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선 展

 

想 - 달빛 아래서

 

바람소리를 따라_130x40cm_장지에 혼합재료_2011

 

 

갤러리 수

 

2011. 11. 23 (수) ▶ 2011. 11. 29 (화)

Opening : 2011. 11. 23 (수) PM 6:00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98-55 | T. 02-733-5454

 

www.gallerysoo.co.kr

 

 

...머물다_130x40cm_장지에 혼합재료_2011

 

 

합리성의 시스템에서의 탈주

- 이득선의 작품세계 -

 

신 현 식 (미술평론가 / 철학박사)

현대사회는 합리성이 지배한다. 그 사회는 기계처럼 정교하되 숨막힐 듯 빈틈이 없다. 초월적 존재가 떠나버린 오늘날의 사회는 자체적인 시스템 속에서 모든 것이 작동되는 내재성의 사회라는 점에 현대 사상가들은 대체로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모든 동물들은 자연법칙이라고 불리는 어떤 절대적인 시스템 안에서 정해진 원칙을 따라서 살아가야 한다고 믿어진다. 현대인들 또한 각자 자신이 주체가 아니라 사회가 이미 정해놓은 메커니즘이나 어떤 회로 또는 기호체계를 따라서 규범대로 움직여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동물과 다르지 않다. 이 내재성의 사회구조가 워낙 빈틈없이 짜여있기 때문에 우리는 마치 그것 자체가 그냥 자연인 양 착각 속에 빠져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득선은 이러한 폐쇄적이고 합리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사유와 왕성한 작품활동을 통해 낯선 세계와의 대화를 시도하고 변화가능성을 타진하는 작가이다.

이득선의 작업실은 비교적 잘 정돈되어 있다. 사방을 에워싼 작품용 선반에는 도서관의 빼곡한 책들처럼 수많은 작품들로 가득해서 그의 놀라운 작업양과 열정을 가히 짐작케 하여 준다. 그의 작업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로로 두 장의 화판을 이어서 거대한 산을 그린 약 300호 정도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그 크기나 완성도 면에서 가장 역작으로 판단되기에 충분하다. 거대한 산들이 수없이 반복되는 골과 능선을 따라서 군더더기 하나 없이 그 위용을 드러내는 이 작품은 보는 이의 시선을 단연 압도한다. 한 눈에 간신히 들어오는 그 거대한 크기와 괴량감의 위압적인 모습으로 인해 감상자는 가늠할 수 없는 자연의 웅장함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작품 외에도 다른 거의 모든 작품들에도 반복적으로 첩첩이 에워싼 푸르스름한 산들의 모습들을 그리고 있어서 그는 가히 ‘산의 작가’라 불릴 만하다. 산의 정취를 탐닉하는 이득선은 스케치 여행을 통하여 전국의 수많은 산들을 자주 헤집고 다닌다. 머나먼 산의 윤곽들이 무한히 반복되면서 펼쳐지는 대자연의 신비를 바라보며 그는 자신의 예술적 상상력을 키워왔을 것이며 또한 인간의 덧없는 삶의 많은 것들에 대해서 깊은 사유에 잠기곤 하였을 것이다. 침묵으로 말하는 산들의 비밀스런 계시를 붓으로 그려나가며 산의 깊이를 마음속에 지녀왔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같이 어떤 깊은 성찰을 통해 건져진 결과물인 때문인지 그의 작품들은 감상자를 현상의 너머에 있을 대자연의 섭리에 대해 사유하도록 이끄는 강렬한 힘이 있다. 대자연의 위엄 앞에 겸손히 다가서려는 이득선의 예술성은 뿌리가 깊다. 그는 2005년 선묵회에서 ‘올해의 미술상’을 수상하며 화단에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수상기념전과 그 이후의 2차례의 개인전에서 선보인 그의 작품들에서도 이미 이러한 테마적 경향은 시도되고 있었다. 단지 시기별로 표현 양식상 약간의 차이를 보일뿐 산과 자연에 대한 깊은 관심은 이미 오랜 기간 동안 그의 사유의 주된 모티브였던 것이다.

