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展

 

"찬란한 굴레"

 

 

찬란한 굴레 1_145.5x112cm_Oil on canvas_2010

 

 

갤러리 이즈 제1전시장

 

2010. 10. 27(수) ▶ 2010. 11. 2(화)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00-5 (인사동길 9-5) | 02-736-6669

 

www.galleryis.com

 

 

찬란한 굴레 2_50x100cm_Oil on canvas_2010

 

 

찬란한 굴레

인간이 앞으로 겪게 될 불행을 암시하는 뱀 한 마리가 에덴동산에 앉아 있는 아담과 이브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고 있다. 뱀은 이브를 달콤한 말로 유혹하여 금단의 열매를 따먹게 한다. 이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조물주의 노여움을 산 이브는 출산의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운명을 갖게 된다. 이렇게 이브와 뱀의 불편한 관계는 선사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브는 자신의 운명대로 자식을 낳고 어머니라는 이름을 얻게 되며 그 운명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롭지 못한 존재가 되었다. 우리들의 이브 여성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 운명의 수레바퀴를 쉬지 않고 돌리고 있다. 뱀 역시 이브를 유혹한 벌로 평생 다리 없이 기어 다니게 되었고 햇볕이 들지 않는 땅속에 머물게 되었다.

 

 

찬란한 굴레 3_75x70cm_Oil on canvas_2010

 

 

작가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뱀을 그리고 있다. 그림의 테마로서는 다소 무거울 수 있으며 우리에게는 그리 친숙한 동물이 아닌 뱀을 선택한 것이다. 그동안 뱀은 그림의 주제로 선호되지 못한 듯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원죄>로 거슬러 올라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NVDAVERITAS>, 앙리 루소의 <뱀을 다루는 여인>과 같은 작품에서 뱀이 등장하는 것처럼 적지 않은 작가들이 이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보는 이들의 눈이 편하게 감응할 수 없는 소재인 뱀은 이번 작가의 작품을 통해 클림트와 루소의 뱀과는 다르게 화려하고 찬란하게 새로이 태어났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 중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인물의 얼굴이 들어간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작가의 초기작품으로 작업초반에는 자신이 양육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즐겨 그렸다고 한다. 아이의 얼굴은 말 그대로 어머니로서 다룬 소재로 아이는 작가의 분신이기에 작가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뱀의 몸에 감긴 프로파일로 표현된 얼굴은 뱀 비늘의 신비로운 컬러 속에서 도드라져 보이며 특히, 얼굴의 무표정함이 강조된다. 이 얼굴은 (작가의 자의적인 해석에 의한) 뱀이 상징하는바 즉 삶 그 자체, 삶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담담한 수긍을 의미하는 듯하며 고통과 나이 듦, 부조리한 현실, 거부할 수 없는 죽음 등 수많은 삶의 굴레에 둘러싸인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이 작품은 미묘한 심리적 의미의 중첩을 통해 어머니로서 자신의 모습과 여성으로서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여성이기에 여성은 그의 주요한 관심사이지만 작가의 작품은 젠더 의식이나 성정체성에 의한 피해자로서의 시각을 다룬 것도 아니며 어머니로서 모성을 공공연히 형상화 하지도 않는다. 작가는 ‘여성주의 작가’는 아니지만 대표적인 여성작가 루이즈 부르주아나 케터 콜비츠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작가의 작품은 우리에게 여성이기에 겪을 수 있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강력한 의미를 던져준다. 작가는 여성작가 특유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여성의 작품’을 하고 있지도 않고 ‘여성주의’ 작품을 제작하고 있지도 않다. 그렇지만 그림으로 표현되는 테마나 드러나는 감정은 여성의 관점을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다. 또한 작가는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본 삶의 모습뿐만 아니라 그로데스크함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라는 이중성과 같이 우리의 삶 도처에 널려있는 비인간성, 그리고 그러한 ‘비인간성’에서 느껴지는 ‘인간성’과 같은 삶의 이중성을 혐오스럽지만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뱀의 모습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작가는 뱀이라는 파충류가 전해주는 느낌은 우선 징그럽지만 때로는 아름답게도 느껴지는 것이 이중적인 우리 인간의 삶과 닮았다고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나는 내 그림이 징그럽게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밝힌 바 있는 작가는 우리의 삶이 때로는 견디기 힘든 끔직한 것일 수도 있지만 아름다운 장미 빛일 수 있다는 사실을 유혹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치유의 의미이기도 한 상반된 이미지의 뱀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찬란한 굴레 4_130x162cm_Oil on canvas_2010

 

 

