실

 

2012. 2. 1(수) ▶ 2012. 2. 7(화)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94 홍익빌딩 | 02-730-5454

 

www.galleryLAMER.com

 

 

누가 내 화분들을 죽였을까?_145.5x89.4cm_한지에 먹과 채색_2012

 

 

2012 갤러리 라메르 신진작가 창작지원 전시 작가로 선정된 윤소연의 개인전이 2012년 2월 1일 부터 2012년 2월 7일 까지 열린다. 삶이 빛나고 탄생이 아름다운 이유는 우리에게 언젠가 죽는다는 '특권'이 있기 때문이다.

윤소연 작가는 탄생과 소멸이 공존하는 화분을 통해 삶과 죽음의 순환과 보편적 원칙을 찾는다. 씨앗을 심고 새싹이 트고 성장하고 무성해지고 또 시들고 마지막으로 소멸하는 화분을 보면서 무한한 시간 속에 탄생과 소멸하는 우주의 진리를 해석한다. 생과 사는 하나로 존재하고 만물은 그 모습만 변화할 뿐 영원히 순환하며 살아가기에 삶과 죽음은 서로를 영원히 빛나게 해주는 존재임을 작가는 함께 공감하고자 한다.

 

작가 노트

삶과 죽음의 순환(The cycle of life and death) 그리고 보편적 원칙(Universal truths)

어느 날 문득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만물은 삶과 죽음을 동시에 반복하면서 세상을 유지시킨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유지시키는 만물의 보편적 원칙은 무엇일까.

만물은 자연이란 무한한 우주 안에서 잉태(혹은 생식)라는 행위로 존재하고 또 소멸하기를 반복한다. 즉 세상의 만물은 잉태와 소멸의 거대한 순환 속에 있으며 순환이란 결국 세상을 유지시키는 우주의 보편적 원칙인 것이다.

그런 진리로 볼 때 긴 생에 있어 지금의 모습은 찰나이며 생과 사는 하나로 존재하고 우주의 보편적 원칙 속에 만물은 그 모습만 변화할 뿐 영원히 순환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부터 가장 미천한 발 밑의 작은 개미 한 마리마저 그 안에는 불변하는 원형(씨앗)이 존재하며 우리는 외적인 모습만 변화한 채 삶과 죽음을 반복하며 우주의 보편적 원칙에 충실하며 영원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존재하는 씨앗을 간직하며.

 

Is time real?_116.7x80.3cm_한지에 먹과 채색_2011

 

 

전시 주제

화분에서 우주의 보편적 원칙을 보다. (Who killed the plants in my pot?)

어느 날 문득 화분을 봤다. 그리고 그 짧고 평범한 순간에 우주의 보편적 원칙을 경험했다.

<사건-Real accident>

화분.

언젠가 긴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한 달여 만에 들어간 내 방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한 달 전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었고 방안의 시간은 멈춘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곧 화분을 발견했다. 시들어버린 화분. 단 하나의 변화. 누가 나의 화분을 죽인 걸까?

멈춰있는 공간. 흘러가는 시간.

나는 그 짧고 평범한 순간에 우주의 보편적 원칙을 경험했다.

시간과 탄생과 소멸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변화에 있다. 변화는 우주의 보편적 원칙이며 또 축복이다. 씨앗을 심고 새싹이 트고 성장하고 무성해지고 또 시들고 마지막으로 소멸하는 화분을 보면서 사느라 수고했다고 말하는 나의 마음은 시들어 죽은 화분 옆에 살며시 피어나고 있는 여린 새싹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무한한 시간 속에 탄생하고 소멸하고 또 탄생하며 우주의 보편적 진리를 충실히 따르며 영원히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산다는 것은 수고로운 일이며 죽는 것은 삶에 대한 위로이고 동시에 살아있음을 더 빛나게 해주는 축복인 것이다.

나의 그림 속 화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화분이란 자연이고 동시에 인간의 염원을 담은 매개체이다. 물을 주고 비료를 주는 보살핌의 행위 속에는 '나의' 화분이 오래 살길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다. 그러나 그 염원이 무색하게 결국 '나의' 화분 또한 삶과 죽음의 순환 속에 벗어나지 못하고 시들어 죽고 만다. 우리는 모두 우주의 보편적 원칙 속에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죽음이란 소멸되어 슬픈, 그래서 그렇게 간절히 벗어나고 싶은 대상일까?

우주의 보편적 원칙 속에 죽음은 삶을 끝내는 잔인한 존재일까?

나는 생각한다. 죽지 않기를 그리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무한한 염원 속에도 결국 죽고 마는 그 행위는 삶의 그 어떤 순간보다 아름답다.

왜?

삶이 빛나고 탄생이 아름다운 이유는 우리에게는 언젠가 죽는다는 '특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염원대로 화분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죽지 않는다면 더 이상 탄생은 아름답지 않고 삶은 빛을 잃는다. 죽음이 있기에 삶은 보다 가치 있고 아름답게 빛나고 것이다.

탄생하고 살고 죽고 또 탄생하는 행위는 우주의 보편적 원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우리의 숭고한 행위이다. 무한한 생에 있어 변하지 않는 건 단 하나,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씨앗(우리의 원형)뿐이고 고로 지금의 모습은 찰나이다. 생과 사는 하나로 존재하고 우주의 보편적 원칙 속에 만물은 그 모습만 변화할 뿐 영원히 순환하며 살아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삶과 죽음은 서로를 빛나게 해주는 존재인 것이다. 나도 그리고 당신도 나의 화분도 마찬가지다.

 

 

God bless you!_130.3x162.2cm_한지에 혼합재료_2011

 

 

 

 

■ 윤소연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한국화과 졸업 |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동양화과 수료

 

개인전  | 2012  신진작가 선정 창작 지원전시, 라메르 갤러리, 서울

 

단체전  | 2011  후소회 청년작가 선정전, 라메르 갤러리, 서울 | 2010  채연전, 이화아트센터, 서울 | 2010  아시아프, 서울 | 2009  아시아프, 서울 | 2009  UN본부 기념전 '세계 미술의 소통전'(UN본부), 뉴욕 | 2009  인사동 사람들 특별 초대전 '새로운 세상', 라메르 갤러리, 서울 | 2009  채연전, 이화 갤러리, 서울 | 2009  NEO-PAX 주목작가 초대전, 이형아트센터, 서울 등

 

 

 

vol.20120201-윤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