 

 

달빛은 산을 돌고_53x33cm_장지에 수간채색_2011

 

 

자연 모티브와 더불어 그의 사유의 또 다른 중심에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주체와 실존에 대한 문제였다. 중국에서의 유학생활을 마친 후 가진 2000년 첫 개인전과 2003년 두 번째 개인전에서 그는 오랜 세월을 견뎌낸 인간의 다양한 내적 양태들을 드러내기 위해서 부단히 매진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30대 초엽인 이 시기에 인물들의 구겨지고 왜곡된 모습들과 상처받은 인간의 모습들을 전통에 얽매임 없이 자신만의 독특한 필법과 구성방식으로 화면을 가득히 채워나갔다. <무념, 무상, 무아> <나를 찾아가는 길> <막다른 길에 서서> 등 작품의 명제들이 시사하는 바처럼 그는 사회 속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적 삶의 고통의 원천을 파헤치는 한편, 작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외롭게 싸워나갔다. 허공을 힘없이 응시하고 있는 노인의 클로즈업된 다양한 얼굴들이나 고독에 잠겨있지만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주시하는 자화상 등을 마주하노라면 작가로서의 그의 고민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가 희망을 잃어버린 인간적 생의 공허함에 주목하고 그들의 고독한 내면을 날카롭게 응시함으로써 자신을 비롯한 인간의 실존적 문제에 얼마나 깊이 천착하고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득선의 근작에서는 새로운 깊이가 엿보인다. 웅장한 자연미를 다룬 최근 작품들에는 더 이상 사람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이 단순히 대자연의 모습들을 그냥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작가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림 속에 인간의 메타포를 삽입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끝없이 펼쳐지는 산악(山岳)들의 윤곽선들을 배경으로 펼쳐놓으면서 전경에는 조그마한 토산이나 나지막한 암산 혹은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 한두 그루 등을 색다른 분위기로 배치하고 있는데, 이러한 작품들은 중국의 선종화(禪宗畵)에서처럼 뭔지 모를 거대한 자연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상념에 잠겨있는 새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또한 화면 가득히 농묵으로 설채(設彩)된 거대한 산그림들은 작품을 대하는 감상자에게 직접적으로 대자연의 위용에 휩싸이게 함으로써 작품의 표층적 층위를 넘어서 거대한 우주의 세계로 그를 성큼 이끌어 들어간다.

대자연의 섭리를 무게감 있게 드러내는 그의 필법 또한 한층 강렬해졌다. 특히 관찰자의 지각 범위를 넘어설 정도의 거대한 크기의 산은 한편으로는 자연의 아름다운 양태이기도 하지만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정적과 침묵에 휩싸인 대자연의 섭리로 감상자의 사유를 강제함으로써 감상자에게 어떤 두려움 내지는 뭔가 무겁고 불편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것은 일상적인 합리성의 시스템에 매몰되어 그 무엇도 중지시킬 수 없었던 우리에게 사유의 한계를 뛰어넘게 함으로써 새로운 경지에 이르게 한다. 자연과 세계, 나아가 우주의 섭리...  그리하여 그 그림 앞에 선 관찰자의 체험 혹은 느낌이 바로 이 그림을 작품으로 성립시키는 주된 요소가 된다. 그것은 하이데거적 의미에서 존재자(산맥/자연의 일부)를 통한 존재(자연/섭리)의 체험일 것이며 칸트적 의미에서는 거대한 크기로 인식의 한계를 초월하는 숭고의 체험일 것이고, 리오타르식으로 말한다면 ‘사건성의 현전(現前)’의 체험이 될 것이다.

 

 

심상ㅣ_120x40cm_장지에 혼합재료_2011 | 심상Ⅱ_120x40cm_장지에 혼합재료_2011

 

 

따스하고 인연을 중시하는 성품을 지닌 이득선은 배제의 논리보다는 오히려 긍정의 사유를 중시한다. 그것은 들뢰즈의 말을 빌린다면 코드화된 삶의 기저에서 흐르고 있는 ‘창조적 욕망’을 살려내는 사유형식이다. 코드화된 삶이 이미 일정하게 형성된 의미의 세계만을 살아가는 것이라면, 창조적 욕망의 삶은 현세계와 다른 세계, 현세계의 가능한 조건으로서 잠재된 세계를 깨닫고 고정된 현실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길을 닦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한다는 것은 새로운 길을 내는 것이고 그것은 곧 잠재성의 한 가닥을 새롭게 현실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화가로서 이득선은 자신의 창조적 욕망을 쉼없이 펼쳐나가는 작가이다. 개방적인 예술사고란 무엇보다도 그림이란 이래야 한다는 고정된 틀을 무시해버리는데서 출발하며, 그것은 창작자만이 가질 수 있는 예술적 상상력과 자유의 구현일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당연히 한국화의 범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한국화의 기법적 한계를 가차없이 뛰어넘는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현대 한국화의 방향성을 새롭게 제시한다. 서양화적인 리얼리티와 동양화에서의 기운생동이나 사의(寫意)라는 미적가치의 만남이라는 명제가 바로 그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이득선은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화가로서 우리시대 한국화를 현대적으로 변용해 나가는 데 나름대로 성공한 화가로서 평가될 만하다.

