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개인展

 

-북녘의 땅-

 

평원 가는 길_100x50cm_Oil on canvas_2008

 

 

노암갤러리

 

2008. 5. 28(수) ▶ 2008. 6. 10(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133 | 02-720-2235

 

https://www.noamgallery.com

 

 

단동 가는 길_291x181cm_Oil on canvas_2008

 

 

이영희, 길이 있는 자연_「북녘의 땅」 고향 찾아가는 길

서성록|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길은 사람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길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사람들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통행로 위로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이영희씨는 그런 길에 주목한다. 화면에는 길을 중심으로 주위에는 억새와 들풀, 그리고 메마른 땅, 불탄 흔적들이 너부러져 있다. 우리와 고락을 같이 해왔을 뿐만 아니라 역사의 슬픔과 기쁨을 짊어진 것이 바로 길이란 존재다.

이번 개인전에 이영희씨는 ‘길이 있는 풍경’을 선보인다. 만주와 압록강, 위화도 인근, 묘향산과 대동강, 외금강, 고성 등을 여행하면서 사생한 유화를 출품한다. 어떤 것은 간간이 중국 땅을 묘사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북녘 땅이 주종을 이룬다. 길이라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추적해온 화가다. 맘에 드는 한적한 길을 샅샅이 찾아다녔다. 먼 곳으로 사생 여행을 나가는 통에 이번 전시에 5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그의 그림에는 묘묘한 절경 따위는 없다. 우리 산하를 어떤 덧붙임 없이 평화롭고 잔잔하게 그려냈다. 그렇지만 햇빛 속에 바스러지는 산하를 그냥 지나쳤다면 무감각하다는 핀잔을 듣기 십상일 것이다. “꽃을 주는 건 자연이고 그 꽃을 엮어 화환을 만드는 것은 예술” (괴테) 이라는 말이 있듯이 작가는 산하, 들녘을 한 편의 ‘서정적인 영상시’로 전환시킨다. 몇 굽이를 돌며 유유히 흐르는 강, 드문드문 보이는 가옥, 대지를 뒤덮은 들풀, 아직 잠에 취한 듯 흐릿한 산, 들에서 김매는 농부나 풀 뜯는 소, 조촐한 개울, 한가로운 시골길이 마치 아름다운 영상처럼 스쳐지나간다. 그의 그림은 초봄의 힘찬 약동의 소리를 전해준다. 그 소식을 들려주는 건 물론 농부가 정성스레 가꾼 밭에서다. 봄소식을 들은 밭작물들이 연두 빛을 내품으며 위로 향한다. 화면 가까이 코를 갖다 대면 향긋한 봄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 같다. 화면은 이들로 인해 이내 소란스러워지며 천연의 녹색으로 곱게 물든다. 지평선을 뒤덮은 연두 빛 물결이 봄을 맞아 산란한다. 이보다 더 화려하고 멋진 풍경은 아마 없을 것이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방과 후 팔깍지를 끼고 누어 푸른 하늘을 바라보던 시절, 그리고 씀바귀, 냉이, 돌미나리를 뜯어 보자기에 담았던 시절을 그립게 한다.

 

 

신의주 가는 길_181.4x106cm_Oil on canvas_2008

 

 

그렇지만 우리가 접하는 북한의 풍경은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1950,1960년대 앙상한 산을 보듯이 벌거숭이산과 계단식 천수답, 헐벗은 강토는 그들의 애옥살이를 암시해준다. 이영희씨는 빈한(貧寒)한 토양에서 근근이 연명하는 북녘의 삶을 넌지시 묘출하고 있다. 말하자면 조국의 산하, 그 곡진한 사연이 서려 있는 풍경을 담아내고 있는 셈이다. 절망의 땅이 소망의 땅으로 바꾸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았는지도 모르겠다. 거칠 것이 없는 햇살, 끝 간 데 없는 대지,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 고요히 흐르는 강물은 보는 사람을 묘한 감정에 빠뜨린다.

