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묵향 내일을 가다 展

 

한국화 100년 전통과 정신

 

박은용_추수_155x108cm_한지에 수묵담채_1998

 

 

광주시립미술관 3, 4전시실

 

2011. 11. 24(목) ▶ 2012. 2. 19(일)

제1부 : 남도화의 전통 (2011. 11. 24(목) ▶ 2012. 1. 1(일)

제2부 : 남도화의 현대적 계승 (2012. 1. 10(화) ▶ 2011. 2. 19(일)

광주시 북구 하서로 52  | 062-613-7100

 

www.artmuse.gwangju.go.kr

 

 

손재형_금강산_33x63cm_화선지에 먹_연도미상

 

 

남도 한국화 뿌리와 정신

오병희(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근대 이전 전통 사회에서 예술 활동은 문인사대부의 문사철(文史哲)에 바탕을 둔 시.서.화가 주류를 이루었다. 남도는 문장에 있어 가사, 글씨에 동국진체, 그림에 있어서 남종화의 예향이다. 우리 미술관은 남도 회화 전통의 의미를 살펴보고 맥을 계승하기 위하여 <남도 묵향 100년>전을 개최하게 되었다. 전시는 1, 2부로 나누어 1부는 조선 말기와 근대화단의 남종화와 채색화 양식을 계승하고 있는 남도의 1, 2세대 작가의 작품과 남도 동국진체의 작품을 볼 수 있다. 2부는 3세대에 해당하는 원로와 중견 작가들을 중심으로 남도의 진경산수, 채색화와 민중미술 수묵화 등 시대 철학과 정신을 담은 남도 한국화로 구성하였다.

 1부는 조선후기부터 근현대까지 남종화풍의 남도 한국화로 천리(天理)를 담은 순수성을 표현한 그림이다. 예술에 있어 순수하고 순정한 사유를 기본으로 인간의 윤리성을 강조한 맑고 담박한 것을 담아내며 보편적 아름다움을 이야기 한다. 소치 허련이 추사를 스승으로 모시게 되면서 남도 남종화가 본격화 되었다. 허련의 화풍은 허백련에게 계승되어 근.현대까지 남도 전통회화의 발전과 전개를 이룩하였다. 그리고 허건은 남종화 기법과 현실적 사생이 조화를 이룬 남도 한국화의 다른 축이다. 허백련의 남종화는 광주를 중심으로 많은 제자를 육성하였고 허건은 목포를 중심으로 후학들을 배출시켜 남도의 화맥을 형성하였다. 또한 동국진체를 통해 남도에서 서(書)에 대한 의미를 고찰하고자 한다.

 2부는 1970년대 이후 남종화의 기법과 정신을 바탕으로 남도 전통의 고유미를 살린 작품과 실경을 그린 진경산수화로 구성하였다. 남도 한국화의 1, 2세대를 뒷받침하고 있는 3세대 작가들은 남종화 전통을 지키고 발전시킨 작가들로 남도의 전통 남종화를 재해석하여 먹의 담백함을 표현하고 현대적 감각을 혼합하여 개성적인 화풍으로 변화하였다. 그리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영향을 받은 민중 수묵화 운동은 시대의 모순에 대한 비판 의식을 지니고 있다. 허림, 천경자 등 채색화 전통도 남도 한국화단의 한 축으로 시대를 반영하는 철학과 결합되어 남도 한국화의 다양성을 이루었다. 남도 한국화 전통에 감성적인 색을 넣어 기(氣)를 강조한 채색화 작품은 아름다움과 대중적인 친근함을 표현하였다. 감각적인 현대사회 속에서 달콤하고 화려한 색채를 먹과 함께 사용한 독창적인 기법으로 남도 한국화의 중요한 다른 흐름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전통수묵화의 미술사적 가치를 되돌아보고 비전을 새롭게 모색하여 남도한국화 발전과 계승의 활로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남도 작가들이 진경산수와 현대적인 감각의 채색을 사용하여 기존의 남도 한국화를 발전시킨 새로운 양식의 작품이 한국 미술사에 차지하는 위치를 규명하고자 한다.

 

1. 남도 남종화 뿌리

 일반적인 남종화 정의는 문인 사대부들이 먹이나 먹을 바탕으로 엷은 채색의 그림으로 화려한 색감의 북종화와 구별되며 사물의 형태(形似)에 치우치지 않은 정신을 그린 것이다. 남종화는 불교미술과 함께 동양의 중요한 미술 분야로 자연의 표현인 동시에 인간이 자연에 대해 지니고 있는 자연관의 반영이기도 하다. 동양에서는 자연이 무생명의 존재가 아니라 인체처럼 살아서 생동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던 것으로 그러한 자연을 표현하는 산수화는 기운생동 해야 한다는 생각이 예로부터 전제되고 있다. 남종화는 인간이 자연에 대해 지니고 있는 경외심의 관상적 표현인 동시에 대자연의 기운을 인간의 마음속에 담아 표현해 낸 회화예술의 본질이다. 중국, 일본, 한국에 있어 남종화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전통은 조선시대는 물론이거니와 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회화를 남북종화로 나누어 보기 시작한 것은 명대로 동기창, 막시룡 등에 의해 본격적으로 체계화되어 문인출신 일 것, 순수하게 사의적일 것, 미법 산수화풍이나 동원, 거연의 화풍을 계승 할 것 등의 조건을 갖춘 것으로 정의되어졌다. 한국에서 전통사회 직업화가들 사이에서 정형화된 미법산수나 동거의 화풍을 그리는 경우가 많아져 출신 성분만으로 남북종화를 나눌 수 없어 남종화란 출신 성분과는 상관없고 동원, 거연, 미불, 미우인, 원대사대가, 명대 오파와 그 영향 아래의 청대 화풍을 토대로 한 화풍을 지칭한다. 문기를 중시하기보다는 양식적인 측면이 중요하여 양반사대부들은 물론 궁중전문화가 등 다양한 계층이 전통 방식으로 그린 작품이다.

