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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展
고엽_145.5x97cm_oil on canvas _2010
노암 갤러리
2010. 10. 13(수) ▶ 2010. 10. 21(목)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33 | 02-720-2235
충무공의 후예_91x72.7cm_oil on canvas_1998
의사 리얼리즘 (Para Realism) 김영호 (중앙대교수, 미술평론가)
미국의 하이퍼리얼리즘이 국내화단에 전파된 1970년대 중반 이래 대학과 현장에서는 극사실적 경향의 회화가 급격히 부상하기 시작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모더니즘의 형식실험과 사변적 개념으로 일관되던 당대 미술의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작용의 탓도 있겠지만 격변하는 도시현실과 삶의 주변에 대한 작가들의 관심이 만들어낸 붐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억눌려 있던 모방충동이 새롭게 고개를 들고 손의 노동과 형상성의 회복이 화가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는 자각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극사실적 경향은 1980을 전후해 등장한 신문사 주최의 공모전들을 통해 확산 되었고 새로운 형상성을 내세우는 다양한 집단이 등장했다. 21세기에 들어와 극사실 회화는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 경향이 되었고 미국의 하이퍼리얼리즘과 차별성을 강조하는 한편 동시대적 미술사조로 정착하기 위한 모색이 작가와 비평가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김동찬은 1979학번으로 대학에서 극사실적 경향의 세례를 받은 첫 세대에 속한다. 그는 이 시절 배동환, 손수광, 박동인 등의 선배들로부터 신형상 미술의 영향을 받으면서 주변의 기물과 잡지 그리고 화구와 인물에 이르는 다양한 일상적 소재들을 치밀하게 묘사하는데 주력했다. 대학 졸업 후 교직을 선택한 그는 외부 활동에 좀처럼 나서지 않았으며 강의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교내에 마련한 미술실에서 보냈다. 이러한 내향적 성격은 작품의 제작에도 반영되어 그림 한 점을 완성하는데 1-2년씩 소요하는 편집증적 태도를 보였다. 그에게는 동시대 작가들에게 의무처럼 부과되었던 교조적 전위의식이나 경력을 위한 공모전 출품 그리고 그룹을 통한 화단활동에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단편들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리고 치밀한 묘사법으로 화폭에 옮겨내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은 미술환경과 이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극사실적 경향이 확산되고 있던 시절 김동찬은 시류에 따라 일상적 사물을 관찰하고 그것을 사진처럼 묘사해 내기 시작하면서 동시대의 흐름에 합류했다. 그러나 삶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는 일상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하이퍼리얼리즘의 작가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의 작업 기저에는 비현실적 기운이 머물고 있었고 이합집산의 이미지로 구성된 현대적 삶을 드러내는 복합적인 화면에 천착되어 있었다.
고뇌_91x72.7cm_oil on canvas_2000
김동찬의 작품에는 하이퍼리얼리즘을 넘어 팝아트와 초현실주의 그리고 민중미술에 이르는 다양한 요소들이 뒤섞여 있다. 화폭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오토바이, 자동차, 기차, 비행기 따위의 탈것과 군인, 경찰, 정치인, 모델, 수도승, 예수, 그리고 노동자, 농민의 초상에 이르는 인물상들이 낯설게 자리 잡고 있다. 한편 텔레비전, 잡지, 신문, 광고물에서 채취한 각종 이미지들이 만물상을 이루고 있어 그야말로 퓨전의 도가니다. 전쟁과 폭력에서 섹스와 돈 그리고 이산과 분단에 이르는 동시대 국내외의 사회적 이슈들과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조각상과 건축물들은 혼성적 문명사를 엿보게 한다. 뿐만 아니라 화면에 등장하는 사자와 호랑이 독수리 같은 맹금류와 야생마와 상어 따위의 동물들은 그의 작품을 색다른 분위기로 이동시킨다. 이러한 만물상들은 특별한 서술의 구조 없이 화면에 과잉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포토몽타주처럼 보는 이의 시선을 제삼의 영역으로 안내하고 있다. 김동찬의 화면에는 일관된 서사적 줄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동서고금의 경계를 넘나드는 수많은 이미지들의 배치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서술적 언어구조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범람하는 도시간판에 노출되어 마비되어버린 시각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텔레비전의 무수한 영상 앞에서 희미해지는 의식처럼, 거리의 군중속에서 부유하는 자아처럼, 그의 화폭에 그려진 이미지들은 상황적 의미의 단편을 드러낸다. 거기에는 세상을 선도하는 이념도 없고 민중을 대변하는 언사도 없으며 역사나 정치를 위한 전략도 없다. 그의 작품이 표상하는 세계는 도시가 쏟아내는 이미지의 과잉으로 야기된 무의 영역이다. 우리가 김동찬의 작품에서 발견해 낼 수 있는 키워드가 리얼리즘의 범주에 속한 것이라면 그것은 의사(擬似)리얼리즘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신화_145.5x112cm_oil on canvas_2010
김동찬의 작품이 발언하는 세계는 역설적 구조를 보여준다. 그것은 모더니즘 미술이 화면에서 삶의 이미지를 제거함으로서 회화의 본질에 다다를 수 있었던 것과 다르지 않은 역설이다. 포스트모던의 영역에서 작가는 화면에 삶의 이미지를 과잉으로 채워 놓거나 충돌시킴으로서 이미지의 개체적 삶을 와해하고 그 이미지들 사이의 상습적 관계를 파괴한다. 궁극적으로 그의 화면에서 발견되는 세계는 해체와 분열로 대변되는 동시대의 단면이다. 우리는 이미지의 범람 시대를 살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의 의식은 이미지의 개체적 의미를 넘어선 관계의 망을 보게 된다. 김동찬의 그림은 이와 같이 이미지들 사이의 관계를 해체하고 분열시킴으로서 개별적 이미지가 지닌 고유의 메시지와 기능과 의미를 상실시키고 제삼의 영역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우리는 현대에서 아직도 리얼리즘의 존재를 체감한다. 그러나 그 실재란 다름 아닌 가상과 허구위에 축조된 것이다. 무수한 정보를 담아 전달하는 컴퓨터 모니터와 텔레비전과 신문 그리고 광고의 이미지들은 시물라크르라 불리는 가상과 허구위에 세워진 실재들이다. 그러므로 실재는 허구이며 허구가 곧 실재가 되는 현실을 살고 있다. 김동찬의 그림은 대중적 이미지에 대한 순박한 관찰과 직관에 의한 선택 그리고 치열한 묘사와 편집광적인 집중력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 그림은 이미지들의 조합일 뿐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의 작품에서 만일 우리가 어떤 진실을 발견하고 그것에 이름을 불러준다면 그것이 다름 아닌 의사 리얼리즘인 것이다. 의사 리얼리즘은 리얼리즘의 부재를 강조하는 리얼리즘이다. 그것은 역설적인 구조를 지닌 리얼리즘이며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단면을 명확히 대변하고 있다.
격동의 20년_227.3x145.5cm_oil on canvas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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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01013-김동찬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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