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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식 展
axis01_92x30x82cm_산청토_2009
노암 갤러리
2009. 3. 18(수) ▶ 2009. 3. 24(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33 | T.02-720-2235
orbital02_75x75x70cm_산백토_2009
토템폴과 우주란(卵), 기하학적 환원주의와 생명현상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조라고 하면 테라코타를 떠올렸었다. 권진규의 자기 내면이나 이상세계를 투시하는 듯한 명상적이고 관조적인 분위기의 말이나 소녀상(작가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한애규의 풍만하고 넉넉하고 너그러운 표정의 여성상(작가의 여성상은 지모, 대모, 땅 신, 생명 신을 상징한다), 초기 이영섭의 거칠고 질박하면서도 강력한 내적 에너지가 느껴지는 인간 군상 정도가 기억된다. 초벌구이에 의한 테라코타 특유의 발색은 마치 흙의 원형(혹은 본성)을 가시적인 층위로 끄집어낸 것 같은(혹은 흙의 물성에 인간의 정신을 불어넣은 것 같은) 정적이고 관조적이고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흙의 본성에다 다만 불의 산화과정을 더할 뿐인(불에 의한 소성과정은 마치 흙 속에 잠든 혼을 일깨우는 것 같다) 테라코타는 그 과정이 소박한 만큼이나 흙의 원형을 변화시키기보다는 강화하는 힘이 있다. 선입견일 수도 있겠지만, 흙의 본성과 인간의 본성이 서로 삼투되는 존재론적 조건(인간은 흙으로부터 유래했고 재차 흙으로 되돌려진다) 탓에 테라코타의 소재로는 인간이 적격이고 또한 그 만큼 감동도 크다. 그랬던 것이 기물로서보다는 조형성에 주목한 현대도예의 본격적인 등장과 함께 그 방법도 다양해지고 소재의 폭 또한 넓어졌다. 유약은 물론이거니와 전통적인 도자기법이 자유자재로 응용되는가 하면, 내용적으로도 현대인의 정체성이나 일상과 같은 서사적 표현마저 아우를 수 있게 되었다. 일단 물꼬가 트인 그 흐름은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되었고, 나아가 전통적인 조각과 도자 양쪽 모두를 견인하는 선도적 경향마저 감지된다. 주지하다시피 현대미술은 탈장르, 탈경계와 같은 각종 탈의 논리에 의해 지지되며, 이때의 탈의 논리는 전통적인 장르를 부정하기보다는 해체하면서 강화하는 것으로서, 도조는 그 경계 위의 인식과 실천논리에 들어맞는 한 형식일 수 있다. 어린 시절 옹기를 제작하던 부친의 모습을 보고 자랐는가 하면,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주후식에게 도조는 어쩌면 선택사항 이전의 보다 본질적이고 자연스런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 환경이 도자와 조각 모두를 아우를 수 있게 했고, 흙에 대한 친근감을 의식 이전의 체질적인 층위에서부터 내재화할 수 있게 해준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현대조각에서 흙(점토)이 갖는 의미비중은 예전만 못하다. 조각의 재료 자체가 눈에 띠게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그마저도 주형을 만들기 위한 소지 정도로 그 의미가 축소된 것이다. 작가는 흙을 이렇듯 소지의 단계에 묶어두는 대신 자신의 작업을 위한 주 재료로 적극 도입하는 한편, 이를 도자 기법(유약처리와 불에 의한 소성과정)과 접목시킨다. 흙의 물성을 매개로 하여 조각 고유의 매스(양감)와 현대도예의 조형성(이를테면 유약에 의한 표면 질감과 색감)이 만나지는 접점에서 자신의 작업을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경계 위의 작업은 장르와 형식의 틀을 허물어 재편하고 재구조화하는 것인 만큼 조각과 도자 모두를 아우를 수 있게 해주지만, 이를 실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차후로도 작가의 작업에서 그 지난하면서도 의미 있는 형식실험의 변주된 양상들을 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axis03_75x75x70cm_혼합토_2009
그 대략적인 제작과정을 보면, 우선 조성된 흙 판이 일정하게 건조한 연후에 그 표면에 이미지를 전사한다. 그리고 전사된 라인을 따라 조각도로 각을 떠내는데, 이때 음각과 양각이 대비되거나 중첩되면서 서로 어우러지게 한다. 대략적인 플랜은 사전에 정해지는 것이지만, 어떤 부분을 음각이나 양각으로 처리할 것인지, 또한 각의 모양새는 어떻게 떠낼 것인지 여부는 실제 제작과정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전체적인 폼을 봐가면서 유연하게 접근하는 만큼, 우연성의 개입과 이에 따른 변형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는 것이다. 그 형태를 보면 그 크기가 축소된 기둥 형상이나 무슨 알 같기도 하고 우주 같기도 한 난형의 원형상이 변주된 예가 많다. 구조적으로 심플한 것이 미니멀리즘에 대한 공감을 느끼게 하며, 이로써 기념비적인 인상마저 감지된다. 이런 기둥형상이나 원 형상 자체는 기하학적 엄밀성에 연유한 것이지만(주지하다시피 기둥형상의 직립구조와 원형상은 기하학에서 가장 본질적이고 완전한 형태에 속한다), 이와 동시에 일정한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기둥형상은 그 이면에 신화적이고 주술적인 의미기능을 포함하는 전통적인 토템폴의 변주된 폼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 의미가 기념비적인 인상과 무관하지 않다. 