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권 展

 

- 황현중_억압된 침묵 -

 

 

 

상형준_수원화성 남수문 터

 

2009. 2. 25(수) ▶ 2009. 3. 3(화)

 

 

 

 

사진가 백승우

 

이병권, 황현중, 상형준은 집 근처에 위치한 수원 화성의 풍경을 담았다. 매일 같이 마주치는 풍경이자 자신의 일상중의 하나인 장소에 대한 사진이다. 수원 화성은 오랜 유물이면서 도 일상적인 삶의 연장 공간에 다름 아닌 쉼터이며 역사 교육의 현장이자 조선의 피맺힌 역사가 같이 있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다.  그러나 수원에서 거주하고 있는 삶의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버린 이곳은 과거의 신비감을 부여 받을 만한 거리감은 확보되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곳을 산책로 또는 놀러 가는 장소로 불리기도 한다.

이병권은 다분히 일상적인 삶의 한 공간으로 화성을 바라보고 있다. 즉 삶의 휴식처 및 기념 촬영 장소로서 사람들의 모습과 화성을 함께 담아 놓은 것이다. 이것은 한낮 이미지에 다름 아니다. 사진 속의 군중들은 화성이 갖고 있는 역사적 의미보단 다녀갔다는 자국을 만들기 위해 사진을 찍고 있다. 또한 이병권은 화성 주변을 다니는 열차 관광객의 눈을 통해 화성을 바라보고 있다. 본래 수원 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선대 왕인 영조의 둘째 왕자로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의 화산으로 옮기면서 화성을 만들었다. 본래 화성은 정조의 효성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당파정치를 없애고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도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과연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그런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까? 그저 사람들은 무심하게 자신의 일상을 반복하고 놀러 온 장소로서 기념 촬영을 하고 스치는 풍경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바로 이점을 이병권은 사진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

 

 

 

 

황현중은 화성을 억압된 침묵의 결과로 보고 있다.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 세자가 강요에 의해 뒤주 속에서 비참한 생을 마감한 사도세자의 심정으로 화성을 바라보고 있다. 황현중은 일여 년 화성을 꾸준히 바라보면서 이러한 강요와 억압은 현대인에게도 내재되고 있음을 보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강력한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정조의 이상이 닮긴 곳인 화성이 기존 기득권 세력에 의해 왕조차도 침묵해야 했던 상황에 대한 반작용 이었을지도 모른다. <정치적 풍경>의 저자 미술사가 마르틴 바르케에 따르면, 정치적 풍경이란 정치적 비밀이 숨어있는 풍경이다. 화성이라는 정치적 풍경 속에서 작가와의 소통을 여는 인식적 코드로 ‘억압된 침묵’을 생각해 보았다. 이것은 현대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구축된 가운데 하나의 인간으로서 소외, 상실감 그리고 억압된 침묵이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형준은 5.4km의 수원 화성 중 끊어져있는 단 한곳 그곳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현대인은 늘 반복되는 생활 속에도 많은 단절을 경험한다. 특히 절망의 순간 가장 절망스럽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로부터의 단절이라는 것이 아닌 스스로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홀로 숨고 단절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화성 중 단절된 부분에 넣었다. 좌절과 고통은 패배자들의 못난 넋두리로 치부하기 쉬운 현대 생활에서 스스로 절망은 끝은 다시 희망이고 그 희망으로 인해 연결된 화성은 또 다른 희망을 낳을 것이라고 사진을 통해 말하고 있다.

 

 

 
 

 

 
 

vol. 20090225-이병권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