이득선의 작품들은 유토피아를 보여주기보다는 거기에 이르는 길을 암시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합리성이 빚은 고정적 규정들에 새로운 시선을 투영함으로써 그러한 규정들이 변화될 수 있기를 원한다. 그 절대적 규정들을 상대화함으로써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는 이성의 독단을 거부하고, 인간화를 거부하는 자연이라는 타자에 귀를 기울이며, 합리성이 지배하는 사회 속의 몰개성성을 비판한다. 그는 쉬이 절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섣부른 희망을 표출하지도 않는 그는 폭력적인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이득선은 지치지 않는 눈으로 멀리 바라본다. 시인이 사회의 아픔과 희망을 지치지 않고 노래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오랜 꿈을 닫을 수 없어 붓을 들어야만 하는 시인이다. 그는 다가올 미래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포착할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작가이다. 회화는 이미 주어진 상투적인 리얼리티를 재현하는 게 아니라 아직 도래하지 않은 새로운 리얼리티를 창조한다는 베이컨의 언급처럼 이득선이 앞으로 개척해 나아갈 새로운 리얼리티의 세계를 고대한다.

 

 

月-그리움_73x50cm_장지에 혼합재료_2011

 

 

 
 

■ 이득선 (Lee, Deuk-Sun)

 

1998 중국 노신 미술대학 석사(중국화 전공) 졸업 | 1995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개인전  | 2011 想 - 달빛아래서 (갤러리 수, 서울) | 2009 바람소리를 따라서... (이즈갤러리, 서울 / 신화갤러리, 홍콩) | 2006 산, 구름, 바람 전 (공평아트센터, 서울) | 2005 선묵회 “올해의 미술상”수상기념 전 (갤러리 수, 서울 / 메트로 갤러리, 광주) | 2003 상처받은 “인간초상”전 (라메르 갤러리, 서울) | 2000 나를 “찾아가는 길” (삼정아트 스페이스, 서울) | 1998 석사 학위 청구 전 (노신미술관, 중국)

 

아트페어·부스전  | MIAF (예술의전당, 서울) | 단원미술제 선정작가전 (단원전시관, 안산) | 고양 국제아트페어 (고양세계꽃박람회장, 고양) | 충남아트페어 (당진문예회관, 당진) | 아트 앤 월드 페스티벌 (단원전시관, 안산) | 순천만국제환경아트페어 (순천만특별전시관, 순천)

 

기획·단체전  | 현대미술 10인전 (신의손갤러리, 서울) | 한반도의 얼 아름다운 독도 (조선일보미술관, 서울) | WORKS 12 (갤러리 청하, 경기도) | 선묵회전 (조선대 미술관, 광주) | 경기의사계-아름다운산하전 (수원미술전시관, 수원) | 오월의 서곡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 FUN FUN FUNNY ANIMAL PAINTING (갤러리샘, 파주) | 우리 땅 우리문화의 숨결전 (민속박물관, 광주) | 대한민국 청년 비엔날레 (대구문예회관, 대구) | 수묵화의 흐름전 (의재 미술관, 광주) | 그 외 기획, 단체전 200여회 참가

 

수상  | 목우회공모미술대전 대상 | 남농미술대전 최우수상 | 단원미술대전 선정작가 및 우수상

 

경력  | 행주미술대전 집행위원장 역임 | 고양국제아트페어 운영위원장 역임 | 경기미술대전 심사위원 및 다수의 공모전 운영/심사위원 역임 | 조선대학교, 신라대학교, 남서울대학교 강사역임

 

현재  | 한국미협, 목우회, 전업작가회, 선묵회, 조미회, 금아회, 아트그룹 자유로 회원 | 한국화 구상회 운영위원 | 고양미협 부지부장 | 목우회 사무국장

 

 
 

vol.20111123-이득선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