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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8. 22(월) ▶ 2011. 9. 14(수)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 2동 490번지 신도아크라티움 | T. 031-879-0002 Opening : 2011. 8. 22(월) 오후 5시
강구원作_우연의 지배(Incidental Dominion in Life)_162x97cm_Acrylic on Canvas_2009 강윤정作_Movement(Red Fish)_117x81cm_Oil on Canvas_2011
패러다임 부재의 시대의 예술 활동
민동주 (미술 비평가, 버질 아메리카 부주간) <예술의 근본을 되묻다 - 조화에 대하여>는 탈 역사적 시기로 일컬어지는 현대에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이 너무 많은 자유를 강요당함으로써 느끼는 자괴감을 반영한다.
예술의 근본을 되묻는다는 것은 바로 예술의 정의에 관한 질문이며 무엇이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의 기준이 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1964년 워홀의 <브릴로 상자>가 전시되었을 때, 미국의 미술 비평가 단토(Danto)는 미술의 역사가 시작된 1400년대 이래 예술의 정의를 찾는데 실패한 것은 예술의 역사적 양상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다음과 같이 썼다. “어떤 대상을 예술로 본다는 것은 우리의 눈이 볼 수 없는 무엇-예술 이론의 분위기, 예술의 역사에 대한 지식- 곧 예술계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는 여기에 더해지는 이론적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로써 현대의 예술 작품에 대한 판단 기준은 눈으로 보고 느끼는 지각적인 ‘미’에서 비지각적인 ‘의미’로 대체되었고, 현대의 예술가들은 외관의 영역에서가 아닌 의미의 영역에서 일한다. 현대의 미술은 의미가 미를 대체한다.
권필희作_The Language of Their Own_90x146cm 김연주作_꿈-바다_160x110cm_Acrylic on Canvas
워홀의 <브릴로 상자>가 등장할 즈음에 변하지 않을 예술의 정의가 결정된 것은 그 시대가 역사적으로 성숙되었기에 가능했고 그로써 예술의 정의를 찾아가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의 역사는 끝이 난다. 그와 함께 예술의 시대별 패러다임에 대한 내러티브 또한 종말을 고하며 철학적 해석이 가능한 한 겉모습과 상관없이 무엇이든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다원주의의 시대가 된다.
단토는 그의 유명한 저서 <예술의 종말 이후>에서 미술사의 시대를 모방의 시대, 이데올로기의 시대, 그리고 탈 역사의 시대의 세 가지로 구분한다. 시각적 진실에 기초했던 모방의 시대는 캔버스 밖에서 모든 것을 보고 있는 절대적인 눈을 지닌 화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원근법적 공간이 지배하던 재현의 시대였다. 내용에 따라 형식이 결정됨으로써 더 자세한 시대 분할이 이루어졌으나 각각의 세분화된 시대마다 요구하는 바가 분명했으므로 예술을 좋고 나쁨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이데올로기의 시대에는 자신이 받아들인 예술과 그 밖의 것 사이의 배타적인 구별에 입각해서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의 철학적 관념을 제시하느라 선언문이 쏟아지던 시대였다. 형식과 내용의 이분법에 의문을 제기하고 형식이 외부로부터 주어진 내용을 담기를 거부하고 형태 자체를 자신의 내용으로 삼기 시작함으로써 내용으로부터 형식이 독립하게 된 것도 이 시대에 속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를 대변하는 탈 역사적 시대는 시간적 경계가 허물어지고 앞 선 시대에 시대적 명령에 의해 나타난 패러다임들이, 즉, 모방을 포함해 선행하는 모든 미술 형태가 양식이 되어버린다. 다원주의의 시대가 온 것이다. 좋고 나쁨이나 옳고 그름의 판단이 불가능해지고 예술이 철학에 가까워진 시대이기도 하다.
