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Young Artists 1 展

 

- After The Pictorial turn -

 

민성식_문들-Doors_145.5x227.3cm 2006

 

 

두산갤러리

 

2008. 3. 20(목) ▶ 2008. 4. 24(목)

오픈식 :  2008. 3.20(목) PM 6:00 두산갤러리 내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 318번지 | 053-242-2323~4

 

 

민성식_풀장-Pool_145.5x227.3cm 2007

 

 

After the Pictorial Turn : 현대 회화의 다양한 양식들

 

박순영 | (객원 큐레이터

두산갤러리는 2008년의 전시 방향을 ‘Korean Young Artists’로 정하고, 회화, 사진, 조각 또는 설치, 미디어로 나눠서 전시를 진행할 것이며, 이번 전시는 그 첫 번째 기획으로 ‘회화’에 관한 전시이다. <After the Pictorial Turn>전은 한국에서 주목받는 젊은 회화작가들 중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하고 인정받는 작가 4명을 선정하여, 작품세계를 들여다보고 작품의 의미를 이해하기를 바라면서 기획되었다.

요즘은 가요제의 역할이나 영향력이 약해졌는데, 비슷하게도 젊은 화가의 등용문 또한 한 곳으로 치우쳐 있지 않다. 그만큼 이제 젊은 작가들을 ‘지원 육성’한다는 모토역시 지난한 얘기로 들릴 정도로 젊은 작가들의 활동은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바람직하게도 회화양식의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열어 놓고 있다.

모더니즘 운동을 끝으로 미술에서 표현의 양식은 확실히 다양해졌다. 하지만 시간을 끊어서 구분할 수 없듯이, 양식의 다양성 또한 선배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현대미술의 부흥이 일찍이 시작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시대별로 흐름이 구분될 만큼 하나의 양식에 대한 집중력은 실로 대단했다. 6,70년대를 풍미한 모더니즘 화풍이나 80년대의 민중미술과 극사실주의 회화가 그랬다. 88올림픽을 기점으로 90년대 접어들면서 다양한 시도가 주목을 받았지만, 그래도 기존 화풍의 기세를 압도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다른 선진 미술계가 그랬듯이 어렵거나 어두운 분위기를 뒤로 한 채 팝아트가 부흥을 하면서 예술에 대한 접근이 대중에게 수월해 졌다. 그리고 그만큼 예술에 대한 고민이 대중화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대중화는 표현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계기가 된다. 왜냐하면 어떤 이데올로기로 인해 대중이 예술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취향에 부합하는 예술을 찾아도 된다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작가들 또한 자신의 스타일에 집중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것이다. 이제 극사실적인 회화, 초현실적인 회화, 팝적인 회화, 미니멀한 회화, 표현주의적인 회화, 나아가 바로크풍의 전통적인 회화가 젊은 작가들의 붓을 통해서 다양하게 보여지고 있다.

이번 전시는 제목대로, 회화적 전환 이후의 다양한 회화의 양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독특하다고 모두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전시는 예술성을 기조로 해서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한 작가들로 선정하였다. 전시제목에서 사용된 ‘Pictorial Turn’은 미술사학자인 미첼(W.J.T Mitchell)이 개념어로 등장시킨 용어를 차용한 것이다. 하지만 미첼이 인식의 문제에서 사용한 것과는 달리 이번 기획에서 바라 본 회화적 전환의 지점은 바로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뵐플린(H. Wolfflin)이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화풍을 선적 양식에서 회화적 양식으로의 전환으로 구분한 것을 따른 것이다. 이번 전시는 바로크에서 회화적인 양식이 이루지면서 이후, 인상주의의 화풍을 열었고, 추상미술과 개념미술을 가능하게 하면서 극사실주의와 팝아트까지 등장하게 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들이 지금은 다양하게 공존하게 되었으니, 그 지점을 바로크의 회화적인 양식에서부터 시작하려는 것이다.

전시에 참여하는 민성식, 박민준, 유승호, 홍경택은 한국의 젊은 작가 중 제대로 주목받는 작가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품스타일을 확고히 확립한 작가로 인정받는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왜 이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왜 이들의 독특한 양식들이 예술적으로 평가받고 있는지에 대해 각 작가의 작품론 또는 작가론을 이론적으로 풀어줄 적합한 이론가들을 섭외해서 심포지엄을 준비하였다.