 남도 남종한국화는 18세기 초 남종산수화와 풍속화를 그린 공재 윤두서, 조선말기 사의 지상주의를 표방한 김정희의 제자 소치 허련으로 이어진다. 조선후기 공제 윤두서는 조선 후기 삼재(공재, 겸재, 현재) 중의 한 사람으로 진사시에 합격한 사대부 화가이다. 윤두서는 화론인‘기졸(記拙)’을 통해 사의(寫意)가치를 정확하게 이해한 문인화가임을 알 수 있다. 풍속화와 남종화법의 산수화를 그린 윤두서의 화풍은 아들 윤덕희, 손자 윤용에게 전해져 하나의 가법을 이루게 되었다. 윤두서의 <평사낙안도>은 고씨 화보를 통한 남종화 기법의 시작으로 볼 수 있으며 손자인 윤용은 가법을 계승하면서 남종화법을 좀더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남도 남종화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은 조선 말기 추사 김정희이다. 전대의 서화가의 ‘법(法)’을 비판하며 자기의 법(法)을 이론화한 미의식을 전개하였다. 추사의 그림은 사물이 아닌 사물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인간이 도달한 격(格)의 경계를 보여주며 문인사대부의 예(禮)에 도달하고자 하였다. 조선말기 추사에 의해 문기와 서권기를 중시하는 남종화풍이 확고한 기반을 다지게 되고 추사의 예도는 남도를 중심으로 계승되어 남종문인화의 명맥을 잇고 있다.

 우리나라 회화사에서 조선말기가 차지하는 비중과 의의는 현대 화단을 위한 하나의 바탕이 되었으며 이는 소치 허련이 있기 때문이다. 허련은 27세때 해남 녹우당 윤두서의 그림에 감동을 받았으며 윤두서 집안의 화풍을 익히게 된다. 허련은 다도(茶道)에서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초의선사 소개로 1839년 김정희를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김정희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남종화의 대가로 성장한 허련은 김정희의 이론과 필치를 계승하여 남종문인화를 남도에 정착시킨다. 허련은 원나라 남종화의 대가인 황공망과 예찬을 비롯한 방대한 중국의 남종화를 바탕으로 주로 갈필을 쓰고 농채를 기피하며 사의적 세계에 진솔하게 접근하고자 하였다. 인물, 소나무, 매화, 모란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었으며 헌종(憲宗) 앞에서 그린 <산수화첩>을 비롯한 많은 산수화를 남기며 남종화 세계를 지향하였다. 허련의 화풍은 미산 허형으로 전해졌으며 허형은 사군자와 흑목단을 잘 그려 수작을 남겼다. 미산 허형은  소치의 화법을 충실히 본받은 남종화풍의 산수화와 매화, 모란, 소나무 등을 수묵 또는 수묵 담채로 그렸다. 허련의 남종화풍은 허형을 거쳐 의재 허백련과 남농 허건에 이어졌으며 이후 허백련과 허건에 의해 많은 남도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천경자_미상(꽃과 뱀)_32x63cm_종이에 연필 채색

 

 

2. 남종화 전통계승

 근현대 우리나라 남종화의 전통은 허백련, 허건에 이르러 각각 독자적 영역을 일구어냄으로서 결실을 거두었다. 허백련은 전통적인 남종화에 충실하면서도 때로 남도의 실경을 화면 속에 끌어들이는 변화를 즐기고 있다. 허건은 초기 사경에 충실한 경향도 보이나 남종회화의 형식미와 고전미를 추구하였다.

