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수 목판화 30년 기획 초대

 

'새는 온 몸으로 난다'

 

 

하늘 이고 저물도록_58x98cm_2011

 

 

관훈갤러리 전관

 

2011. 6. 22(수) ▶ 2011. 7. 12(화)

Opening : 2011. 6. 22(수) PM 5:00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95 | 0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웃는 마음_42x50cm_2009

 

 

작가 이철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충북 제천이 그렇듯, 중심에서 벗어나 늘 '장외의 장소'에서 마치 아웃사이더처럼 세상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누가 그를 아웃사이더라 부를 수 있을까요. 그의 한마디 말과 그림은 다정하고 부드럽기 짝이 없지만, 세상의 가장 깊은 속살을 건드립니다. 마치 졸고 있는 우리들이 깜짝 놀라 깨어나듯이,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아마 이것은 그의 정신적 거처 역시 장외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가 봅니다. 작가는 현실의 일상을 벗어난 듯이 보이지만, 늘 우리와 함께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철수 화백의 목판화는 스스로 밝히 듯 그 자신의 '일상의 고백이자 반성문'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 사회는 많이도 변하고 흘러갔습니다. 그 세월동안 그가 여전히 따뜻하고 의미 있는 존재로 우리 곁에 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 그의 성품처럼 그의 작품들이 우리에게 주는 위안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반성문이 자신의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일 터입니다. 지난 2002년 ‘가을편지를 드립니다.’로 시작한 온라인 공간(www.mokpan.com)의 《나뭇잎 편지》는 이제 등록회원 수만 6만 명이 넘었습니다. 그의 홈페이지는 이철수의 은둔자적 삶과 현대문명과의 조화로운 소통 능력을 잘 보여주며, 사람들이 왜 그를 찾는지 그 이유를 알게 합니다. 매일매일 우리는 그의 '고백과 반성'을 통해 위안 받기 때문입니다.

 이번 개인전에 출품되는 작품 113점 가운데, 지난 2005년 전시회 이후 제작한 작품(신작)들은 55점이며 특히 1981~2005년 사이에 제작한 작품 58점을 다시 선 보입니다. 구작 선정 기준은 그동안 사람들이 특히 많이 기억하는 작품들, 작가 자신이 마음이 가는 작품들 그리고 민주화운동에 활용도와 효용성이 컸던 작품들을 선정했습니다. 그래서 민주화운동이 거셌던 시기인 1980년대의 작품 21점이 출품되고, 충북 제천으로 이주한 이후 1990년대의 작품 24점, 2000~2005년에 제작된 것이 13점입니다.

 

 

아이들 뒤따라 올 텐데_68x89cm_2009

 

 

 이철수 화백은 한국화단에서는 보기 드문 다작의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제작한 판화작품만 최소한 2천여 점이 넘으며, 그 외 벽화와 작은그림(엽서그림) 등을 합하면 5천여 점이 넘는 작품을 제작하였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거의 이틀에 한 점씩의 작품을 만들어 온 셈입니다. 작가의 일상과 면모를 작업을 통해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작품은 그동안 우리 공동체 안팎에 있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잠재적 힘으로 존재해 왔습니다. 특히 우리의 역사와 현실을 이야기한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대표작들은 물론이며, '90년대 이후 서정성을 담은 내용의 작품들 역시 그러합니다. 또한 기독교와 불교 그리고 천주교와 원불교에 이르기까지 이철수의 마음 씀씀이와 발언은 종교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자신의  생활 주변과 세상의 변화를 꼼꼼히 읽으며 쏟아낸 판화작업은 미술관.갤러리의 높은 담장을 벗어나 출판과 판화달력 그리고 아트상품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방법들을 확장시켜 왔습니다. 매일 6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의 그림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그가 30년 전 애초에 판화를 시작했던 이유를 아직도 잊어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은 "그가 지금껏 그림을 그려 온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그림을 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돌아보게 하기 위해서다."라고 합니다. 예술작품이 단순한 감상의 도구에 그치지 아니하고, 관람자의 삶의 태도에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예술과 예술가들이 사회에 존재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주헌은 "그의 그림 앞에서 우리가 이것이 미술이니 문학이니, 민중미술이니 선禪 미술이니 구분하고 따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는 장르와 범주를 초월해 그저 이야기를 한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철수의 예술세계의 존재적 근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새는 온몸으로 난다 1_93x125cm_2010

 

 

이철수의 작품은 사람을 바꾼다는 생각보다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요소들을 발견하고 세심하게 들여다보면서 삶의 가능성을 사고합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요소들을 발견하고 가치화하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가는 주체로 서게 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의 주체의 변화, 이 변화가 초래하는 문제들을 알고 이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그의 예술적 어법이 되는 것입니다. 작가는 그래서 이렇게 발언합니다. "비판의 소리만 내고 살아야 할 때도, 그리고 제 일 제가 하고 살아도 여전히 힘겨울 때, 왜 이렇게 힘이 드는 걸까 스스로 묻곤 했습니다. 오래 화두처럼 들고 있던 의문에 대해 스스로 내린 답은 간명했습니다. 내 삶과 내 존재의 주인 노릇을 못하기 때문! 머슴살이하듯 사는 삶이 오죽할까? 현실이 시키는 대로, 이념이 시키는 대로, 세상의 평판과 기대에 부응해서 사는 삶이면 당연히 힘들지!"

