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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규 展
미소하는 침묵-Silent Earth
통일대교
갤러리 온
20011. 8. 11(목) ▶ 2011. 8. 19(금)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69 영정빌딩 B1 | 02-733-8295
임진강
예술적 재현은 복제가 아닌 대상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통해 발현된다. 퐁티의 말처럼 그냥 나무가 아니라 ‘이 나무’ 여야 하고, 그냥 풍경이 아니라 ‘이런 풍경’으로 다가오는 발생적 순간의 떨림을 담아내는 과정이다. 주어진 일상적 시선속에서, 지각주체가 각자에게 내재된 지각방식으로 리얼리티를 탄생시키는 과정이며 세계를 현존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순수한 감각과 지각이란 존재하지 않고 창작주체와 작업은 온전히 분리될 수 없다. 김선규의 사진에서 사색이 뭍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꼬박 2년을 드나들며 뷰파인더로 잡아낸 DMZ(비무장지대非武裝地帶, De-Militarized Zone)의 풍경은 풍요롭고 짐짓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너머엔 굶주린 청소년들이 아사직전의 모습으로 ‘ 꽃제비’, ‘꽃거지’가 되어 곡물 껍질을 주워먹고 있고, 자유를 찾아 혹은 굶주림을 피해 남한으로 온 탈북 이주민들이 벌써 2만명에 달하며 남한 생활 부적응과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심리적 부유상태를 겪으며 음지로 파고 들고 있다. 치열한 이념의 시대를 떠나보내고 경제부흥에 포커스가 맞춰진 현 시대엔 DMZ는 이슈화 되긴 너무 멀어졌다고 여겨졌고, 남북 통일에 대한 한 리서치 결과는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보여줬다. 휴전 이후 반세기를 훌쩍 넘겨 버린 지금, 북한을 어떻게 바라봐야 될 것인가. 안고 가기엔 버겁고 뭍어두기엔 아련한, 정치와 이념의 사생아 같이 되버린 지금.
마주보는 남북 초소
김선규는 탈북인에게 그들과 우리로 경계짓는 것이 아닌 우리들이란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탈북민들의 새터 지원 활동을 해오며 삶의 의지를 지켜주려 노력해왔고, 평화를 꿈꾸는 따뜻한 시선으로 DMZ를 품었다. 죽은 나무에 꼬박 3년을 물을 길어다 주어 꽃을 피워냈다는 수도사의 얘기를 들려주며 황량한 땅에 죽은 나무를 심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Andrei Tarkovsky)의 ‘희생’의 한 장면처럼 고요한 정적속에 긴장감이 도는 적막의 땅에서 회복과 구원을 얘기하고 있다. “자신을 버리고 희생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부탁할 것이 없다. 나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가? 여기에 대답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나 역시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대답을 못 보고 죽음을 맞는다면 그야말로 슬픈 일이라고 생각한다.” -“희생(The Sacrifice, 1986)”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Andrei Arsenyevich Tarkovsky)-
작가노트 DMZ(비무장지대非武裝地帶, De-Militarized Zone)를 카메라 파인더로 바라보면서 처음 수도원에 들어설 때 느꼈던 고요함과 평화로움, 자유와 행복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감과 떨림이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긴장과 경계, 치열한 내적 투쟁이 일었던 수도원에서의 지난 세월을 바라보게 했다. 그곳은 봉쇄(封鎖)라는 울타리 속에서 평화와 자유, 행복과 풍요로움을 구현하는 대지다. 수도자(修道者)들은 그 울타리 속의 대지에서 끊임없는 내적투쟁과 순례의 길을 같은 도반(道伴) 수도자들과 형제애(兄弟愛)로 걸어간다.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DMZ에서도 전쟁으로 인한 쓰라린 상처를 58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생채기는 아물어 가고 있는 중이다. 더욱이 개발과 발전이라는 또 다른 침략에 두려워하고 있는 곳이기에 긴장과 경계를 풀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철책이라고 하는 제한된 곳에서 상처투성이가 된 대지가 자연스럽게 복원되기에는 제한적인 한계를 갖고 있지만 사람들과 더불어 스스로 자연스러워지고 있는 곳이다. DMZ. 그곳은 미소 짓고 있지만 무거운 침묵과 생존의 침묵이 공존하고 있다. 이 침묵이 자유와 평화, 행복과 풍요의 다른 말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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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10811-김선규 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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