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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권 기획 초대展
토포하우스
2008. 4. 23(수) ▶ 2008. 4. 29(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184 | 02-734-7555
가스톤 바첼라드는 그의 유명한 저서인 “공간의 시학”(1958)에서, 공간과 시적 사상간 관계를 규명하는 그의 현상학적 접근방법이 정신의 삶과 우리의 비전의 세계를 구분하는 인위적인 경계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명상적인 백일몽은 “무한성의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며”, “친근함과 방대함이 공존하는” 방식으로 시와 예술에서 구성될 수 있다고 한다. 예술가는 개방적인 상상력으로 일상생활의 세속성과 일시적인 상태를 초월하여 정신이 감지하는 어떤 표현할 수 없는 지각에 동화될 수 있다. 공간 시학에 관한 바첼라드의 견해는 김일권의 회화에 매우 적절하게 적용된다. 색채가 양분된 김일권이 캔버스는 계절적인 변화 리듬에 의해 미묘하게 조절된 랜드스케이프를 환기시킨다. 김일권은 캔버스의 반복적인 포맷에서, 자신의 작업을 동서양의 낭만적으로 초월적인 예술가와 시인들의 역사와 결부시키는 예술적인 확신을 보여준다. 우리의 물질주의적인 세계에서 더욱 더 분리되고 있는 육체와 정신의 이중성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안정적이고 가변적인 경험에서는 여전히 그 구분이 흐릿할 수 있다. 김일권의 회화 언어는 인식가능하며, 시공을 초월하여 공간에 대한 모더니스트의 열망에 집착한다. 그의 회화는 그의 선언대로 보다 깊은 내용의 전달을 추구한다. “나의 이미지는 표현적 미니멀리즘의 분위기로 가득차 있다; 이들 이미지는 조형적 연습으로 읽혀질 수 있을 만큼 평이하기 보다는 자연을 담고 자연 속의 질서를 만들기 위한 정서적인 현실인 내용이 있는 주제들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작품에는 정신 속으로 넌지시 암시하는 침묵의 해소가 있다 - 이러한 해소는 인식가능하고 표출가능한 직관적인 실천이다; 김일권은 기억을 열망으로 구성한다. 대부분의 그의 작품들에는 일정한 연월일로 표시된 제목이 있다 - 온 카와라와 같은 작가들의 엄격한 개념주의와 구분되는 기록된 감각의 시각적인 일기이다. 김일권의 작품에는 그의 표현 방식이 지배하는 시간이 있다. 그의 작품은 정보 전달 모멘트의 즉시성에 대한 반명제이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시간을 지향하는 의사소통과 단조로움을 피하는 명료함을 본다. 김일권의 작품들은 컬러 빛이 풍부한 표면에 의해 형성되고 미묘한 맑은 고딕 그림 켜에 의해 완성되는 깊게 공명하는 에너지에 관한 시각적인 경험에 침투하는 어떤 것도 배제한다. 또한 바첼라드는 “지평선에 의존하는 공기로 숨쉰다”라고 선언한 방대함에 대한 샤를르 보들레르의 개념과 관련하여 공간의 친근함과 방대함의 공존을 생각하였다. 관객에게 부드러우면서 효과적인 시각적 활력을 제공하는 것은 김일권의 작품에 편재하는 지평선이다. 김일권의 작품에는 어떤 영적인 낙관주의가 있다 - 그것은 마음이 물질과 유한성이 잠깐동안 나타나는 곳을 감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공간 관계의 시이다.
