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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DAA WON
Resonance by Brush Touches now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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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4. 1(금) ▶ 2011. 4. 30(토) 부산광역시 수정구 광안 2동 202-2 | T.051-756-3439
Resonance by Brush Touches
A silent event which occurred now and here--hic et nunc--causes a silent echo like a wavelength of a wave. A dot placed and a line drawn on the canvas brings about silent wavelengths. Her paintings are statement of resonances by touches of brushes that appear when dots and lines are done on the space of a canvas. art critic Yoon Jin Sup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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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here in Blue
붓질의 공명 now here
박다원의 그림은 붓질이 드러내는 공명에 대한 진술이다. 붓질이 어떻게 공명하는가. 청각적 효과를 나타내는 이 단어를 과연 조형에 대입할 수 있을까? 나는 붓이 평면 위를 지나 드디어 평면과 결별을 할 때, 비록 붓은 자취를 남기지 않으나 그 여운이 여전히 평면 위에 남아 있음을 본다. 그것은 마치 동종의 여운이 사라진 것 같으나 어딘가에 남아 떠도는 것과 같다. ‘지금 그리고 여기(hic et nunc)’에서 벌어진 조용한 한 ‘사건(event)’이 물결의 파장처럼 조용한 울림을 불러일으킨다. 캔버스에 찍은 점 하나, 그은 선 하나가 하나의 조용한 파장을 일으킨다. 박다원의 그림은 이처럼 적요한 캔버스 공간에 점과 선이 가해질 때 나타나는 붓질의 공명에 대한 진술인 것이다. 평론 발췌 - 윤진섭
now here - becoming
미술평단 1백호 발간기념... ' 30인의작가 30개의 시선 ' 평론 발췌 한국큐레이터협회장 박래경 타협의 여지 없는 결정적 순간에 거침없이 한 획을 긋는 박 다 원의 최근 작업,<now here> 연작들은 그가 그간 줄곧 추구해 오던 작업 내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련의 현장에 해당 된다 . 빠르거나 느리게 혹은 강하거나 부드러운 차이는 있지만 근본에 있어 매우 함축적인 힘의 표출이 과감한 붓질에 의해서 감행되고 있는 현장이라는 점에서는 다를바 없다 그의 추상화면 속에는 사실 우주와 나, 자연과 나,, 인간과 나에 대한 사유와 명상이 담겨있다. . 그의 그림에는 일단 바탕 화면에 먼저 점과 선이 자유롭게 위치해 있다. 그런데 넓은 여백으로 차지하는 바탕 화면 뿐만 아니라 점과 점 혹은 점과 선 사이에 일정한 간격으로서의 공간이 있다. 말하자면 숨 쉬는 틈새, 혹은 빛의 파장이나 리듬의 공명과 같은 보이지 않는 전개 공간, 그런 식의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 크게 차지하고 있다.
이와같이 전체적으로 보아서 박 다 원의 작품에는 사전에 계획된, 의도적인 조형적 구성에 의해서 진행되는 조형작업이라기 보다는, 우연의 필치가 필연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정신성에 의한 독자적인 조형성을 지향하는 특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령 일획으로 휘어 갈기는 뜨거운 서체추상과 같은 몸짓의 표출이 자유로움을 화면에 풀어놓는 부분이 있다면, 여기에 겹쳐서 엄격한 자제를 보여주는 차거운 억제력이 이에 더하여 작용되는 경우와 같이, 상반되는 성질의 조형요소의 속성들이 한자리에 들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우연과 필연의 공존, 그리고 자유로움과 자제력의 동시 작용은 궁극에 가서 화면에 생동감을 주며 나아가서 전 화면에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힘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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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화면 경영과 관리가 얼마나 치열한가 하는 사실을 알게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자면 자유로운 표현 과 함께 그것의 억제에서 역설적으로 생동감을 키우는 방법, 그래서 오히려 자유로운 숨, 파동, 리듬을 화면 전반에 에너지로 전파시켜 화면에 긴장감을 극도로 고조 시키는 효과를 거두게 .되는 그의 화면은 사실 부드럽거나 강렬하며, 자유롭거나 스스로 절제하며, 느리거나 빠르게, 비어있으면서 가득차게 하는 상반적인 조형 작용에 의해 조형적으로 밑받침 되고 있다는 점이 특이 하다면 특이하다. 