김미란作_시간여행_Mixed media on Canvas
재현적 모방의 시기였던 19세기 말까지는 각 시대가 정한 패러다임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했고 작가들의 작업은 패러다임에 맞추어 실력향상을 꾀하는 것이었다.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부터 워홀의 <브릴로 상자> 이전까지의 이데올로기의 시대에는 패러다임이 다양한 이데올로기의 분출을 요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므로 그 시대의 작가들은 최소한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뒤이은 탈 역사적 시대는 예술의 역사와 예술의 내러티브가 종말을 맞게 됨으로써 작가들의 예술 활동에 어떤 패러다임이나 역사적 당위성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너무 많은 자유에 압도된 작가들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예술의 정의가 예술이 나아갈 방향을 정해주는 역할을 한다면, 패러다임이 사라져 어느 방향으로 가든 상관없어진 우리 시대에 이러한 방향 잡이 역할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집단이 있다. 과거 예술의 역사에서도 있어 왔지만 패러다임이 분명하던 시대에 그 존재가 드러나지 않던 집단이다. 서구의 평론가, 큐레이터, 화랑 주인, 화상, 수집가 등으로 이루어진 예술 소비의 주체로서 예술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지만 이전에는 패러다임이 건재했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적인 우열을 가릴 수 없게 된 패러다임 부재의 시대인 현대에는 소비의 주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들의 기호와 판단이 예술의 가치를 결정하고 우열을 가린다. 이들이 예술의 정의를 대체할 수는 없지만 패러다임이 사라진 시대에 이들이 방향타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다원주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일부 집단의 취향과 가치 판단이 시대의 명령을 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나현신作_푸른사물_90x90cm_아크릴채색_2011 소원섭作_Forest-호흡_89.4x130.3cm_Oil on Canvas_2011
예술이 자기 자신에로 관심을 돌려 자기 성찰적이던 모더니즘 시대에 서구 주류 문화에 속하지 않았던 문화적 타자가 ‘원시’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기억 속에 억눌렸던 ‘자기 안의 타자’를 대변하며 그들에게 영감을 주던 때도 있었지만, 교류의 확대 등으로 그 당시 타자에 속했던 타문화권이 서구 문화를 어느 정도 공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쌍방향 교류가 충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 관장을 지낸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는 하나의 헤게모니와 위계질서를 형성했던 서구 중심의 모더니티(modernity)와는 다른 현시점의 문화현상과 양상을 설명하기 위해 군도(archipelago)라는 용어를 도입하여 글로벌 문화의 다양성을 표현하는 모델이라고 한다. 런던, 뉴욕, 베를린, 베이징, 뉴델리 등 지리적으로 먼 지역에서 군도를 이루며 다양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세계화로 인한 교류로 인해 서로 닮아가고 있어 다양성은 오히려 세계화로 인해 지연되고 있다. 아직은 겉보기에만 다양할 뿐이지만 패러다임의 부재는 우리의 작가들에게 가능성을 뜻하기도 한다. 서구 예술의 패러다임의 역사는 종말을 고했지만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 만의 자기 성찰적 모더니즘을 겪고 있을 뿐이다.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이대선화作_유기적 관계_116.7x80.3cm_Oil on Canvas_2011 이복기作_할미꽃 따라 가는 길_82.5x48cm_수채화
이상구作_어느 날 문득 하늘을 보다.._95.2x53cm_Acrylic on Canvas_2011 이순호作_아주 특별한 선물상자-A Blessing_100x60cm_Mixed media
이종민作_Freedom_존재_91x72.7cm_Oil on Canvas_2011 이희돈作_알파벳의 열두번째 이야_116.6x91cm_Acrylic and Mixed media on Canvas_2011
정경철作_나의 일기_91x73cm_Acrylic and Mixed media on Canvas_2011 정인자作_야무나의 강가_50호_Oil on Canvas_2011
정창균作_명경지수_87x162cm_2011 최진희作_Happiness of Dreamer_80x80cm_Mixed media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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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10822-2011현대미술작가회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