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도예展

 

The Solo Exhibition by JEONG HUN, LEE

 

생명-그 무게_23x23x33cm_점토에 유약_2009

 

 

가나아트스페이스 2F

 

2011. 10. 12 (수) ▶ 2011. 10. 17 (월)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19 | T. 02-725-9257

 

www.insaartcenter.com

 

 

봄_14x14x26cm_점토에 유약_2011

 

 

눈물 사용법

 

이 글은 작가 이정훈에 관한 나의 두 번째 기록이다. 2008년 여름 그의 ‘영혼’이 깃든 자기(陶瓷)를 앞에 놓고 썼으나 졸고(拙稿)만 남기고 말았다. 미안한 마음에 허락이 된다면 다시 써보고 싶었는데 다시 기회를 얻게 되었다. 3년 만이다. 시간의 속절없음을 아는 연배라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 사이에 이정훈은 무언가를 만들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잊지 않고 있었다. 기실 예술가란 삶과 유리되어야 마땅한 존재다. 나와 타자의 삶을 진중한 시선으로 바라보되, 현실의 구구절절함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살아가는 게 좋은 존재다. 평범한, 심지어 비루하기까지 한 일상이라는 녀석보다는 예술과 더 많이 토닥거려야 힘을 얻는 이들이다. 하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아서 그들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은 삶과 예술의 병행이라는 현실의 고통을 담보하기 마련이다. 내가 누군가의 작품 앞에서 허물을 찾기보다 남다른 의미를 찾으려 하는 까닭은 내 실존의 필연이 그들보다 치열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하루하루 숨 막히는 전쟁 같은 ‘여자’의 삶을 견디며 한 땀 한 땀 도자기를 빚은 이정훈의 작업 앞에 서 있는 지금은 다시 쓰겠다고 나선 나의 오지랖이 원망스럽다. 무릇 절박한 심정으로 생을 견디는 이에게서는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여름_19x19x26cm_점토에 유약_2009

 

 

욕망. 3년 전에도 그랬듯이 나는 이정훈의 곱고 정갈한 자기(瓷器) 앞에서 이 단어를 떠올린다. 현실의 거죽을 상처라는 메스로 도려내 그 안에 꿈틀대는 욕망을 끄집어내고야 말겠다는 작가의 각오가 처연한 까닭이다. 도자의 기본 공식을 유지하되 ‘관능적’인 장식으로 자신의 고유성을 포기하지 않는 고집도 변하지 않았다. 세상에 이정훈의 작업보다 더 잘 만들어진 것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을 글로 더듬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작업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감내하는 한 여인의 감춰진 눈물이요, 이성으로는 도저히 택할 수 없는 예술의 여정을 묵묵히 걷는 한 작가의 꾸준한 발걸음이다. 삶이 곧 예술이라고 믿는 자는 주변의 수런거림이 들리지 않는 법. 이정훈의 작업이 당신이 보고 느낀 그것처럼 과도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까닭은 자신의 욕망을 속으로 꾹꾹 눌러 삼키며 견딘 작가의 연단 때문이다. 나의 존재의 심연을 담되 세상을 향해 자신을 내세우지 않은 겸허함 때문이다. 삶을 대하는 태도, 그 속에서 예술의 노스탤지어를 찾는 태도가 하등의 차이가 나지 않는 까닭이다. 마치 오래 전 어느 시인이 ‘소리 없는 외침’이라는 절묘한 시구로 고단한 삶 속에서 조용히 아픔을 삭였듯이, 이정훈의 작업은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교묘히 도드라지는 법을 알고 있다. 그래서 아름답다. 예술이 없는 인생이란 얼마나 황망한 것인가. 그 빤한 허무함이 싫어 이정훈은 오늘도 뜨거운 침묵을 견디며 물레 앞에 앉아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다시 쓰기를 잘한 것 같다.

윤동희 | 북노마드 대표, <article> 편집장

 

 

가을_23x23x28.5cm_점토에 유약_2009

 

 

겨울_24x24x26cm_점토에 유약_2009

 

 

무제_16x16x5cm_점토에 유약_2009

 

 

 
 

■ 이정훈 (Lee, Jeong-Hun)

 

Homepage  | www.gardeniagallery.com

 

 
 

vol.20111012-이정훈 도예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