 이번 전시회의 화두는 단연 "새는 좌우의 날개가 아니라 온 몸으로 난다."일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사회의 균형을 위하여 종종 '좌우의 날개'를 거론하곤 하는데, 작가는 온 몸이라고 다시금 깨우쳐 줍니다. 우리는 새가 온 몸으로 난다는 것을 잠시 잊었습니다. 그저 눈앞에 퍼덕이는 새의 날개만 본 것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그가 온 몸으로 살며 발언한 그의 예술세계를 그것으로 대신 하고자 합니다.

/ 전승보 (기획자, 독립큐레이터)

 

 

미산계곡 1_41x119cm_2011

 

 

○ 일상과 대지에서 길어 올린 불성, 이게 무상의 이미지일까

 : 이철수가 지난 30년 마음의 눈으로 새긴 선판화  / 이태호 (명지대 교수)

 우리 옛 그림에서 화제畵題를 쓰고 도장을 찍고 낙관落款하는 방식이 고스란하다. 그림과 글이 어우러진 전통 형식의 장점을 자기화한 이철수의 큰 매력이다.

 문자도 판화를 포함하여 30여 점에 이르는 올해 작품들에는 이철수가 새로운 변모를 시도하려는 모색이 느껴진다. 대작으로 창공을 나는 독수리의 〈새는 온몸으로 난다〉 두 점은 수묵모필의 붓 맛이 웅혼하여 색다른 감명을 준다.

 밭일하는 농부 같은 작품들도 새롭다. 자기 지문을 확대하여 밭고랑으로 삼은 그림들이다. 농사를 지으며 판화작업을 하는 농부작가인 자신의 손을 땅과 동일하게 여긴 표현답다. 일하면서 떠오른 아이디어가 신선하다.

 20년 넘게 새겨 온 이철수의 선화禪畵는 불교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인간이 노동하며 살아가는 삶의 일상부터, 대지의 사계와 자연환경, 우리 사회나 국제적인 사건에 이르기까지 세상 변화를 놓치지 않고 독파해 낸다. 최근의 4대강사업, 구제역, 이집트에서 발단한 중동의 민주화운동, 전쟁,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 원전사고, 죽산 조봉암 선생 무죄 판결, 봄비나 봄꽃 피는 모습 등등이 그때그때 빠지지 않고 등장해 있다. 이들 형상화는 간결한 선묘나 전통적인 수묵화풍으로 재창조되기도 한다.

 

 

백장 법문_42x50cm_2011

 

 

 

 

■ 이철수 (1954~ )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목판화가인 이철수는 1981년 첫 개인전을 통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폭압적인 사회에 보내는 저항의 언어들로, 서정적이면서도 격렬한 선묘 판화와 처음 본격화하던 출판 미술운동 등, 1980년대 내내 판화를 통한 현실 변혁운동에 열심이던 그는 1988년 무렵 자기 성찰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관심으로 판화영역을 확대해가기 시작한다. 80년대 변혁 운동과 판화가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의 결과이기도 한 미술적 변모는 얼핏 보기에도 크고 본질적이다. 평범한 삶과 일상사를 관조하면서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찾아내거나, 다채로운 자연을 소재로 삼아서 그 안에 깃들어 사는 인간의 면목을 다양한 관점에서 제시하는 새로운 판화세계는 따뜻하고 정겹고 진지하고 때로 초월적이기도 하면서 쓸쓸하다. 조용하고 차분한 언어가 때로 세상과 일상사를 말하면서 단호해 지기도 하지만 막연히 현실사회를 향해 있던 분노는 이제 우리들의 욕심 사납고 그로 인해 황폐해진 내면을 향하는 경우가 더 많다. 연민의 눈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보자 하고, 평범한 일상이 드높은 정신으로 가는 피할 수 없는 길이라 말하는 그의 판화는 이제, 낮은 목소리로 존재의 경이를 이야기하고 삶의 긍정을 말한다.

간결하고 단아한 그림과 선가의 언어방식을 끌어온 촌철살인의 화제들 혹은, 시정이 넘치는 짧은 글이 어우러져 현대적이면서도 깊이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그의 판화는 '판화로 시를 쓴다'는 평판을 들으면서 갈수록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시와 글씨와 그림이 한 화면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새로운 형식을 통해 전통적 회화를 현대적 판화로 되살렸다는 평가도 받는 그의 새로운 판화들은, 삶이 곧 그림이라서 따뜻하고 깊고 건강한 삶을 통해서만 아름다움의 내용을 채워 갈 수 있으리라는 작가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가 농촌에 정착해서 흙을 일구고 사는 것도 건강한 삶에 대한 그의 생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 삶과 그 아름다움이 우리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것이 되기를 바라는 그는, 제천외곽의 농촌마을에서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짓고, 판화를 새기고, 책을 읽으면서 조용히 지낸다.

 

 

 

vol.20110622-이철수 목판화 30년 기획 초대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