 허백련은 미산 허형에게 산수를 배웠으며 전통 남종화를 추구하였다. 의재산인 시절 때 허백련은 전통 남종화를 바탕으로 남도 지방의 풍광에서 얻은 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결합한 남도 남종화풍을 정착시켰다. 남도 지방의 산과 자연에서 오는 정감을 그림에 도입하여 새로운 법을 만들었으며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내게는 날카롭고 딱딱한 골필보다는 흠뻑한 중묵이 마음에 들거든. 아마 무등산에 사니까 필법도 무등산 같이 두리 뭉실하게 달라진 것인지도 몰라.」 남도 특유의 동글동글하고 편안한 산천에서 온 풍경을 남종화풍에 도입한 기법은 정선이 금강산을 그린 골필의 진경산수와 다른 중묵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자신의 법으로 그린 독창적 산수이다. 의재는 완숙된 남종화법을 바탕으로 남도의 부드럽고 풍요로운 산천에서 얻은 따뜻하고 아늑한 정감을 남종화풍의 인물과 가옥 등을 혼합하는 방식으로 그렸다. 퇴계 이황과 김정희와 같은 성리학자는 이는 귀하고 기는 천하며 인간은 도덕적이고 윤리적, 금욕적 존재로 간주하여 서와 화를 그릴 때도 고결한 정신과 인품을 담아내야 한다고 보았다. 이와 달리 율곡 이이는 이(理)를 중시하면서 기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을 인정하였다. 이이의 이론을 남종화로 해석하면 이(理)적인 보편적 남종화 정신을 인정하지만 기발적인 작가개성에 따라 법이 생긴다는 것이다. 허백련은 기본적인 사의적 사상과 인품이 담긴 남종화법을 따르지만 작가개성에 따른 법고창신(法古創新) 한 것이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법인 묵법에 의경의 고고함을 표현한 것이다. 의도인 시기인 말년에는 산인시대의 법고창신의 다양한 시도의 화법이 완성 통합되면서 거친 먹선과 태점의 산수화, 사군자 등 신오(神悟)의 경지에 올라 철학적 깊이를 느끼게 하는 남도 남종화풍을 완성하게 된다.

 허백련의 남도 남종화풍은 광주를 중심으로 많은 제자들이 따랐으며 보편적인 남종화 정신에 작가개성을 넣은 남도 남종화파의 종가를 이루고 있다. 허백련의 남종화풍은 남도의 자연관에 기초한 관념적이고 사의적인 형태로 수용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이후 대상의 실사를 바탕으로 한 진경산수화풍으로 발전하였다. 허백련은 1938년 광주에서 동강 정운면, 백양 조정규를 주축으로 한 37명의 연진회를 발족시켰다. 연진회에서 근원 구철우, 구당 이범재, 동강 정운면, 목재 허형면의 남도 남종화 대가들을 길렀다. 백양 조정규, 풍곡 성재휴 등 경남출신 대가들은 연진회를 통해 남종화의 정신과 기법을 채득하여 한국화 발전에 기여하였다. 의재의 제자들은 전통적 화법을 고수하면서 정신적 내면성을 중시한 남도 산수화를 그렸다. 의재의 넷째 동생 목재 허행면은 의재풍 남종화로 화가의 명성을 날려 1939년에 연진회 정회원이 되었다. 후에 다양한 작품을 시도하였으며 춘헌 허규, 희재 문장호, 녹설 이상재 등이 그의 문하를 거쳤다. 연진회의 창립 정회원인 동강 정운면은 잠시 광주에 와있던 소정 변관식에게 사사를 받아 전통 남종화와는 거리를 둔 신감각주의 화풍의 향토색 깊은 실경산수를 그려 허림과 허건에게 영향을 미쳤다. 또한 정운면은 시서화 삼절의 선비화가로 전통 남종화를 늘 병행하여 격조 높은 문인화와 묵란 등을 그렸다. 해방 후 의재에게 오우선이 제일 먼저 사사를 받았으며 오우선은 서울 약대를 졸업한 후 화가로 다시 돌아왔다. 1947년 김옥진이 입문하였고 그의 뒤를 이어 목재에게 배우던 이상재와 문장호를 비롯한 박행보 등이 1950년대와 1960년대 의재의 제자로 두각을 나타냈다. 김옥진이 1955년 국전에 입선한 후 1961년 추천작가가 되었다. 이상재와 문장호는 1959년 국전에 진출하여 추천작가에 올랐으며 1970년대는 초대작가와 심사위원도 역임하였다. 원로와 중진 화가로 활동을 한 연진회 출신 작가로는 허의득, 허남전, 양계남, 장찬홍, 이계원, 박소영 등이 있으며 장손 허달재가 대를 이어 화업을 계승하고 있다.

 소치의 직손이며 미산의 자제인 남농 허건은 소치와 미산의 그림을 따르는 과정을 거친 후 있었지만 현실적 시각과 사생을 통한 독자적인 작품을 그렸다. 1940년대 전면적 채색표현과 장식적 화면 전개로 새로운 경향을 보였으며 색채에 관한 새로운 감각과 대비적인 효과를 통한 화면 구성을 하였다. 이후 허건은 문기 넘치는 필법을 바탕으로 자연사물을 현실적 감각으로 재현하거나 거친 듯한 파선과 개성 있는 담묵을 사용하여 소나무가 어우러진 산수를 잘 그렸다. 허건의 새로운 감각의 남종화는 목포를 중심으로 많은 후학을 배출하였다. 허건의 제자들은 남종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문기 있는 사의적 산수화와 전통산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실경산수 화풍을 동시에 추구하여 개성 강한 작가들을 많이 배출되었다. 허건의 <남농연구원>에서 사사한 문도로는 조방원, 신영복, 김명제, 곽남배로 각기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전개하였다. 1959년 아산 조방원이 추천작가가 되고 신영복, 이옥성도 특선을 하면서 남농계를 형성하였다. 남농 허건 문하에는 박항환, 하철경, 손기종, 허문, 허진 등이 사사를 받아 남종화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남농계는 의재계의 남종화풍을 주로 하여 자신의 개성을 표현한 법고창신 작품보다 더욱 개성과 기(氣)적 요소를 강조하였다. 남농의 채색화 지향과 사실적 자연표현, 사생과 채색을 가미한 작품은 남농계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이다. 의재와 남농, 제자들은 법고창신(法古創新)으로 옛 것을 토대로 한 개개인의 감성과 느낌으로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새로운 법을 가진 작품을 창작한 것이다.

