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만 展

 

“ 靈 山 ”

 

天山路  the Road of Sky Mountain_31.5x66cm_Sumi ink hand-made mulberry_2010

 

 

갤러리 그림손

 

2011. 12. 7 (수) ▶ 2011. 12. 13 (화)

Opening : 2011. 12. 7 (수) PM 6:00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 64-17 | T. 02-733-1045~6

 

www.grimson.co.kr

 

 

天山雲  Cloud of Cheon-San_30x48.5cm_Sumi ink hand-made mulberry_2011

 

 

- 靈 山 -

대상 사물의 안쪽을 통해 더 큰 스케일의 세계를 조망한다.

 

신혜영 (큐레이터)

 

대탁 한진만 화백은 스스로 경험한 세계에 대한 감동과 자신으로부터의 확신 속에서 줄곧 산수화를 그리고 있다. 한국의 자연에서 뻗어나가 최근에는 지구산수(地球山水)라는 주제를 작품의 화두로 삼고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수묵 산수화에 내재한 동양적 가치를 살펴봄으로써 확장된 스케일의 의의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이때 전통 수묵화를 읽어내는 고유한 시각에 최근 한 세기 동안 급속도로 성장한 현대 과학의 새로운 발견을 더하는 시도를 조심스럽게 해 보고자 한다.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이러한 기획이 이치에 닿는 바가 있다면 물신주의가 팽배한 현대미술의 작금의 상황에 신선한 숨을 불어 넣어 생기 있는 예술에 대한 기대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天氣  Energy of Cheon_32x66cm_Sumi ink hand-made mulberry_2011

 

 

그의 그림을 통해 수묵화의 토대가 되는 동양사상의 핵심을 엿볼 수 있다. 명산을 그린 작품이지만 외향을 묘사하듯 그리지 않았다. 작가의 몸과 마음에 조응되어진 대상의 고유한 본성을 표현한 자취를 볼 수 있다. 대상의 본성을 설명하는 동양사상의 특별한 개념이 있다. 만물은 그 본성을 기운(氣韻)으로써 드러낸다는 것이다. 기운생동(氣韻生動)이라는 말은 그림에서 대상 본성의 기운이 살아 있는 듯이 드러나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서예와 같은 추상적인 형태에서조차 글을 쓴 이의 성정(性情), 곧 뜻과 생명력이 작품을 통해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외의 여타 화론들의 최종 목적도 기운생동의 원만한 표현을 위한 방법론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기운’에 관한 강조는 동양화 작품에 있어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근래에 와서 기운을 에너지라고 이해하기도 하는데 단순한 파워로서의 에너지이기보다 의식을 가진, 곧 정보를 가진 에너지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天山流  the Flowing of Cheon-San_32x66cm_Sumi ink hand-made mulberry_2009

 

 

한진만 화백의 작품에는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자연의 웅장함과 숭고함, 때로 처연하고 고요한 기운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가 확연하다. 먹의 다양한 색감과 필선의 생동감 있고 찌르는 듯한 기세는 태백산맥과 히말라야 산맥의 요동치는 생명력을 선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먹색의 다양함과 함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빈공간으로 남겨진 여백이다. 여백으로 말미암아 작품은 숨을 쉰다. 살아있는 것들을 모두 품은 거대한 어머니인 지구는 인간인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호흡해야 할 것만 같기도 하다. 호흡은 살아있음의 대표적인 현상이자 비유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감성적인 차원에서 ‘기운’과 ‘호흡’의 들숨 날숨에 공감한다고 하더라도 그토록 긴 세월 수묵화가 지향한 세계의 본성인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과 존재하는 세계와의 상관성에 좀 더 깊은 뜻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한진만 화백의 최근 산수화는 하나의 화폭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모두 공존해있다. 간혹 인가가 보이는 풍경은 인간과 자연을 한 가족으로 묶어버린다. 우렁차게 호흡하고 있는 산봉우리들은 그 스케일을 한 지역에서 지구 전체로 확장시킨다. 점점 커지는 공간의 스케일은 오히려 그 안에 내재한 미시세계의 커다란 진공과 에너지로 가득 찬 기운을 의식하는 작가의 심안(心眼)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닐까?

 

수 백 년의 근대 역사동안 형상과 표피의 중요성이 극대화된 현실을 미망(迷妄)이라 치부해버릴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인류가 짐짓 무시해온 존재의 내면-안쪽 세계-깊이 침잠해갈 수 있는 힘을 되찾음으로 인해 우주적 스케일과 보이지 않는 너머의 스케일로까지 확장되는 미래를 꿈꿔볼 수 있기를 바란다.

