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신항섭 사진 展
'바다를 논하다'
갤러리 토포하우스
2011. 4. 13(수) ▶ 2011. 4. 26(화)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84 | 02-734-7555
바다는 그곳에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그냥 있을 뿐입니다. 바다는 스스로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묵묵히 있을 뿐이지만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많은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한 단어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어떤 꼬리표를 붙이고 싶어하기에 ‘신항섭’ 이라면 평론가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그는 35년 전부터 사진작가였습니다. 잡지사에 근무하면서 직업으로 사진을 찍었고, 눈으로 보는 것과, 기계로 보는 것의 차이를 인지하면서 마음으로 보는 것을 표현하는 작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중국풍경을 주제로 한 상하이에서의 개인전, 바다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를 통해 사진작가 ‘신항섭’의 작품세계를 음미하시기 바랍니다.
바다의 넓이와 깊이를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바라보고, 상상할 뿐입니다. 소란한 삶 가운데에서 바다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바다 표면의 변화무쌍함과, 바닷 속 깊은 곳의 평온함을, 마음으로 그려보는 만남에 초대합니다.
작가 노트 유사 이래 하고많은 문학가들이 다투어 쏟아놓은 미려한 문체의 서술이 바다의 진면목과 얼마나 일치하는 것일까. 바다를 제재로 출사를 할 때마다 이런 의문이 뒤따랐다. 바다는 스스로를 설명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문학가들이 서술한 바다는 어느 한 측면을 설명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바다는 그런 식으로 자신을 서술하는 데 얼마나 공감하고 있을까. 드넓은 바다의 존재감과 마주할 때마다 다만 무기력해질 따름이었다. 지구의 커다란 한 부분으로 존재하는 바다는 그저 무상할 뿐. 그 어떤 언설로도 결코 정의되지 않는 신비일 뿐. 달의 영향으로 하루에 한 번씩 큰 몸집을 키웠다 줄였다 하며 스스로 살아있는 존재임을 증명할 뿐. 그러면서 지구를 반분하는 땅과 마찬가지로 갖가지 생물을 기꺼이 품에 안을 뿐. 그러기에 뭇 생명의 모체로서의 바다를 설명하는 데는 그 어떤 논리나 수사학으로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바다를 제한적인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가당찮은 일인지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에 대한 지식은 지극히 단편적일 수밖에 없기에 그렇다. 한 번도 그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심연은 고사하고라도 눈에 보이는 풍경조차도 피상적인 이해일 수밖에 없다. 바다는 매일매일 시시각각이 다른, 그야말로 천변만화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까닭이다. 달의 인력에 따른 변화는 물론이려니와 태양과 별 그리고 대기의 움직임에 따라서도 부단히 유동하기에 그렇다. 본디 바다는 정형화되지 않는 존재가 아니던가. 오직 신비 자체일 뿐... 바다로 촬영을 나갈 때 솔직히 그저 아름다운 풍경이나 찍어야겠다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정작 바다를 마주하자 갑자가 막막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일망무제의 바다가 그 어찌 아름답다는 말인가. 그저 아득히 수평선만을 내어주는 바다를 어떻게 아름답게 묘사할지 까마득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바다는 미를 탐하는 수많은 사진작가들을 위해 곁을 내주었다. 그 순간 바다를 제재로 하는 아름다운 작품들을 떠올리면서 그에 상응하기는커녕 그 반쯤이라도 미칠 수 있는 사진 한 점을 건질 자신이 없어졌다.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라는 시각에서 보자면 이미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적잖이 탐색되었다. 시선을 현혹하는 아름다운 바다풍경 사진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다.
가벼웠던 발길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타인은 고사하고라도 나 자신이 납득할 만한 아름다운 풍경 사진을 얻을 자신이 없었다. 아름다운 바다풍경에 대한 환상은 그렇게 무참히 부서졌다. 그러다가 문득 아름다운 바다풍경을 포기하는 대신 바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어떨까싶었다. 단지 바다가 보여주는 그대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족하지 않느냐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그 순간 마음이 한결 편해지고 발길도 가벼워졌다. 그렇다. 바다가 보여주는 자연 그대로를 프레임에 담자는데 생각이 미치자 시야가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로부터 되도록이면 자주 바다를 찾아 눈에 보이는 실상 그대로의 바다와 마주했다. 구태여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나서지 않아도 되었다. 그냥 언제 어디서나 마주하는 바다의 모습을 담담히 프레임에 담고자 했다. 바다와 만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기차와 전철, 그리고 버스를 갈아타며 출사 나가는 길이 가벼웠다. 바다에 이르는 동안 이런저런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좋았다. 그 혼자만의 시간은 바다를 사색하기에 적합했다. 오전에는 글을 써야 하는 습관으로 인해 출사는 늘 오후의 나들이가 되었다. 오후는 시간의 흐름이 빨라지고 그에 따른 태양광선의 변화도 급속하게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역광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역광은 정서적인 표현을 부추긴다. 대다수의 작업이 역광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낱낱이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는 것이 용이할뿐더러 바다의 신비를 표현하는데 한층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역광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신비의 바다에 대한 헌사이다. 그렇다. 바다는 영원한 신비로 남을 수 있다고 느낄 때 비로소 아름다운 등을 보여준다.
|
|
|
|
■ 신항섭
1982년 현대미술 12인의 작품론집 『현대미술의 위상』 저술과 함께 평론 활동을 시작,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을 역임했다. 또한 제2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상(평론 부문)을 수상했으며, 현재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원으로 있다. 사진전으로는 2010년 6월 “중국풍경전” -잔영- (상해 木林畵廊 초대)에 이은 두 번 째 개인전. 저서로는 『현대미술의 위상』, 『구상미술에의 초대』, 『나를 울린 시』(한국 명시 감상문), 『나비꿈』(우화집) 등이 있다.
|
|
|
|
vol.20110413-신항섭 사진 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