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Unseen-

 

Unseen_75x50cm each(total 240x50cm)_Pigment Print_2008

 

 

갤러리 룩스

 

2009. 9. 2(수) ▶ 2009. 9. 8(화)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85 인덕빌딩 3F | T.02-720-8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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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face #01_150x100cm_Pigment Print_2008

 

 

Details of Black

유 진 상 (미술평론가, 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

김은영은 무한한 깊이가 지닌 최소한의 두께를 다룬다. 이것이 그녀의 관심사가 사진의 평면성에 국한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사진의 검은색에 대한 것이다. 김은영의 사진은 그것의 표면을 뒤덮고 있는 어둠을 중심으로 구축된다. 검은색은 사진의 건축학적인 토대를 이룬다. 그것은 투명하고 무한하며 반복적인 레이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그것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진 위로 떠오른 대상이 어떤 전체의 일부인지를 알아내야만 한다. 사진의 검은색은 미로의 시작이자 수많은 출구들이다. 동시에 그것은 두려움과 길 잃음, 침잠, 끝없는 위협의 영역을 기술하고 있다. 김은영의 사진들 속에서 우리는 이 짙은 어둠으로부터 분리되는 대상들을 본다. 그것들은 대부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상의 형태들로부터 비롯된 것들이지만, 때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빛의 면들을 만들면서 이 구조의 내적 운동을 보여준다. 지난 2001년의 전시 <러브모텔>에서 김은영은 검은색 배경 위에 압착된 사물들의 형해(形骸)를 보여주었다. 그 이미지들은 마치 현미경으로 바라본 어둠의 세부를 반투명의 재질들을 통해 포착해낸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러브모텔>의 사물들은 고립된 우주 속에서 떠있는 익명의 존재들이다. 이번 전시 <Unseen>에서 표출되는 검은 색의 세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 존재들의 특성을 이어받고 있다. 첫 번째는 사진의 검은 톤에 대한 해석이다. 김은영의 최근 작품들에서 검은색은 좀 더 구체적인 관념으로 떠오른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바다, 혹은 차원을 헤아릴 수 없는 반-물질적 공간처럼 그것은 심연이자 표면처럼 보인다. 두 번째는, 대상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의 방식이다. 어둠을 묘사하기 위해 버려진 콘돔의 질감을 극도로 세밀하게 다루었던 이전의 작업에서처럼 이번에도 <Surface>연작에서 보듯 작가는 이미 말라버린 꽃들이 반사하는 빛을 집요하게 기록하고 있다. 역광에 가까운 제한된 조명 아래에서 한 때 찬란했던 생명의 흔적들은 마치 포말(泡沫)처럼 빛난다. 주목할 것은, 여기서도 역시 기술의 대상은 꽃이 아니라 어둠이라는 사실이다. 꽃은 다른 어떤 것의 세부라고 말할 수 있다.

 

 

Surface #04_150x80cm_Pigment Print_2008

 

 

김은영이 기록하는 것은 바로 사진의 세부들, 즉 사라져 버린 것들이 검은색을 통해 남겨놓는 기억의 특정한 대체물들이다. 즉 부재(不在)의 너무나도 뚜렷한 자취들인 것이다. 사진의 검은색은 우리의 시각을 가릴 뿐 아니라 사건의 지평을 만들어낸다. 지평은 그 너머의 것들을 우리의 시각에서 멀어지게 하지만, 동시에 그만한 에너지를 지평 위로 분출한다. 김은영의 사진에서 이렇듯 분출된 세부들은 짧은 순간 동안 강렬하게 타오르는 현실의 명멸처럼 드러난다. 마치 어두움 속을 부유하는 작은 반딧불들처럼 그것들의 시간은 감동적이며 압축되어 있다. 3부작 사진 <Unseen>은 어떤 불합리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얼핏 보아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나부끼는 블라인드를 시간적으로 기록한 세 장의 사진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곧 창문이 닫혀 있다는 사실로 인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이미지로 뒤바뀐다. 가운데의 사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사진의 검은색은 우리의 시각을 가릴 뿐 아니라 사건의 지평을 만들어낸다. 지평은 그 너머의 것들을 우리의 시각에서 멀어지게 하지만, 동시에 그만한 에너지를 지평 위로 분출한다. 연작 <Ground>는 짙은 검은색의 액체가 일으키는 바닥으로의 하강을 보여주고 있다. 아랫쪽의 선명한 붉은 빛이 일으키는 회오리와 동요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블랙홀의 입구로부터 마지막 생의 광휘을 내뿜고 있는 천체의 찬란함을 연상시킨다. 이미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검은 톤의 압도적인 무게는 바닥에 있는 붉은 공간의 빛을 더욱 아름답고 절박한 순간의 결정으로 만들고 있다. 김은영이 사진의 검은 톤에 천착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삶의 지난함, 고독, 죽음의 흔적들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반대로 검은색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매혹이 야기한 것일 수도 있다. 5부작 <Untitled>에서 작가는 자신의 눈동자를 마치 달의 기울고 차는 모습처럼 보여주고 있다. 단적으로 클로즈업된 이 묵시적인 눈동자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왜 작가는 그것에서 순환의 연속성을 발견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대답은, 사진의 검은색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서사들과 마찬가지로 끝없이 순환하는 대답들로 주어질 것이다. 김은영의 어둠은, 존재와 마찬가지로, 테마일 뿐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진들은 거대하면서도 극히 사적인 이러한 테마를 불러내는 고통스런 여정에서 김은영이 포획해서 돌아온 것들이다. 사진가가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 무엇을 보았는지, 이 작품들은 그것에 대한 기록이다.

 

 

Surface #05_40x60cm each_Pigment Print_2008

 

 

Ground #01_100x50cm_Pigment Print_2009

 
 

 

 
 

vol.20090902-김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