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병상 展

 

<SHE IS…>

 

겨울Winter #1_152x120cm_archival pigment print_2007

 

 

쿤스트 독

 

2009. 1. 30(금) ▶ 2009. 2. 12(목)

110-034 서울시 종로구 창성동 122-9 | T.02-722-8897

 

www.kunstdoc.com

 

 

통로a passage_300x125cm_archival pigment print_2007

 

 

파편적 기록, 절대적이지 않은 낯설음

                                       김석원(쿤스트 독 미술 연구소 미디어 팀장)  

 

도큐먼트 안에서 가능한 인식 - 언캐니와 인덱스

19세기 중반에 발명된 사진의 등장은 일반 사람들이 외부세계의 풍경에 대해서 말로만 언급했던 사실을 기록하고 설명해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런 역할이 가능했던 이유는 사진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기능인 리얼리티의 특성때문이었다.

그 후에 발명된 영화는 사진과 마찬가지로 리얼리티의 요소를 적극 활용하여 대중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정지된 사진이미지를 1초에 24 프레임으로 활성화 시켜서 움직이는 환영(illusion)을 보여준다. 영화의 기본적인 특성을 세부적으로 분석해보면, 움직이는 장면은 지속하는 지금의 상태를 강조하고, 정지는 그때의 상황을 다시 보게 한다. 또한, 영화는 환영적 특성에서‘언캐니(Uncanny)’의 효과를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언캐니란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1856-1939)가 정신분석학 이론에서 언급한 용어로, 우리말로 해석하면‘낯선 친밀함’,‘두려운 낯설음’이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언캐니가 적용된 고전적인 영화를 예를 들어보면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The arrival of a Train)‘이 적합하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 이유는 관객들 앞으로 돌진하는 열차의 모습이 너무나 사실적이며, 일상에서 자주 보았던 열차의 실제 모습과 똑같은 이미지가 관객의 시선 앞으로 다가왔기에 관객들은 당황하고 놀랬던 것이다. 이처럼, 관객들이 움직임을 처음으로 보면서 느끼는 혼란스러운 상태가 언캐니 효과인 것이다. 이런 언캐니 효과는 사진의 제작과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진의 경우는 정지(Stillness) 되어있는 삶의 어느 순간을 기계적인 방법을 통해서 지속시키고 영원히 붙잡아둔다.

영화 평론가 앙드레 바쟁(Andre Bagin,1918-1958)은 사진이 가지고 있는 특성 중에 ‘고정된 인덱스’를 언급하는데, 사진은 한순간의 기록을 하는 행위를 통해서 정지되는 시간의 순간으로 파악했다. 즉, 사진에 의해 시간이 기록되면, 과거의 것들은 미래를 향해서 현재까지 지속되며, 이런 지속성을 인덱스의 특징이라고 생각했다. 사진적인 인덱스의 의미는 현재 존재하는 과거의 흔적인 것이다. 시간은 생명이 있는 것에서 생명이 없는 것으로 재현과정을 통해서 정지성이라는 죽음의 길을 가게 된다.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는 것 사이의 경계는 프로이트가 언급한 ‘언캐니’ 에 있어서 매혹적이고 무의식적인 불안과 관계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사진은 삶과 죽음의 불확실한 관계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방병상의 사진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록의 의미뿐만 아니라, ‘현실적 상황을  배반하는 방식’ 을 이용한다. 이것은 인덱스의 미학과 감정을 함께 결합시키는 방식이다. 다르게 해석하면, 우리가 보고 있는 지시적인 대상이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구분하기가 힘들게 한 것은 지각이 가지고 있는 감성적인 능력을 배반한 것이다. 예를 들면 방병상의 (사진2)의 강풍은, 일본의 판화가 호쿠사이(Hokusai)의 ‘에이리지의 광풍(A High wind in Yeijiri, from "Thirty- Six views of Fuji’,1831-33)‘을 연상시키게 한다. 이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확한 순간을 디지털기술의 회화적인 효과로 결합한 것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에이리지의 광풍’ 은 낯선 길을 가는 것처럼 느껴지며, 연극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는 작품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결정적 순간을 묘사 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연극 즉, 허구의 사실을 통해서 진실을 얘기하는 방식이다. 이런 작용을 로라 멀비(Laura Mulvey,1941- )는 ‘비인덱스 적인 기술의 힘을 통해서 인덱스 적인 순간의 미학적인 개념을 만들었다’ 고 판단한다. 하지만, 문제로 지목되는 부분은 허구적으로 만들어진 순간을 순간이라고 언급할 수 있는가 에 있다. 방병상의 사진과 연관해서 생각한다면, 인덱스를 비인덱스 적인 순간으로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사진의 기본적인 속성인 기록적(Document)인 측면은 그대로 유지한다. 그의 사진에 드러나는 형식적인 측면은 호쿠사이와 동일한 방법을 사용한다. 즉, (사진2) 는, 해가 떨어지기 직전에 촬영한 비오는 날을 배경으로 사진작가가 인공적인 상황을 연극적으로 연출한 것이다. 하지만 방병상의 사진은 호쿠사이와 다른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이 장면에서 바람의 저항을 이겨내기 위해서 우산이 꺾이는 것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가는 여자의 모습은 (사진3). 거리의 발라드의 거리에 서있는 4명의 여자의 사진으로 다시 순환된다. 이런 의도는 영화적인 방법을 차용해서 한 장면이 다른 장면으로 이동하고, 넘나드는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다시한번 방병상의 사진을 사진적인 인덱스의 의미로 판단하면, 현재 존재하는 과거의 흔적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 작용은 삶과 죽음 사이의 혼란의 결과로서 언캐니를 지향한다. 시간은 생명이 있는 것에서 생명이 없는 것으로 재현을 통해서 정지성이라는 죽음의 길을 따라 움직임을 나타내고,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는 것 사이의 경계는 언캐니에 있어서 매혹적이고 무의식적인 불안과 관계한다.   