 

3. 남종화 창조적 발전

 1970년대는 경제성장에 따른 새로운 미술 수요층이 증가되고 한국학 부흥과 민족주의 정책에 힘입어 한국화가 각광을 받은 시기이다. 남도 화단도 1970년대 개화기를 맞아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어 작품가가 높아지고 미술의 대중화로 남도에 사는 중상류층 층에서 그림을 소장하게 되었다. 남도 한국화는 2세대 작가를 중심으로 전통 남종화의 사의 정신을 바탕으로 법고창신의 개인적 감성을 넣은 경향이 주도하였다. 이 시기 주목할 점은 ‘전통산수화’ 자연관에 의한 산수화와 함께 1970년대 중후반부터 남도의 들녘과 산천을 스케치하면서 한국적인 자연경을 전개한 진경산수를 그린 것이다. 남도는 김정희의 사상과 예술을 주로 한 남종화풍이 주도하였지만 남종화의 대가인 허백련도 의재산인(毅齋散人) 시절 남도 특유의 동글동글하고 편안한 산천에서 온 풍경을 남종화풍에 도입하였다. 이를 발전시켜 1970년대 중후반 이후 많은 남도 한국화가들은 남종화 기법과 정신을 바탕으로 남도의 참모습을 담은 진경을 도입한다. 즉 남종화풍을 섭렵한 후 실경을 그린 산수화는 18세기 정선이 원숙한 남종화를 바탕으로 그린 진경산수화와 사상적, 기법으로 관련이 된다.

 강세황에 의해 ‘동국진경’을 그린 화가로 평가를 받는 정선은 화풍에 따라 남종화 계열과 진경산수로 나누어진다. 양명학에서 진아(眞兒)는 가아(假我)에서 참된 나를 찾는 것이다. 예술에서 진아(眞我)는 개성을 담아내고 예술적 끼를 담아낸 작품이다.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진(眞)은 한국적 심성의 미의식으로 자연미, 나를 드러내는 본질, 주체적으로 한국정신을 담아낸 것이다. 정선의 진경산수는 남종화풍을 섭렵 이를 토대로 양명학과 실학에 바탕을 둔 독창적인 진경산수화풍에 이른다. 즉 남종화를 오랜 기간에 익힌 후 새로운 진경을 그린 측면에서 남도 진경산수화는 조선후기 진경산수와 연결이 된다.

 김형수는 남도 한국화에서 의재계와 남농계에 속하지 않고 자신의 화풍을 개척한 작가이다. 1950년대 향토적인 소재의 실경 산수를 그려 1952년 <산촌설경>, 1957년 <산가만귀(山家晩歸)> 등의 작품을 그렸으며 1950년대 후반부터 남종화풍의 산수화로 바뀌었다. 1970년대는 1973년 <백양사> 등 작품에서 남종화 정신을 바탕으로 현실 자연을 그렸다. 2세대 작가 중 김옥진은 1974년 스케치로 실경을 그리고 이후 자연에서 직접 본 작품을 강조하였다. 3세대에 속하는 박은용, 김대원, 오견규, 하철경 등의 화가들은 1~2세대에게 남종화의 기법을 배워 남도 전통을 계승하면서 자기 양식의 정립을 통한 새로운 남도 한국화를 창출하였다. 남도 남종화풍을 기반으로 산천의 아름다움이나 소박한 시골풍경의 친근한 분위기를 다루었으며 소재의 확장을 꾀해 현대적인 풍물을 도입하였다. 필묵법의 전통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담채의 효과를 내고 붓과 먹 장점을 활용하여 작가 개성의 새로운 감성을 반영하였다. 남도진경은 남도의 승경에서 자연의 관찰을 통해 우리 문화에 대한 자각과 산천에 대한 느낌을 자신의 화결로 나타낸 것이다. 남도 남종화가에 의해 전개된 진경산수화는 유학에서 말하는 기(氣)를 표출한 그림이다. 기(氣)는 감각, 감성, 대중성으로 개성을 강조하여 한국의 미를 표출하여 우리의 자연과 심성을 드러낸다. 남도 진경산수화는 탈속의식에 머물러 있지 않고 삶의 본질을 회복하고 높여 주는 남종화의 새로운 발전을 이룬 것이다. 남도 한국 화가들은 남종화의 정신과 법을 완전히 습득한 후 이를 바탕으로 변화된 새로운 자신만의 법으로 실경을 표현하여 남종화의 정신을 잃지 않는 새로운 진경을 그렸다.