김일권의 고요한 세계 ,, 양은희 (미술사 박사) 뉴욕시립대
김일권의 고요한 세계
양은희 (미술사 박사) 뉴욕시립대
1. 미술과 삶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같은 몸인데 다른 얼굴을 보일 뿐이다. 이미 지난 세기동안 미술의 역사는 이 동전의 앞뒤와 같은 삶과의 관계를 인정했으며, 삶을 벗어난 미술은 무의미하게 말장난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940, 50년대 그린버그가 맹신했던 형식주의 미술은 인간의 삶을 배척하고 ‘미술을 위한 미술’을 주창했지만 그것의 운명적 종착점은 결국 물감과 캔버스였다. ‘회화를 위한 회화’는 재료를 물신화하게 되었고, 결국 재료의 한계 내에 봉착하고 말았다. 미술은 일상의 일부이며, 삶과 병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는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존 케이지의 영향을 받아 ‘무엇이든지 미술이 될 수 있다’는 식이 한 가지이고, 또 하나는 온 카와라처럼 진지하게, 삶을 받아들이며 일상을 기록하는 태도이다. 케이지의 영향을 받은 작가, 특히 앨런 카프로우, 클래스 올덴버그는 현대사회의 폐허물과 잔여물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와서 삶의 흔적을 예술적 언어로 포장했다. 반면에 온 카와라는 자신의 삶의 세세한 변화를 조용하게 기록해왔다. 카와라는 아침에 일어난 시간, 신문에서 읽은 기사, 낮에 만난 사람 등을 하나하나 일기처럼 적는다. 그리고 그는 이런 일 외에도 ‘날짜 회화’ 또는 ‘일일 회화’라고 불리는 그림을 그리는데, 이 그림그리기는 그의 하루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이다. 모노크롬 캔버스를 테이블 위에 펼치고 위에 그날 날짜를 흰색으로 그래픽처럼 그리는 것이다. 하루에 한 작품을 그릴 수도 있고, 물론 몇날 며칠이고 아무런 그림도 그리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또 물감과 캔버스를 꺼내든다. 마치 며칠 동안 먹지 않았던 찌개를 끓여 먹듯이 다시 습관적 일상으로 돌아온다. 김일권은 카와라처럼 일상과 작업을 분리하지 않는 작가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의 회화에 그의 일상이 오롯이 녹아있다. 카와라처럼 그림의 제목에 그림을 그린 그날 날짜를 사용하는 것도 비슷하다. 간결한 수평선 하나가 캔버스 가운데를 가르는 그림으로 잘 알려진 김일권은 카와라처럼 비슷한 그림을 반복한다. 물론 색과 캔버스의 크기는 변하지만, 수평선 또는 수평적 구도로 화면을 가르는 추상 패턴을 반복한다. 그가 최근에 일관되게 그리는 수평적 색면은 사실 그가 사는 순천 앞바다 풍경을 캔버스로 담은 것이라고 한다. 순천. 서울에서 비교적 먼 이 곳의 일상은 여느 지방 도시처럼 느리고, 적막하며, 가끔 만나는 친구의 방문이 반가운 곳일 것이다. 그러나 서울처럼--아니면 카와라가 여행한 세계의 여느 도시에서처럼--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취침하는 일상이 반복되는 곳이기도 하다. 반복과 일상. 일상의 반복. 삶은 이 순환고리 속에서 느리게 그리고 인내를 통해 지속된다. 김일권은 카와라처럼 한 도시에만 사는 붙박이 작가는 아니다. 뉴욕을 거점으로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카와라는 사실 집 (house)이 있으면서도 집 (home)이 없다고 말한다. 김일권은 광주, 서울, 도쿄, 파리, 뉴욕 등 이미 여러 도시에서 전시회를 가졌고, 뉴욕에서 미술을 공부하면서 상당한 시간을 보냈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외국으로 자주 나간다. 그가 글로벌한 미술계를 두루 섭렵해왔다는 면에서 카와라와 비슷하다. 하지만 카와라는 고국인 일본의 언어를 작품에서 축출해버리고, 오로지 자신의 여정에서 마주친 언어로만 작품을 만든다. 심지어 일본어 대신에 에스페란토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한 지역, 한 나라의 시민을 넘어서 ‘세계시민’이고자 애쓰는 작가이다. 김일권은 먼 나라로 여행을 다녀오더라도 자신의 회화에서 고향의 풍경을 고수하고 있다. 그에게 ‘세계시민’이란 명칭은 고향의 냄새와 비교해서 더 매력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고향의 바다. 그 원초적인 감각을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 그래서 묵묵히 그 바다를 그림에 담는다. 그건 인간으로서 그의 존재이유이자 미술작가로서의 존재이유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순천에서 사는 그의 일상이다. 오래 전부터 순천 사람들이 바다를 보면서 삶을 그렸듯이, 그도 바다를 보면서 삶을 그린다. 서울로, 그리고 뉴욕으로 아니면 다른 외국의 도시로 돌아다니더라도 그 일상은 이미 그의 존재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2.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오래전, 아직 예술과 과학, 철학과 과학이 분리되지 않던 시절, 고대도시 바빌론에는 인근 지역에서 몰려온 지성인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Adherents of Legominism”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구상에 거주하는 뛰어난 학자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로 발전되었다. 그들은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들로서, ‘최고의 지식’을 얻음으로서 ‘자아 완성’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모여든 학자 중에 Aksharpanziar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어느 날 이 모임에서 자신들이 가진 지식을 안전하고 정확하게 다음 세대에 물려주려면 인공적인 물건을 만드는 것 (즉 예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그 만들어진 물체를 통해서 후세가 지식을 보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각적 물체는 한 세대의 성과를 후대에 보여주는 증거로 삼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의 연설을 듣고 고무된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들이 가진 지식을 보여주는 물건을 만들어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여러 사람의 머리와 손을 거쳐 나온 물건이었기에 당연히 다채로운 색, 형태, 기능을 가진 것들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도 만들어온 물건이 너무 많아서, 한 번에 전시를 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래서 효과적으로 운영하고자 불가피하게 여러 날에 걸쳐 전시를 하나씩 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전시에 따라 물건을 분류해야 했는데, 시간에 따라, 그리고 종류별로 물건을 나누어야 했다. 