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진 展

 

Restoring vitality

 

 

연약한 정원_186x72.5cm_acrylic on canvas_2009

 

 

노암 갤러리

 

2010. 11. 17(수) ▶ 2010. 11. 23(화)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33 | 02-720-2235

 

www.noamgallery.com

 

 

자연과 만난 정원_260.6x162.2cm_acrylic on canvas_2010

 

 

박유진, 사랑에 빠지다.

이번 전시에서뿐 만 아니라 박유진의 그림에는 항상 그녀 특유의 ‘사랑’에 대한 서사가 존재한다. 그의 그림에는 애매하거나 모호한 이미지적 특질보다는, 개인적인 소회와 기억으로 가득 찬 공감각적인 시간성이 두드러진다. 그의 작업을 통해서 구축되는 사랑에 대한 독특한 관점은 한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타자화 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회상의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망각하기 쉬운 개인의 관점과 역사를 ‘사랑’이라는 끈끈한 소재를 빌려 공간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 가깝다.

 ‘사람의 얼굴에는 눈도 두 개, 귀도 두 개, 콧구멍도 두 개’ 듯, ‘둘’이 ‘하나’를 이룬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와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지칭하는 ‘반쪽’이라는 표현에서 박유진의 그림은 시작된다. 사랑을 매개로 우리의 시선을 끌어다 놓고는 그 이면이 실은 우리 삶의 또 다른 축, 우리의 성장배경이나 환경, 사실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와 밀접한 연결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간 사진 콜라쥬 작업을 주로 선보였던 작가는 돌연 2007년, 송은갤러리에서 열렸던 3번째 개인전에서 다시 회화를 시작한다. 불완전한 형태와 신체의 모습, 가령 커다란 구멍이 난 가슴이라든가 풍선모양의 눈깔 등 당시 물리적으로 멀리 있는 연인을 향한 그리움을 봇물 터지듯 쏟아냈다. 이들이 행한 예술적 기능은 이번 2010년 개인전을 통해 화초와 들뜬 색깔들로 릴레이 된다.

 

 

두터움을 충전_194x145.5cm_acrylic on canvas_2009-2010

 

 

각각의 개체성으로 인해 무언가 작가의 숨겨진 의도가 뚜렷이 식별되었던 2007년 불완전한 신체그림과는 달리 거대한 엉겅퀴 꽃이나 늘어진 덩쿨, 반으로 갈라지고 닫히는 화원의 풍경은 보다 정리되고 모호해졌다. 그래서 작가의 설명이 없다면 이것이 과연 싱가폴 보테니컬 가든의 화려한 온대식물인지, 3차원 꼴라쥬를 통해 조합된 입체적 공간인지 알아치리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분홍과 연두 같은 인공적인 색깔과 납작하던 평면에서 입체로 탈바꿈하며 만들어내는 오묘하고도 들뜬 기운들은 어느 순간 예상 밖의 이미지로 변신한다. 맹목적으로 달리기만 했던 연인에 대한 사랑이 보다 성숙해 지면서 서로에 대한 거리를 수용할 정도로 여유를 갖게 된 것이다. 그림에 들어간 볼륨(부피감)은 그러한 효과를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구실을 한다. 주로 행복한 추억을 담은 ‘사진’은 모든 기억을 ‘납작’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연상되는 다양한 기억들과 모든 감각들은 작은 화면 안에 밀폐된다. 따라서 작가가 살려낸 풍경의 볼륨감은 미래의 불안에 대한, 사랑의 불안과 행복에 대한 충전재로써 효과적인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화면을 양분하는 대칭성은 ‘반쪽’들이 하나를 이룸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개체임을 인정하는 그녀의 태도를 보다 분명히 한다.

 

 

어떤 정원의 휴식_90.9x72.7cm_acrylic on canvas_2010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장미빛 꿈과 자칫 쉽게 깨질 수 있다는 불안은 끊임없는 화면의 충돌을 야기한다. 그녀가 택하고 다듬은 공간이나 실제 비례를 넘나들며 배치된 시금치 잎과 엉겅퀴들, 정성스레 그려넣은 인공적인 색감들은 사랑에 대한 그녀의 흔적이자 시뮬레이션으로서 그 이물스러움을 드러낸다. 식물의 뻗어나감을 모두 거세해버린 인공적인 나무들과 기호화된 이미지들은 식물의 육질, 야생성을 순간적으로 제재한다. 더구나 명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화면 안에 존재하는 거대한 벽은 야생의 자유분방함을 갈구하면서도 그 폭력성과 불편함을 두려워하는 작가의 관점이 녹아있다. 다툼과 질투, 추억과 미래를 오가며 느꼈던 사랑의 파괴적이면서도 건설적인 이중성, 그들이 우리에게 제시했던 상처와 치유의 관계방식을 대칭적 구성과 비례의 역전을 통해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작가는 자신의 추억과 사랑의 열매를 열망하고 사랑하면서도 누구나 그렇듯이 자신의 행복에 불안해하고 아파한다. 따라서 박유진은 여전히 불안해 하면서도 자신의 꿈과 기억들을 장시간 공을 들여 살려낸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들은 기꺼이 살아나려 한다.

납작함과 두툼함이 공존하는 박유진의 화면. 이 둘 사이의 거리감만큼 오가는 다양한 기제들의 충돌은 과연 어떤 결말을 지을 것인가. 어쨌든 지금 그들은 서로 관망하듯, 보이지 않는 머리싸움을 하고 있다.

성윤진. 롯데갤러리 큐레이터

 

 

낮과밤의 에너지_130x60cm_acrylic on canvas_2010

 

 

 

 

 

vol.20101117-박유진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