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걸린 피아노-朴哲 그림과 악기

 

 

 

선 갤러리

 

2009. 8. 25(화) ▶ 2009. 9. 5(토)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84 | T.02-734-0458

 

www.sungallery.co.kr

 

 

Ensemble 9-25_135x166cm_Korean Paper, Naturaldyes_2009

 

 

들리지 않는 음악이여

 -악기의 패총에서 발굴해낸 낭만적인 악기들-

 

1824년 5월 7일 금요일 밤 9시. 오스트리아의 빈. 케른트나토아 극장. 음악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가 써지고 있었다. 150여명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빚어내는 악성(樂聖)의 마지막 교향곡인 제9번 ‘합창’ 피날레였다.

 

아브네스트 두 덴 쉐페르 벨트?

주흐 인 위베름 슈테-르넨첼트

위-버 슈테르넨 무스 에르 이-로넨.....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에 붙인 노래는 어느새 마지막 구절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미 귀가 들리지 않아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그의 지휘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에게 그리 큰 의미가 없었다. 모든 연주가 끝났을 때 청중들은 위대한 작품의 창시자에게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베토벤에게 청중들의 환호가 들릴 리 없었다. 그는 그대로 객석에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박수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결국 단원 중 한 사람이 베토벤의 손을 잡고 청중 쪽으로 몸을 돌려 세워줌으로써, 비로소 열광하는 청중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환희가 폭발하는 순간이었고 최고의 ecstasy를 누린 데 대한 감사의 환성이었다. 박수소리는 좀처럼 멈출 줄 몰랐고 베토벤은 다섯 번이나 무대로 불려나왔다. 그렇지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곡을 만든 자신은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으며, 자신이 지휘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에서 울려나오는 harmony도 듣지 못했고, 관객들의 탄성과 경의에 찬 칭송도 들을 수 없었으니.

음악역사상 가장 숭고한 명작, 인류 음악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은 이렇듯 작곡자 자신이 들을 수 없는 음악으로 탄생했다. 베토벤은 무슨 생각으로 이 곡을 만들었던 것인가. 베토벤은 평생에 걸쳐 마음에 두고 있던 음악의 이상(理想)을 마지막 교향곡인 제9번에 구현한 것이다. 들을 수 없었고,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더 위대한 음악을 만들어냈다는 말이 아니다. 들을 수 없었고,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음악에 관한 처절한 고통이 수반됐고 철저한 역설(Stress)의 드라마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Ensemble 9-26_135x166cm_Korean Paper, Naturaldyes_2009

 

 

내가 박철의 ‘앙상블’(KOREAN PAPER+NATURAL DYES)들을 만난 것은 90년대초였다. 음악애호가인 나는 박철의 그림에서 들을 수 없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의 역설에 관한 묘한 흥미에 빠졌다. 악기로 소리를 그린다는 것은 악기가 갖고 있는 정적(靜寂)을 들려주는 것이다. 악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소리를 동경한다. 그래서 누군가 건드려주기만 하면 울어버리지만, 박철은 바이올린을 멍석과 매치시킴으로써 소리없는 앙상블을 들려줬다.

그즈음 나는 소리의 지겨움에 빠져있었다. 들어도, 들어도, 물릴 것 같지 않던 음악이 어느새 시끄러워졌고, 그 ‘흔해빠진 것’들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다. 들리지 않는 음악은 없을까. 베토벤도 적막(寂寞)을 지휘하지 않았던가? 이때 베토벤처럼 다가온 것이 유나화랑에서 본  ‘박철展’이었다.  

그날 멍석은 거칠고 토속적인 tone으로 바이올린의 신음소리를 흡입하고 있었다. 바이올린의 부드럽고 미려(美麗)한 굴곡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이 황톳빛 태깔의 짜임에 스며들어 있었다. 나는 정적의 극치를 맛보았다. 그것은 소리의 암흑이었고 눈으로 듣는 음악이었다. 닥종이였다. 그는 소리내지 않는 종이를 사용했다. 닥종이는 작업하기 좋게 젖어있었던 듯 질감은 충실했다. 푹신한 흡입력을 지닌 생리대처럼.

닥종이는 색(色)을 잘 먹었다. 색은 경박하게 눈부시지 않았다. 치자, 오배자, 감, 도토리 등에서 짜낸 생태(生態)의 난자(卵子)들이 황홀하게 번져 있었다. 때문에 나는 수차례(92년 유나화랑과 94년 서림화랑과 유나화랑 96년 워커힐미술관)에 걸쳐서 박철의 ENSEMBLE을 더 편력했다.

긴 세월 스치듯 지나가버렸다. 나는 여전히 음악을 듣고 있다. 더 깊게, 깊숙이, 낯선 곳을 향해, ‘탐험’하듯 음악을 찾아 나선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탐닉’이라고 얕잡아보기도 하지만 나에게 음악은 발굴이거나 탐험이다.

박철도 여전히 ENSEMBLE을 그리고 있다. 그의 역설도 더 깊어졌다. 박철이 연출하는 닥종이 무대엔 바이올린과 같은 현(弦) 뿐 아니라 관(管)과 piano까지 출연한다. 닥종이의 생태에 스며들어있는 황홀은 어느덧 부화(孵化)를 꿈꾸고 있다. 이제 멍석과 바이올린의 matching이 아니다. 악기와 악기들의 ecstasy다.

박철의 ENSEMBLE들은 악기패총(貝塚)으로 진화한다. 다시 박철을 탐험하고 싶은 본능을 느낀다. 거기서 나는 아주 낭만적인 악기들의 비밀을 캐낼 테다.

배석호/음악칼럼니스트

 

 

 

 

 

 
 

■ 박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 경희대학교 대학원 졸업

개인전 37회 (POSCO 미술관, 워커힐 미술관, 동경, Paris, Amsterdam, Rijnsburg, Vancouver 등)

KIAF (COEX, BEXCO) | 퀼른, 마이애미, 동경, 베이징, 상하이 등 국제 아트페어 출품 | 서울시립미술관 초대전 (서울시립미술관) |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상파울로 비엔날레 (브라질) | 한국 한지 작가 협회 회장 역임

현재  홍익대학교 대학원, 숙명여대 대학원 출강

 

 
 

vol.20090819-벽에 걸린 피아노-朴哲 그림과 악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