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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은 展
노암 갤러리
2008. 10. 22(수) ▶ 2008. 10. 28(화) Opening: 2008. 10 .22(수) pm 5:00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 T.02-720-2235
예술적 소통에 대한 운명애(amor fati)적모색
하계훈(미술평론가)
인간존재의 의미에 대한 실존주의적 해석은 보편적인 것 같으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특수하고 개별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어머니의 방>이라는 주제로 여덟 번째 개인전을 열며 입체 작품을 선보이는 심정은은 자신의 개인적 예술관과 인간관계를 조심스럽게 노출하면서 현대인이 느끼는 존재의 불확실성과 거기에서 유래하는 불특정적 불안과 부조리를 주제로 삼아 이를 작품으로 숙성시켜왔다. 어머니의 방으로 상징되는 공간은 회귀적이고 휴식과 안정을 갈구하며 모성의 부드러움에 대한 욕구와 생명의 잉태, 탄생과 순환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작가는 유학사절의 향수를 달래기 위해 이러한 주제로 영상 설치작품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제시하는 어머니의 방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주제가 내포하는 의미가 좀 더 확장되고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전시 공간 전체를 모성의 공간 또는 창작이 잉태되는 공간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표제에서 언급된 어머니는 유아적 본능이 지향점으로 삼는 생물학적 모성이 아니라 예술적 영감의 근원으로서의 모성, 정신적 위안과 치유의 사회적 요람으로서의 모성으로까지 그 의미가 확산된다.
심정은이 작품 활동 초기에 주로 채택하였던 재료인 목재는 한동안 미국 유학시절을 계기로 한 발짝 멀어지는 듯했지만 최근 그녀는 다시 목재의 질감을 손끝으로 느껴가며 나무의 물성과 교류하는 과정을 즐기면서 작업하는 데빠져들고 있다. 목재를 공들여 다듬는 긴 시간을 통해 작가는 창작의 세계에 몰입하면서 때로는 무념무상의 경지에 잠기고 또 때로는 나무의 결 하나하나에 수많은 공상과 추억을 중첩시켰을 것이다. 자기정체성의 탐구와 작업환경의 변화에 의해 의식의 흐름을 결정짓는 작업태도를 유지해 온 작가는 유학시절을 통해 낯선 환경에서 드러나는 불안한 이방인의 정서를 천착하였고 이제 귀국 후 박사과정 연구를 마무리 짓고 난 상태에서는 다시 작업에 몰두하면서 붙잡은 창작의 화두로 인간 존재의 부조리한 상황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선택한 듯하다. 심정은의 목조각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입체 위에 부분 또는 전체 채색이 가해지는데 이를 통해 작가는 입체와 평면의 통합과 매체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확장을 꾀하고자 한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은 특히 문이라든가 지퍼와 같은 표현이 두드러지는데 이러한 소재들은 공간을 나누거나 봉쇄하기도 하고 다시 개방하여 양쪽 공간을 연결하기도 하는 통로나 채널로서의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전적인 가구의 열쇠구멍을 연상시키는 형태를 띤<문>은 테두리 전체가 금색으로 채색되어 있어서 양쪽 공간을 연결하는 관문으로서의 제의적 지점을 연상하게 한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문>이라고 제목이 붙여졌으나 정작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문짝은 제거되어 있고 문틀만 남아있는 형태로 작품이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문이라는 지점을 통해 우리는 안과 밖, 이편과 저편, 자아와 타자, 이승과 저승 등의 공간을 상징적으로 드나들 수 있고 양쪽 공간을 차단하거나 연결할 수도 있다.
전시 공간에서는 낯과 밤이라는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작품이 중간에 문을 놓고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낮>이라는 제목이 붙은, 원목의 질감이 드러나는 단순한 주택이나 유럽의 바실리카식 교회의 전면을 연상시키는 입체의 표면에는 지퍼가 조금 열린 틈사이로 파란 하늘과 거기에 떠있는 흰 구름이 들여다보인다. 심정은이 유학시절에 제작했던 어머니의 방이라는 영상설치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우리는 안과 밖의 초현실주의적 도치를 경험하게 된다. 이번 전시에는 지퍼를 여는 형태로 형성된 화면 위에 하늘을 담고 있는 별도의 독립된 패널 형식의 세 작품이 함께 출품되었다. 벽에 걸린 이 작품들은 관람자의 의식 속에서 벽 너머의 공간으로 시각을 연장시켜주는 일루전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문>을 중간에 두고 <낮>의 대척점에 자리 잡고 있는 <밤>이라는 작품에는 낮과는 달리 내부를 들여다 볼 수없는 어둡고 폐쇄적인 표면 위에 작은 열쇠 구멍이 하나 자리 잡고 있다. 작품의 외관은 기본적으로 <낯>과 조응하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채색의 톤이나 표정에서 경쾌함을 주는 낮과는 대조를 이룬다. 활동적인 낮에 비하여 밤은 침잠과 응축의 시간이며 자신의 정신적 내면으로 후퇴하여 인간 현실의 불안정과 숙명을 명상하는 시간이다. 두 개의 손바닥이 나란히 놓인 <숙명>이라는 작품은 이번 전시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 작품을 통해 심정은은 작가 자신의 운명애(amor fati)적인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창작에의 의지와 현실의 불안정 사이에서 합리적인 자기이해와 타자와의 의사소통을 모색해야 하는 예술적 과제 앞에서 작가는 초기 기독교 사제들의 기도하는 모습처럼 자신의 손바닥을 초월자를 향해 가지런히 내밀고 작가로서의 숙명을 확인받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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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0081022-심정은 개인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