그래서 전시는 일주일로 늘어났고,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날마다 다른 종류의 물건을 전시했다. 화요일은 건축 작품을 전시하는 날이었고, 수요일은 회화작품을 전시하는 날이었다. 이렇게 나누다보니 덩달아서 물건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효율적으로 분류하게 되었다. 이 전시는 당시 바빌론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미 인간의 지각이 많이 쇠퇴하고 있어서 이를 믿을 수 없던 차에, 다양한 시각적 물건이 쏟아져 나온 것을 보고, 내친 김에 감각 중에서도 중요한 시각의 영역에 속하는 색채를 연구하기로 한다. 특히 흰색과 검은 색 사이의 다양한 채도를 이번 기회에 찾아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자신들의 의식이 고양되고 진리를 향해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감각을 되찾으려는 그들의 노력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그 결과 한때 화가들은 회색에서 1500개의 다른 채도를 찾아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시각의 섬세함을 탐구하다보니, 예술은 처음에 지식의 세계에서 출발해서 감각의 영역과 연결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신비주의 철학자이자 종교이론가인 구르지예프의 철학적 소설 <Beezelbub's Tales to His Grandson> (1950)에서, 주인공 빌제법Beelzebub이라는 이가 자신의 손자 하세인Hassein에게 전해준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온 카와라가 좋아했던 작품이다. 바빌론 사람들이 한 일은 무엇일까? 이 이야기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요점은 이렇다. 인간의 삶은 자아를 발전하면서 완성된 삶을 산다. 그래서 ‘최고의 지식’을 얻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식을 개인을 넘어 다음 세대에 지혜와 물려줄 의무가 있다. 바로 그 의무를 수행하는 과정이 예술을 성취하는 과정과 같다. 삶과 예술의 일치가 여기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지식을 보여줄 시각적 증거로 나온 것이 바로 시각예술품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지식은 너무도 많은 시각적 방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보기 좋게, 이해하기 좋게, 그리고 인간이 누리는 시간 제도에 따라 분류할 필요가 생겨났다. 그런 과정을 통해 결국 감각의 영역과 지식의 영역이 처음부터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었는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분리된 영역들이 생겨난 것이다. 바로 근대사회에 들어와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고대로 돌아가 보면, 다시 말해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전의 원점으로 돌아가 보면, 인간의 삶은 예술과 괴리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예술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이다. 감각, 경험, 지식, 그리고 존재는 전달하는 것이다. 캔버스와 물감은 그것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카와라는 이 이야기에서 자신의 미술작업의 근간을 확인하고, 평생 동안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기록하고, 이를 전달하고자 반복되는 과정을 살아왔다. 그는 19세에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사회 제도가 만든 어느 직업도 거부하고 오로지 예술가라는 고대부터 전해온 길만을 걷는다. 굶주림과 두 아이의 아버지라는 현실도 그 길을 멈추지 못했다. 1960년대 중반 이런 깨달음을 얻은 이후로 매일 그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닌데 스스로 깨달음에 도달한 그는 바로 “Adherents of Legominism”의 현대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삶과 예술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김일권도 그 길을 가고 있다. 순천 앞 바다를 보면서 꾀를 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그리고 가끔은 지루할 정도로 반복하면서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
