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희

 

My Secret Diary 2006.12.07. 04:00pm_59x72cm_견본수묵, 비단, 금박, 부적

 

 

갤러리 각

 

2009. 9. 16(수) ▶ 2009. 9. 21(월)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23 원빌딩 4F | T.02-737-9963

 

www.gallerygac.com

 

 

My Secret Diary 2007.01.04. 05:21pm_62x59cm_견본채색

 

 

My Secret Diary

 Yoo Jaehee

Prologue

『나의 작품은 음악에 대한 나의 이해와 슬픔의 표현이다. 슬픔으로써 만들어진 작품만이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슬픔은 이해를 날카롭게 하고 정신을 굳세게 해준다.』                                    

『나는 매일 밤 잠 자리에 들 때마다 다시는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되어 눈을 뜨면 전날의 슬픔이 밀려옵니다. 이렇게 기쁨도 따뜻함도 없이 나의 하루하루는 지나갑니다.』

슈베르트 Franz subert 일기 中

                                                                                  

2009.8.5 am o3:21

 

내 이름은 유재희이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고 미술사로 석사학위를 했다.

나의 비밀일기장을 열기에 앞서 왜 첫 개인전의 제목으로 『My Secret Diary 나의 비밀일기』로 짓게 되었는지 얘기해 두고 싶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일기를 좋아했다. 특히 원고지나 공책에 쓰게 되는 일기보다는 하얀 빈 공간에 그려야 하는 그림일기를 더 좋아했다.  일기. 日記. Diary. 일기는 나의 히스토리이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지만 일기는 과거와 현재가 함께 하는 나만의 히스토리이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 중에 『you make your history everyday』 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하루하루 우리들의 역사를 만들어낸다.

하루. 지금. 찰나. 나는 이런 단어들을 사랑한다. 그 만큼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 그러나 나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다.

나는 팔삭둥이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오래 못산다는 말도 들었다. 불완전한 생명으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왔으니 나에게 하루는 그냥 해가 뜨면 저절로 오는 그런 날은 아니다. 무의식적으로건 의식적으로건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엔 어쩌면 오지 못했을 이 『하루』를 뭔가로 남기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1997년 2월부터 드로잉으로 일기를 썼다. 글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게 참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에는 모두 각각의 날짜와 시간이 기록되어있다. 그들을 통해서 나는 그 때의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을 바라본다.   

이 전시는 내 삶의 기록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추억하게 될 것 이다. 2009년 봄과 여름과 가을에 나는 이렇게 시간을 기록으로 남겼다고. 나의 삶의 기록은 계속될 것이다. 일기란 현재 진행형이 아닌가. 그림을 보게 될 이들에게도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My Secret Diary 2007.09.19. 06:54pm_62x63cm_견본채색, 금박

 

 

 『you make your history everyday』

“비단, 바느질, 부적. 금박. 나의 오브제에 대해서”

2006. 12.30. 11:40 am

 

2006년 봄에 처음으로 비단과 한복 오브제를 쓰기 시작했다. 그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것들에게 푹 빠져있다.   학교를 나오고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몇 년 동안의 침묵을 깨고 다시 작업을 하도록 만들어 준 것이 바로 비단 오브제이다.

어느 봄날  나는 동대문시장에 갔었다. 그곳에서  만난 것이 바로 색색의 비단 원단이었다. 비단 특유의 어른 어른거리는 물결무늬, 따뜻하고 포근한 감촉 그와 대조적인 차가운 사각거리는 소리. 특히  나는 이 소리를 좋아한다. 옛날 중국의 주나라에 '포사'라는 잔인하기로 유명한 황녀가 살았는데 그녀의 특이한 점은 웃지 않는 것이었다. 웃지 않는 포사를  웃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였다.  비단을 찢는 것. 포사는 찢어지는 비단 소리에 침묵을 깨고 살아 있는 미소를 지었다.

비단의 사각사각한 소리는 내 무의식의 자아를 깨운다. 어떤 안료나 물감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비단 특유의 색깔. 그것들이 잠들어 있던 내 감각을 깨운 것 일지 모른다.

나는 사람들이 한국의 색깔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 공감하기를 바란다. 촌스럽다고 귀이 여기지 않았던 한복, 색동. 댕기. 골무, 노리개. 나는 이런 규방오브제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외딴 규방에 모여 바느질을 하고 옷을 짓던 여인들의 노력을 존경한다. 작가는 자신의 오브제에 있어서 장인이 되고 달인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부적이 내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부적은 불교적인 만트라 (진언) 를 담고 있는 것도 있고 그야말로 샤머니즘적인 메시지를 담은 것들도 있다. 부적은 주술적인 의미를 갖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부적이란 것도 한국 여인들의 것이다. 베갯니나 속옷 속에 은밀하게 바느질해 붙여 놓은 부적은 여인들의 드러내놓을 수 없는 비밀스런 기원과 절박한 기도가 아닐까. 내 그림들 곳곳에 숨어 있는 부적들도 나의 은밀한 바람을 빌기 위한 것이다.              

 

My Secret Diary 1

 1997.2월7일 비옴. 빠리에 오다

 

Paris. je suis bien arrivee a Paris.

