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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호 展
천지연폭포_162×130cm_순지에 수묵_2008
노암갤러리
2008. 11. 12(수) ▶ 2008. 11. 23(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33 | T.02-720-2235
성산일출봉_190×650cm_순지에 수묵_2008
한국화의 전통을 지키며 작업하는 작가가 과거보다 드문 요즈음 조인호는 전통을 지키되 맹목적인 답습의 형태가 아니라 현대적인 변용이 가미된 새로운 형태로 수묵화 전통의 계승을 고민한다. 조인호는 작품의 주제에 있어서 전통회화에서 일관되게 담아내고 있는 자연에 대한 순응과 자연과 인간의 합일의 정신을 온전하게 따르고 있으며 오랜 전통 속에서 선배들이 지켜온 먹의 표현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조인호의 작품에서 현대적인 변용의 참신성은 주제보다 형식에서 더 잘 드러나는데, 그의 화면은 우선 크기에 있어서 파노라마적인 방대함을 보여줌으로써 그가 과거의 작품들과 조금은 다른 자세와 관점을 가지고 창작에 임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도전성과 자신감이 함께 담겨있는 대작을 보다 밀도 있게 제작하기 위하여 작가는 수년 전부터 회화적 탐구와 함께 서예에 대한 수련을 병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한 대형 화면 속에 작가는 자신의 생활의 궤적을 따라서 그림을 그려 나아간다. 화면 속에서 작가는 가족과 생활하며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자신의 활동기반인 서울에서부터 처가가 있는 제주도까지의 공간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산과 바다, 폭포와 바위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 우리 주변의 이웃들의 모습을 이채롭고 다양한 시각으로 담아내고 있다.
북한산 오르는 길과 내려오는 길_162×130cm_순지에 수묵_2008
그런데 그가 묘사하는 파노라마적 풍경은 서양식 일점 원근법이나 전통 산수에서 보이는 화론에 입각한 구도와 다르게 다시점(多視點)적이고 서로 다른 시간이 한 화면에 드러나기도 한다. 제주도행 비행기에서 반복적으로 관찰한 산과 바다의 모습은 비행기의 진행에 따라 그 모습을 대형 화면에 전개시키면서 시각적 이미지를 펼칠 뿐 아니라 이미지의 전개와 병행하는 의식의 연속적 흐름을 담아내고 있다. 말하자면 그의 작품 한 쪽에서 다른 한 쪽으로 시선을 옮겨가면서 우리는 작가가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저 밑의 산하의 모습을 어깨너머로 함께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그런데 그렇게 구성되는 대형 화면은 전체적으로 장관을 이루지만 부분 부분을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관람자들이 바라보는 시점은 작가의 의도적 왜곡에 의해서 통일성과 일관성을 보여주지 않고 사물의 크기도 과학적 조형 어법에 맞지 않게 서로 크기가 다르게 표현됨으로써 우리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서 시각적 교란과 인식의 충격을 경험하게 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평범한 전통산수에서 이전에 맛본 적이 없었던 새로움과 현대성을 체험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런 방법으로 한 화면 안에 자신이 다양한 위치에서 바라본 대상의 모습을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으며 화면 속의 대상 하나하나에 대한 세필 묘사를 하는 과정에서 일상사에서부터 철학적인 주제에 이르기까지 그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수락산_36×60cm_순지에 수묵_2008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전시장의 배치에 있어서도 상징적으로 시간과 의식에 따라 공간이 흐르는 형식으로 작품들을 구성하고 있다. 아래층 전시장에서는 서울에서 제주에 이르는 동안의 시간과 공간이 펼쳐지는 대형 작품이 설치되는데 작품이 시작되는 부분에 이어서 이러한 공간의 전개가 끝나는 부분에는 상상의 섬 이어도가 배치되어 한반도의 남쪽 부분이 상상의 영역까지 전부 표현되는 대형 작품에 의한 파노라마적 광경을 펼친다. 이러한 대형 화면은 먹과 세필로 미세하게 묘사되며 주로 갈필을 반복적으로 짧게 그어 각각의 선들을 살아있는 생명처럼 숨쉬게 만들어주고 있다. 전통 산수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준법이나, 표준 렌즈로 사진을 찍었을 때 나타나는 원근법적 비례가 지켜지지 않고 있지만 조인호의 작품은 그러한 전통을 거부하기보다는 현대적인 계승과 연장, 그리하여 현재적인 변용으로 전통 산수화를 확장시키고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화면 전체를 놓고 볼 때 작가는 동양화의 여백 개념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제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암산과 수락산_190×520cm_순지에 수묵_2008
대형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조인호는 먹 이외의 색채를 극도로 제한하여 일부 작품은 먹색만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마무리되기도 하고 일부 다른 작품은 바닷물 색이나 사물의 일부분에 담채 정도의 착색이 가해지기도 한다. 작가 스스로 이야기한 적이 있는 것처럼 작가는 현대미술에서 지나치게 장식성을 강조하고 상업적인 취향에 이끌리게 되는 한국화 창작의 길을 염려의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스스로 긍정적 의미에서의 전통화법의 수호에 대한 의무감과 책임감을 부여하고 있다. 전시장 위층에서 전개되는 두 개의 공간은 서울과 제주를 나누어 두 공간에서의 작가의 경험을 표현한 작품들이 소개된다. 서울에서 관악산이나 수락산과 북한산을 오르며 느꼈던 작가의 다양한 생각과 시각은 제주행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산하의 모습과 비슷하게 파노라마적인 광경으로 전개되는데 그 안에 인물을 배치하고 작가 자신이 산을 오르면 바라본 산에 대한 시각이 곳곳에 적용됨으로써 마치 입체파의 다시점적인 묘사나 일종의 풍속화적인 에피소드의 표현같은 요소도 함께 발견하게 되는 재미를 주기도 한다. 힘차게 물이 낙하하는 위치에서 위를 올려다 본 모습을 그린 천지연폭포나 작가가 조형 수련을 하고 있는 학교가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관악산을 마치 우주선에서 지구를 바라본 것같이 입체적으로 묘사한 작품, 그리고 도봉산 정상에서 발아래를 내려다 본 풍경을 엷은 녹색과 핑크색 톤으로 묘사한 작품 등은 전통적 화법에 충실하면서도 서양화나 사진의 그 어느 작품 못지않은 현대적 감각을 담고 있다.
관악산_130×162cm_순지에 수묵_2008
지난 해 관훈갤러리에서 백의산수(白衣山水)를 주제로 개최했던 개인전에 이어 이번에 발표하는 작품을 통해서도 조인호는 전통 산수의 정신성을 따르면서도 표현 기법이나 작품 제작의 프로세스에 자신의 독창적인 방법을 적용시킴으로써 한국화를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미술 속에서 당당하게 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커다란 화폭 앞에서 오랜 기간 씨름해 온 그의 노력이 다시 한 번 중간 결실을 맺는 기회에 작가의 진정성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한 사람으로서 참여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앞으로도 조인호의 지속적인 예술적 사유와 기법의 성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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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0081112-조인호 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