 

 

선물present_180x135cm_archival pigment print_2008

 

 

색채 안에서 가능한 로고스 - 상실, 소멸, 욕망 그리고 잔상

방병상의 도시 이미지에 드러나는 색채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보면, 색채를 바라보는 고정관념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대상을 바라보고 결과물로 재현된 사진을 볼 때, 사진으로 재현된 색채는 실제보다 채도가 높게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굳어진 지각적 행위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대상의 색을 바라보는 것이 ‘관습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고정관념을 버리고 ‘재 인식된 바라보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이런 모습은 ‘현실적인 것이 비현실적’으로 역으로 ‘비현실적인 것이 현실 적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색으로 자신이 느낀 상황을 얘기 할 수 있다. 다른 의미에서 이것은 ‘상실과 소멸’의 문제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 체험은 일상에서 강한 빛의 작용으로 인하여 대상이 지나치게 밝아 보이거나, 희미하게 소멸되어 보이는 효과와 유사하다. 어두운 곳에 있다가 갑자기 밝은 곳으로 향할 때, 반대로 밝은 곳에 있다가 어두운 지점으로 들어갈 때, ‘자신의 존재감이 상실’ 되는 현상으로 색의 고유한 기능이 다르게 느껴 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색이 밝게 보이는 효과는 대상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기능이 뚜렷한 형태로 지각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소멸되어 버리는 효과를 부추킨다.  

진휘연의 논문 <미술과 디자인의 통합>: ‘무라카미 다카시의 미술상품과 욕망’ 을 언급했던 내용을 보면, “욕망은 현재 상태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그 너머를 계속 지향하면서 다른 곳으로 되어가는 과정에 그 실체가 있다”고  얘기를 한다. 그의 말을 풀어서 해석한다면 바라보는 주체에 따라서 대상의 현실너머에 다른 무엇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 현실을 지각할 때 작가의 욕망에 따라서 대상의 색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병상의 사진으로 돌아가 보자. (사진4).의 벽면을 가득매운 11개의 수증기는 관객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가? 수증기는 첫 번째, 작가가 체감적으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기록한 것으로서 구름의 형태가 가지고 있는 메타포(metaphor)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구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또한, 수증기 사이에 데이터를 기록한 텍스트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은 구름의 형태가 온도, 풍향, 풍속에 따라서 수증기의 양과 형태가 결정된다. 예를 들면, 수증기 사이에 있는 ‘20-02-08(2000년 2월 8일). 5,3℃(온도), NE (남동풍), 5.0m/sec(풍속)’을 나타낸 것으로 작가는 텍스트와 기호를 통해서 개념적인 실험을 한다.