3. 김일권은 주로 바다, 산, 대지의 풍경을 그려왔다. 2003년경부터 등장한 풍경은 눈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연에서 점차 추상적인 자연으로 변해갔다. 그런 중에 바다와 땅이 융합되고, 하늘과 대지가 서로 혼동되면서 이제는 바다 풍경인지 아니면 마음의 풍경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이다. 세계의 추상 미술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잘 아는 그가 이미 보편적인 미술 언어로 인정된 추상을 향해 나아갔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가 뉴욕에서 거주하면서 알게 된 비평가들--로버트 모간, 로즈메리 오닐, 탈리아 브라초플러스--은 한결같이 그의 작품에 보이는 자연의 보편적 미와 공간의 자연스러움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마크 로스코와 같은 정적인 그러면서도 초월적인 추상의 미를 추구했던 미국 작가와 비교하고 있다. 김일권의 작품에 로스코의 팔레트가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로스코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본다. 1950년대 이후 한국에서 전개된 추상 전통을 그가 모를 리 없다. 덩어리들이 엉킨 역동적 추상작품에서, 선의 반복적 활동을 담은 미묘한 모노크롬 회화까지, 김일권보다 앞서서 추상을 다룬 작가들을 그가 모를 리 없다. 그는 동서양의 회화 전통을 공부한 사람이다. 초현실주의적인 생명체를 그리다가 이런 형체들을 추상화하면서 결국에는 부드러운 색면이 부유하는 추상을 통해 정신적인 주체를 표현했던 로스코의 추상과 외양은 비슷할지 몰라도 출발은 다르다. 김일권은 바다, 밤, 하늘, 땅과 같은 넓은 우주를 차근차근 그려서 결국 정련된 추상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는 형태만 정련한 것이 아니라, 붓의 움직임, 색채의 사용도 점점 절도있게 변해왔다. 김일권의 풍경은 단순한 수평 구도와 한두 가지 색을 이용한 모노크롬 색면의 결합을 통해 아직은 완전한 추상이 아니라, 푸른 바다와 척박한 대지가 서로를 포용하는 순천 앞바다 풍경이 정련되어 고즈넉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남해안에 자주 부는 비바람의 흔적조차도 수평선이 무너지는 안개 속처럼 그려진다. 푸른색과 붉은 색일 수도 있고, 녹두색과 갈색이 결합할 수도 있다. 수평적 구도에 가로로 뻗은 줄 하나, 둘이 화면을 가른다. 그리고 그 바다와 대지가 서로 녹아들어 가는 수평선은 그의 풍경에서 사실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둘이었던 색이 하나가 되는 지점이자, 하나였던 색이 둘로 나뉘는 지점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의 풍경이 보여주는 드라마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는 수평선은 의도적으로 단순한 선 하나, 아니면 해안선과 같은 돌출된 부분이 느껴지는 선도 있다. 그 수평선이 갈등 관계를 극복한 듯이 소박하게 서로 어울리기도 한다. 이 선은 그의 그림이 완성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1년 365일, 태양과 달, 구름과 바람이 예고도 없이 매일 찾아오는 곳. 변화무쌍한 낮과 밤을 보면서도 김일권은 바람, 돌, 나무, 파도도 숨을 죽인 곳과 때를 골라 캔버스에 담았다. 그 숨죽임 가운데 드러나는 고요함이 남도의 여유로움인지 아니면 척박한 땅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시간 속에서 잊고자 하는 망각의 노력인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물감이 지나치게 두텁지도 않고 얇지도 않은 것, 붓 자국이 절제되어 정직하게 움직인 것은 분명히 평온함을 담고자 한 흔적이다. 그러면서도 약간의 도도함이 엿보이는 것은 어쩌면 고향의 바다 앞에 서서 역사의 고통과 현세상의 흐름을 잊고, 더 큰 우주의 흐름 속에 자신의 존재를 맡기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고요의 땅. 그가 한때 사용하던 제목은 요즈음 사라졌지만 처음에 그가 어디에서 출발했는가를 보여준다. 그 땅을 번잡스럽게 하는 인간과 혼잡한 감정의 교류, 욕망의 경쟁을 축출해버린 곳.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가 스치는 곳. 고요함은 문명과 먼 김일권의 영토를 정의하는 개념이다. 그곳은 사람이 전혀 살지 않는 곳이거나 아니면 그가 사람을 피해 온 곳일 것이다. 스스로가 먼지 한 톨처럼 느껴지는 넓은 대지와 그것을 에워싼 바다. 그런 영토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런데 그는 그 생각과 느낌조차도 차단해 버렸다. 언제부터인가 ‘고요의 땅’이라는 제목은 사라지고 그가 그림을 그린 날짜만 제목으로 사용한다. 그는 이렇게 중성적인 제목을 통해 모든 연상, 추측, 그리고 가정을 막고 대신에 그림에만 집중하게 한다. 2005. 11. 20, 2006. 01. 20, 2006. 02 .01, 2006. 02. 02, 2006. 03. 30, 2006, 04. 02, 2006. 06. 10, 2006. 10. 29, 2006. 10. 30, 2006. 11. 21, 2006. 12. 31, 2007. 01. 25............................................................................................................................................ 이 숫자는 김일권이 작품 제목으로 사용한 것들이다. 그가 그림을 완성한 날의 날짜를 그대로 제목에 사용했다. 하루, 그리고 또 하루, 그리고 또 하루. 그림 한 점을 완성하려면 족히 한 달을 보내는 그는 마지막 날에 그림 제목을 정한다. 그 작품이 만들어질 때까지 흘러간 시간은 모두 그 제목에 들어간 날짜로 응축된다. 손자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면서 선조가 쌓은 지혜를 전해주려던 할아버지 빌제법, 바빌론에서 후대에게 지식을 전달하고자 애쓰던 지식인들. 날마다 자신이 그림을 그린 날의 날짜를 캔버스에 그리는 카와라. 김일권은 그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알고 있으며 자신에게 부여된 그 역할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다. 2006년 1월 20일...........2006년 2월 1일. 2006년 2월 2일.......2006년 3월 30일...2006년 4월 2일..............2006년 6월 10일........................2006년 10월 29일..2006년 10월 30일.............................2006년 11월 21일.............................................................................................................................................. 이 무수한 점 속에 시간이 흐른다. 그 시간은 인간의 일상을 삼키고, 고요히 흐르는 바다처럼 흘러간다. 어수선한 세월도, 번잡스러운 시간도, 영광스러운 순간도 모두 그 시간의 바다에 묻힌다. 그리고 작가도 묻힐 것이다. 그러나 죽음이 작가를 사라지게 하더라도 작품은 그 시간 속에서 지속된다. 바빌론에서부터 그랬듯이.
