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충섭

 

 

Orum-Narim_ 95x60x40inch_wood, rice paper, threads, wall & floor installations_2000-2009

 

 

학고재 갤러리

 

2010. 5. 5(수) ▶ 2010. 5. 30(일)

Opening : 2010. 5. 5(수) PM 5:00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70 | 02-720-1524

www.hakgojae.com

 

 

Snow Orchid_18x90x4inch_acrylic on canvas(encaustic), U.V.L.S gel_2009

 

 

유난히 쌀쌀했던 봄을 뒤로하고 맞는 반가운 5월, 학고재에서는 재미 설치미술가 임충섭(1941~)의 전시를 마련하였습니다. 이번 전시는 2006년 이후 한국에서 4년 만에 갖는 임충섭의 대규모 개인전 입니다. 전시의 주제는 ‘달’입니다. ‘달’은 우리 민족에게 단순한 행성이 아닌 신앙에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옛 선조들은 달이 풍요다산의 소원을 이루며 생명과 관련된 주재신적 존재라 믿고 섬겼습니다. 또한 고대로부터 달은 요일, 시간 및 절기를 주관하였습니다. 그에 반해 서양에서는 달보다는 태양이 그들의 사상과 거주공간에 강한 입지를 갖고 있습니다. 동양인으로서 오랫동안 미국에 거주한 작가는 태양이 갖지 못한 달의 시적 개념을 취하여 작업했다고 합니다. 작가는 “달에서는 해보다 더 음성적(negative space/void space) 시적 구조의 조짐을 엿볼 수 있다. 나에겐, 달빛이 주는 단색적 사고(monochrometic thinking)개념이, 해보다 더 진한 여백의 개념 속으로 이끌어 내어 놓는다.”고 말합니다. <월인천강>은 이런 작가의 생각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비디오와 물 그리고 물고기를 재료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이외에도 임충섭이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평면과 조각, 설치를 넘나들며 치열하게 도전하고 형상화한 작품 40 여 점을 학고재 본관과 신관에서 보여줍니다.

 

 

Ssal-Dichotomi_30x58x3inch_canvas, rabbit skin glue,U.V.L.S gel_2009

 

 

임충섭의 <월인천강>

-Eleanor Heartney-

 

임충섭의 작품 <월인천강>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달이 표면으로 내려오는 모습이다. 작품 속, 두 마리의 작은 물고기들은 천장에서 바닥으로 걸어놓은 그물의 그림자 속 한 뼘 크기의 못에서 쏜살같이 움직인다. 물과 그물을 지나는 모습은 반질반질하게 창백한 빛을 띄며 잘 닦여진 달 위로 나타나는 비디오 이미지로 보인다. 달의 움직임 위로 나타나는 인간 활동은 그 뒷배경의 대응관계에 있는 오디오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의 리드미컬한 소리와 조합하고 있다.

이 조합의 결과는 달빛 속 젠스타일 정원의 고요함을 떠올리게 하며 명상적이고 신비롭다. 이 작품은 또한 과거 한국의 철학자 이황과 기대승의 토론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디자인되기도 하였다. 물에 비치는 달의 모습이 달의 본질에 대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달빛과 연못의 고요로부터 만들어지는 환상을 보여주는 것에서 끝나는 것일까? 작품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것들은 시각의 문제일까 아니면 마음의 문제일까? 또는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을 배경으로 질문을 던져봤을 때 작품 속에 표현된 현실 외에 또 다른 현실이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가득했던 보름달이 가느다란 초승달을 거쳐 마지막에 보이지 않게 되어 새로운 모습의 비어있음의 강력함을 보여주면서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이황과 기대승의 토론으로부터 흘러나왔던 평온함에 대한 희망을 걸어볼 수 있게 된다.

<월인천강>은 또한 시간의 자연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역사가 흘러가는 동안 시간은 달의 회전주기에 따라 ‘월’로 구분하여 시각화 되어왔다. 달의 변화는 조류의 변화와 관계하고 여성의 생식주기와 반대하여 일어나며 계절의 회전을 보여주는 모델이 된다. 이 모든 것들을 통해 달의 변화는 잊혀져있던 농업 세계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시간의 이러한 콘셉트는 포인트 A에서 포인트 B, 한 방향으로만 흐르도록 강요되는 산업 사회에서 나타난 시간의 재구성과 뚜렷하게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Wol In Chun Kang_10x10x10inch_video projector, Sound system, Water tank, 2 fishes_2009-2010

 

 

임충섭의 작품은 대조되는 현실들 사이에서의 매개를 제공한다. 서양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현재 뉴욕의 콘크리트 협곡 사이에 살고 있는 어린 시절 농사를 짓던 소년이었던 한국 출신의 작가로써 그는 농업과 부처로부터 영감을 받은 감성을 서양에서 가장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방법으로 나타낸다. 그의 작품들은 이 두 가지 현실들의 갈라진 틈 사이에 존재한다. 이는 그가 고립되어 남아있는 자연을 도시의 인도와 길들 위로 벌어져있는 틈을 깨기 위해 소외시키는 동시에 소중히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그가 가지고 있는 자연의 기억과 한국 시골 지역의 과거를 표류해온 잡동사니들로 채워져 있는 현대 도시 생활에 겹쳐놓는다. 이러한 접근은 도시와 국가의 풍경을 이루고 있는 폐기물들을 조심스럽게 배열해놓은 “도시 화석들”에서 스스로를 드러내 보인다. 또한 이 접근법을 통하여 임충섭은 한국의 전통적인 농기계들이나 음악 악기들을 참고하여 풍경과 건축의 재구성을 제안한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임충섭은 시적인 감성과 불교적 감성을 결합시킨다. 그의 작품들은 세상을 모래 알갱이들로 보았던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와 모든 사물들은 자신만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글들을 떠올리게 한다. 또 한편으로 그의 작품들은 범세계적 의식을 제외하고 커다란 시간과 공간이 별개로 인식되지 않는 불교의 현재의 영원성을 깨운다.

결국 임충섭의 모든 작품들은 현재에 있어 과거의 존재와 현재의 경험으로부터의 과거의 재창조를 보여준다. 그들은 명료성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불교적 순간 속에서 T.S.엘리엇에 의해 표현되었던 비전을 축복한다.

 

“우리의 모든 탐험의 끝에는 우리가 시작한 장소에 도착해 있을 것이며

처음으로 그 장소를 알게 될 것이다.”

_T.S. 엘리엇 ‘네 개의 사중주(Four Quartets)’

 
 

 

 
 

vol.20100505-임충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