두 번째, 수증기와 하늘과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수증기의 배경에 해당하는 하늘은 날씨를 나타낸다. 하지만 여기서 하늘의 색이 파란색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늘 바라보는 하늘이 파란색인 것은 사실인가? 아니면 우리가 파랗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중요한 점은 우리가 하늘이 파랗다는 것을 당연하게 인식한다는데 있다. 요한 볼프강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1749-1832)의 언급처럼 파란색은 마지못해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끌려서 바라보게 되는 경험을 유도하는 색이다. 세 번째,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형이상학적 구름의 형태는, 현실적인 세계에서 공기 중으로 날아가 버리는 시각적인 현상으로 허무함 그자체로서 무의미하게 보인다.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작가가 탐구하려는 자신만의 ‘로고스(logos: 판단을 인도하는 기준)’가 드러난 것으로 생각된다. 방병상의 수증기 사진은 외면의 세계를 최대한 절제해서 표현한 결과물이다. 그것은 현실에서 존재하는 형상들이 완전하게 사라지기 직전의 상태에서 반복적인 잔상을 떠오르게 한다. 파란색 하늘과 흰색 구름을 지속적으로 응시하고 있으면 괴테의 절대적인 끌림의 색채를 다룬 부분을 이해해야한다. 괴테의 체험을 언급했던 최영주의 <색깔이 속삭이는 그림>을 살펴보자. “어느 날 저녁, 괴테는 여관에 들어갔다. 그는 눈부시도록 흰 얼굴과 검은 머리카락에 진흥색의 조끼를 입고 있는 적당한 신장을 지닌 한 하녀를 발견했다. 희미한 불빛이 있는 곳에서 괴테는 그녀를 얼마동안 응시했다. 그녀가 나가자마자 그는 그의 앞에 있는 흰 벽에 밝은 빛으로 둘러싸인 검은색의 얼굴과 아름다운 담녹색의 윤곽이 뚜렷한 의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 괴태가 본 것은 유령이 아니라 하녀가 남기고간 잔상이다.” 괴테의 체험을 통해서 방병상의 잔상효과를 생각해보자. 반복적으로 수증기가 쏟아내는 이미지는 아무것도 아닌 무의미한 작용으로 볼수도 있다. 하지만,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 심리상태, 교육의 정도에 따라서 심리적으로 완전히 다른 무의식의 ‘잔상효과’를 획득하게 된다. 더 나아가 이런 잔상효과는 ‘장면과 장면’, ‘색과 색’이 서로 만나고, 부딪치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무형의 '언어 코드(Verbal code)'로 재구성한다.

 

공간 안에서 가능한 자유 - 시선과 응시의 상호 작용

방병상의 (사진5). 선물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자. 이사진의 부조리한 분위기는 커피숍에 얼굴을 마주보고 앉아있는 두 여자 사이의 중간에 있는 흰색 탁자에 ‘금색 (존재의 의미형)’ 으로 포장한 선물과 ‘인공적으로 만든 꽃 (인공적인 꽃은 (사진6). 연두색 창문의 여자가 샤워를 하는 사진으로 공간 이동한다) 사진’과 ‘인공적인 새’ 가 놓여있다. 반대편의 여자는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시무룩한 표정을 하고 있다. 마치 선물이 달갑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선물 포장지를 뜯었을때 여자의 행동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기도 하다.

