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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재 展
무지개화분_40x30cm_woodcut_2009
노암 갤러리
2009. 12. 9(수) ▶ 2009. 12. 15(화)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33 | 02-720-2235
선인장_120mx40cm_woodcut_2009
정길재의 목판화 신항섭( 미술평론가 ) 판화는 회화적인 요소와 공예적인 요소가 조합한 미술양식이다. 특히 목판화의 경우 공예적인 기술과 회화적인 기술이 등가를 이루는 지점에 존재한다. 목공예적인 기술의 완성도와 회화적인 미가 타협하는 지점에 목판화가 위치한다. 그래서일까. 목판화는 다양한 기법의 판화 가운데 회화적인 표현이 가장 돋보인다. 다시 말해 붓의 효과에 근접하는 감정표현이 용이하다. 무엇보다 신체적인 힘의 흔적이 그대로 노출된다는 점에서 회화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다. 정길재의 목판화는 회화적인 속성이 강하다. 유동하는 붓의 흔적이 그러하듯 유연하게 전개되는 선의 흐름은 회화적인 맛을 짙게 풍기는 까닭이다. 세부적인 수식을 멀리한 채 강직하면서도 명확한 선을 찾아가는 조각도의 힘찬 노동이 그대로 전달된다. 노동의 힘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표현하는데 목판화만큼 적합한 방법이 따로 없다. 무엇보다도 신체적인 힘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힘차고 예리한 조각도의 표현력은 원시적인 속성까지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그는 MDF를 이용한다. 조각도의 물리적인 힘에 반발하지 않는 MDF는 나무재질이 가지고 있는 유연성 및 자연성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부드러우면서도 거칠지 않아 인쇄효과도 매끄럽고 선명하다. 물론 세부적인 표현도 가능하다. 실제로 그의 작업에서 볼 수 있듯이 예리하면서도 섬세한 칼자국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문인화의 필선을 연상케 하는 명료하면서도 세련된 선을 구사하는데 효과적인 재료인 것이다. 목판화의 독특한 맛은 감상자를 긴장시키는 날카로운 선으로 점철하는, 명확하면서도 간결한 시각적인 이미지에 있다. 농담과 같은 기교적인 표현을 거부하는 일회적인 표현의 특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단지 흑과 백이라는 극단적인 명암대비만이 존재하는 제한적인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시각적인 이미지는 다른 장르를 압도한다. 특히 검정 잉크를 이용한 단색의 목판화는 소묘와 마찬가지로 표현의 순수성과 함께 시각적인 호소력이 강하다. 물론 그의 작품은 다양한 채색을 곁들임으로써 흑백판화와는 다른 화사한 분위기를 지닌다. 그렇다고 해도 검정색 형태 위에 부분적으로 담채를 덧입히는 식이어서 전체적인 이미지를 바꿀 정도는 아니다. 이렇듯이 흑백목판화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그의 작업은 일체의 기교를 배제한 채 목판화의 순수미를 추구한다. 목판화에서 기대하는 표현의 순수성이야말로 그의 작품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경계이다. 결코 기교에 치우치지 않는 표현의 순수성은 어쩌면 원시성 또는 자연성에 가까운 것인지 모른다. 신체를 이용한 물리적인 힘과 그 힘을 순연히 받아들이는 재료와의 완벽한 호흡의 일치를 통해 도달하는 표현의 순수성은 진부하고 고루하다고 여기는 전통미학에의 전적인 동의에서 비롯된다. 소재가 무엇이든지 왕성한 호흡이 느껴지는 선의 흐름은 물 흐르듯 매끄럽다. 조금은 거칠게 느껴지지만 그로부터 오히려 수수한 인간적인 체취를 느낄 수 있다. 규칙적이고 정형화된 기법에 갇히지 않고 보다 자유로운 선의 유희를 보장함으로써 풍부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제공한다. 따라서 계산되거나 의도된 형상을 좇아가지 않는다. 작업하는 순간의 흥취에 최종적인 형상을 맡기는 식이다. 그러기에 작품마다 시각적인 이미지가 다르다. 비정형의 형태를 지향하는 그의 작업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부합하는 것이다.