그의 작품은 순전히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어떤 기계장치도 빌리지 않은’ 재래식그림’ 이라는 뜻이다. 저 흔한 스프레이나 콜라쥬, 전사의 방식도 거치지 않고 꼬박 캔버스 앞에 앉아 근성을 가지고 풍경을 완성시켰다. 이영희씨처럼 풍경을 정치하게, 나아가 대기의 흐름마저 실어 묘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는 실물과 맞닥뜨릴 때 개인적인 환상이나 섣부른 감정이입을 제어한 채 실물 자체를 응시하면서 대상 본연의 모습을 잘도 옮겨냈다. 실물 재현에 치중하면서 공기의 흐름, 안개, 공기의 건조와 습기를 잡아낸 것은 결코 예사롭지가 않다. 빼어난 풍경화가 다운 면모를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그만이 지닌 특징이라면 땅에 떨어진 터럭까지도 보일 듯한 섬세한 세필운용을 들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작업이 나왔는지 궁금하여 그의 붓을 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작가는 그의 파렛트에 가지런히 도열해있는 붓을 보여주었다. 얼핏 1호도 안 되는 붓이 무수히 널려 있었다. 그는 더 세밀한 묘사에 들어갈 때 동양화에서 사용 하는 극세필용 붓을 사용한다고 한다. 나무의 잔가지와 풀의 형태는 모두 모필에 의해 나온 것이다. 어떤 붓은 말라비틀어져 흉흉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 붓으로는 수풀을 그릴 때 이용한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작가는 거친 들판이나 대지를 처리할 때는 종이테이프로 화면에 반복적으로 두드리듯이 하여 자연스런 표정을 얻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리하여 인위적으로는 묘출할 수 없는 실물의 표정을 잡아내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에서 과감하게 평붓으로 문질러 표면을 가다듬는 것을 제외하면 그의 작업공정은 안정된 호흡과 집중력, 재현의 정확성을 동인으로 하여 이루어진다. 구도적으로 볼 때 그의 그림은 상·하단으로 분리되어 있다. 지평선을 분기점으로 하늘과 땅이 갈라져 있다. 그리고 상하가 서로 다른 표정을 짓는다. 가령 상단이 투명하고 얇게 도포되어 있는 반면에 하단은 불투명하며 두툼한 질료로 구성되어 있다.

 

 

묘향산 가는 길_99.7x64.8cm_Oil on canvas_2006

 

 

묘사에 있어서도 한층 하단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다시 하단에 눈을 돌려보면, 하단은 가운데 난 길을 중심으로 좌우로 갈린다. 계절에 따라 주위는 파란 수풀, 황량한 갈색, 그리고 하얀 눈으로 변하지만 중심의 길은 계절에 아랑곳없이 맨살을 드러낸다. 광이 나도록 닳은 길도 있지만 비온 뒤의 질척질척한 길도 있다. 아마 이 길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을 것이다. 수확한 곡식을 밭에서 집으로 가져갈 때 쓰는 많은 수레들도 오갔을 것이고, 어릴 적에 등교를 하던 추억의 길일 수도 있다. 우편배달부 아저씨가 바깥소식을 전해주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길, 타관을 말똥처럼 구르며 떠돌다 고개를 떨 구고 힘없이 귀향하는 길이기도 하다. 삶의 영욕을 묻어두고 있는 것이 바로 길이다.

작가는 어찌나 그 길에 애착을 느꼈던지 어느 것 하나 빼먹지 않았다. 그의 그림에 시선을 뗄 수 없는 건 우리의 기억을 아득하기만 한 순수한 시절로 돌려놓기 때문이 아닐까. 그의 그림은 아련한 기억이 실려 있고 세상과 처음 조우했을 때의 순수했던 시절로 우리를 불러들인다.

 

 

숙천의 촌_130x97cm_Oil on canvas_2006

 
 

 

 
 

vol. 20080528-이영희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