요약하면, 사진에 등장하는 오브제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암시, 사건의 전개, 징후를 드러내는 기능을 한다. 이런 설정은 암묵적으로 두 여자의 섹슈얼리티(sexuality)에 대한 의심이다. 그들의 관계가 지속되기 힘들 것이라는 상황을 암시하며, 거울속의 남자는 왼쪽의 여자를 기다리는 듯하다. 오른쪽 여자가 앉아있는 창문 너머에는 아파트 건물이 희미하게 보인다. 왼쪽 여자의 배경에 해당하는 거울에는 얼굴이 가려진 남자가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모습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이 사진은 시선(regard)과 응시(gaze)라는 측면에서 벨라스케스의 <라스메니나스>를 연상하게 한다. 관객이 사진을 처음 접할 때, 오른쪽 어깨에 숄을 걸치고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여자의 얼굴을 응시하게 된다. 그녀는 한 지점을 응시하는데, 그 지점은 왼쪽 여자의 오른쪽 팔 아랫부분이다. 이 장면은 사진의 공간 안에서 제한되어 있으며, 우리가 실제로 사진을 바라보는 순간에 눈에 잘 띄지 않는 은폐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왼쪽의 뒷모습을 한 여자는 관객이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지만 가상의 선을 그었을 때 오른쪽 여자의 얼굴을 향하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게 한다. 또한, 빛의 흐름은 왼쪽에서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관객을 거울 속의 남자에게 집중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왼쪽과 오른쪽의 여자를 ‘가시적 (볼 수 있는 것)’일 수 있게 하는 것도 빛의 작용이며, 전체화면 중에서 거울을 인식하게 하는 것도 빛이다.  두 여자가 있는 공간에서 왼쪽 윗부분에 위치한 거울을 보면, 위에는 흰색 옷을 입고 아래는 검은색 바지를 입은 남자가 다리를 꼬고 앉아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거울에 투사된 남자의 모습은 두 여자가 있는 ‘현실적 공간’ 에 물리적으로 함께 있지 않지만, 동일하게 거울 속과 밖에서 두 여자와 한 남자가 동시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거울의 역할은 앞에 앉아있는 두 여자를 관찰하면서, 관객들에게 관찰되고 있는 상호 관계성을 드러낸다. 거울은 드러내고 있으면서 많은 부분을 감추는 역할을 한다. 거울은 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느껴지지 않으며, '안과 밖', '숨김과 드러냄' 의 관계성을 생각하게 한다.

거울 속 남자의 얼굴은 ‘동그란 원’에 가려서 어디를 응시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관객의 입장에서 유추 할 수 있는 것은 왼쪽의 ‘카멜색 가죽옷’ 을 입은 여자를 응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은 가시적으로 응시하는 부분이 오른쪽 여자라면 거울 속의 남자가 ‘비가시적(볼 수 없는 것)’ 으로 응시하는 사람은 왼쪽 여자인 것이다. ‘카멜색 가죽옷’ 을 입고 등을 돌린 체 청바지 차림으로 앉아있는 여자의 갈색 머리를 집중적으로 살펴보자. 여자의 머리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으면 이상한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특별하게 지적하지 않으면 이 여자의 뒷모습이 왜 이상한지 알 수 없다. 그것은 머리의 가장 윗부분에서 목까지의 머리카락 즉, 뒤통수에 해당하는 부분이 라캉의(Jacques Lacan, 1901 -1981 )의 표현을 빌리자면 ‘음경(남근)’ 의 뒷모습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해석이 지나치게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작가의 의도를 과장해서 언급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커피숍이라는 공간을 설정하고 연출을 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결정되는 부분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런 형상을 발견했다는 것 보다는, 분명히 관객의 눈앞에 존재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존재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 즉,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방병상의 사진을 분석하면서 관객들은 무엇을 표현 한 것인지 이해되지 않고 복잡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이유는 도시를 중심 테마로 주변부의 밤섬, 아파트, 도시야경, 길거리 사진 등 각각의 장면들이 단독적으로 존재하기도, 다른 사진과 연관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분열된 각각의 상황들을 관통하는 ‘서사(narrative)’ 가 명료하지도 않다. 결국, 작가가 의도한 것은 대상의 고정된 이미지를 거부하고, 보편적인 특성을 유보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마지막으로 사진에 남아 있는 것은 ‘흔적 혹은 징후’ 이다. 아울러 방병상이 이번 전시에서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은 현실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관점을 일탈(逸脫)하여 자신만의 개념적 사유를 선보였다. 그는 획일화된 사회에서 특정한 것만을 보고 다른 것을 바라 볼 수 없는 고정된 시각, 사회적 습성을 거부한다.

작가의 의도는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시성의 배치’ 로 요약된다. 또한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사진에 영상언어를 응용해서 장면과 장면이 서로 전이되고, 순환하는 구조적인 결합을 시도한다. 이런 방법은 일반적인 형식과 담론을 지향하지 않기에, 관객에게는 각각의 장면이 파편적인 기록으로 표현된 절대적이지 않은 낯설음을 선사한다.   

 

 
 

 

 
 

vol.20090130-방병상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