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린 드로잉 展

 

-모란미술관 특별기획-

 

 

D-57-38_15x24cm_Pen, Water color on Paper_1957

 

 

모란 미술관

 

2011. 5. 7(토) ▶ 2011. 6. 12(일)

Opening : 2011. 5. 7(토) PM 5:00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246-1 | 031-594-8001~2

 

www.moranmuseum.org

 

 

D-63-4_12x17.5cm_Indian ink on Paper_1963

 

 

모란미술관은 지난 50년간 생명과 자연의 에너지를 조각으로 표현해 온 최만린 작가의 드로잉 전시를 개최한다. 이번 <최만린 드로잉>전은 1955년에서 최근에 이르는 작가의 드로잉 작품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전시이다. 전시장과 도록에 소개된 700여점에 이르는 드로잉은 단순히 조각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밑그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최만린 작가의 조형미학의 근원을 보여주고 있다.

최만린 작가는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 동양의 철학사상, 그리고 한국성을 바탕으로 <이브>, <천(天)>, <지(地)>, <현(玄)>, <황(黃)>, <음양(陰陽)>, <일월(日月)>, <태(胎)>, <아(雅)>, <점(點)>, <○> 등과 같은 작업을 해왔다. 한국전쟁 이후 국내에서 교육을 받고 활동한 첫 번째 세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최만린 작가의 작품은 1950년대 당시 한국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첫 번째 작품인 <이브>(1958)는 전쟁의 상처를 견딘 인간 그 자체의 숭고함을 표현하듯 투박하면서도 거친 살결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이후 생명성과 연결되는 여러 작품들 <생(生)>, <태(胎)>, <아(雅)>을 선보이면서 인체에서 인간의 정신성을 강조하는 추상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작가의 사유는 드로잉에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다. 특히 초기 <이브>, <모자상>과 관련된 수많은 드로잉을 통해 작가가 인간의 형상에 대해, 그리고 초월적인 정신성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 1965년 이후 몇 차례의 조형적 변용을 거치면서 주로 인간의 정신성과 생명을 주제로 한 연작들을 발표해왔다. 거대한 자연과 생명의 본질을 추구한 작가의 작업 과정과 그 흔적은 이번 <드로잉>전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전시는 총 5기로 구분되는데, 1955년부터 1960년까지를 1기로 주로 인체를 주로 다뤘다. 2기(1960-65)에서 3기(1965-71)까지의 작품은 인체가 추상화 되어가고 있는 과정을 보여준다. 4기(1973-79)에 해당되는 작품들은 <태(胎)>와 같이 생명성을 드러내면서도 거대한 자연의 본질을 추구하고 있다. 5기(1983-2007) 작품들은 주로 <○> 시리즈로 집중되는데 가장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작품이 주를 이룬다.

이번 모란미술관의 <최만린 드로잉>전은 거친 조각가의 삶을 살아오면서 생명과 인간 본연의 문제를 조형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작가의 고매한 정신과 예술혼을 가장 가까이서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D-65-29_36x16cm_Indian ink on Paper_1965

 

 

최만린의 드로잉에 대한 미학적 소고

임성훈(미학, 모란미술관 학예실장)

 

한 작가의 예술세계와 예술정신의 정수를 파악하는데 있어 드로잉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작업의 결과로서 드러난 작품에서 읽어내기 쉽지 않은 부분이 드로잉에는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드로잉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독백이며, 내밀한 언어로 쓴 일기와도 같은 것이다. 드로잉은 작가 자신의 삶과 예술에 대한 성찰이며 동시에 예술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응축한 작품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드로잉은 한 작가의 작업 정신을 드러내는 형이상학이다. 그러기에 한 작가의 작업과 작품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그의 드로잉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 전쟁 이후 국내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활동한 첫 번째 세대에 속하는 최만린은 드로잉의 중요성을 일찍이 몸으로 체득한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최만린의 드로잉 작품은 지난 50년간 지속된 작가의 작업 정신의 발로(發露)이며, 예술적 정체성(正體性)을 찾아내려 했던 조형적 흔적이다. 그러기에 그의 드로잉은 널리 알려진 그의 조각 작품을 접할 때와는 또 다른 예술적 숨결과 울림을 느끼고 들을 수 있게 한다. 이 짧은 글에서 최만린의 드로잉 미학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다만, 195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지속된 최만린의 드로잉을 관통하는 예술적 정신이 무엇인지를 몇 가지 미학적 관점을 통해 고찰해 보기로 한다.

