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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규 展
토포하우스
2008. 11. 5(수) ▶ 2008. 11. 11(화) 오프닝 : 11. 5 (수) 오후 6:00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84 | 02-734-7555
우진문화공간
2008. 11. 12 (수) ▶ 2008. 11. 19(수) 오프닝 : 11. 12 (수) 오후 6:00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 1062-3 | 063-272-7223 ※ 전주 전시는 월요일엔 휴관 합니다.
아침 산책 길
- 내면, 본질로의 올바른 회귀
이원복 | 국립전주박물관 관장, 한국미술사
변화의 당위성當爲性 - 물의 속성은 하늘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 흐름이며, 이로서 바다를 이룹니다. 긍정과 부정을 떠나 이 세상에 바뀌고 변하지 않는 게 있을까? 자주 이야기되는 한국적韓 國的이란 단어에 대한 의미도 이 점에 대한 바른 인식을 맑은 고딕으로 할 때 비로소 선명해진다. 우리 민족이 이룩한 이른바 위대한 전통문화 가운데 선사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영구불면永久不變의 그 어떤 것이 있는가? 존재 여부는 차치하여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한국적이란 것보다는 오히려 인류 모두에 통용되는 보편적普遍的인 것이라 함이 옳을 것이다. 이 점을 직시直視해야 한다. 지역이란 좁은 공간을 탈피해 세계적 나아가 국제성 획득은 이 보편성 여부에 의해 비로소 가능하다. 전통은 박제剝製나 화석化石처럼 결코 고착된 것이 아니다. 완성형完成形 아닌 진행형進行形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모든 시대 각자의 행동이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살아 꿈틀거리기에 새로운 형태의 창출이 가능하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 이를 극명하게 한다. 변한다는 말은 두 의미로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초심을 잃거나 지조를 팽개치고 세상과 야합이란 부정적 의미와, 나날이 새로워진다는 긍정의 양면성을 지닌다. 여기서 변화나 변모, 변신은 변절變節 아닌 후자를 칭한다. 예술가가 변화,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는 입력된 대로 같은 제품만 토해내는 기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나 변화 과정 모든 순간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비 이전 애벌레나 매미 이전의 굼벵이 순간도 생명이기에 중요하다. 다만 애벌레나 굼벵이 그리고 병아리를 한 주체의 전부로 보는 시각은 잘 못이다. 굼벵이가 아닌 매미, 알을 깨고, 씨가 아닌 싹과 꽃과 열매, 애벌레 아닌 성충은 변태變態의 참 모습 아닌가.
변하지 않았다면, 변화가 두려워 숨거나 역사의 현상에서 도피했다면 멸종된 그 어떤 종種처럼 인류에게 오늘은 없다. 오늘이 없는데 내일이 있을 리 없다. 어제가 오늘이 아니듯 내일도 오늘은 아니다. 움켜쥐었지만 빠져나간 물처럼 세월은 잡을 수 없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내가 아님을 자명한 귀결이 아닐 수 없다. 변화變化와 그 결과 드러난 변모變貌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 존재의 궁극窮極이다. 변화를 추구하며 변했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이다. 탈바꿈은 살아있는 자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날로 새롭게 나날이 새롭게 또 새로워지라 하지 않았던가. 늘 새로움을 창출하는 조화옹造化翁을 닮은 예술가에겐 이 점은 절실하다. 그렇기에 고민하는 것이며 고뇌의 진원지도 이에 있다. 변화는 변절이 아니다. 그것은 순리順理와 역천逆天 만큼이나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다. 화력畵歷 30년을 웃돌며 1993년 첫 전시부터 그 동안 송만규의 그림세계도 지나간 세월만큼 바뀌고 달라진다. 예술을 향한 식지 않은 열정이 없다면 그는 천재天才일지라도 박제일 뿐일 것이다. 끝없는 변신을 향한 몸부림은 치열熾熱한 삶의 모습 그 자체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의 분신인 작품은 숨김없이 이를 노출한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식지 않는 정열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예술을 사랑하는 이만이 가능한 삶의 궤적이며 존재의 자기 증명이다.
