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영 개인 展

 

나무에 말을 걸다_100x80㎝_Acrylic on canvas_2008

 

 

갤러리고도

 

2008. 6. 11(수) ▶ 2008. 6. 17(화)

오프닝 : 2008. 6.11(수) PM 5:00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 12 | 02-720-2223

 

www.gallerygodo.com

 

 

나무에 말을 걸다_130.5x97㎝_Acrylic on canvas_2008

 

 

초대의 글

갤러리 고도 대표 김순협

 한 재능 있는 작가와 한 배를 타고 공동의 작업을 한다는 것은 갤러리로서는 무한한 기쁨이자 보람이다. 정일영 작가의 작업 20 여 년을- 수업 기에서부터 전면 추상화, 구조적 도시풍경, 그리고 지금의 나무와의 대화 작업까지-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행운을 가졌고, 언제부터인가 그만의 독창적인 세계가 만들어졌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랜 고독과 고통, 그리고 인내가 필요했던 20년의 기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었다. 이제 그 무겁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많지는 않은 10여점의 작품으로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왔다. 느림은 한편으로는 값진 것이다. 이번 전시는 도심의 나무를 통해 보는 생명에 대한 기록이다. 원색으로 그려진 나무는 작가에 의해서 그 생명의 신비를 드러내며 기의 흐름처럼, 불꽃처럼 쉼 없이 타오른다. 그리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달군다. 한 걸음 전진한 작가의 발전을 축하하며 향 후 무한한 가능성을 점쳐본다.

 

 

나무에 말을 걸다_130x130㎝_Acrylic on canvas_2008

 

 

작가 노트

나무에게 말을 걸다. |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오래되었다.  | 덕분에 나무들이 제법 울창하여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 나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하루에도 스무 번 이상 그 나무들을 바라다본다.  | (물론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지만.) | 밤과 낮 그리고 계절의 변화 속에서 나와 나무들은 늘 같은 위치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다.  |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 저 나무들도 미세하게나마 나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을까?  | 그렇다면 지금 나는 저 나무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인가?  | 몇 년 전부터 몇 명이 모여서 ‘생태신학’이라는 것을 공부해 오고 있다. | 생태신학은 제도권 종교에서 벗어나  | 우주와 자연 속에 내재되어있는 신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 생태신학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자연에 관한 신앙을 담고 있기도 하고, 동학의 신앙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 토속 신앙을 비롯하여 모든 종교들이 그 안에 포용될 수도 있는 듯하다. | 공부를 하면서 가끔씩 종교적 풍경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작년 초부터 태백 철암, 김천 직지사 근처를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다. | 작업도 좋지만 오가며 보는 풍경들, 그리고 자연 속에 파묻혀 있는 재미가 크다. | 자연을 보고 있으면 그리고자 하는 의욕이 사라질 때가 자주 있다.  | 아무 일도 아무 생각도 않고 그저 바라보고 싶을 뿐이다.  | 그러면서 드는 생각, 지금 이러한 체험들이 과연 그림에 담겨질 수 있을까.

                                                            

 

나무에 말을 걸다_130x162㎝_Acrylic on canvas_2008

 

 

나무에게 말을 걸다.

김용민 | 쿤스트독 큐레이터

 생명의 에너지가 나무 가운데서, 물감이 이는 혀들로 그(정일영)에게 나타났다. 딱딱한 껍질을 입고 있는데도 꿈틀거리는 생명의 불빛들을 본 그는 “저 나무는 어째서 진동하고 동요하는 걸까? 이 생경하는 모습을 묻고 그려야겠다.”하며 붓을 들고 그것을 응시하는 것을 생명의 에너지는 나무 가운데서 그에게 비췄다. 그(정일영)가 보았다. “보여 달라.” 생명의 에너지는 “네가 보는 것에 무게를 버려라. 네가 보는 것은 생명의 나무니 네 눈에서 고체를 버려라”

 

나무에 말을 걸다_162x130㎝_Acrylic on canvas_2008

 

 