정직한 드로잉

최만린의 드로잉, 특히 초기 드로잉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가식이나 과장이 없는 순수하고 담백한 표현성이다. 그의 드로잉은 ‘정직한 드로잉’이다. 이러한 ‘정직한 드로잉’ 정신은 초기에서 최근의 드로잉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나타난다. 초기의 인체 드로잉을 보더라도 조형적 기법보다는 오히려 소박한 감성이 더 부각되어 있다. 이는 그의 드로잉이 세련된 묘사나 기술적인 기법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심상(心象)을 그대로 담아낸 드로잉이란 것임을 말해준다. 그렇다고 해서 감성적 측면만이 강조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드로잉에는 이성이 감성화되어 있기도 하고, 또한 감성이 이성화되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초기의 ‘정직한 드로잉’은 서구의 드로잉 기법을 단순히 답습하는 것에서 벗어나 작가 자신의 고유한 드로잉의 길을 만들어가면서 이루어낸 결과이다. 그의 초기 드로잉은 그 시대 상황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50년대의 드로잉 전체에서 드러나는 어두운 느낌은 그 시대의 암울한 상황에 대한 작가의 마음이 투사된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최만린의 드로잉은 시대적 상황을 예술적 형식미로 꾸미거나 장식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 있다. 그의 드로잉은 “흔적”으로 남아 있는 드로잉이다. 예컨대, 1958년작 <이브(Eve)> 조각과 관련된 그의 드로잉 흔적은 작품이 단순한 조형적 형태가 아니라 사유가 형태화된 것임을 증거하고 있다. 60년대 중반 이후 전개된 드로잉은 그 형태상의 측면에서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이러한 ‘정직한 드로잉’ 작업 태도는 그대로 지속된다. ‘정직한 드로잉’의 또 다른 면모는 그가 드로잉을 위한 드로잉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에게 드로잉은 단순히 작업 제작을 위해 마련한 밑그림이 아니라 정신에 대한 정직한 자기표현이다.

 

 

D-73-1_18x26cm_Indian inkWater color on paper_1973

 

 

양식(style)에서 자유로운 드로잉

최만린의 드로잉은 양식에 얽매이지 않은 드로잉이다. 자유로운 예술 정신이 그대로 반영된 드로잉, 그것이 최만린 드로잉 정신의 핵심이다. 일반 양식에 얽매이거나 의존하는 드로잉이란 단지 세련된 묘사나 정형화된 기교로 남을 뿐이다. 자신의 고유한 개인 양식을 갖지 못한 드로잉은 자유로운 예술정신에 대한 이율배반의 드로잉이다. 드로잉이 자유로운 정신 속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관습적인 양식에 머물고 만다면, 그 작업의 결과는 어떠한 예술적 혹은 조형적 긴장감을 보여줄 수 없을 것이다. 바둑 격언 중에 정석을 배우고 나면 정석을 잊어버리라는 말이 있다. 정석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석에만 얽매이면 바둑을 창조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없다는 말이다. 최만린은 정석을 배우고 또한 그것을 버리는 법을 잘 알고 있는 작가이다. 그리고 이를 자신의 조각과 드로잉에서 실천하고 있다.