우리 그림에의 새로운 시선
- 사랑은 무에서 유를, 아름다움을 키웁니다. 실제 그림에 손을 대지도 않고, 화가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나 남모를 고뇌에 동참하지 않은 이들도 그림을 이야기 한다. 이는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근대이전(이 말의 타당성도 곱씹어볼 사항이겠으나) 전통사회에서 문인화가의 존재는 오늘날의 아마츄어 화가와는 차이가 크다. 단지 타인의 연주를 통해 음악을 감상하는 것 아닌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직접 연주하면서 듣는 것에 비유될 일이다. 문인화가 내지 선비화가인 그들은 단순한 이론가 아닌 시대의 미감美感이며 창작創作의 주체主體란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글을 아는, 붓을 잡은 지식인은 그들이 그림을 그릴 때도 같은 붓이기에 기초가 단단함은 자명한 논리이다. 글씨와 그림이 샴쌍둥이 같이 붙은 그래서 서화書畵로 지칭되는, 서구와 달리 글씨를 예술세계에 포함시킨 한자문화권이기에 가능한 논리이다. 한편 이들 문인화가들이 단지 한가로움을 달래고 메꾸기 위한 파한破閑이나 여기餘技 차원으로만 생각함도 잘못이다. 이를테면 조선왕조에 있어 평화로운 정경의 개 그림을 남긴 이 암(李巖,1507-1566)이나 조선 묵죽의 정형을 이룬 이 정(李霆,1541-1622) 같이 왕의 친척인 종친宗親으로 안온한 삶이 주어진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당쟁으로 입신양명立身揚名이 거세된 이들, 서얼庶孼 경우가 그러하다. 추사에게 제주도 귀양이 없이는 <세한도歲寒圖>의 존재도 없다.
중국의 경우도 공자 부활처럼 문인화에 대한 재인식이 이루어졌다. 정밀하고 원색을 사용한 공필工筆 가까운 것만을 조선화로 본 북녘의 시선도 1980년대 이후 변화를 보여 수묵담채로 제작된 선비그림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루어졌다. 아울러 우리 전통회화의 주류가 수묵담채라 본 남녘에선 채색화의 경우 왜색倭色 일변도로 간주한 견해에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는 웅혼한 필치와 강렬한 색감의 고구려 고분벽화, 화려 섬세하며 장엄한 고려불화와 조선불화, 얼과 외모 모두를 담은 핍진逼眞한 초상화, 민화를 통해 알 수 있듯 색채에 대한 빛나는 전통을 지녔다. 단지 일반감상화의 주류가 수묵담채라는 제한된 의미로 사용될 사항이다. 그러나 일단 작품이 화가의 품을 떠나면 작가의 의지와 별개로 시대성과 역사성을 지닌다.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평자는 작가와 일반 감상자 사이에서 간극을 연결해 소통시키는 역할이 본령일 것이다. 문화재 해설사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기존의 축척된 연구 성과가 있어 어려움이 없으나 모두가 새로운 작품은 읽어내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기에 설명도 용이하지 않다. 글씨와 그림은 이를 쓰고 그린 이 자신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해서 화가에 대한 이해가 우선인지 모른다. 내겐 작가와 몇 번의 만남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만남이 그러하듯 잦은 만남 뒤에도 상호 오리무중五里霧中이 있고 한 두 번의 조우遭遇라도 깊은 교감을 경험케 되는 경우도 있다. 송만규 형의 경우 분명코 후자이다. 말수 적은 조용하며 차분한 첫 인상은 그의 지인이기도 한 최열 형과 통한다. 삶의 여정은 얼굴 주름만이 아닌 영혼의 창窓인 눈에도 드러난다. 맑고 고요하고 깊은 눈이다. 그간의 개인전 도록을 살피면서 화가를 전혀 몰랐던 시절 본 작품들을 도판으로 접하자 반가웠다. 유년시절 친구를 만난 것과 진배없었다. 전시회를 들른 기억도 되살아난다. 