 1980년대는 서구 모더니즘 조형 이념 작품과 남도 진경산수화 계열이 공존하는 시기로 채색과 수묵의 다양한 형식 변화를 시도 하였다. 또한 남도 한국 화가들은 한국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감각의 채색을 사용하여 기존의 남종화를 한층 발전시킨 새로운 양식의 작품을 만들어 냈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우리의 생활양식과 사유방식을 질적으로 바꾸어 산수화의 주제인 자연이 눈으로 느끼는 재현의 대상이 되었다. 산수화는 점차 풍경화의 시감으로 이행되어 갔고 남도 전통의 계승 의지는 필묵형식에 집중되었으며 개성과 주제 의식에 따라 개개인이 느낀 풍경을 그리게 되었다. 남도의 한국 화가들은 남종화 전통의 계승을 통한 법고창신과 작가 각자의 창조적인 개성적 화풍을 실현하여 새로운 전개와 발전을 하게 된다. 1980년대 연진미술원 동문들로 이루어진 취묵회가 1984년에 창립하였으며 허건의 제자 조방원의 화풍을 받은 목운 오견규, 동곡 조광섭, 석우 정재윤 등이 1987년 묵노회를 창립하였다. 이들은 우리 산천의 특질을 파악하고 독특한 조형어법과 시각으로 남도 산수화의 새로운 전형을 창출하였다.

 1990년대 이후 남종화를 토대로 한 남도 한국화는 자연의 직접적인 사생을 통한 실경과 다양한 채색을 사용하는 것이 특색이다. 과거의 문기 있는 남종화 전통은 물질 중심의 서구식 사고방식으로 변화하면서 대중이 정신 중심의 남종화를 이해하지 못하여 채색과 실경을 통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였다. 남도의 남종산수화 전통은 자연의 직접적인 사생을 통한 실경산수화풍이 주도하였다. 수묵을 바탕으로 한 남종화의 전통은 민중미술에 영향을 주어 남도의 새로운 예술형식인 민중미술 수묵화운동으로 재탄생되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은 미술에 영향을 주어 한국화분야에서 80~90년대 민중미술 수묵화운동이 일어난다. 민중미술 수묵화 운동은 수묵이 한국화의 정체성을 나타내기에 적합한 재료라는 1980년대 수묵화운동과도 관련이 있으며 남도에서 현실참여적인 작품을 그린 독특한 양식이다. 김경주와 김진수는 80년대 목판화로 민중미술작품을 제작하였고 90년대 현실주의 수묵을 표방하였다. 하성흡과 허달용은 진경산수나 풍속화 같은 전통회화의 요소를 접목하였다. 하성흡은 1990년 대동세상을 출품한 이래 수묵담채를 그렸으며 허달용은 전통 남종화 기법을 토대로 현실 참여적인 작품을 그렸다. 민중미술 수묵화 제1세대 작가인 홍성민은 1990년대 후반 수묵으로 대나무는 민중을 표현하며 생명의 존엄, 해원과 연대, 조화를 상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허건_조춘고동(早春古洞)_94.5x280.5cm_종이에 수묵채색_1951

 

 

4. 남도 채색전통과 모더니즘 미술 수용

 채색화는 북종화에서 주로 나타나며 채색이 주가 되도록 그린 작품을 말한다. 근대 화단의 채색화는 1920년대 김은호, 이영일, 최우석 등이 그렸으나 일본화 기법을 차용하는 한계가 보였다. 1936년 김은호와 제자들이 후소회를 결성하여 채색화를 이끌어 갔다. 일제시대 남농의 아우로 비범한 화재를 보이다 25세로 요절한 허림의 채색화 작품은 일본 문전풍의 신감각주의를 지향하고 새로운 감각을 수용하여 전통의 탈피를 가져왔다. 뛰어난 미의식을 바탕으로 일본화의 영역을 넘어서는 새로운 발전을 모색한 것이다. 김정현은 허림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화조화를 많이 그렸고 채색 위주의 감각적인 화풍으로 작품을 그렸다. 해방 후 천경자와 함께 백양회를 조직하여 동양화의 현대적 실험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이당 김은호의 제자로 채색화와 사실적인 화풍의 작품을 그린 취당 장덕, 현당 김한영, 오당 안동숙이 있다. 장덕은 한국전쟁 이후 서울에서 목포로 이주 정착하여 남도 화단의 일원으로 전통적인 작품 활동을 하였다. 김은호의 제자로 세필인물화와 기명절기를 그리는 김한영도 남도 화단의 채색화를 기본으로 한 독자적 위치의 작가이다. 이들은 이당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채색을 기본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일군 남도의 중요한 화가들이다. 해방 이후 채색을 구사하는 작가들이 위축되어 있는 상황에서 독자적인 채색화를 추구해 온 대표적인 작가가 천경자이다. 천경자는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였으며 전남여고 미술교사로 재직한 남도가 배출한 대표적인 채색화가다. 천경자는 김기창, 박래현 등과 1957년에 백양회를 조직하여 새로운 채색화를 모색하였다. 의제에게 사사를 받고 연진회 창립회원인 조복순은 일본미술학교에서 채색화를 배웠으며 1960년대 이후에는 홍익대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1980년대 이후 추상으로 대표되는 서구 모더니즘이 남도 한국화단에서 폭넓게 수용되어 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하며 남도 한국화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당시의 대학 교육은 채색화와 함께 추상과 평면성을 원리로 하는 모더니즘 미술이 한국화에 적용되었다. 전남대학교의 윤애근은 남종화가 주류인 남도 화단에 채색화로 현대적인 조형의식을 보여주었다. 방의걸의 수묵과 채색이 조화가 된 작품은 80, 90년대 전남대 문하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허진은 인간사회의 부조리와 삶에 대한 반성을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다. 조선대학교의 양계남, 김대원은 전통 남종화를 발전시킨 화려한 채색의 독자적인 양식으로 작품을 그려 학생들에게 새로운 흥미와 가능성을 열어주었으며 김종경은 모더니즘 추상을 기초로 한 채색화를 통해 작가의 감성을 표출한다. 이들의 작품은 남종화 전통에 감성적인 색을 넣어 기(氣)를 강조한 작품으로 아름다움과 대중적인 친근함을 표현하였다. 추상으로 대표되는 모더니즘 작품, 감각적인 현대사회 속에서 색채를 먹과 함께 사용한 독창적인 작품은 남도 한국화의 또 다른 흐름을 형성하고 점차 남도 한국 화단의 중요한 계보를 형성하고 있다.

