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순

 

' 길(道) '

 

윤관순

 

 

갤러리 룩스

 

2010. 4. 14(수) ▶ 2010. 4. 20(화)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85 인덕빌딩 3F | 02-720-8488

www.gallerylux.net

 

 

 

 

求道

험준하고 장엄한 산세를 굽이굽이 휘감아 도는 길을 따라가며 윤관순 작가가 포착한 풍경과 장소들을 담아 온 <길>은 중국 윈난성 티베트의 해발 3.459 미터에 위치한 샹그릴라의 풍경들이다. 샹그릴라는 제임스 힐튼이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영원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로 묘사된 이후, 지상의 유토피아를 상징하는 대표적 지역이 된 곳이다. 물질적인 풍요와, 문명의 안락함과는 단절된 샹그릴라의 풍광을 촬영한 <길>은 얼핏 보면 천혜의 경관을 아름답게 표현한 전형적인 풍경사진 같지만, 단지 호기심과 설렘으로 기록한 낯선 곳의 신비로운 풍경이 아니라, 누구든 한 번 쯤은 꼭 찾아보고 싶은 理想鄕으로서 광활하게 펼쳐진 평원, 흰 눈을 머리에 얹은 채 자태를 뽐내는 운해 속 산봉우리들, 첩첩이 쌓인 심원의 산하를 기록적인 동시에 冥想的 시선으로 바라본 사진들이다. 추위와 고단한 행보에 인내의 한계를 느끼며 시각적이고 감각적으로 체험한 샹그릴라의 산, 절벽, 나무, 길, 사원들이 작가의 마음을 통해 절제된 모노톤 속에 섬세한 디테일로 사실적으로 투영되기도 하고, 강한 흑백의 콘트라스트를 통해 초월적 풍경으로 사색된 것이기도 하다.

미술사를 통해 자연을 그린 풍경화는 귀족의 고상한 취미와 품격을, 때로는 부르주와가 소유한 자산적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수단으로서, 또는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원초적인 모습에서 인간의 권력을 넘어선 초자연적인 힘과 상상력의 근원을 보여주곤 하였다. 사진에 나타난 풍경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의 장대함과 숭고함을 풍요로운 흑백의 계조와 톤, 미세한 디테일의 형식으로 형상화 되거나, 인간의 생존을 위해 변형된 지형이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중립적으로 묘사되면서 자연 풍경은 지금까지 사진의 중요한 소재가 되고 있다. 자연에 대한 순수한 시각적인 정보를 사진 매체의 형식적인 특징을 중시하여 객관적으로 포착하든, 작가가 체험한 주관적 감정을 중요시하든, 구체적인 삶, 즉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관점으로 유형화된 것이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작가가 바라보는 시각에 의해 선택되고 구성된 풍경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사진의 대상이 인물이든, 자연이든 순간적인 감각이 포착한 우연한 현상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거리를 둔 시선으로 즉각적인 인상을 걸러 온 작가의 관심은 언제나 때 묻지 않은 순수하고 야생적인 모습이었다. 인간의 과욕으로 상실하거나 잊어버린 행과 불행, 선과 악이 분리되기 전 오직 평정과 행복만이 존재하는 失樂園을 상징하는 샹그릴라를 찾아 나선 길에서 작가가 마주 친 사원과 탑, 그리고 바람에 실려 求道의 마음을 전하는 불경이 쓰여 진 타루초들의 말 없는 휘날림, 조용히 참선하는 승려들, 하늘 가까이 우뚝 선 나무가 형상화된 사진들에 펼쳐진 한가롭고 평화로운 고지대의 풍광들은 전혀 화려하거나 멋지지 않지만, 지상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평정 그 자체이다. 손에 잡힐 듯하면서 도 가까이 갈수록 더욱 더 멀게만 느껴지는 샹그릴라는 산허리를 감싼 구름 사이로, 깎아지른 절벽과 계곡 사이로, 백년설 사이로 아득하게 보이는 理想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理想鄕을 찾아 떠난 작가에게 나타난 산의 지형은 파노라마 포맷 속에서 미세한 디테일로 살아 숨 쉬는 단단한 실체처럼 사실적으로 펼쳐져 보이다가, 정사각형의 포맷 속에서는 원근법을 상실한 동양화의 풍경처럼 근경과 원경의 산들이 겹겹이 중첩된 깊이를 통해 초월적인 장소처럼 점점 물질적인 실체와 장소성을 상실하고 추상적인 형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오랜 시간을 쏟으며 구도의 마음으로 힘들고 어렵게 찾아갔지만, 가면 갈수록 더욱 멀게만 느껴지는 설원의 정상, ‘그 곳’은 티베트의 산 어딘가에 위치한 특정한 지형적인 장소가 아닌 언제라도 일상에서 마음을 비우면 찾을 수 있는 개개인의 내면에 있는 유토피아(utopia, 無場所)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우리 모두가 찾고자 염원하는 유토피아를 찾아 떠난 작가의 여정은 결국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求道의 길 자체였으며, 사원의 담을 경계로 현실인 이곳에서 이상적인 그 곳으로 이어지는 곧게 뻗은 길과 또아리 튼 뱀처럼 산을 감아 도는 구불구불한 길들은 작가를 비롯한 우리 모두의 인생 여정이기도 하다. 求道의 염원 속에서 시각화 한 험준한 산세, 탑, 사원, 구도자, 타루초 등에서 일상의 삶에서 비워가며 끊어내는 명상적인 시간들이 이곳의 삶과 저 곳의 바램을 매개시켜주며 샹그릴라를 마음속에서 보고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앵글을 가깝게 당겨도 샹그릴라로 통하는 그 길은 손에 닿을 듯 영원히 멀리만 존재하는 것이다.

작가는 <길>을 통해 인간이 추구하고 열망하는 지상낙원을 설원 속 티베트의 샹그릴라에서도 볼 수 없었고, 찾아가는 과정 자체의 진솔함 그리고 시기와 욕망으로 뒤 엉킨 일상에서 부단히 낮추고 비워내는 과정을 통해 누구든지 찾을 수 있음을 샹그릴라의 무한한 광대함과 심원함을 파노라마와 정방형 프레임으로 잘라내며 몽유도원 같은 상상적인 장면처럼, 또는 섬세한 지형을 진경산수처럼 흑백 톤의 대비와 디테일의 결들로 우리의 시선을 이끌어 준다. 샹그릴라로 불리는 중국의 한 지방에 위치한 설원인 그 곳은 세속적 삶의 욕망에 짓눌린 인간에게는 멀리서만 쳐다볼 수밖에 없는 상징적 失樂園이지만, 마음을 비우고 침묵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가까이에, 아니 이미 우리의 마음 안에 있는 곳이기도 하다.

                                                                                                          김화자(명지대 겸임교수)

 

 

 

 

 
 

■ 윤관순

부산 생 | 부산야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 졸업 | 한양대학교 교육원 사진전문과정, 성균관 대학교 예술학부 사진연구과정 수료

개인전-  2008. 6  개인전 ‘시선너머의 삶’ (갤러리 나우) | 2010. 4  개인전 ‘길(道)’ (갤러리 룩스)

현재-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Photo Lab을 운영중

 
 

vol.20100414-윤관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