이 기억이 없다면 감히 그의 그림에 관한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나 내게 다행스러운 것은 옛 그림의 경우 한 번 본 것은 바로 기억의 파일에 저장된 양 떠오른다는 점이다. 지나온 그리고 오늘도 이어지는 그림 여정旅程 - 따사로운 시선은 이웃에서 대자연으로 우주로 넓어집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어둠이 짙어갈 무렵 조용한 박물관에서 이번 전시를 위해 그린 그림들을 하나씩 펼쳐 보면서 무엇보다도 그림이 주는 청신감에 마음이 맑아지며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혹자는 고아古雅한 전통그림에 익숙한 내 개인적 취향 탓(?)이라 칭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 이런 느낌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님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차라리 전통적 시각, 우리 그림의 긴 역사적 흐름을 배경 위에 그의 그림을 올려놓고 본다고 하면 나는 굳이 손사래 치지는 않겠다. 이번 전시를 위한 그림만이 아닌 변화의 궤적을 살피느라 과거 전시의 잔상을 애서 기억에 떠올리며 며칠을 그간 전시도록과 말없는 대화로 보내야 했다. 개인전이야 90년대부터니, 80년대가 잠겨져 있다. 그 시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땅이며 삶의 의미전, 민중판화전, 반고문전, 걸개그림 등 치열하게, 열심히 그림 그린 그의 삶은 나름대로 의미를 지니며 소중하며 빛난다. 다이아몬드 원석原石이 다듬어지는 과정 없이는 명품이 아니듯, 담금질 없이 강한 금속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현듯 중국 4대 기서의 하나인 <서유기> 앞부분의 손오공과 삼장법사의 대화가 떠오른다. 능력을 갖춘 스님께서 이런 시련을 겪을 필요가 있느냐는 짐짓 꾀보 오공다운 질문에 그 길이 우리가 반드시가야 할, 통과해야 할 바로 우리의 길이란 답이다. 그 길이 없다면 우리가 없으니 역사가 그런 것이 아닌가. 강산이 세 번 이상 바뀔 30년 넘은 긴 화력, 지난 여섯 번의 개인전이 열변하듯 그는 열심히 그리고 쉬지 않고 묵묵히 그리는 화가이다. 화가의 언어는 문자나 소리가 아닌 그림 자체이다. 독백이기도 하고 삶의 기쁨, 생활의 즐거움이 흥건히 밴 조형언어로 창출된 시대의 역사이다. ‘우리 숨결 가까이에’란 첫 개인전 제목이 시사하듯, ‘역사의 현장에서 그림의 현실로 돌아온 사람’이란 김용택 시인의 평처럼 그림에의 성실성, 현장감, 주제 전달의 명료함이 돋보인다. 날카롭지만 굴절되지 않은 따듯하고 반듯한 시선을 읽을 수 있다. <중인리>, <쉴 참>, <내 친구>, <대장간> 등 마치 18세기 풍속화를 계승한 것 같다. 무엇보다도 단단한 녹녹치 않은 기량과 묘사력을 증명한 작품들이다. 두 해 뒤 열린 전시는 ‘삶의 진정성이 밀어붙이는 힘’이란 시인 안도현의 표현처럼 구체적 현장 배경으로 마을과 자연이 등장한다. <집에 가는 길>에선 유년기 역사의 꿈과 소박한 행복이 초가집과 지게, 그리고 꽃들이 어우러진다. <여름 보내기>처럼 고목에 정자가 빠질 수 없고, <천호성지>는 반복되는 역사의 아픔을 담고 있다. 당산나무 고목과 닮은 노인들이 동가同價로 다가오는 <강변마을 이야기>, 풍경 내지 산수에 시선을 돌린 <석암들>은 화면에서 시간만이 아닌 공간적 팽창을 의미한다. 두 전시는 작가의 시선이 역사, 전설, 현실 등 사회와 현실임을 보여준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섬진강이란 소재로 그림이 일신日新한다. 이는 사실상 첫 전시 때 선보인 <섬진강>에서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섬진강은 시인만이 아니라 화가를 만났다. 섬진강 흐르는 물은 그의 심저로 파고들어 사생과 사의의 과정을 거쳐 서정성을 통해 손끝으로 옮아간다. 마침내 강물을 따라 흐르는 것이다. ‘섬진강, 흐르는 강을 따라 걷다’1,2에 이어 ‘송만규 수묵화 섬진강, 언강 끝에서 꽃을 줍다’에 이른다. 그는 과연 오랜 방황 끝에 강가에 앉아 피는 매화를 보는 것인가. 이 일련의 작업 중에 이번 전시가 꽃 핀 것이다.