 

 

淨山  the Pure Mountain_62x90cm_Sumi ink hand-made mulberry_2011

 

 

영산(靈山)과 물화(物化)

 

산(山)은 지구의 축소판이며 우주(宇宙)의 기운(氣韻)이 담고 있기 때문에 나에겐 경건함과 함께 심신(心身)에 다양한 영향을 준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작품에 혼(魂)이 담겨지는 경우가 있거나 상반되는 때가 있다. 혼이 담겼을 것으로 간주되는 산들은 일반적으로 사생(寫生)을 할 때 화면에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내가 이를 작품화 할 때 내 자신도 모르게 기운의 흐름이 마음속으로 녹아들어 작품을 제작하다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이 내 앞에 전개 될 때 희열을 느끼게 된다. 이때 그 산은 나에게 영산(靈山)이 되어 내 분신처럼 마음에 자리한다. 모든 산에서 영(靈)의 세계를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각인된 산들만이 나의 영산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그 산들은 무의식적으로 화면 속에 이입된다. 이처럼 나에게 내 분신과 같은 산으로는 마이산, 청량산, 금강산 등이 있다. 마이산은 만류인력의 법칙을 무시하여 역으로 고드름이 형성되는 신기한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면서, 조형적인 표현을 나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습작을 하던 어느 날 안개가 걷히듯 조형적인 모습을 보인 마이산은 자신도 모르게 나의 분신이 되었다. 보이던 대로 사생을 하던 청량산의 암산(巖山)과 사찰(寺刹) 그리고 밭들은 작품화 되면서 허실(虛實)이 뒤바뀌어 산과 사찰이 실(實)이 되고 밭은 여백이 되어 호흡하는 숨결을 느끼게 하였다. 그래서 청량산 또한 또 다른 기운의 흐름으로 다가와서 하나의 분신이 되었다.

 

 

天山道  the Road of Cheon-San_60x97cm_Sumi ink hand-made mulberry_2010

 

 

모든 곳을 갈 수 있으나 분단으로 인해 갈 수 없었던 금강산(金剛山)!

고금(古今)의 많은 예술가들이 작품화 하였던 금강산!

생전에 한번 가 봤으면 하던 금강산!

 

사진으로만 접했던 금강산을 사생할 기회가 왔을 땐 육지가 아니라 해상을 통해서만이 가능했던 15년 전…

금강산을 오를 때는 땀으로 온몸이 범벅이 되었으나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이런 흥분된 기분으로 상선암에서 천선대, 만물상, 동해안이 내려다보이는 정자까지 산 능선을 동물처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사생을 하였다. 얼굴은 염전처럼 허옇게 소금기에 젖어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금강산에 취했었다. 이렇게 도취되었던 금강산을 작품화 할 때 마이산과 청량산을 표현하면서 터득한 조형성과 표현기법을 모두 쏟아 부었다. 내·외 금강산을 작품화하고 나서부터 이상하게도 마음속으로부터 우주의 기운이 또 다른 산수화로 이끄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이 이끄는 대로 히말라야로 향하던 나는 어느덧 홀로 에베레스트와 안나푸르나로 향해 가고 있었다. 그곳은 신이 사는 곳이 아니라 그 자체가 신이었고, 그 신은 크게 호흡을 하고 있었다. 하얀 눈을 이고 있던 산들은 눈을 녹이면서 안개 같은 숨결로 화하여 화면 속으로 전이 되었다. 그 후 산의 형상을 그리기 보다는 산의 기운을 우주의 숨결로 표현하기 위하여 여백을 다양하게 묘사하였다. 그래서 흰 부분은 여백이면서 공간화 되어 산의 호흡에 따라 크거나 작거나 닫히거나 열리거나하는 모습으로 표출되었다.

 

이제 영산과 물화(物化) 되어 승화된 산수세계로 젖어들 수 있기를…………

2011년 11월

-작가 노트 중에서-

 

 

 
 

■ 한진만 (韓陳滿 | Han, Jin-Man)

 

韓陳滿 (旲卓, 64)은 弘益大學校 美術大學 東洋畵專攻 및 同大學院을 졸업하고, 個人展 15回(選畵廊, 評林畵廊, 中央美術學院 美術館<北京>, Museum of Contemporary Craft<Oregon. USA>, 갤러리상 等)를 개최하였으며, 團體展으로는 國內 韓國現代水墨畵大殿(國立現代美術館)을 비롯하여 國外 現代韓國水墨山水畵展(知足美術館, 日本). Miami-Art Fair(USA) 등에 100여회 出品하였습니다. 公募展에서는 白陽會(鶴初賞). 中央美術大展(獎勵賞 및 無監査) 및 東亞美術祭(東亞美術賞) 等 다수의 受賞을 하였으며 硏究論文으로는 禪宗과 水墨畵(弘益大學校論叢) 등 다수가 있습니다. 現在는 弘益大學校 博物館長 및 美術大學學長 等을 歷任하고 同敎 美術大學 東洋畵科 敎授 및 美術大學院長으로 在職하고 있습니다.

 

 
 

vol.20111207-한진만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