 미술단체로는 1987년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졸업생을 중심으로 선묵회가 창립 되어 남도 예술정신을 계승하고 한국화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1988년 창립한 창묵회는 학연이나 계파와 관계없이 한국적이면서 현대적인 미의 세계를 공동 모색하자는 한국화 청년작가들의 모임이다. 위성만, 김광옥, 김송근 등 10여명이 한국화의 새로운 활로를 찾아 적극적인 창작 활동을 하였다. 모더니즘 계열의 남도 젊은 한국 화가들은 1987년에 창립한 광주청년미술작가회를 중심으로 김세중, 임정기, 장현우, 장진원, 주재현, 장복수 등이 활동하였다. 실경이나 관념적 산수의 형상에서 탈피하여 변형과 단순화, 과장, 추상적 형태 등 다양한 표현방법과 과감한 필묵이나 채색 등 각자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작품 활동을 추구하여 남도 한국화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수묵 전통, 채색화, 디지털 시대의 하이퍼모더니즘 양식까지 다양한 장르의 한국화가 시대정신을 담고 남도 미술을 이끌고 있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을 수용한 다양한 미술 주제와 양식이 남도한국화에 영향을 미쳐 20~30대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감성에 의해 한층 다양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5. 서(書)의 자유분방함 남도 동국진체

 서예는 약 3,000여년간 지속되어 온 독특한 동양예술의 하나로 정신을 통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서예의 점은 멈춘 것이 아닌 동적인 것이고 선은 생명력과 의미가 있는 획으로 정신을 담고 있다. 주역에서 말하는 획은 역(易)에서 근원 하는 것으로 서(書)의 점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동태로 음과 양의 개념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자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6~7세기 삼국시대이다. 통일신라 때는 구양순의 해서체가 유행하였으며 고려 후기와 조선 초에 부드럽고 유연한 조맹부의 송설체가 유행하였다.

 18세기는 한국 서예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시기로 민족적 자의식을 바탕으로 한국적 서풍인 동국진체(東國眞體)가 출현하였다. 동국진체는 조선 후기에 일기 시작한 조선적 서법을 말하며 중국 법첩의 범주를 벗어나고자 하는 중요한 자각적 예술 운동이었다. 이광사의 글씨는 만개 터럭에 힘을 가해서 죽 그으라고 하여 일필휘지로 중심선을 지키면서 탁탁 끊는 절제미가 두드러진다. 이광사의 동국진체는 양의 강한 아름다움을 나타내며 좌우 위아래가 불규칙한 작품으로 제멋대로 쓴 느낌과 촌티가 나지만 그 느낌은 자연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말기 김정희는 이광사의 민족적 자의식을 바탕으로 한 자유로운 동국진체에 대해 비판하였으며 이(理)를 바탕으로 예를 담은 서체(추사체)를 확립하였다. 주자학에서 서예는 서법아언(書法雅言)으로 바른 말을 표현한 것으로 주자학적인 반듯함을 강조하고 격조를 중시한 추사 김정희를 중심으로 한 추사체가 조선 말기에 유행하였다. 그 영향으로 동국진체의 세가 줄어들었지만 매우 중요한 자각적 예술 운동으로 남도를 중심으로 하여 그 전통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국진체는 실학의 영향으로 개성을 강조한 글자로 참됨(眞)을 강조하고 인간의 자유로움을 표현하여 가짜 나(假我)에서 벗어나 참된 나(眞我)를 찾는 것이다. 18세기 당시 청에 대한 문화의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의 심성을 드러내는 글자로 심층 깊은 곳에서 나온 우리만의 독특한 서예 양식이다. 영자팔법(永字八法)을 함께 연구한 옥동 이서와 공재 윤두서로부터 시작된 동국진체는 자유분방한 필치에 해학과 여유를 내재시키는 형상성을 추구하였다. 북송의 미불에게 영향을 받은 백하 윤순은 온아하고 단정한 글씨를 썼으며 원교 이광사는 윤순에게 사사 받고 동기창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인 서풍을 이루었다. 원교 이광사는 1762년에 신지도로 23년간 유배되면서 자신의 원교체를 완성하여 그의 동국진체는 남도지방의 선승들에게 이어져 혜장 등 필명 높은 선승들을 탄생시켰다.