산수와 풍경 사이 - 산수화에는 풍경과 달리 보이지 않는 실체가 담겨져 있습니다. 흔히들 봄을 시작으로 생각하지만 겨울 속에 봄이 잉태되어 자란다. 밤이 지나고 여명黎明을 거치면 비로소 아침이 온다. 그러나 찾아오는 눈부신 태양을 바라보며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은 잠에서 깬, 깨어 있는 이들이다. 그들이 아침의 주인이다. 새로운 아침, 피조물이 얻은 생명의 결정체는 잎에 맺힌 영롱한 이슬방울에 비유할 수 있을까. 아침이면 섬진강을 산책하는 사람이 있다. 한 번 아닌 일상으로 매일 아침을 읽는, 자신의 온몸으로 체득體得한 살아 쉼 쉬는 대자연의 무궁한 기운을 송만규 형은 화면에 조형언어로 풀어낸다. 이번 전시의 주제가 바로 다름 아닌 이것이다. 만물의 소생을 깨닫는 새벽의 청신淸新함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이들은 그 시간에 동참한 깨어있는 이들 뿐이다. 그래서 그는 “게으른 자 석양에 바쁘다.”와는 달리 조락凋落의 시절 한 해의 결실을 수확한 농부와 같은 흔쾌한 판을 벌렸다. 아침을 얻은 자 그는 정녕 축복 받은 사람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인간도 자연이 일부분임을 자각함에서 동양사유는 시작되었다. 끝이 없고 다함도 없는 무궁한 대자연의 운행에 비해 인간은 찰나刹那의 순간적 존재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자문화권이 창출한 그림 가운데 빛나는 꽃으로 나중에 핀 것이 산수화山水畵이다. 그러나 서구의 풍경화風景畵보다는 5세기 앞섰다. 오늘날 서구식 교육으로 물든 현대화가 그린 화면에 산과 물이 등장한 것은 산수화 아닌 풍경화일 뿐이다. 이들의 차별은 무엇일까. 우리는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니 모태母胎이며 때로는 안식처이다. 엄숙과 위대함이 증발해 버린 변모된 자연관自然觀을 들게 된다. 서구에서도 자연은 본질本質,nature의 의미를 지닌다. 문명으로 우리들 생활대부분을 보내는 장소는 맑은 물과 상큼한 공기가 아닌 매연 가득한 도심의 빌딩 숲이나 공장이다. 자연과의 집요하게 오래고 긴 만남, 이는 현대를 사는 이들에게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산수화의 탄생이 중국 당말唐末의 혼란을 피해 깊고 유연한 산속에 은거한 이들에 의해 10세기 전반 그 틀과 골격이 이루어지듯 자연과 내밀한 참된 교감交感을 거친 이, 그들의 그림에서 비로소 풍경화 아닌 산수화가 가능하다. 송만규 형에선 이 점이 감지된다. 그래서 나는 그의 그림에 산수화란 용어를 부쳐본다. 옛 그림에 친숙한 이들은 그리 생각할 것으로 여길 것이니 결코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믿고 싶다. 그렇다고 이 점이 그가 현실을 피해 과거로 숨어든 탈출구로 복고復古는 아니며 단순한 회귀回歸와는 성격이 다르다. 보이는 그대로 실경이 아닌 가슴과 마음을 거쳐 다시 태어난 굳이 표현하자면 사생寫生 아닌 사의寫意에 해당한다. 화본을 베끼거나 사진 찍듯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며 보이지 않는 부분을 담고 있기에 이 점을 나는 읽게 된다. 친근미를 떨칠 수 없는 민족의 정형화된 얼굴들, 우리 형제며 가까운 이웃의 낯익은 표정의 인물, 삶의 근거인 역사의 현장에 땀 흘리는, 때로는 계레의 신음을, 과장 아닌 진솔함으로, 격정 아닌 한 번 더 양보해 예술적 담담함으로의 승화한 그림 모두 아름답다. 시계가 구체적 순간인 현실에서 나아가 섬진강 주변 풍광과 만나는 산수 등 전과 같은 20m가 넘는 그림은 없으나 특히 이번 전시가 보여주는 세계는 나름의 구별되는 미적 정서와 정취로 다가온다. 그는 타고난 온유함으로 사물과 인간을 보는 시각이 모두 따듯하다. 뿌리 깊은 명징明澄으로 대변되는 맑고 밝은 민족 미감美感을 맑은 고딕으로 먹 위주에 옅은 청색이 물든 청신한 공간이기에 그림을 보는 이로 하여금 쉽게 그 숲에 깃들게 한다. 