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운 展

 

목련아 목련아

 

병원선_Chilean Capsule, image_2011

 

 

아뜰리에 에르메스

 

2011. 10. 28(금) ▶ 2011. 12. 13(화)

Opening : 2011. 10. 27(목) PM 6:00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630-26 도산 파크 3F

 

 

칠리언 캡슐_image_2011

 

 

불교 경전 중 하나인 <목련경>은 부처의 10대 제자 중 한명인 목건련(목련존자)이 죽어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이야기는 불교 전통이 뿌리 깊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유구하게 전승되어오는 유명한 이야기이며 오늘날까지도 영화나 무용, 연극 등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적 창작물들을 통해 재해석되기도 한다. 효(孝)라는 동아시아의 윤리적 가치와 어쩌면 전복적일 수도 있는 사악한 모성을 구원한다는 이 이야기는, 구원에 대한 인류보편의 원형적인 내용을 동시에 담고 있기도 하다.

노재운은 이번 개인전을 통해 목건련의 이야기를 오늘날 세계에 만연한 질병과 굶주림, 그리고 지옥을 사유하는 작가의 예술적 실험 혹은 모험과 연결시키며, 이를 미술적인 동시에 영화적인 '인터페이스' 혹은 서스펜스로 변주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지옥은, 전통적인 형상 대신에 영화와 CG, 인터넷, 그리고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등이 지배적 환경이 되어버린 오늘날의 현실과 연결되는 공간으로 재설정된다. 관객은 일종의 하이퍼-인페르노(inferno, 地獄)이라고 불릴만한 이 공간에서 잠재적인 목련이 되어 여행하고 배회할 것이다. 그리고 그 여정을 통해 굶주림과 질병, 재난과 기적을 기꺼이 요청하며, 그 과정에서 어떤 무상함과 유머 또는 욕망의 용적 및 높이를 체험하는 동시에, 인공의 폭주로 인해 변종이 되어버린 자연 등 여러 형상들을 조우하거나 목도할 것이다. 물론, 관객 스스로 또 다른 지옥의 형상을 발견하거나 보탤 수도 있을 것이다.

 

 

항성시_object_2010

 

 

주요 작업

이 전시에서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지옥 혹은 명계로 전환된다. 관객 또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자신이 목건련이라 생각하면 더 좋겠다. 관객/목건련이 첫 번째 만나는 작업은 <본생경>이다. 이 작업은 불교회화의 한 장르인 본생도(本生圖 : 부처가 고타마 싯다르타로서 태어나기 전, 그의 전생에 관한 내용을 그린 그림)와 지옥에서 죄를 비추는 거울인 업경(業鏡)을 결합하고, 변형한 작업으로, 지난 100년 동안 영화사에서 명멸했던 '프레임사이즈' 들을 이용해 설계된 구조물이자 거울이다. 관객은 이 작업을 만나는 순간 지옥에 들어서며 그 속에서 처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혹은 다른 이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또한 그것은 지옥에 오기 전 자신의 모습이나 자신의 전생, 혹은 그 전생의 전생들의 모습들이기도 하며, 영화적 프레임 속에서 되살아나는 자신의 업이 된다.

<삼인문년三人問年>은 영화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코미디언 세 명(찰리 채플린, 버스트 키튼, 자크 타티)이 지옥에서 다소 공상 과학적 시간개념에 의해 부활한다는 설정의 작업이다. 이 작업에서 이들은 "지옥에 떨어진 모든 중생들을 구제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라고 서원하던 지장보살의 서로 다른 영화적 캐릭터이기도 하고, 누가 나이를 더 많이 먹었는지를 겨루고 있는 도교적 형상이기도 하다. 관객은 지장보살에게 위무와 안도를, 서로 나이를 다투는 세 명의 노인/코미디언에게는 웃음과 해학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삼인문년>이 지옥 속에서 측정 불가능한 억겁의 시간을 제시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이런 감정들과 더불어, 문득, 어떤 서늘함도 느껴지지 않을까. <칠리언 캡슐Chilean Capsule>은 2010년 칠레에서 광산이 매몰된 사건에서 착안한 작업으로, 그 당시 광부들 전원을 구조하는데 사용했던 2인용 캡슐을 다시 만든 것이다. 물론 이 '인터페이스'에서 <칠리언 캡슐>은 일어났던 사건을 부분적으로 지시하기는 하지만 조금은 다른 뉘앙스로 제시된다. 우리는 이제 재난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는 불가능하다. 실은 이미 매 순간 재난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이 캡슐은 실낱 같은 희망의 형상일 수도 혹은 현실 속의 이 사건처럼 앞으로도 어떤 기적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하는 형상일 수도 있다.

 

작가의 말

지옥 혹은 명계冥界는 제가 언젠가 꼭 한번 만들어 보고 싶은 '인터페이스'였습니다. 특히 이런 생각은 60~70년대의 아시아 고전 공포영화들을 보면서 떠올랐는데, 이 영화들은 주로 일본영화들이나 그것에 영향을 받곤 했던 한국영화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할리우드 혹은 유럽식 고딕호러(유니버설 영화사나 해머스튜디오 등에서 만들어졌던 프랑켄슈타인, 드라큐라물 따위)의 영향을 받았겠지만, 은근히 유교적, 불교적 색채를 바탕에 깔고 있어서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어떤 영화는 지옥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생생했는데, 비록 세트에서 조악한 모습으로 어설프게 재현된 것일지라도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마 지옥이라는 공간은 어떤 ‘재현’의 밀도와는 상관없이 이미 인간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영화 속에서나 역사 속에서나 지옥에 대한 상상은, 일견 복잡 다단함이 극으로 치닫거나 혹은 이미 그 임계점을 넘어선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 불쑥 어떤 단호한 공간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썩 마음에 듭니다.

 

 

 

 

노재운

 

1971년 태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비말리키넷(vimalaki.net), 애기봉프로젝트(Aegipeak), 총알을 물어라!(Bite the Bullet!), 버려진(God4saken) 등 웹 프로젝트로 대중에게 친숙한 노재운 작가는 인사미술공간, 대안공간 풀, 갤러리 플랜트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플라토, 뉴뮤지움, 제6회 광주비엔날레 등의 미술기관에서 열린 여러 기획전에 참여하였다. 현재 C12픽처스의 대표이며 2009년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3인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vol.20111028-노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