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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기展 - communication -
talk_130.3x162.2cm_oil on canvas_2010
갤러리 우덕
2010. 4. 2(금) ▶ 2010. 4. 16(금) Opening : 2010.4.2(금) PM 5:00 서울 서초구 잠원동 28-10 (주)한국야쿠르트빌딩 2층 | T. 02-3449-6071
talk_130.3x162.2cm_oil on canvas_2010
상실, 부재의 메시지 - 정종기의 <Talk> -
김 복 영 (미술평론가•전 홍익대 교수) 정종기의 작품들은 얌전히 빗었거나 아래를 묶었거나 늘어뜨린 머리채에다 어깨에 가방을 걸친 앳띤 소녀들의 뒷모습을 담고 있었다. 사진을 옮겨 그린 솜씨가 범상치 않다. 그림 속의 소녀들이 바라보는 전방에는 사라져간 희미한 꽃잎들이 점점이 있거나, 형해로 변한 희뿌연 군중들, 끊겨진 한강철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의 공간이 휑하니 펼쳐진다. 작중 인물들은 과거에는 존재했지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이를테면 머나먼 기억의 나라, 부재의 나라, 무(無)의 세상을 무심히 바라본다. 그들은 모두 관객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 얼굴이라 해야 가냘픈 뺨과 가녀린 귀가 전부다. 소녀들은 짝을 가려 나란히 서있거나 마주 서있거나 꽃을 들었거나 대지에 앉아있다.
화자(畵者)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치밀하고 정교하게 그리면서 한결 같이 뒤만 그렸다. 앞을 그리지 않은 건 의도가 있어 보인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보는 사람의 감동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무언가 속내를 말하기 위해서 그렸음이 틀림없다. 그 ‘무언가’를 말하자. 그림 속의 이미지를 읽고 말하기 위해서는 서구의 의미분석가들(semantic analysts)이 말하는 ‘화자의도’(picturer's intention)란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해석자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화자의도를 염두에 두고, 그가 무슨 마음에서 저렇게 그렸을까를 생각하면서 이미지를 감상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걸 ‘이미지를 읽는다’고 한다. 가까운 친구나 연인이 갑자기 얼굴을 찡그렸다고 하자. 그들이 항상 그랬던 게 아니라 돌연 찡그렸다면, 그들이 찡그린 속내가 뭔지를 꼭집어 말할 수 있을까? 분명히 그렇지 않다. 그렇지만 늘 같이 지내온 터여서 그가 찡그린 뜻이 뭔지는 대강 알 수 있다. 그림과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정종기의 소녀들을 보면, 어떤 의도에서 그가 소녀들의 앞 모습이 아니고 돌아선 모습을 그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우선 그가 그린 뒤돌아선 소녀들은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들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또한 동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체험한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talk_150x150cm_oil on canvas_2009
그가 그리는 이미지의 주인공은 대개가 어린 소녀들이고 때론 소년들이지만, 왜 어린 주인공을 등장시켰는지는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 자연의 품에서 뛰놀고 꿈꾸며 한참 자라야 할 때, 사회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결손가정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온갖 사교육장으로 내몰려 꿈을 상실한, 우리 시대의 희생자들이라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상실’(loss)은 언제나 가장 아픈 대목이다. ‘상실의 시대’(the age of loss)란 비극의 극한을 두고 하는 말이다. 뭔가 가지고 있었던 걸 빼앗겼다는 뜻이다. ‘빼앗다’는 말의 영어 ‘deprivate’의 어원은 중세 라틴어 ‘데프리바레’(deprivare)다. 이 말은 ‘분리’를 뜻하는 접두어 ‘de’에다 ‘탈취’를 뜻하는 ‘privare’를 합친 거다. 애초 가지고 있던 걸 탈취당함으로써 처음의 상태에서 멀어졌다는 거다. 우리의 소녀들이 무엇을 빼앗겼고 무엇에서 멀어졌는지를 생각하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정종기의 작중 인물에서는, 이른 바 실존의 상실을 가장 먼저 곱을 수 있다. ‘실존의 상실’하면, 독자들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소설 「구토」에 나오는 주인공 ‘로깡땡’을 떠올릴 거다. 사람의 유형을 가리켜 ‘로깡땡 형’(型)이라 하면, 하잘 것 없는 곤충인 파리가 날아가 다 하필이면 목구멍으로 넘어가 구토를 느끼는 과민형의 현대인을 지칭한다. 고대의 ‘외디푸스 형’이나 근세 초의 ‘햄릿 형’과는 아주 다른 형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는 늘 우리가 아닌 것들의 침입으로 본래의 내가 훼손되고, 내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타자)이 되는 데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올 칸느영화제에서 수상했다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의 수상 이유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그의 영화에서 주인공이 애초에는 독실한 신부였으나 날이 갈 수록 타자인 뱀파이어가 되어 실존을 상실한 채 결국 한줌의 재로 변한다는 내용이다. 우리시대의 상실 치고는 극한을 보여준다.
