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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희 개인 展
- I save myself -
서울화랑
2008. 5. 7(수) ▶ 2008. 5. 13(화) 오프닝 : 2008. 5. 7(수) PM 6:00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89-4 SK허브센터 B-201 | 02-722-5483
자기 구제를 통한 교화
한 미애(미술학 박사/전시기획) 회화나 조각 등 조형적 이미지로 표현된 매체는 언어가 갖지 못하는 특별한 기능을 지니고 있다. 종교예술의 경우, 예를 들어 같은 내용을 표현한 것이라도 글로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을 받게 된다. 다양한 색채와 형태 등, 조형예술이 갖는 표현의 풍요로움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글로는 미처 경험하지 못하던 새로운 감성의 영역을 발견하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시각적 이미지는 이를 보는 순간 즉각적으로 본질을 깨닫게 하는 힘이 있다. 구구절절한 설명이 없더라도 단순한 이미지 하나로 가장 심오한 종교심의 근저에 다다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시각적 이미지가 제시하는 본질적인 메시지를 파악하기 보다는 작품의 표면에만 머무르는 경우가 있다. 종교적 의미보다는 미적 가치에만 치중하여 작품을 판단하는 경우이다. 어떻게 표현되었는가, 어떤 표현방식을 따랐는가, 보기에 아름다운가 하는 등 외형적 가치만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것이다. 종교예술도 당연히 미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점은 종교예술이 지닌 본질적 의미를 찾는 것이다. 홍순희의 작업은 애초부터 자기 구제의 한 몸짓으로서 출발되었고 아직도 그녀의 노력의 대부분은 그것에 바쳐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예술이 자기 삶의 실천, 곧 자기 구제라는 점을 자각하고 개인적인 자기완성을 겨누고 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작가는 자신을 집요하게 탐구해나가면서 그녀만의 독특한 지적인 작품 유형을 개척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 그림은, 나를 둘러싼 일상들과 그에서 비롯된 희, 노, 애, 락의 감정들을 옮겨 적은 기록과 같다. 붓을 들면, 나는 화판이 되고 화판은 내가 된다. 삶의 끝없는 길들을 나 스스로 찾아가는 낯선 여정.. 나의 작업은 그러하다. 서툴고 두렵지만 용기를 내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떠나는 나에게로의 여행..나는 나 스스로를 구제 하려고 한다. 나는 지금 감히..수행중이다.(작가 노트에서) 홍순희에게 있어 자기 구제를 향한 수행 방식은 언제나 자신의 내부 즉 마음을 살피는 것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는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보살의 수행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육바라밀(六波羅蜜)의 실천이기도 하다. 님의 뜻이 머무르는 곳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간절히 원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님의 뜻이 있기에 여기에 있습니다. 한 마리 물고기가 강물에 지친 몸을 의탁하듯 님의 뜻이 머무르는 곳으로 어리석은 영혼을 의지하며 그렇게 님의 뜻이 머무르는 곳으로 나아가겠습니다.(작가 노트에서) 작가노트를 통하여 정신을 한 곳[님]에 모으는 수행을 통해 어지럽고 산란한 마음을 안정시킴으로써 언제나 동요됨이 없는 삶의 자세를 유지하려는 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스스로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굳은 신념을 지니고 쉼 없이 한 길을 가는 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 때로는 아무리 참기 힘든 것도 인내하고 수용하는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의 실천을 엿볼 수 있다. 동시에 ''한 마리 물고기가 강물에 지친 몸을 의탁하듯... 어리석은 영혼을 의지하며...'' 계율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효율적으로 지혜롭게 운용하는 자세에서 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의 의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한 송이 꽃일지라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선 스스로 발아하려는 발아의지가 있어야한다. 꽃의 만개를 빌어 스스로를 구제하고 수행하고자 하는 구도 의지를 표현하고자 했다.(작가 노트에서) 홍순희의 모든 작품에서는 화폭 가득히 만개된 꽃을 볼 수 있다. 작가가 표현하였듯이 만개된 꽃은 자기 구제를 의미하는 동시에 사물의 참다운 이치를 터득한, 지혜가 완성된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작가가 의도하였던 그렇지 않았던 간에 만개된 꽃을 중생에게 공양함으로써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자기 마음을 자기가 찾아 쓰라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남을 제도하기에 앞서 자신부터 밝게 알면 중생 제도는 저절로 된다는 것이다. 참된 수행자의 행동은 향기와 같은 것으로 향기가 벌을 불러 모으듯이 평범한 행동만으로도 중생들을 감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 구제를 통한 교화이며, 이루고 못 이룸도 전적으로 자기에게 달린 것이다. 조계종의 초대 종정이었던 한암 스님은 ''내가 먼저 실행한 뒤에 말을 하면 사람들이 쉽게 믿고, 내가 먼저 실행하지 않고 말을 하면 믿지 않게 마련이다.''라고 말하고 열반하기까지 27년을 오대산 상원사에서 바깥으로 나오지 않고 수행정진 하였다고 한다.
제8대 조계종 종정을 지냈던 서암 스님은 ''한암 스님 같은 분 보세요. 오대산에 가만 앉아서 설법 한 마디 안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감화를 받았어요. 한암 스님 얼굴 한 번 못 보고, 음성 한 번 듣지 않았던 사람들도, 입만 벌리면 욕지거리를 해대는 사람들도 한암 스님이라는 말만 들어도 머리를 숙이곤 했어요. ''라고 회고하고 있다. 작가 홍순희가 묵묵히 창작을 통한 수행을 하고 있음도 이러한 성현의 언교를 힘써 배우고 본받아 행하는 것이 아닐까! 홍순희의 작품을 대할 때,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붉은 것은 붉게, 흰 것은 희게, 푸른 것은 푸르게 볼 수 있다면 좋겠다. ‘대반야경(大般若經)’에서는 보살이 사물과 인간관계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를 얻어 깨달음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공(空)사상을 철저히 체득하는 것, 곧 집착하는 마음을 버려 완전히 마음을 비우고 육바라밀을 실천할 것을 강조한다. 전시장 문에 들어서거든,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일체 생각을 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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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0080507-홍순희 개인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