보잘 것 없는 것의 숭고함

최만린의 초기 드로잉에 나타난 숭고미는 조형적 격식에서 벗어난 자연스러움, 소박함 그리고 원초성에서 유래한다. 그의 드로잉은 무엇을 그려내기보다는 생각을 붙잡아 두려는 어떤 절박한 마음의 표현이다. 생각을 그리는 드로잉에서 재료의 선택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그는 주위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종이 위에 드로잉 작업을 해왔다. 서구 드로잉의 기준에서 보자면, 기법이나 형태면에서 대단하지도 않으며, 또한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드로잉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저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드로잉이 감동을 주기도 한다. 보잘 것 없는 드로잉에 깃든 숭고의 미학, 이것이 최만린 드로잉이 제시하고 있는 미학이다. 인간 스스로의 초라함을 느끼고, 이를 고양과 상승의 마음으로 표현하는 것, 바로 여기에 숭고의 계기가 있다. 여체를 표현한 초기 드로잉에서 에로틱한 특징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브> 드로잉을 보자. ‘이브’는 꽃을 안고 있다. 화려하게 치장된 꽃이 아니라 가시로 만들어진 꽃이다. 가시 꽃을 안고 있는 ‘이브’는 보잘 것 없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기에 에로티시즘이나 유미주의와는 거리가 먼 조형성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비애와 고통이 과도하게 노출되어 있지는 않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것에 대한 실존적 자각으로 처절함을 넘어서 관조하는 한 인간의 상황이 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브> 조각과 이와 연관된 드로잉에는 숭고미가 현현되고 있다. <이브>는 ‘이브’라는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가장 초라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숭고성을 재현하고 있다. 이러한 숭고의 미학은 60년대 초반의 <이브> 드로잉 연작에서 보다 추상적인 형태로 지속된다.

자연과 생명, 그 근원에 대한 관조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최만린은 자연과 생명을 주제로 삼아 작업해 온 작가이다. 그러나 그는 서구의 조형적 기법만으로 이러한 주제를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데 한계를 일찍이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서구의 미술 기법으로 자연과 생명을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그것의 근원에 대한 관조를 재현해 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최만린은 이러한 조형적 아포리아(aporia)를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었으며, 또한 이를 자신의 예술에 있어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최만린의 드로잉에는 동양철학에 바탕을 둔 자연과 생명에 대한 근원에 대한 물음이 담겨있다. 그러기에 이러한 물음은 물성 그 자체라기보다는 자유로운 정신과 맞닿아 있다. 예컨대, 드로잉 <D-60-45>에는 “primitive”, “oriental”, “dynamics” 등과 같은 단어가 적혀있다. 이 세 단어로 집약되는 그의 드로잉 미학은 초기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드러난다. 이를 통해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원초적 조형성의 힘, 그리고 이러한 힘이 동양적 사유에 토대를 둘 때 가능한 것이고, 이에 따라 자연과 생명이 표현될 수 있다는 작가의 근본 생각을 엿볼 수 있다.

 

 

D-89-6_19x14cm_Indian ink Water color on Korean paper_1989

 

 

최만린의 추상 드로잉 - 사유하는 드로잉

최만린의 추상 드로잉에서 ‘추상’은 20세기 서구의 미술사에서 전개된 추상 개념과는 근본적으로 그 맥락을 달리한다. 일반적으로 ‘추상’ 개념을 가장 넓은 의미, 넓은 의미 그리고 좁은 의미의 추상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본 ‘추상’ 개념은 대상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본질과 그 핵심을 이끌어내어 표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선사 시대의 제작된 <뷜렌도르프의 비너스>도 얼마든지 훌륭한 추상조각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상 <뷜렌도르프의 비너스>는 추상의 본래적인 의미, 그러니까 자연미와 소박미를 갖춘 원초적 추상적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형식이나 표현력에 있어서도 20세기의 추상 조각 작품과 비교해 보더라도 뛰어난 작품이다. 최만린의 드로잉에 나타난 추상은 바로 가장 넓은 의미에서 <뷜렌도르프의 비너스>를 추상 조각으로 볼 때 생각되는 그러한 추상 개념이다.

최만린의 추상 드로잉은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불고 구름이 지나가듯이, 그렇듯 자연의 본성에 따른 드로잉이다. 지성이나 이성 이전에 직관이 강조된 드로잉, 그것이 최만린의 드로잉의 본질을 이룬다. 그러기에 그의 드로잉은 실상 드로잉이라는 범주를 벗어난 드로잉이기도 하다. 1965년에서 최근에 이르는 드로잉, 즉 <천(天)>부터 <O>에 이르는 드로잉들도 이러한 기본적인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생명의 근원을 추상 드로잉에 담아내려는 그의 조형적 의지가 드러난다. 이런 점에서 그의 드로잉에 나타난 추상 개념은 이러한 예술 정신에 대한 조형적 “흔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추상 드로잉과 비움의 미학