상징성을 추구한 작업 초반의 의도와는 달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가는 형식에 매료되어 시각적으로 유혹적이고 치명적인 뱀의 매력에 집중하였다. 결국 상징이 가득한 알레고리적 회화를 위한 재현적인 얼굴이나 형상은 사라지고 머리와 꼬리를 제거하여 처음과 끝이 없는 뱀의 몸통과 비늘만을 그리게 된 것이다. 단순한 시각적 일루전이 아닌 실재 뱀의 비늘을 표현한 패턴 하나하나는 마치 현란한 보석처럼 환상적으로 집합을 이루고 있으며 얇게 비치듯이 칠해진 강렬한 컬러의 풍부한 현란함은 보는 이에게 시각적인 쾌감을 제공한다. 감성적이고 직감적인 컬러의 패턴이 화면 전체를 덮고 있고 물결치는 듯 한 윤곽이 보여주는 시각적인 역동성의 힘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작가가 선택한 주제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 즉 ‘삶의 굴레’라는 의미이외에 여러 문화 속에서 ‘뱀’이라는 동물이 상징하는 보편적 의미들 중에 하나인 ‘에너지’가 작품 속에 충만하게 요동치고 있다. 즉 작가는 작품을 지나치게 공들여 완성하지 않고도 자신의 감정적 흥분을 보여주고 있으며 작가 개인의 실존과 삶의 의미를 대변한 동물의 에너지와 역동성으로 화면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작품에서는 교묘한 구성이나 정교하게 전달하는 묘사적 언어 등이 눈에 띠지는 않는다. 또한 미묘한 심리적 의미와 표현하는 형식 사이에 다소 간극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림의 결정적인 영향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부분과 전체도 없으며 주변과 중심의 구별도 없는 화면 속에서 중심을 찾을 수 없는 이러한 형식은 일견 옵아트 작품과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옵아트 작품은 물리적인 움직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인 움직임이 느껴지지만 작가의 작품은 물리적 움직임을 통해서 보는 이의 요란한 심리적 움직임을 유발시키고 시각을 도발하고 있다.

사이즈가 큰 작품은 흡사 순색의 반짝이는 표면을 가진 용의 몸통을 연상시키는 규모로 크다. 기계적인 힘을 전혀 빌지 않고 적지 않은 수공의 노력을 기울여 직접 밑그림을 그리고 비늘 하나하나를 붓으로 그려가며 큰 작품을 완성하는데 약 두 달이 소요되기도 한다고 한다. 실제와 같이 똑같은 크기로 그린다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작은 꽃을 크게 그렸다는 조지아 오키프의 말처럼 작가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뱀을 사람들이 놀라서 그것을 쳐다볼 수 있도록 실제 크기를 능가하는 뱀을 크게 그렸을까? 불이 붙을 것 같은 색감의 작품은 매우 감각적이며 크게 확대된 그림은 마치 그림의 테마위에 확대경을 놓고 그리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크기의 문제는 작품의 해석이나 감상에서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기 때문에 몸통만을 확대하여 그린 그림은 우리에게 낯설어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아마도 크기의 확대를 통해 일종의 낯설게 하기를 하여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뱀의 이미지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뱀 비늘이 실제와 같은 크기였다면 전달하지 못했을 풍부한 현란함을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였을 뿐만 아니라, 보석과 같이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우리의 인생을 보여주고자 하였을지도 모른다.

 

 

찬란한 굴레 5_53x72.7cm_Oil on canvas_2010

 

 

대학졸업 후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작가에게 부여된 새로운 이름, 어머니와 아내, 며느리, 학부모라는 이름을 갖고 살아가면서 느꼈던 삶에 대한 반응을 작가만의 독특한 시각적인 공식으로 풀어낸 작품들이 지금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다. 열심히 작업하는 것을 대신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작가는 작업에만 열중할 수 없었던 (작가가 말하는) 삶의 굴레, 즉 출산과 육아, 가사노동 등과 같은 속박들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아널드 쇤 베르크의 말대로 예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만 하기 때문에 무언가 창조하고자하는 의지를 결코 숨길 수 없어 쉽지 않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번 첫 개인전을 준비하였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자신의 내적인 느낌을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외적인 언어로 적절히 변환해 낼 수 있을까라는 혼란스러운 두려움과 불확실성을 깊이 경험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들은 앞으로 작가로서의 삶과 함께 해야 할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감정일 것이고, 이것 역시 작가로서 감내해야 하는 하나의 또 다른 미덕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였을 것이다. 앞으로 작가는 눈 커플이 없어서 밤에도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뱀의 신성한 지혜로 항상 새롭게 자신을 비추어보며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작가로 당당히 설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박 주 영(미술사)

 

 

 

 

 

vol.20101027-김은영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