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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경 개인展
- 2008 갤러리 쿤스트라움 신진작가 여섯번째 -
봄,빛,바람_캔버스에 연필, 클레이_90×175cm_2008
갤러리 쿤스트라움
2008. 8. 1(금) ▶ 2008. 8. 15(금) 서울 종로구 팔판동 61-1번지 | 02_730_2884
봄,빛,바람_캔버스에 채색, 클레이_30×30cm_2008
색의 변화와 운동
박상선
들뢰즈는 (베이컨의 회화를 논하는 부분에서) 재현적 회화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추상화와 순수형상화를 들고 있다. 전자는 구상적 요소를 전혀 포함하지 않은 순수형식화의 방법이라면, 후자는 추출(Abstrahieren)이나 고립(Isolation)이라는 탈 형상화를 통해 비현실적 형상들을 창조하는 방법이다. 일견 추상화처럼 보이는 정희경의 작업들은 바로 탈 형상화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녀의 작업들은 닫혀 진 작업실 내에서 색과 형식의 미적 관계에 대한 고독한 사변이 아니라, 작업실 밖의 식물(꽃)들의 관찰과 그 때의 느낌이 맑은 고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희경이 작업에 옮기려는 “느낌”은 대상에 대한 주관적 느낌이 아니다. 작가는 이를테면 “바람에 흔들리는 식물의 의식과 감정은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대상에 다가서 대상 자체가 되고자” 애쓴다. 이러한 노력에서 인간과 자연의 합일이라는 선불교적 이상에 이르지는 못할지언정 어느 정도 “식물과의 교감”은 작업의 동기가 된다. 작업과정도 거의 무의식이 지배하게 된다. 식물의 관찰결과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 “작가 속으로 들어와 자신의 소리를 내도록” 작업은 진행된다. 그래서 햇빛에 반짝이고 바람에 흔들리는 식물에서 작가가 느낀 “성장의 흔적들”에 대한 기억들이 작업과정에서는 “이미지의 변형이나 강조”로 이어진다. 즉 스케치와 채식으로 이어지는 작업과정의 핵심이 되는 것은 원 형상으로부터 무의식적인 추출(abstrahieren)과 이탈(Isolation)이다. 말하자면 식물은 작가를 자극하여 자신을 낯섬과 다름에서, 즉 변화와 생성에서 보게 한다.
봄,빛,바람_캔버스에 채색, 클레이_30×30cm_2008
정희경의 작업들은 식물(꽃)에 대한 심도 있는 경험에서 시작하여 거의 대상의 윤곽만 가까스로 남게 되는 추상에서 끝나게 된다. 개개의 작업에서 이미지들은 원 형상에 대해 어떤 암시를 주기에 앞서 찬란한 색의 변화와 색 운동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우리를 이미지 뒤로, 이미지를 넘어서 초현실적인 세계로, 식물과 인간의 사차원적 관계로 이끌고 간다. 식물은 고유한 색으로 빛나면서 접혔다 펼쳐지며 날리는 투명천의 우주로 보여 진다. 색은 바로 그 식물의 운동이자 영혼이다.
봄,빛,바람_캔버스에 연필, 클레이, 아크릴채색_160×100cm_2008
전통적인 한국화에서 여백은 주로 대상을 돋보이게 남아 있는 배경이 아니라, 이미지의 구성적 부분으로 작용하게 된다. 작가들의 직관에 의해 정해지는 여백의 비율과 이미지의 위치는 작품 형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정희경의 작업에서 여백의 효과는 인상적이다. 사차원적 생명체로 보이는 이미지는 때로는 여백을 옆으로 감싸며 비켜서듯 피어오르고, 때로는 여백을 올라타 앉아 노는 듯, 때로는 여백 한가운데를 헤치고 나오는 듯 보인다. 물론 이점은 이전의 한지 작업들에서 주로 느낄 수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몇몇 작업들은 (한국화) 붓을 쓰지 않고 아크릴 물감을 캔버스에 문지르는 기법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작업들에서 이미지들은 맑은 고딕색을 배경으로 거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어서 양쪽으로 나뉜 여백은 정보나 제시 효과를 보충하고 있다.
봄,빛,바람_캔버스에 연필_125×100cm_2008
거의 대칭적인 이미지들을 간혹 식물의 형상적 윤곽을 간직한 채, 새털을 날리는 미풍의 유희가 아니라 풍상이라도 견딜만한 무던하고 늠름한 생동감을 보여준다. 작가는 때로 묽은 색으로 흘러내리거나 연필 스케치를 드러냄으로써 묵직함을 피하고 있지만, 올 굵은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은 조밀하고 매끈한 한지에 수채물감이 주는 산뜻함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작업들의 모태가 되는 것도 이전처럼 “식물에 대한 관찰과 그에 대한 기억을 연상해 보는 것이다”고 작가는 밝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사의 무거움을 초탈한 禪적인 경쾌함과 투명함에 대한 그리움은 작가의 실험적 시도에 대한 필자의 무례한 항변이리라.(完)
봄,빛,바람_캔버스에 연필_160×130cm_2008
봄,빛,바람_장지에 채색, 클레이_120×90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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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0080801-정희경 개인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