최만린의 드로잉에 나타난 정신은 상당히 일관되지만, 형태상의 변화도 읽어낼 수 있다. 가장 극적인 예로 1965년 이후 인체 드로잉에서 추상 드로잉으로 전환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추상 드로잉은 대상의 본질을 단지 형식적인 측면에서 추출해 조형적으로 재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비움으로써 획득된 드로잉이다. 이를 위해 그가 사용한 재료는 연필, 펜, 콘테 등이 아니라 주로 모필(毛筆)이다. 모필로 표현된 자유로운 드로잉, 여기에는 어떤 조형적 매력을 발산하려는 어떠한 기교도 보이지 않는다.

<이브> 연작이 보여 준 조형적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길을 떠나는 것, 그것이 한 작가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조형성을 비우는 길을 택했다. 모든 것이 버려졌고 비워졌다. 이러한 비움의 미학을 두고 최만린이 이전 작업의 조형성에 한계를 체감하고 새로운 형태를 모색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은 실상 그리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의 추상 드로잉은 자연과 생명의 근원에 대한 사유의 여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의 추상 드로잉은 단지 새로운 기법이나 묘사에 대한 새로운 전환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비움을 통해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조형적 정체성 모색

최만린은 한국 전쟁 이후 국내에서 교육을 받은 첫 세대에 속하는 작가로 서구의 조형적 기법을 체득했다. 그렇지만 조각과 드로잉이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듯이, 그는 서구의 세련된 조형적 기법에 감탄하고 수용하기에 급급한 작가는 아니었다. 오히려 세련된 묘사나 기법에서 벗어나 자신의 조형적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데 주력한 작가였다. 최만린은 자연과 생명의 근원에 대한 탐구하고, 공간을 마음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한국적 조형성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모색해온 한국 작가이다. 최만리의 조형적 정체성(identity)에 대한 모색은 1980년대 이후 인위적인 조형적 경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에서 정점에 달한다. 특히 <점(點)>연작과 <O> 연작 드로잉은 생명을 근원적으로 표방하면서도 여전히 습관처럼 남아 있던 서구적 조형성을 냉엄하게 반성한 결과로 비롯된 것일 터이다.

비움과 채움의 미학

1980년대 말에서 시작된 <O> 연작 드로잉은 그가 모색해 온 조형적 정체성의 한 매듭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O> 연작 드로잉은 그의 조형세계와 정신세계가 합일되는 형태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O>는 어떤 방법을 통해 진리에 이를 수 없었다는 작가의 고백이다. 모든 것이 버려지고 비워진 상태, 그것이 <O> 드로잉 연작에서 표현되어 있다. 실상 <O>의 의미는 개념이나 논리적으로 파악될 수 없다. <O>는 무엇을 상징하는 기호도 아니며 그렇다고 거창한 이념을 담고 있는 단어도 아니다. <O>는 버려지고 비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어 있기만 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O>는 비어 있으면서 동시에 차 있다. <O> 연작 드로잉에는 유(有)와 무(無)가 공존한다. 비움과 채움의 미학, 그것이 <O>에 나타난 미학이다.

최만린의 드로잉은 지난 50년간 다양한 형태의 변용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형태의 변화가 있지만, 그 본질마저 바뀐 것은 아니다. 그의 드로잉에는 일관되게 인간, 자연, 생명 그리고 한국적 조형성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근저에 항상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 작가로서 이러한 일관된 조형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실상 서구의 조형 기법을 적당하게 활용해서 작업하려는 유혹이 얼마나 많은가? 그의 조각과 드로잉이 보여주고 있듯이, 최만린은 시류에 편승하거나 휩쓸리지 않은 채 고독한 길을 걸어 왔다. “임선생, 걸을 때 발자국을 의식하면서 걷습니까?” 작년 가을 어느 날 최만린 작가가 필자에게 한 말이다. 울림이 큰 말이었다. 이번 <최만린 드로잉>展에서 선보이는 그의 드로잉은 그 발자국들이다.

 

 

 

 

 

vol.20110507-최만린 드로잉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