낯선 사람들. 낯선 말. 낯선 바람. 정말 낯선 나라. 나는 문자 그대로 이방인이 되었다. 처음으로 낯선 주인을 따라 온 고양이처럼. 두려움과 공포. 그러나 호기심으로 두리번두리번. 아직 날이 다 새지 않았나보다. 푸르스름한 하늘과 축축한 바람. 이곳의 날씨는 춥다. 아직 2월이니 당연하겠지. 기온은 한국보다 낮지 않은데 으슬으슬 춥다.  낯선 하얀 방. 이곳에서 나의 드로잉일기를 시작했다. 문자로 밖엔 적어보지 않았던 일기를 처음으로 드로잉으로 쓴다. 쓴다는 표현은 글자에 맞는 것이겠지만. 아무튼 나는 드로잉일기를 쓴다. 텍스트는 단어의 한계가 있지만 그림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지 않은가. 엉키고 엉킨 실타래 같은 선들. 뒤엉켜  절대 풀어지지 않을 것 같은 선들.

나에게 일기를 쓴다는 것은 나 자신과의 대화이다. 텅 빈 화면을 앞에 두고 말을 걸기 시작한다. 나 자신과의 대화. 그것은 스스로와의 화해를 하기 위해서 이다.

비움. 자아로부터 비움. ego로부터의 비움.

 

 

My Secret Diary 2006.12.28. 04:50pm_66x56cm_견본채색, 금박, 부적

 

 

My Secret Diary 2

 2009년 4월 1일.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라. 시간에 대하여 나는 가끔 질문을 해본다. 시간. 그것은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각자의 시간은 다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지켜내지 못하는가. 스스로 느끼고 체험한 것 보다 보지 못한 일들. 남들로부터 들은 것들을 더욱 신뢰하곤 하지 않는가. 망상이나 허상에 빠져 정작 나만의 시간. 지금 이 순간을 살지 못하게 된다.  <고양이의 보은>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 한 고양이가 한 여자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너만의 시간을 살아”라고. 고양이만큼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는 동물도 흔치 않다. 한적한 저만의 공간에 앉아 무심하게 세상을 내려 보는 고양이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나는 10층 작업실의 창가에 내 고양이와 함께 앉아 거리를 내려다보곤 한다. 그래 나 자신만의 시간을 살자. 그 시간들이 모여 온전한 나만의 삶이 될테니까.

 

Epilogue

2009. 4. 5 pm09:37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싶어 한다. 요즘 유행하는 싸이월드나 블로그같은 것들도 그런 욕망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오늘 먹은 음식, 쇼핑한 옷, 구두 그런 사소한 것들까지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과 함께 블로그에 담아낸다. 일기도 쓴다. 그리고 일촌끼리 혹은 대중과 공유한다. 사진이나 글로 기록을 남기는 것은 현재의 시간을 영원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라는 것. 나는 사람들의 삶이 결국엔 일초 일초의 시간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주차장에서 타임스탬프를 찍는다. 기계가 우리가 그 장소에 머무는 시간만큼 숫자로 기록한다. 엘리베이터의 cc TV의 화면 속에서도 사람들은 시간으로 기록되어진다. 핸드폰의 통화내역도 시간의 기록을  남긴다. 시간은 내가 태어나서 존재하는 한 흘러간다. 멈춘다면 그것은 삶도 멈춘 것이다. 내가 태어나고 죽는 것도 결국은 시간의 기록과정이다.

 나는 시간을 기록하고 싶다. 눈에 보여 지는 이미지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찰나를 기록하고 싶다.  드로잉, 그린다는 행위는 무형의 시간과 감정, 느낌을 기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행위는 흔적을 남긴다. 얼룩, 점, 선, 추상작업을 하면서 그리고 싶은 것이 생활이고 인간들의 삶이라한다면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인물은 전혀 등장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삶에 관심이 있다한다면 이상할 수 도 있다. 그러나 눈앞에 존재하고 있다고 해서 사람이 있으며 눈앞에 보이지 않는 다고해서 사람이 없다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점과 선들이 엉켜있는 화면 안에는 내가 있다. 순간의 시간 속에 존재한 내가 있다.

 나는 화면과 대화를 나눈다. 대화를 통해서 그림은 스스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때로는 그림은 내가 말하는 것과 다른 얼굴을 한다.   

 시간이라는 화두에서 끄집어내고 싶은 것은  변화이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를 먹는 것, 세포가 노화되는 것, 이것도 변화이고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닌 것도 변화이다. 지속되는 변화의 과정이 일생이 될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 일분 일 초는 계속 끊임없이 흘러간다. 마치 강물처럼.

 변화, 멈춰있지 않고 움직이고 살아나가는 열정과 생기, 그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이 나의 숙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봄이 되면 또 새로운 이파리가 돋아나듯이 새로운 변화의 생명은 태어나길 반복한다. 작가에게는 이런 욕망과 열정과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삶이 계속이 이어져 나가듯 작업도 계속되는 것이 아닐까.  

 

 

My Secret Diary 2006.12.30. 11:40am_69x96cm_견본채색, 비단, 부적

 

 

My Secret Diary 2007.01.08. 05:39pm_78x50cm_견본수묵, 비단, 금박, 은박

 

 

 
 

■ 유재희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 이화여자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수료 (현대미술전공)

열 두 번 째 “피어나다” 전 (갤러리 각. 2008) | 端 展 -story of wedding" (갤러리 각. 2009) | 첫 번째 유재희 개인전 “ My Secret Diary" (갤러리 각. 2009)

 
 

vol.20090916-유재희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