색감뿐 아닌 과장 없이 전개된 느슨하며 편한 구성과 구도는 민족 정서와 맥을 같이 한다. 드디어 그 나름의 정형을 시대 양식을 찾고 있음을 엿보게 된다. 그림의 대상, 표현 되어질 것들은 무한대이다. 그래서 예술가는 조물주 버금가게 위대한 것이다. 추상이 구상을 거치지 않고 이루어질 수 없으나, 추상이 더 발달된 상태라던가 구상이 추상보다 덜 진화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소재나 주제가 그림 품평品評의 시금석試金石은 결코 아니다. 이미 그의 화경은 기량이나 기법의 단계를 넘었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된 것이다. 송 화백의 이번 전시, 그가 마련해 우리를 한층 고양시킨 그림의 짙은 향香에 뿌듯함과 기쁨이 어우러진 힘찬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그림 여정의 한 부분임을 우리는 안다. 앞으로 그가 보여줄 다음 여정, 그 때 열릴 미美의 향연饗宴이 마냥 궁금해 하며 우리 모두는 기대한다. 2008년 10월 23일 상강霜降 온고을 송죽재松竹齋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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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만규 원광대학교 졸업 개인전_2008년 서울 토포하우스 | 2008년 전주 우진문화공간 | 2005년 부산 see&sea갤러리 | 2005년 러시아 돔 후도즈니까 | 2004년 서울 공평아트센터 | 2004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 2001년 서울 경인미술관 | 2001년 전북학생문화회관 | 1995년 전주 고을갤러리 | 1993년 서울 그림마당 민 | 1993년 전주 우진문화공간 단체전_1983 땅전, 익산 | 1987 JALLA전, 일본 | 1989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전국순회 | 1994 이 작가를 주목한다, 서울동아갤러리 | 민중미술15년전, 국립현대미술관 | 동학농민혁명100주년전, 광주, 전주 | 1995 전국민족미술인연합 창립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 광주통일예술제, 광주5월묘역 | 1996 조국의 산하전, 서울 | 1997 황해의 역사전, 인천문화예술회관 | 1999 동북아와 제3세계미술전, 서울시립미술관 | 1999 ~ 2000 움직이는미술관, 전국순회(국립현대미술관) | 2004 전북도립미술관개관전, 전북도립미술관 | 2005 민족미술의 논리와전망전, 목포문화예술회관 | 2006 독섬ㆍ독도전, 전북도립미술관 |2008 ASIA-그리고 쌀 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 그 외 다수 현재 :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의장, 전국민족미술인협의회 중앙위원,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전북지회장등으로 함께 지냈으며 2002년부터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순창 무량산 자락의 한들 산방에서 작업하고 있음 realsongi@hanmail.net | www.soom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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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0081105-송만규 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