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기획자 P 씨의 죽음 展

 

- 쿤스트독미술연구소 공동전시기획 -

 

P 씨의 유서

 

 

쿤스트독갤러리

 

2009. 2.17(화) ▶ 2009. 2.26

초대일시 : 2009. 2.17(화) 오후 6:00

서울시 종로구 창성동 122-9 | 02-722-8897

 

주최 : 쿤스트독

주관 : 쿤스트독미술연구소 후원 : 쿤스트독갤러리  공동전시기획 : 박영택(연구소외부자문위원), 김성호(연구소장), 김석원(초빙연구원), 이형복(책임연구원), 김현지(연구원), 박재은(연구원), 조두호(연구원), 박상돈(연구원)

 

 

현관_위험한 징후

 

 

유서 / 알 수 없는 나의 죽음

 

박영택 | 연구소외부자문위원, 경기대 교수

 

 내가 죽었다. 아니 과연 나는 죽었는가? 알 수 없다. 그러나 누군가 이 글을 발견하고 보는 순간 나는 분명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완전한 무로 돌아갔다. 완벽한 부재를 꿈꾸었는데 드디어 그것이 실현되었다. 나는 나/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것은 분명 자살이기도 하고 기이한 타살이기도 하다.

이 미술판에서 일을 한 지가 올해로 딱 20년이 되었다. 얼떨결에 작은 미술잡지사의 기자로 들어가 기사작성을 하다가 미술관으로 옮겨 큐레이터를 하였고 되지도 않은 잡문을 써대다가 얼떨결에 미술평론가 행세를 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모두 내 의지가 아니었다. 결코. 단 한 번도 큐레이터나 미술평론가, 교수를 꿈꾸지 않았었고 그럴 자격도 없었던 내가 그 일을 해버리고 말았다. 염치없는 짓이자 헤아릴 수 없는 죄의식을 마냥 안기는 일이었다. 남이 써놓은 글을 뜯어먹고 타인의 작품에 기생해서 살았다. 되지도 않는 글을 써대거나 헛소리에 가까운 강의를 하고 이런저런 심사나 회의에 참여해 알량한 권력을 행사했는지도 모르겠다. 우선 내 글에 상처를 받았던 모든 작가들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말과 글은 얼마나 무서운가? 턱없이 부족한 공부와 형편없는 안목으로 해낸 그동안의 일들을 생각하면 식은땀이 흐른다. 미술관에 근무하던 시절 전시를 원했던 많은 작가들 대부분은 배제되었고 그래서 적잖은 원망과 아쉬움을 내게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 당시 나의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간 기획했던 약 50여개의 전시 동일하다. 오랜 시간 강의를 했지만 강의가 끝나는 순간 견딜 수 없는 공허함과 부끄러움에 늘상 시달렸다. 부족하고 표피적인 강의에 힘들었을 학생들 혹은 모든 이들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방송 역시 마찬가지다. 전시를 소개하고 미술계 상황에 대해 말하면서 더러 오해를 살 말과 잘못된 정보를 들려주었을 지도 모르고 너무 주관적이었을 것이다. 아울러 미술과 관련된 이런 저런 심의나 선정, 회의에 참여하면서 작가들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자신이 결코 그러한 권력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런 자리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권력적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20년 동안 기획자와 평론가로, 선생으로 살면서 결국 나는 너무 많은 죄를 저질렀다. 비양심적이고 비인간적인데다 오로지 나의 소시민적 삶과 안위를 위해 작가들을 팔고 미술에 기생했다. 적지 않은 작가들이 나를 손가락질하고 혐오할 것이다. 죽이고도 싶었을 것이다. 나는 그 많은 죄를 덮지도 가리지도 못한다. 결코 씻을 수 없다. 더 이상의 수치심과 죄의식을 견디기 힘들다. 해서 나는 죽고, 죽임을 당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간의 일들이 용서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그동안 기획했던 전시도록과 내 글이 있는 모든 도록과 잡지와 책들을 찾아 나의 부재에 실어 함께 없애주길 살아남은 이들에게 바란다.

모두에게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     

 

 

현관_위험한 징후 세부

 

 

P가, 2009년 2월 8일 오후 3시52분

 

시놉시스 / 전시기획자 P 씨의 죽음

김성호(연구소장, 미술평론가)

 

I. 미술현장 매개자 P 씨

P 씨가 죽었단다.

