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남 展

 

 나무 위에 아크릴, 자개, 2008-2009

 

 

학고제

 

2009. 2. 4(수) ▶ 2009. 2.24(화)

서울시 종로구70 소격동70 |  02-720-1524

 

www.hakgojae.com

 

 

나무 위에 아크릴, 2008-2009

 

 

한국의 대표 페미니스트 화가 윤석남 개인전

―2008년 아르코 미술관 전시 <윤석남-1,025: 사람과 사람없이>에 이어지는 108마리 ‘나무-개’들의 진혼제 

학고재 화랑에서는 페미니스트 화가 윤석남(1939~)의 개인전을 오는 2월 4일부터 2월 24일까지 소격동 학고재 전관에서 연다. 이번 전시는 2008년 10월 서울 아르코 미술관에서 열린 <윤석남―1,025: 사람과 사람 없이>展의 연장선상에 있다. 사람들의 변덕스런 마음 때문에 마치 쓰레기처럼 버려진 유기견들을 형상화한 전시가 <윤석남―1,025: 사람과 사람 없이>라면 학고재의 이번 전시는 108마리의 ‘나무-개’들을 통한 유기견들의 진혼제라 할 수 있다.

전시장 본관에는 아르코 미술관 전시 때 선보였던 작품 중 200여 마리의 나무-개들을 새로이 연출하여 전시하고, 신관에서는 신작 ‘108마리의 나무-개들’이 전시된다.

 

나무-개 작업의 시작

윤석남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자각과 여성 내면의 세계를 회화와 설치작품으로 형상화해온 작가이다. 남편과 자식을 돌보느라 늘어진 어머니의 팔 조각, 핑크색 소파에 소름 돋게 뾰족이 솟아난 못 등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통해 여성들의 희생, 그리고 그들이 살아온 부당한 삶을 표현해왔다. 지난 2004년, 버려진 유기견들을 거둬 기르는 이애신 할머니와 만나고부터 윤석남은 5년 동안 일체의 외부활동을 접은 채 1,025마리의 나무-개를 조각하기 시작했다. 나무-개 작업은 그동안 윤석남이 지속적으로 다뤄왔던 대상, 즉 여성이 아닌 동물을 형상화한 작업이다. 하지만 이 역시 버려진 개들의 부당한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윤석남은 이애신이 돌보는 1,025마리의 개를 보았을 때 자신을 강타했던 놀라움과 깨달음, 비극과 희망을 동시에 품은 그 전율을 동시대인들이 함께 느끼길 원했다. 그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손으로 개 1,025마리를 형상화해야 했다. 나무를 잘라서 개의 느낌이 나도록 한다는 건 참으로 막막했다. 그래서일까. 처음 만든 200여 마리의 개들은 아직 ‘개’가 되지 못한 그냥 나무였다. 그러나 윤석남은 거의 일 년 동안 개를 드로잉하면서 개의 해부학에 파고들었고, 결국 개들은 그녀의 손끝과 오른쪽 뇌 사이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실체가 되었다. 그녀의 수없는 드로잉은 개의 타자성을 인정하는 과정이었고, 그 타자성 속에서 개들/‘개’를 만나는 과정이었다. 그렇기에 윤석남의 나무-개는 현상이면서 개념이다. ‘피부’를 지닌 개별적 개이면서 또 보편적 ‘개’인 것이다.

 

 

나무 위에 아크릴, 2008-2009

 

 

나무-개를 통해 보여준 인간의 모습

윤석남은 지난 <윤석남―1,025: 사람과 사람없이>展을 준비하면서 신앙심에 가까운 뜨거운 열망 같은 것을 작품에 쏟아 부었다. 그런데 그는 안타깝게도 전시회에서 작품을 처음 공개한 순간부터 작업 당시의 그 열기와 열망이 모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전시를 보는 사람들은 단순히 보이는 것―버려진 1,025마리 개에 대한 측은지심을 느끼긴 했지만 그 이상을 보지는 못했다. 윤석남은 단지 버려진 개를 조각해 모아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통해 현대문명이 만든 인간의 모습, 그 유형의 모순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다. 

“사실 나는 단순히 버려진 개를 모아둔 게 아니고, 현대문명이 만들어준 인간의 모습, 그 유형의 모순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데. 모든 게 나를 위해 존재하고, 타인에 대한 사랑 같은 건 우스꽝스러운 게 되어버리는 거, 삶이 너무 나 중심으로 리얼해지는 거. 내면 깊숙이까지 참, 천박하다고나 할까, 그 안에는 여성성이나 우정 같은 게 개입되지 못하고 오로지 나의 이익에 천착하는 것, 모든 면에서.” -작가 인터뷰 중 

“부재하는 개들에게도 눈은 있어야 해요”

아르코 미술관 전시를 마친 후 윤석남은 다시 108마리의 나무-개들을 형상화하기 시작했다. 백팔번뇌가 108알의 염주와 108번의 종울림(백팔종)으로 표현된 적은 있지만, 108마리 개의 모습으로 표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르코 미술관에서 전시할 때만 해도 존재를 박탈당한 개들, 부재하는 개들은 눈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 전시회를 겪으면서 그녀는 “이제 내게는 눈이 없는 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라고 고백하는 어떤 새로운 의식의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다시 눈을 되찾은 존재 없는 개들은 환상의 세계에서나 존재하는 화려한 꽃들, 혹은 촛불처럼 보이는 붉은 불꽃 등을 등에 달거나 곁에 두고 있다. 108이라는 숫자는 분명 불교에서의 백팔번뇌를 가리키고 있다. 숫자가 말해주듯, 윤석남은 나무-개들에게 해탈을 위한 어떤 의례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 전시를 통해 그것을 실천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새로 작업된 108마리 개들의 진혼제를 통해 그들의 해탈과 구원을 소망하는 동시에 버려지는 것들―버려지는 생명체에 대해서조차 무감각해진 동시대인들의 고단하고 거친 삶을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나무 위에 아크릴, 2008-2009

 
 

 

 
 

vol. 20090204-윤석남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