▽ Thalia Vrachoplus Ph.d ,뉴욕시립대학교 미술사 교수. 2005 NY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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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권 Solo Exhibition | 2007 POSCO 미술관(서울) | 2005 ANDRE ZARRE GALLERY, Chelsea New York | 2005 MEDIAPIA GALLERY Baltimore .MD | 2004 뉴욕시립대학교 존 제이 갤러리 미국 (뉴욕 한국문화원 공식 후원전) | Thalia Vrachopolus 교수 큐레이터. 기획 | 2003 예맥화랑 기획 (서울) | 2002 나인갤러리 기획 (광주) | 2001 신세계 갤러리 기획 (광주) | 2000 예맥화랑 기획 (서울) | 1996 Galerie D'Art GNG 기획, 파리 쌩 제르맹 데프레(프랑스) | 1995 예맥화랑 기획 (서울) | 1994 예맥화랑 기획 (서울) | 1993 캠브리지 갤러리 기획(광주) , 뉴코어 갤러리 기획 | 1992 뉴욕 맨하탄 소호 브룸스트릿 갤러리 초대 Group Exhibition | 2007 "작은미술관" 서울국립현대미술관, 여수공항 | 2007 "공주국제미술제" 임립 미술관 | 2006 " Destiny " Space world, long Island, New York | 2006 " Artexpo New York " ( Art Bank N.J ) Jacob Javit Center N.Y.C. | 2005 " Artville " 2X13 Gallery chelsea New York | 2005 " Artexpo Atlanta" ( Art Bank N.J ) Georgia World Congress Center | 2005 " 풍경 조망 속을 걷다" 서울 국립 현대 미술관 | 2005 " OPEN STUDIOS" crane street studio Long Island New York | 2005 " 찾아가는 미술관 " 서울 국립 현대미술관 | 2004 " 바라보기자아 " 광주시립미술관 분관 | 2004 " 찾아가는 미술관 " 서울 국립 현대미술관 | 2003 " 정열 " 뉴욕 한국문화원 갤러리 코리아 미국 | 2003 " 진경 - 그 새로운 제안 " 서울 국립 현대미술관 | 2003 " 찾아가는 미술관 " 서울 국립 현대미술관 | 2003 " 2002 New Acquisition " 서울 국립 현대미술관 | 2002 " 영남 호남 그리고 충청 " 대전 시립 미술관 | 2002 " Convergence " Academy Galley New York. | 2002 " 깊은 산중에서 소를 잃다 " 광주 시립 미술관 | 2002 " 7인 초대전 " 뉴욕 첼시 Papp갤러리 (미국) | 2001 " 신도리코 기획 초대대전 " 신도리코 화랑 (서울) | 2001 " 21c 한국 현대미술지상도 " 세종 문화회관 미술관 (서울) | 2000 " 일.한청년작가 미술교류전 " 한국대사관 동경 한국문화원(일본) | 2000 " New millenium " 덕원 갤러리 서울 | 1999 " Riverwalk Arts Festival " City of York (미국, 펜실바니아) | 1998 ~ 1999 " Korea Computer Graphics " 서울 이화여대 미술관 | 외 다수 eelkwon@yosu.ac.kr | eelkw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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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0080423-김일권 초대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