그는 적어도 미술현장에서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미술현장 매개자였다. 전시기획자로서 미술현장에 발을 디딘 그는 전국에 산재한 작가의 작업실을 탐방하면서 전시를 만들고 글을 써가는 것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던 순수한 심성의 미술현장 매개자였다. 그는 미술현장 속에서 자신의 세력을 만들어 권위적 위치를 점유하려는 타자들과의 공모와 결탁을 하지도 않았고 할 줄도 몰랐다. 그저 자신을 찾는 많은 작가들의 부름에 응해 그들의 작업실을 둘러보고 그들의 작품을 읽는 일 자체를 즐겼고 미술현장의 수다한 주문과 청탁을 특별한 거절 없이 받아들여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해 왔을 뿐이다. 그의 일에 대한 열정과 성실함이 소문에 소문을 물고 이어 전해져 그는 미술계의 무수한 일들을 맡게 되었고 주어진 일들을 처리하느라 분주하게 지내야만 했다. 미술현장에 몸담은 지 근 이십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는 익히 알려진 미술인사가 되었다.

 

 

거실_세 가지 흔적

 

 

II. 자살과 타살의 언저리

P 씨가 죽었다.

미술현장에서 별 욕심 없이 자신의 일을 하고 남에게 누가 되는 일을 결코 하지 않았던 그가 무슨 연고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그는 어쩌면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고 번민하다가 자살을 결심했는지 모른다. 그가 남긴 유서가 그러한 추측을 가능케 한다.

하지만 그의 유서는 독해불가능이다. 그 곳에 그의 죽음의 원인을 알 수 있는 단서는 별반 없다. 단지 유서를 남겼다는 정황으로 그가 자살을 했다는 잠정 결론을 내리기에는 미심쩍은 부분들이 너무 많다. 거친 글씨체로 급하게 써내려간 흔적이 역력한 그의 유서에는 모든 이들에게 미안하다는 언급만이 지루하게 반복되어 있을 뿐 특정인과의 관계가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다. 게다가 이상한 것은 그 유서는 스캔이 된 상태로 컴퓨터에 오래 전 저장이 되어 있었던 것이 목격자의 현장 발견 하루 전에서야 프린트된 것이라는 점이었다.  

분당의 그의 집 안 곳곳에 남겨진 핏자국과 어지럽게 흩어진 물건들, 그리고 누군가와의 생과 사의 난투가 벌어진 장소로 추측케 하는 거실에서의 여러 정황은 그가 타살되었을 거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누군가 유서를 강제로 쓰게 하고 그를 죽였을까? 집 안에서 발견된 혈흔이 모두 그의 것이라고 판명된 사실은 그런 추측을 기정사실화한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그의 시신을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살인자가 타살의 흔적을 은닉하기 위해서 그의 시신을 거두어 갔다고 잠정 결론내릴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어떠한 소란 이후 그가 엉뚱한 곳에서 자살한 걸까? 자살, 타살의 언저리를 오고가게 만들고 그 진실을 규명할 그의 시신은 행방불명인 상태이다.

최근, 부천과 서울, 그리고 창원의 다른 도시에서 원인 모를 행방불명 신고가 접수되었다. 그들 모두는 한 미술연구소의 소장과 연구원들로 밝혀졌다. P 씨의 자살, 타살 아니면 행방불명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

 

 

거실_세 가지 흔적2

 

 

 

III. 에필로그

공동전시기획 :  이번 전시는 ‘전시기획자 P 씨의 죽음(자살, 타살, 아니면 행방불명)’을 주제로 삼아 기획, 실행된 쿤스트독미술연구소의 공동전시기획이다. 공동전시기획은 ‘현장 기반의 공동이론연구’라는 연구소의 모토를 실천적 차원에서 모색하기 위한 방편으로 기획된 연례 기획전으로 쿤스트독갤러리의 장소 후원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주제를 두고 토론과 스터디를 통해 전시라는 하나의 유형으로 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이번 공동전시기획에는 연구소외부자문위원인 박영택 교수가 흔쾌히 참여를 승낙해서 가시화되기 시작했고 공동기획에 김성호 연구소장, 김석원 초빙연구원, 이형복 책임연구원, 김현지, 박재은, 조두호, 박상돈 연구원이 참여함으로써 구체화되었다.

