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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리 展
갤러리아트가
2010. 8. 18(수) ▶ 2010. 8. 28(토)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동 40-1 | Tel. 02-722-6404
현대사회 우열과 성패 'Lookism' 어렸을 때 집안 선반위에 앉아서 울고 있는 시커먼 삼형제의 못난 인형, 다들 한번쯤 기억 할 것이다. 이제는 추억의 산물이 되어버린 못난이 인형이지만 오늘날 복고, 향수 트렌드 분위기 속에 호기심과 추억삼아 못난이 인형을 소장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러한 분위기속에 김아리 작가는 자신의 내밀(內密)한 언어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현대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점인 외모지상주의, 외모차별주의를 인형에 빗대어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는 흔히 접할 수 있는 친숙한 소재를 이용하여 표현하였으나, 그녀의 작품 속에서는 현대사회의 문제점인 루키즘(Lookism)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며 지속적인 탐구의 흔적이 느껴진다. 그 중에서도 우리사회의 외모지상주의 의식에 천착함으로써 자신의 작업세계를 꾸준히 구축해왔다.
배경화면의 반복적인 문양으로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김아리 작가가 만들어놓은 인위적인 세계의 상상을 통해 산출되어진 표정들이다. 그녀가 이처럼 추상[抽象]적인 표현을 반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얼굴표현에 그려진 단순표현 보다는 그 이미지의 속성이나 현대사회의 인간사와 관련된 사상, 외모지상주의적인 의복된 삶에서 생겨나는 사회의 문제점이 깃들어 있다. 이를 통하여 다양한 우리의 삶의 모습들을 되살리고자 하는 표상(表象)인 것이다. 또한 이러한 반복적 문양들에 부여된 상징성과 더불어 작가는 그 형상들의 시각적 이미지에도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 화면에 중첩된 문양의 이미지들을 반복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문양이 갖는 색감과 조형성을 극대화 시키며 등장하는 주제물의 장식적 성격과 결합시킴으로써 작품의 시각적 분위기를 한껏 돋우기 위한 시도이다. 평면상에서 공간적, 시각적 확장을 시사함으로써 다소 입체적인 효과를 의도하고 있다. 그럼으로 작품 전반에 시각적 인상을 더욱 강렬하게 부추기며 전체의 흐름에 지대한 작용을 하여 공간의 흐름을 강화시킨다. 현대사회의 열풍인 루키즘(lookism)에 빠져 있는 오늘날, 그녀가 포착하는 세계는 반복과 겹침, 옵아트의 표현으로 독창적인 색과 조형을 구현하는 마치 피어오르는 꽃의 세계로 아득한 그리움마저 느껴진다.
오늘날 정치적, 사회문제를 회화로 표현되어지는 방식은 보편화 되어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문제는 자칫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어렵고도 실험적인 요소로 자리 잡고 있는 소재(材素)이다. 그러나 작가 김아리는 외모지상주의(루키즘,lookism)라는, 무겁지는 않지만 다소 어려울 수 있는 문제들을 평면회화에 표현하여 사회문제를 재미있고 유쾌하게 해석함으로써 대중들로 하여금 쉽게 다가가고 소통 할 수 있기에 다음 작품들의 변화 또한 몹시 기대된다.
전은진
- 작가노트 -
루키즘(lookism). 우리말로는 외모지상주의, 외모차별주의로 번역된다. 외모(용모)가 개인 간의 우열뿐 아니라 인생의 성패까지 좌우한다고 믿어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 또는 그러한 사회 풍조를 말한다. 곧 외모가 연애, 결혼 등과 같은 사생활은 물론 취업, 승진 등 사회생활 전반까지 좌우하기 때문에 외모를 가꾸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이어트, 성형수술 등 외모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병증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사회에 알게 모르게 뿌리박혀 있는 외모지상주의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보며 외모지상주의(루키즘, lookism)를 반박하기 위해 못난이 인형을 소재로 작업을 하고자 하였다. 처음에 내가 선택한 작업은 ‘마를린못난’, ‘못나리자’등 못난이인형을 아름다운 명화나 배우들의 모습에 패러디하여 단순히 아름다움과 못난이인형의 결합으로 외모지상주의를 풍자, 비판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다양한 시도나 변화를 주기에는 너무 단조롭고 부족하였기에 못난이를 이용한 나만의 다른 표현 방법을 찾고자 하였다.
그래서 나는 못난이 인형이라는 하나의 존재에서 못난이들이 살고 있는 나만의 세계를 작품의 주제로 잡았다. 나의 세상에 존재하는 못난이 인형은 외모지상주의의 무지함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캐릭터이다. 그들의 세계는 평등하고 자유롭다. 그들의 모습은 밝게 웃기도하고 서로 짝을 맞추어 놀기도 한다. 가끔 못난이들은 울기도 하고 화가 나면 화를 내곤 하지만 작품 속의 울거나 화를 내는 그들의 모습은 귀엽고 순수해 보이기만 하다. 이처럼 못난이를 소재로 서로서로 모여 반복하거나 겹치면서 어떠한 문양이나 패턴 같은 느낌으로 화면을 구성해왔다. 못난이 한 명 한 명의 각기 다른 다양한 표정과 사탕, 요요, 안경 쓴 못난이, 사진 찍는 못난이 등 일상생활의 모습과 같이 화면 중간 중간의 재미있는 요소들로 인해 화면을 재미있게 표현하기도 하였다.
현재 시도하고 있는 작업은 못난이들로 구성된 꽉 찬 화면 속에서 그라데이션이나 옵아트의 형식으로 특정한 모양을 짐작하게 한다. 못난이 얼굴로 화면에 시각적 율동과 움직임을 강조하여 착시현상을 일으킬 뿐 아니라 단순하고 반복적인 형태의 화면을 의도적으로 구성하려 한다. 그러한 못난이들로 꽉 찬 화면이 화면전체의 긴장감을 조성하고 같은 계열의 색을 사용함으로써 흩어져 있는 못난이 패턴들이 하나의 통일감으로 보여 질 수 있도록 표현하고 있다. 나아가 형태와 색의 변화로 작품을 좀 더 깊이 있게 보이려고 한다. 또 다른 하나의 작업은 사람실루엣을 이용한 것이다. 실루엣은 겉모습만 짐작하게 할 뿐 내면의 모습은 알지 못한다. 사람도 실루엣과 같다. 이처럼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외모지상주의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아직은 시작단계에 불과하지만 밑그림 같은 느낌에서 벗어나 내 작품 속의 못난이들을 말만 못난이가 아닌 지금보다는 좀 더 섬세하게 표현하여 깊이 있고 미완성 같은 느낌을 조금이나마 보안하고자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모를 가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고 성실히 노력하여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이다. 사람은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고 스스로 이끌어 나아갈 때 빛이 난다. 각기 다른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사회를 이루듯이, 못난이들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면 작고 보잘 것 없는 그들도 커다란 하나의 새로운 형태를 이루는 데에 있어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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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00818-김아리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