나무시리즈_각 160x60cm_woodcut_2008
그가 다루는 제재는 자연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하늘과 땅 그리고 강이 어우러지는 자연풍경을 포함하여 자연풍경을 수식하는 꽃과 나무와 풀 따위로 이루어진다. 풍경이 아닐 경우에는 이들 단일 소재만을 부각시킨다. 꽃이나 화초 또는 나무의 형태는 지극히 생략적이고 단순하다. 나무의 경우 줄기와 몇 개의 성근 잎으로 요약된다. 이렇듯이 단순화되고 생략적인 이미지로 표현되는 나무의 형태는 시각적인 즐거움을 야기한다. 신체적인 리듬이 실린 유려한 곡선이 시각적인 즐거움을 유도하는 것이다. 자연풍경을 제재로 하는 일련의 작품은 시각적인 이미지가 다채롭다. 구름과 산과 강과 논밭이 어우러지는 복잡한 구도의 풍경을 다양한 표현기법으로 표현하되 전체적인 인상은 깔끔하다. 음각 및 양각기법을 적절히 분배하고 스탬프기법을 도입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평면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기도 한다. 어쩌면 단순할 수 있는 목판화를 보다 다양한 기법을 혼용함으로써 풍부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목판화는 간결할수록 좋다는 고정관념에 대한 새로운 제안이라고 할 수 있다. 소재의 형태는 목판화의 특성에 따라 생략적이고 단순화됨으로써 사실성은 약화된다. 다시 말해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형태를 지양, 변형하거나 왜곡시킴으로써 현실적인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조형적인 해석이 전개된다. 당연한 일이지만 창작에 대한 욕구는 필연적으로 그 자신만의 조형언어에 대한 요구를 증대시킨다. 따라서 형태를 재해석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독자적인 형식미에 대한 탐색이 이루어진다. 그는 여기에서 곡선의 미를 조형의 원리로 채택한다. 목판화가 요구하는 단순한 행위, 즉 조각도로 나무판을 파내는 작업에서 일어날 수 있는 조형적인 미의 근거를 선에서 찾아낸 것이다. 단지 나무판을 깎아낼 뿐인 작업의 특성상 직선이 수월하다. 그럼에도 곡선을 유도하는 것은 선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킨다는 의도와 일치한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어느 경우에나 마치 물결치듯 유려한 선의 흐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긴 호흡을 요구하는 완만한 곡선의 운동을 통해 현실과 다른 조형의 묘미를 터득하게 된 것이다. 완만하고 느슨하게 이어지는 곡선운동을 찬미하는 작업방식은 호흡이 길게 느껴진다. 호흡이 길다는 것은 느리다는 뜻을 내포한다. 그렇다고 해서 느림은 지루함과는 다르다. 다만 정신적인 여유와 더불어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어쩌면 그가 긴 호흡의 곡선을 반복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전체적인 이미지의 통일을 위해서인지 모른다. 동시에 개별적인 형식미를 모색하는 과정일 수 있다. 곡선이 지어내는 소재의 형태는 유장한 강물의 흐름처럼 아름답다. 그처럼 아름다운 곡선이 꽃이나 나무 따위의 형상을 찾아가는 과정은 꽃을 희롱하는 나비의 유희를 연상시킨다. 날개를 팔랑이면서 유유히 꽃을 배회하는 나비의 선을 따르다보면 문득 꽃의 형상이 맺히게 되어 있다. 그의 작업에서 보여주는 선은 그만큼 리드미컬하다.
화분시리즈 1_80x60cm_woodcut_2009
율동감은 생명의 파장을 구체화시키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 소재의 주변에 남겨지는 선명한 조각도의 흔적은 다름 아닌 생동감의 시각화인 셈이다. 모든 생명체는 고유의 떨림, 즉 생명의 파장이 있다. 흔들림 또는 떨림으로 표현되는 생명체의 파동은 유기적인 곡선으로 표현된다. 서로 연결감을 가지는 파장의 연속이 생명의 율동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형태 주변에 남겨지는 조각도의 흔적은 생명의 파동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소재의 형태를 변형하거나 왜곡함에도 불구하고 유려하면서도 리드미컬한 곡선미와 만나면서 친근감을 불러일으킨다. 특이 나무의 경우, 선의 흐림이 자유롭고 형태가 유머러스하다. 다시 말해 비상식적으로 휘어지거나 틀어짐으로써 시각적인 개방감과 함께 감정의 해방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정형의 미를 벗어난 자유로운 형태해석을 통해 제공하는 이미지는 경직된 사고 및 감정을 해제시키는데 기능한다. 그의 목판화는 간명하다. 많은 것을 담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평면적인 이미지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아동화처럼 단순하게 요약함으로써 드러내고자 하는 이미지만을 선명히 부각시키고 있다. 따라서 일체의 조형적인 기교를 배제하는 표현의 순수성, 즉 자연미에 가까워지려는 의지를 피력할 따름이다. 소재 및 제재가 그렇듯이 그의 그림에서는 고향의 정서 및 흙냄새가 짙게 풍긴다. 그 흙냄새란 다름 아닌 진정한 삶의 아름다움이란 자연에 동화되는 것이란 사실을 일깨워주는 자각의 향기인 것이다.
화분시리즈 2_80x60cm_woodcut_2009
마음의평화_각 15x15cm_woodcut, Mixmedia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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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091209-정길재 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