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순영 展

 

Look at window

The 10th Solo Exhibition by Yang, Soon-young, 2011

 

Look at window 2011-1.2.3_228×182cm×3_Pigment on canvas_2011

 

 

가나아트스페이스

 

2011. 10. 19 (수) ▶ 2011. 10. 24 (월)

Opening : 2011. 10. 19 (수) PM 6:00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19 | T. 02-725-9258

 

www.insaartcenter.com

 

 

Look at window 2011-4.5_162×130cm×2_Pigment on canvas_2011

 

 

빛과 색 사이에서 숨박질로 유혹하다.

— colorism과 luminism의 술래잡기를 보며 —

 

이광래 (강원대, 미술철학)

1.

파랑을 유난히도 좋아했던 칸딘스키는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1913)에서 “파랑은 전형적인 하늘의 색채다. 파랑은 가장 낮은 깊이에서는 평정의 요소를 펼쳐낸다. 파랑이 검정 쪽으로 깊어지면, 초인적 슬픔의 의미를 상정한다. 그것은 끝이 없고 끝을 가질 수 없는 진지함의 심오한 상태로 가는 무한한 자기몰입과 같아진다.…음악의 용어로 표현하면, 담청색은 플루트와 유사하고, 암청색은 첼로와, 그리고 더 어두운 색은 더블 베이스의 훌륭한 소리를 닮았다. 반면에 깊고 무거운 형태에서 파랑의 소리는 오르간의 깊은 톤과도 비교된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작가 양순영에게 일체(一切)는 검정, 즉 어둠으로 통한다. 모든 색채와 형상이 그녀의 불랙 홀로부터 빠져나오기 때문이다. 카오스에서 룩스(lux)와 더불어 밝은 세상이 열리듯 거기서부터 그녀의 빛도 발원하고 있다. 이제 빛은 그녀의 화폭마다 어둠을 살라먹고 세상에 색옷들을 입히고 있다. 나란히, 겹겹으로, 고요하게, 요란하게, 자연스럽게, 불연듯… 그 때문에 그녀는 순간마다, 그리고 화폭마다 고뇌하며 희열한다.

 

 

Look at window 2011-6_194×130cm_Pigment on canvas_2011

 

 

2.

모든 색채는 원색(primary color)에서 시작한다. 세상을 차별화하기 위해서다. 그토록 많은 존재들을 식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색의 ‘차이’가 존재의 본성을 표출하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프란츠 마르크는 파랑으로 날카로우면서도 영적인 남성적 정신성을, 노랑으로 부드럽고 쾌활하면서도 관능적인 여성성을, 그리고 빨강으로는 극복되어야 할 저항적 물질성을 대신하려 한다. 하지만 존재들의 색상값은 언제나 그대로가 아니다. 빛이 그것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빛은 색의 차이(差異)를 지연(遲延)시키며 색상의 값도, 의미도 모두 차연화한다. 색은 빛으로 차이내고, 빛따라 움직이며 메시지를 차연(差延)하기 때문이다. 캔버스로 말하려는 양순영의 색채미학도 그와 다르지 않다. 어느새 빛은 충분조건이 되기 위해 그녀의 화폭 위에 강하게 내려앉더니 슬며시 사라지곤 한다. 어느 때는 빛이 색상 뒤에 숨더니 어느 때는 살며시 거기로 스며든다. 데리다가 차연으로 해체하듯 그녀도 의미의 차연을 갈무리하기 위해서다. 가득 펼쳐진 그녀의 그림 텍스트들이 가지각색의 현상들과 관계하며 색채기호학이 되는 까닭도 마찬가지다.

 

 

Look at window 2011-7.8_130×97cm_×2_Pigment on canvas_2011

 

 

3.

빛에 꽂힌 모네보다도 더욱 루미니즘 신봉자였던 쇠라는 자신의 그림을 가리켜 ‘광학적 회화’(peinture optique)라고 불렀다. 쇠라는 모리스 보부르에게 보낸 편지(1890, 8, 28)에서도 “표현방법은 색조의 값과 색채, 즉 국지적인 색채와 광원의 색채와의 광학적 혼합이다. 다시 말해 대비, 농담, 빛의 조사(radiation) 법칙과 일치하는 빛과 빛에 대한 반응의 광학적 혼합을 의미한다”고 적고 있다. 이렇듯 쇠라보다 더욱더 색의 광학적 혼합으로 자연을 재구성하려고 고뇌했던 루미니스트가 또 있을까? 하지만 양순영의 색채언어에서 묻어나는 고뇌의 흔적들도 적지 아니 역력하다. 적어도 이번만은 색채철학도를 자청하는 그녀이기에 더욱 그렇다. 줄곧 ‘색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작가는, 색채에 득도(得道)하려는 컬러리스트이자 루미니스트의 고행길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도 그녀의 뇌리 속에서는 색채의 절대성이 무엇이고, 상대성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 더구나 빛과 색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그녀의 화폭들은 지금도 묻고 있다. 하지만 그토록 채색효과에 고뇌하는 이 채색주의자의 채색법(coloring)에는 등화색(等和色)이 외면당하고 있다. 양순영은 시종일관 빛으로 색의 배합(color matching)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색의 병치와 배열을 빛의 스펙트럼과 조화시키며 색상값을 조절하려 한다. 다양한 자연현상에서 빛으로 색채의 대비와 조화, 배합과 합성의 효과를 실험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작가는 지금, 미술과학의 가능성마저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Look at window 2011-9~20_45×53cm×12_Pigment on canvas_2011

 

 

4.

색과 빛 사이에서 벌이고 있는 숨바꼭질의 술래는 누구인가? 작가인가, 아니면 관객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작가의 유혹에 걸려들고 있는 바로 우리들이다. 터너처럼, 칸딘스키처럼야심 많은 색채주의자들이 그랬듯이 작가도 밝은 색채를 사용하며 우리를 유혹한다. 게다가 모네처럼, 쇠라처럼 모험심 많은 루미니스트들이 그랬듯이 빛의 눈부신 효과까지 동원하며 우리를 술래잡기에 끌어들이고 있다. 그녀의 색으로 물들여진 우리의 심상(心想)이 어느새 그녀의 빛을 좇고 있지 않은가? 유혹은 이번에도 그녀가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역동적으로 끌어당기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 양순영 (Yang, Soon-young)

 

강릉대학교 미술학과 | 성신여자대학교 조형대학원 미술학석사 | 강릉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석사 | 강원대학교 일반대학원 철학과 미술철학박사

 

경력  | 개인전 10회 | 개인부스전 5회 | 대한민국미술대전 외 15회 수상 | 자연환경설치미술 17회 참가 | 국제초대전 12회 참가 | 그 외 기획전 200여회 참가

 

현재  | 한국미술협회 | 네트워크21C | 강릉현대판화가회 | 강릉여류작가협의회 | 초설회 | 화강회 | 성신fiber Art | 천연염색회 회원 | 강원미술대전 초대작가 | NAVER대표카페 quiltcafe manager | (사)한국Textile-design협회 강원지부장 | 국제컬러테라피연맹 한국색채심리전문협회 부회장 | 한양대학교 사회교육원 | 경희대학교 사회교육원 | 방송통신대학교 강사

 

Homepage  | www.yangsoonyoung.com

 

 
 

vol.20111019-양순영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