그점은 바로 그의 그림이 예술이 되게하는 요체를 이루는 바탕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하는것은 그 속에, 인간과 인간의 삶, 자연과 우주의 현상들을 생각하고 고뇌하고 명상하고 수련하여 행위의 주체자이며 동시에 행위의 공간이 되는 자기 자신의 마음이라는 용광로가 중심이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 마음의 주체자 스스로가 작업 전에 그의 마음의 평정을 꾀하는 구도자적 자기 단련이 수반됨으로써 비로소 작화단계에 들어 가게 되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그러한 초일상의 삶의 양식과 예술 작업을 병행해 온 과정에서 작품은 완성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를 근래 2년간 계속해 온 <now here >연작에서 집중적으로 찾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정신적 싸움에서 살아난 작품들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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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에 깃드는 담백하고 정갈한 성향은 먼저 그 뿌리를 생태적인 측면에서 맨 먼저 더듬어 볼 일이다. 말하자면 그의 작품에 영성이 어른거리는 것의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할 때에 맨 먼저 떠 오르는 것이 그의 기질이다. 기질적으로 보면 박 다 원은 직관이 매우 강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리고 거기에 더 하여 많은 예술가들의 타입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 처럼, 자존감이 매우 강한 경우에 속한다 할 수 있다. 결국에 가서 근래 10년간의 모색과정을 거쳐 그가 드디어 도달 하게된 단계는 자신의 독자적인 방법과 형식에 의한 자기양식의 확립이며 그것은 다름 아닌 서체적 점, 선과 공간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의미 부여인 셈이다. 그는 하나의 필연적인 길을 찾아낸 것이다. 이 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에 스스로에게 거는 정신적인 쟁투는 다름아닌 자존을 위한 정신적인 힘의 배양에 해당하는 것이 되고 그것은 궁극에 가서 간결하고 분명한 작화 진행의 내면적인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다른 사람과는 다른 그의 작화태도에도 관련이 있다. 그것은 조형적 구성에서 완성에 이르기 까지 모두 눈 앞의 화면 위에서 이루어지는 작업과정이 아니고 작가의 마음 속에서 이미 시작된 작업이 켄버스를 앞두고 이를 주시 하면서 일순의 망설임 없이 행위의 붓질로 바뀌는 것으로 가시화되는 것을 뜻한다. 1990 년대 말경부터 일기 시작한, 새로 닥칠 세기를 향한 증후들이 인간의 마음을 낙관적으로도비관적으로도기울게하였다. 이와같이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급속도의 변화를 겪고 있는 이 시대를 살아 가야하는 인간 개개인은 예기치 않는 사건, 사고로 말미암아 극복하기 힘든 충격과 함께 인간 내면세계에 대한 갈구로 마음 잡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되기에 이르렀다. 이와같은 오늘의 상항은 예술가들에게 그들의 예술적 행위와 예술기능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대적 요청으로 다가 오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예술가의 역할로 집중적으로 들어난 것 중에 하나가 다름 아닌 위로와 치유, 즉 인간 서로의 위로와 치유라는 하나의 예술 기능이 더 보태지는 일이다. 예술가가 그들의 표현행위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고 공유하는 문제의 중요성을 알리고 서로 위로하고 치유하는 행동력의 필요성을 확신케 하는 역할을 할 수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예술가권 내에서도 움터 오는 것이 오늘의 실정 이다.. 박 다 원의 작업을 그런 시대요청의 측면에서 본다면, 그의 그림이 변화하면서 일으키는 힘이 부드럽게 세상과 공명하며 포용하는 하나의 길잡이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시대는 이미 그의 작품에서 직감으로 알아 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가의 작화 방식을 다시 상기 해 보면, 그것은 마음속에서 퍼 내오는 독특한 창작 방식에 의해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바 처럼 그는 자신의 작업이 사람을 걸러내는 일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깨끗한 영혼의 소지자, 그것을 그가 희구하는 일 외에 무엇이 그에게 더 소중한 일이 있겠는가. 한 때 초현실주의를 주창한 앙드레 브르통이 말 한것처럼, 그 이념을 위해 정말 원했던것은 동양의 추상이라 하였는데 오늘의 한국 화가 박 다 원의 초사실, 초현실 작업에서 이 점을 다시 재확인 할 수 있다면 이 계열의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도를 재정리해 보아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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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10401-박다원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