 일제시대 이후 허백련, 손재형, 황현, 구철우, 안규동에 전해져 남도의 서예를 풍부하게 하였다. 해방 후 진도출신 손재형은 한글 예서체의 새로운 서체 완성으로 발전적으로 계승하였다. 보성출신 안규동은 허백련과 함께 활동하다 구철우 등과 같이 광주서예연구원을 개설해서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어 이 지역의 서예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손재형의 동국진체는 하남호에 이어져 스승의 서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경지를 일궜다. 안규동의 동국진체는 조기동, 이돈흥, 이규형, 고기임, 박경래 등에 이어져 동국진체의 전통은 호남을 중심으로 자리 잡고 근대 이후에는 남도를 중심으로 맥이 이어져 가고 있다.

 

 

허백련_산수_30x67cm_한지에 수묵담채_1970년대

 

 

6. 남도 한국화 의의와 전망

 남도는 예향이라 불리듯이 한국화, 서양화, 조각, 영상, 설치 등 뚜렷한 색채를 지닌 많은 미술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런 현대 남도 미술계가 형성 된 뿌리에는 조선말부터 현대까지 많은 미술인을 양성한 남종화의 전통이 있어 가능한 것이다. 남도는 80년대까지 누구나 서화를 즐기려고 하며 적극적인 경우는 직접 붓을 들고 작업에 임하는 여기화가의 숫자도 많아 이런 배경이 남도 한국화의 화맥을 이루게 하였다. 이후 남도의 남종화는 사회와 비평가들의 냉담과 무관심 속에 작품 활동이 많이 위축되었지만 남도의 화풍 창작에 전념해 온 다수의 남종 화가들이 존재하며  정신적 바탕과 이념을 기본으로 새로운 시대정신을 수용하여 계승되어 왔다.

 남도 미술의 정신적 바탕은 남종화로 정신적 가치와 삶을 담아왔던 소중한 형식이며 예술이다. 남종화 전통은 남도를 배경으로 현대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져 다양한 형식 변화와 시도를 하고 있다. 허련, 허형의 남종화를 유교적 관점에서 이(理)를 강조한 이황의 이기이원론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이후 근현대기에 남도의 풍경과 정서가 가미된 허백련과 그의 제자들은 이(理)를 중요시하지만 작가적 개성인 기(氣)를 존중한 이이의 이기일원론적 철학에서 보편적인 정신에 개성을 둔 작품을 제작하였다. 남도채색화전통과 1970년대 이후 남종화 기법을 토대로 양명학과 실학을 적용하여 기를 강조한 진경산수화, 남도 동국진체는 작가의 개성, 즉 당시의 민족주의와도 연결이 된다. 이와 같이 남도 남종 한국화는 이치를 담고 있으며 시대의 철학과 관련이 있다.

 한국회화사의 다양성과 전통을 이루는 화맥을 형성한 의재와 남농은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배출하여 화파나 가(家)로 구별할 필요가 있다. 소치 허련에서 나온 남도의 남종화풍은 남도의 자연관에 기초한 관념적이고 사의적인 형태로 수용되거나 남종화를 바탕으로 대상의 실사를 기초로 한 진경산수화풍으로 발전하였으며 남도 회화사의 중심이 된다. 이들은 명대 초기 민족주의와 복고주의를 바탕으로 대진, 오위의 절강성 출신으로 이루어진 명대 절파와 강소성, 오현을 중심으로 심주를 시조로 삼은 문인화 전통의 명대 오파, 청나라 때 개성이 강한 강소성 양주의 양주화파, 상해를 중심으로 한 해상화파 등 지역적 특성을 이룬 화파들과 같이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화파로 정리 되어야 할 것이다. 즉 남도의 허련에서 나온 남도 남종화파는 한국미술사에서 조선 초기 안견파와 조선후기 정선파와 같이 많은 제자를 기르고 다양한 형식으로 발전한 중요한 미술 계파이다. 따라서 지역을 딴 남도파 또는 인명을 딴 허련파로 미술사적 정립이 되어야 한다.

 중국은 근현대 미술의 대가로 문인화의 최고봉에 오른 제백서, 팔대산인과 석도의 영향을 받은 장대천, 현대 화풍의 서비홍 등 다양한 대가를 인정하며 북 제백서가와 남 서비홍가를 이루고 있다. 중국은 현대미술과 함께 전통 회화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양식의 작품을 높게 인정 하여 세계에 소개하고 있다. 이런 점은 남종화 전통의 남도만이 아닌 그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루하고 진부하다고 여겨진 한국화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새로운 발전을 모색할 필요성에 대한 하나의 본이 된다. 그러나 남도 전통화단은 평론가와 미술계의 지원이 미흡하고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80, 90년대 새로운 개념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고 진화해야 한다는 모더니즘 관점과 비평으로 남도 전통 산수화는 고루한 관념 산수화로 매도되어 설자리를 잃었다. 이런 모더니즘 미술이론은 90년대 중반까지 한국화단에 영향을 미쳐 남종화의 전통은 현실을 도외시하고 실험정신이 빈약한 작품으로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버렸다. 현대 한국미술계는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과 미술이 주도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대표 철학자인 자크 데리다는 서양 철학의 이성주의적 로고센트리즘에 빠져 있으며 이성주의적 로고센트리즘은 언어로 세상을 확정 지으려는 발상이라고 격분하였다. 바로 이성적 합리주의는 A는 B라는 논리로 나치의 대학살과 핵폭탄을 만들어 참상을 빚었다는 것이다. 결국 타자를 무시하고 독단적인 확정성을 통해 주장하는 것은 의미의 부정직한 횡포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다. 미술에서도 주변화된 타자의 조건에 집중하게 되었으며 계급, 인종, 젠더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으며 페미니즘과 복합 문화주의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부상하게 된다. 깊은 철학적 개념과 한국적인 자연을 담으려는 남도 한국화도 모더니즘 사고에 의해 희생된 타자이며 남도 한국화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적 비평과 평가가 필요하다.