문명사적으로 토템폴과 기둥형상은 남근숭배사상으로 나타난 세계의 기원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원 형상은 닫혀있으면서(그 자체 자족적이고 완전한) 열려있는(원에는 시작과 끝이 따로 없다) 특이 구조(이율배반적 구조?)로 인해 무한을 상징한다. 이처럼 그 자체 완전하고 근본적이며 무한한 형태 속에 생명이 깃드는 것은 자연스러운데, 이렇게 잉태된 형상이 알이다. 그리고 알은 지구로, 우주로 그 외연이 변주되면서 확장된다. 우주란(卵) 역시 문명사적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데, 하나의 알로부터 우주가 생성되었다는 이야기는 동서 문명을 막론하고 널리 알려진 신화적 사실이다. 형태로부터 감지되는 구조적 특질은 그렇다 치고, 이제 눈을 형태의 표면으로 돌려보면 역시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패턴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 형태를 펼쳐보면 각종 크고 작은 면들이 어우러진 무슨 면 구성을 떠올리게 하는데, 곡선들이 중첩되면서 면을 세분화하는 것이다. 심플한 구조도 그렇지만,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패턴으로 인해 조각이면서도 회화적인 느낌이 강하고, 입체로서보다는 평면적인 느낌이 강조된다. 세부적으로 그 문양은 마치 수면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일 듯 파문들이 서로 부닥치고 삼투되는 자연현상을 연상시킨다. 점진적으로 퍼져나가는 파문이 기나 에너지의 운동성을, 빛과 소리의 파장을 떠올리게도 한다. 구조적으로 원 형상이 알을 암시한다면, 표면의 파문은 그 알의 속성이랄 수 있는 생명현상(기와 에너지의 운동성)을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 해서, 작가의 작업은 그 형태나 표면의 문양이 일맥상통한 것으로 보인다. 기하학적 형태와 패턴이 조화를 이루는가 하면, 알과 그 알에 내재된 생명현상이 의미론적으로 서로를 보충하는 것이다. 때로는 지나칠 만큼 일관된 논리적 아귀(그 자체 기하학적 엄밀성과 무관하지 않은)가 보는 이를 숨 막히게 하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부분적으로 틀을 깨거나 흔들어 놓는 파격과 간섭의 계기가 개입될 수 있다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이를테면 인체를 소재로 한 전작에서의 유기적인 형태가 근작에서의 기하학적 형태나 패턴과 상호 작용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axis04_75x75x70cm_혼합토_2008
이렇게 형태가 조성되고 나면 이를 불에 산화시키는 소성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작품이 완성된다. 소성과정으로는 일반적인 가마소성(사용하는 연료에 따라서 장작 가마와 가스 가마 정도가 보편화된 편이다)을 비롯해, 초벌구이에 의한 테라코타, 형태의 표면에 그을음을 덧입혀 검게 만드는 연 기법, 열려진 공간에서 조형물을 태우는 노천소성(선사시대 부장품에서 주로 확인되는), 예기치 못한 다양한 유약효과를 얻을 수 있는 라쿠소성, 유약 대신 소금 결정체를 사용해 독특한 표면질감을 유도하는 소금가마소성, 별도의 갑(틀)을 따로 만들어 그 속에 조형물을 담아 가마에 구워내는 내화갑소성 등 조형물의 성격에 맞춰 다양한 소성기법들이 동원된다. 때로 조형물을 불에 노출시켜 특유의 검은 색을 덧입히는 과정에서 불에 과하게 노출된 부위의 색이 하얗게 변색되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검은 색과 흰 색이 어우러진 자연스런 색조가 연출되기도 한다. 이는 의도적인 연출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내화갑의 표면에 난 미세한 균열 사이로 불이 침투해 그 부위의 색이 변하는 등 우연적인 효과의 소산이기도 하다. 이렇게 똑같은 형태도 소성기법에 변화를 줌으로써 다양한 표정 연출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렇듯 주후식의 작업은 심플하고 견고한 구조나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패턴으로 인해 얼핏 치밀한 계획성의 소산 같은 인상을 주지만, 그 와중에서도 흙 판에 문양을 조성하는 과정에서나 소성과정에서 우연성의 계기가 개입할 수 있는 개연성을 열어 놓고 있다. 구조적으로 전통적인 토템폴을 변주한 것 같은 기둥 형상이나 그 외연이 지구와 우주적 차원으로까지 확장되는 알 형상을 아우르는가 하면, 표면의 문양을 통해서는 기와 에너지의 운동성을 표상케 한다. 이로써 작가의 작업은 일종의 기하학적 환원주의와 맞물리고, 생명현상이나 생태담론과도 통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orb05_30x30x25cm_카올린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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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090318-주후식 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