talk_60.6x72.7cm_oil on canvas_2010
작가 정종기 역시 소녀상을 빌려 실존의 상실을 말한다. 그는 실존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는 소녀들을 그린다. 상실한 소녀들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허망한 흔적의 세계를 바라보는 걸 극적으로 그려낸다. 그의 그림은 상실한 우리 시대의 인간상과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부재의 세계를 조우시킨다. 그의 「Talk」는 부재와 상실을 동시에 앓고 있는 우리 시대의 세계상과 인간상의 단면을 오버랩함으로써 그 실상을 보다 명징시킨다. 그는 상실을 이미지의 치밀함(소녀)으로, 부재를 흐릿함(배경)으로 차별화해서 교차시킨다. 소녀들은 자크메티의 조각이나 뷔페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결코 훼손된 인간상이 아니다. 머리칼은 물론 어깨와 허리에 걸치고 있는 백이나 복장을 건실하고 치밀하게 그렸을 뿐 아니라, 배경은 배경대로 소멸된 잔해와 흔적들을 리얼하게 부각시켰다. 그가 그리는 인간상과 세계상은 어딜 보아도 현실 그대로 리얼한 것들이다. 그는 이것들을 빌려 철저하게 상실된 인간들과 부재의 세계를 폭로한다.그의 근작들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더 높은 단계의 메시지를 전한다. 상실과 부재의 연장 선상에서 침묵이다. 침묵은 언어를 상실한 자의 표정이다. 언어를 상실한 건 상실과 부재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의 비탄과 충격은 그 또는 그녀를 빼앗겨 그들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상실과 부재는 침묵으로 이어진다. 정종기의 소녀들이 그림 속에서 뭔가를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사실상 무거운 침묵 속에서 부동(不動)하는 그림자로 읽힌다. 차갑고 굳어 있다. 생기가 없다. 물화(物化)되었다. 소녀들이 간직해야 할 영혼(아우라)이 실종되었다. 상실의 극치이고 부재의 극치 같다.침묵을 그림으로써 정종기는 최종 우리 시대의 가치 부재와 영혼의 상실을 말한다. 그의 「Talk」는 상실과 부재에 대한 헌사다. 토크가 없는 토크다. 말이 토크지 토크가 아니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게 바로 우리 시대의 실상이 아닌가? 작가는 모순을 빌려 우리 시대를 이야기한다. 일반이 어렵지 않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치밀하고도 아름다운 필치와 색조, 일견 상식적인 그림양식을 빌려 모순을 그린다. 그가 그리는 모순은 아름다운 모순이다. 요즘 정종기의 그림이 이것이다.
talk_90x130.3cm_oil on canvas_2009
talk_72.7x90.9cm_oil on canvas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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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종 기
홍익대학교 대학원 졸업(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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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0100402-정종기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