 현재는 동양의 상생 철학을 담은 남도 한국화의 정신을 바탕으로 현대 미술의 능동적 수용을 통해 동.서양의 철학을 반영한 이 시대의 독특하고 개성 있는 새로운 남도 한국화의 탄생이 필요한 시점에 도달했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모더니즘적인 형식보다 내용이 점차 중요해 졌다. 이런 경향은 독일의 신표현주의와 미국의 뉴페인팅으로 불리는 미국의 신표현주의 작가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은 모더니즘적 새로운 양식의 발명에 강박적으로 집착하지 않고 미술사에서 차용한 여러 양식들과 정신을 통해 집단의 역사나 개인의 감수성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남도가 가진 남도 남종화와 동국진체 등의 정신과 기법은 다양한 양식과 분야에서 현대적인 개념과 양식을 담을 수 있어 독특한 남도만의 한국화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미국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시작은 1970년대 브루스 나우만, 존 반데사리, 폴 메카시와 같은 뒤샹의 내용을 받은 개념주의 미술가로 이들이 길을 닦고 후배들이 미국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을 꽃피웠다. 이들은 깊은 철학적 내용을 담은 비평적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진정한 포스트모던의 내용을 실천한 작가로써 존경을 받으며 미국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이 세계 미술을 주도할 뿌리가 된다. 이들의 영향으로 1980년대 로버트 롱고, 줄리앙 슈나벨과 같은 상업적 보수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피터 핼리와 하임 스타인벡과 같은 상업적 절충주의 포스트모더니즘, 1990년대 세계적인 스타가 된 폴 메카시와 같은 진보적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를 낳았으며 상업적인 형식미와 함께 심오한 개념을 담은 미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즉 동양과 한국인의 정신을 담고 있는 남종화의 개념과 기법은 비판 대상이 아닌 후대에 그 정신을 잇는 새로운 양식과 형식미를 강조하는 다양한 남도 예술이 나올 수 있는 기틀이 되는 것이다.

 교육적 측면에서 남도의 전통 산수화는 과거에는 도제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현재는 학교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학교 교육이 서구식 모더니즘 미술교육이 주도하여 인해 남종화의 정신과 기법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 미술대학은 남도 한국화에 대한 정신과 기법에 대한 연구와 전승을 통한 맥의 연결, 현대 미술의 다양한 개념과 양식을 주체적으로 수용하여야 한다. 그 결과 새로운 남도 한국화와 그 양식을 수용한 영상, 설치, 조각, 회화 등이 만들어져 강력한 힘을 가진 시대정신을 함유한 새로운 미술 사조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 전시구성

 

1부 : 남도화의 전통 : 57명(61명)

- 남도 남종화 뿌리 : 6명(10명)

허련, 허형, 허백련, 허행면, 허건, 정운면(도록만 : 윤두서, 윤덕희, 윤용, 김정희)

-남종화 전통계승 : 38명

- 의재계 : 19명

이범재, 허규, 김옥진, 문장호, 장찬홍, 박소영, 박행보, 양계남, 오우선, 이강술, 이계원, 이상재, 이창주, 최덕인, 허규, 허달재, 허대득, 허의득, 허정두

- 남농계 : 15명

조방원, 신영복, 김명제, 김천두, 곽남배, 곽권옥, 문흥록, 박익준, 박항환, 박광식, 손기종, 윤의중, 이옥성, 하철경, 허문

- 독자 : 3명

김형수, 김대양, 임병성

-서(書)의 자유분방함 남도 동국진체 : 12명

윤순, 이광사, 손재형, 안규동, 구철우, 고기임, 류봉자, 조기동, 이규형, 이돈흥, 조용민, 하남호

 

2부 : 남도화의 현대적 계승 : 59명

-남도 채색전통과 모더니즘 미술 수용  : 24명

허림, 김정현, 천경자, 조복순, 장덕, 신방우, 안동숙

강종래, 김한영, 김대원, 김종경, 류현자, 박윤서, 서남수, 윤애근, 위성만, 임종두, 장현우, 정인수, 주재현, 천명언, 하운수, 하완현, 허진

-강행원, 구지회, 김송근, 김영삼, 김재일, 김천일, 노경상, 박도승, 박문수, 박은용, 박종석, 박태후, 박희석, 배교연, 백현호, 오견규, 윤남웅, 이구용, 이민식, 이선복, 이병오, 정경춘, 정성봉, 정명돈, 정평남, 조광익, 조광섭, 허임석, 홍정호

-민중미술 수묵화 운동 : 6명

김경주, 김진수, 박문종, 하성흡, 허달용, 홍성민

 

 

 

vol.20111124-남도 묵향 내일을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