작가 없는 전시 : 이번의 공동전시기획은 ‘작가가 참여하지 않는 전시’를 만든다. 작가의 작품은 존재하지 않고 전시기획자들의 기획의도만이 전시로 구현될 뿐이다. 물론 이러한 무모한 발의를 하게 된 계기는 박영택 교수 이하 소장과 연구원 대다수가 학부에서 회화, 사진, 영상을 전공한 창작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결코 ‘우리도 창작을 할 수 있다는 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번 전시는 전시기획자가 애초의 기획의도를 작가와 협의하고 중재해 전시가 최종 변경되는 과정을 생략한 채 기획 의도 자체가 전시로 구현되는 결과에 집중하는데 의미가 있다.

 

 

서재_모호한 암시

 

 

비미술관형 미술전시공간 연구 : 이번 전시는 쿤스트독미술연구소의 2008연구주제인 ‘비미술관형 미술전시공간 연구’를 전시의 형태로 구현하는데 일정부분 집중했다. 화이트큐브라는 미술전시공간에 전시를 구현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최대한 끌어안으면서 2008연구주제를 실현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했는데 기획자들이 찾은 방식은 상투적이긴 하지만 ‘연극적인 공간 구성’이었다. 전시공간이라는 느낌을 최대한 탈각시키고 그것을 일상의 공간을 시뮬레이션한 연극적 공간으로 변조시키고자 했는데 그것이 전시형태의 새로운 방식은 아니지만 기획자들의 기획의도를 풀어내는 데 있어 비교적 적합한 방식이었다.

참여지향 전시 : 관람자의 주체적 관람 태도는 옵아트, 퍼포먼스의 참여(participation)로부터 최근 미디어아트의 상호작용(interaction)에 이르기까지 관객에 의해서 완성되는 미술을 표방하기에 이르렀다. 연구소의 공동전시기획, 연극적 공간의 변조, 작가 없는 전시의 유형과 더불어 내러티브의 결말만을 제시하는 방식을 통해서 관객들로 하여금 내러티브의 인과관계를 추리하고 추적하면서 그 내러티브의 완성 과정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고자 한다.

전시기획자 P 씨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아니면 행방불명인지를 밝히거나 P 씨의 가상 죽음이 연구소장과 연구원들의 행방불명과의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를 관람자들이 밝혀내길 바라는 것은 전시를 둘러싼 피상적인 기획의도일 따름이다. 그도 그럴 것이 관객 참여의 전시 구현에서 관람자의 추적의 과정만이 중요할 뿐 기획자들은 P씨의 가상 죽음과 둘러싼 추리 과정에서 그것에 관한 어떠한 정답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단지 가능성 있는 여러 상황만을 제시할 뿐이며 관객이 추리의 과정을 통해 제시하는 모든 답들이 유의미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자 한다.  

아울러 전시는 기획자와 관객만이 점유하는 이번 공동전시기획에서 작가의 의미는 무엇인지, 작가와 기획자가 공생하는 미술계 시스템에서 서로의 위치는 어떠한지도 함께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천장_미스터리

 

전시공간 연출 및 구성  

공간 구성 : 1.현관_위험한 징후 2.거실_세 가지 흔적  3.서재_모호한 암시  4.천장_미스터리

공간 연출 : 윤희선 공간 디자이너 + 공동전시기획팀   

현장 관객 탐문 수사  

관객들은 전시현장에서 다음의 항목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을 적게 된다.

-자살(그가, 왜, 어떤 이유로 자살했을까? 당신의 견해는?)

-타살(누가, 왜, 어떤 이유로 타살했을까? 당신의 견해는?)

-행방불명(그가, 왜, 어떤 이유로 행방불명일까? 당신의 견해는?)

메인 동영상

시나리오 : 김현지(연구원), 박재은(연구원), 조두호(연구원)

감독 및 촬영 : 김석원(초빙연구원)

영상 편집 : 김석원(초빙연구원), 박상돈(연구원)

유서 동영상

유서 : 박영택(연구소외부자문위원),

유서대필 : 김성호(연구소장)

촬영 : 조두호(연구원)

서재 동영상

촬영: 조두호(연구원)

현장 동영상

촬영 : 김성호(연구소장), 김석원(초빙연구원)  

영상 편집 : 김석원(초빙연구원), 박상돈(연구원)

현장 수사 스케치 및 현장 보존

김현지(연구원), 박재은(연구원)

홍보마케팅

이형복(책임연구원)

연구소 외 도움주신 분들

박영선(가구 협찬 및 지원), 하영수(영상장비 협찬), 신현도(야구 동영상 캡쳐), 창남(현장사진 촬영),

 
 

 

 
 

vol. 20090217-전시기획자 P 씨의 죽음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