보는 모든 것은 ‘물질의 무게’를 갖는다. 빛이나 파동도 역시 비가시적 물질로 무게를 갖고 있다. 이 ‘물질의 무게’는 에너지다. 거기에 있게 하는 존재의 에너지다. 모든 사물은 껍질에 붙박여 있지 않다. 미세하게 진동하여 자신의 존재를 팽팽하게 긴장시킨다. 그 긴장감이 사물과 사물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 자리에서 우리의 시선은 대상을 만진다. 긴장감은 촉각적이다. 그렇기에 존재하는 것은 만질 수 있다. 우리의 감각기관이 이 사실을 증명한다. 한 마디로 ‘느낌’이다. (무엇에 관하여) 느끼고 있는 자신은 타자가 생명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였고 대화를 시작하고자 한다. 알게 되는 사실, 여기서 그는 나무에게 질문을 하였다. 그리고 그 질문 속에 자신의 시선을 집어넣었다. 어느 순간 오직 나와 너만의 사연이 발생하는 때가 온다. 다시 이것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느끼는 그 사실은 발견이며 살아 있는 존재로 관계하는 나와 너 사이의 덩어리다. 과히, 나무의 생명을 보게 될 때, 발에서 신을 벗듯이 우리의 시선은 사물의 옷을 벗어버린다. 이 신은 촉감을 무디게 하고 더디게 하여 눈과 귀를 막아버렸으나 대신 붓과 물감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였다. 셸링(F.W.J. Schelling)은 말한다. “사물이 지닌 저마다의 완전함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사물의 힘을 있게 하는, 사물 안에 있는 창조적 생(명)입니다.” 또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예술은 바로 자연을 자신 속에 있는 영혼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매개물로 삼음으로써 자연과 예술 사이에 최고의 관계가 성립됩니다.” 이렇듯 그의 작업에서 나무 안에 있는 창조적 생명이 물감의 붓질로 가시화 되었다. 불꽃이 이는데도 떨기가 타지 않는 것처럼. 끝내 생명의 에너지는 우리에게로 쏟아져 나온다. 이제부터 우리는 그릇이 필요하다. 생명의 에너지를 담을 수 있는 그릇, 바로 예술이다. 그 누가 감히 신의 얼굴을 그리려 했고 숭배의 대상을 미적감상의 대상으로 전회 하고자 하였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나무가 자신을 보였다. 영혼의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매개물, 이를 종교적 문맥에서는 이콘(Icon) 미학적 문맥에서는 이미지(Image)라 한다. 구체적 형상은 필요 없고 무의미하다. 더 이상 나무의 형태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나무의 원형이 저기에 있다. 야훼의 정신이 흘러넘쳐 세계의 층위가 창조된 것처럼, 예술의 층위에서 시선의 교집합이 넘실거린다. 감정이 우리의 바깥에서 우리 곁을 맴돌고 우리의 기억과 경험이 대상으로 녹아내린다. 광야의 떨기나무는 아파트 베란다 너머로 보이는 나무와 같다. 그 나무는 언제나 거기서 생장하고 있다. 작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비로소 그의 작업이 시작되었다. 살아있는 것은 한 번의 붓질에 꿈틀거리고 색을 취한다. 그 붓질은 느낌의 증언으로 대상이 되는 나무의 것이기도 하며 작가의 것이기도 하다. 그의 캔버스 화면은 색으로 충만하다. 아울러 머물러 있지 않고 화면 위를 운행한다. 의식 없는 붓의 방향, 생명의 떨림과 마찬가지로 물감의 날것에 불을 지핀다. 그 어느 장소에 있을지라도 원석의 빛을 뿜어낸다. 이렇듯 회화 작업에서 창조적 생명은 붓질의 결에서 나타나며 오랫동안 페인팅의 가치와 즐거움으로 재현되고 있다. 생명의 에너지를 재현하는 일, 작가에게 있어서 큰 관심사가 되었고 이것은 작가의 손끝에서 느끼며 흘러나오고 있다. 생명의 에너지는 빛이다. 빛이 사물로 말미암아 밖으로 흘러나오게 되는 것처럼 작가는 아크릴 물감을 흘리며 사물에서 색을 확산시키고 있다. 그의 작업은 풍경화다. 사물에서 색을 확장시키고 대상과 배경의 구별을 보여주는 풍경화다. 거기에 한 사람이 있으니 그 또한 응시하는 시선과 대상으로 자리 잡는다. 그 어디에도 시선을 삼키지 않고, 시선의 대상화를 거부하며 일정한 거리에서 서 있다. 작가는 말한다. “나의 작업은 생태신학의 관심에서 출발하였다.” 한 나무에 생명을 보았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에너지를 보았다. 이 에너지는 신의 정신으로 신성한 사물로 현시한다. 여기서 신성한 사물은 제의의 대상이 아닌 순수한 작업의 대상들이다. 화면은 그 이상을 욕심내지 않고 작가의 순수한 시선을 반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업은 풍경이 된다. 하찮은 나무에 신의 입김이 머물러 있어 사물은 숨을 쉬고 있다. 그것을 목격한 작가는 자연 속에서 휘돌고 있는 신의 기운에 말을 걸었고 떨리는 붓질로 작품을 생산하였다. 작가는 말한다. “나무에게 말을 걸다.”

 

나무에 말을 걸다_80x100㎝_Acrylic on canvas_2008

 

 

 
 

정일영(鄭日永) JEONG, IL YOUNG

2000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 2002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 수료

개인전_2008  나무에 말을 걸다 (갤러리 고도) | 2006  In.... the light of the city (갤러리 고도) | 2003  응 시 (금호미술관) | 2002  자 위 (모로 갤러리) 

단체전_2008 Neo Metaphor전(인사아트센터) | 목포그리기 (서울, 목포) | 2007  Art Fair 21 (퀠른, 독일) |  Art Expo (라스베가스, 미국) | 기억하는 벽 (철암역 갤러리) | SOAF (COEX) | Zero전 (가산 화랑) | Shanghai Art Fair (상하이, 중국) | '철암그리기 - 명백한 운명 展' (헤이리 AHN.S.K.Studio) | KIAF (코엑스) | 2006  Zero전 (갤러리 고도) | 2005  Zero전 (모로갤러리) | 2004  송은미술대상전 (예술의 전당) | 2003  현실, 미술, 가상현실 (금호미술관) | 2002  KIPAF-김천국제행위예술제 (김천문화예술회관) | 2001  위대한 ‘우기기전’ (갤러리 Helloart) |서울대학교, 북경중앙미술학원 교류전 (북경) | 2000  서울대학교와 '새천년전' (서울시립미술관)

 
 

vol. 20080611-정일영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