여러분은 전시된 작품을 통해서, 그리고 심포지엄을 통해서 작품의 의미에 접근하고 이해하면서 향후 10년, 이들의 모습과 그 위상을 상상해 보셨으면 한다.

 

 

박민준_풍랑에 의해 불시착한 꼬까울새와 고흐_181x 227cm_아사위에 아크릴과 유화 2006-2007

 

 

*민성식의 회화  - 현세적 유토피아의 풍경

 

 얼핏 민성식의 그림들을 보면, 그것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이미지들의 모임같이 보인다. 그 이미지들은 그림 감상에 거의 소양이 없는 관객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이미지들이다. 저렇게 넓은 집에서, 사람 없는 해변에서, 밝고 따뜻한 정경 속에서 바비큐나 즐기면서, 저렇게 살면 좋지, 저렇게 살고 싶다 하는 일차적인 감상을 가지고 그의 그림들을 되풀이해서 바라보면, 그러나 그의 그림들은 어느 순간 다른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되풀이해서 보면 볼수록 그의 그림들은 그 안에서 돌고 도는 의미의 고리들이 이리 저리 엮여, 때때로 다른 모습으로 재구성된다.

 첫눈에 그의 그림은 데이빗 호크니(David Hockney)가 개척한 이미지, 밝은 캘리포니아의 기후 속에 빛나는 집과 수영장, 잔디밭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고, 건축물에 의해 강조된 원근법은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를 떠올리게 한다. 영국인 호크니가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수영장 시리즈를 제작했듯이 민성식의 이미지들도 그의 해외 체류경험이 반영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고, 현실을 그리되 비현실, 초현실을 품는 주제의식은 데 키리코의 공간 구성법과 자의든 자의가 아니든 우연찮게 조우하는 계기를 이루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선대(先代)의 미술사 앞에서 많은 것을 드러내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연대순으로 민성식의 그림들을 일별해 보면, 주제의식이나 그 표현방식이 일관되고 분명해 보인다. 2003년의 작품들로부터 현재 작업 중인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림 속에 등장하는 소재와 기법의 변화가 없지 않지만, 그것은 작가가 세계를 거르는 일관된 거름망의 의미 구조로 이해될 수 있다. 그의 그림들 속에 등장하는 이미지들, 넓은 기하학적 실내, 집에 딸린 수영장, 보트, 낚시, 캠핑도구, 목공도구들은 밥벌이로 바쁜 일상에 허덕이는 현대인들이 소망하는 한가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보여준다.(도판 1, 2, 3) 경이롭게 트인 공간, 매끈하게 정돈되어 있으면서 소일거리 외의 일거리가 침범하지 않는 공간, 그러면서 누워 있거나 기대 있을 수 있는 사적인 공간, 그 공간들을 그는 억하심정이나 망설임 없이,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것을 보는 관객들도, 마치 경비행기를 타고 낮게 날으면서 좋은 풍경을 보듯 거부감 없이 흐뭇하게 바라보게 된다. 과장된 원근법이나 공존할 것 같지 않은 상황들의 병치 등 이질적인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에 밀착해서 쉽게 그림을 받아들이고 꿈꾸게 되는데, 그의 그림이 주는 꿈은 단연코 세속의 꿈, 소시민의 꿈이다.

 현실에 맞닥뜨리는 화가의 관점은, 여기 말고 저기, 이렇게 사는 것 말고 저렇게 사는 것이 더 인간답고 보기 좋다고 자신의 꿈을 드러내 보여준다. 최근에 들어서는 여기와 저기, 이렇게 사는 것과 저렇게 사는 것 사이의 갈등이 <목수의 집> 연작 속에서 해소되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두 차원의 대립 관계가 그림 속에 뚜렷이 드러나 있다.

 

 

홍경택_컵이 있는 정물_97x130cm_캔버스에 유화 1993

 

 

 특히 2005~2006년에 제작한 그의 그림들 속에는 비현실적 설정들, 이를테면 회색 아파트가 건너다보이는 건물의 옥상 귀퉁이에 홀로 텐트를 치거나(도판 4), 건물의 난간에 침낭을 펴고 레코드를 돌리거나(도판 5), 우주복을 입은 인물이 건물의 옥상에서 화분을 감싸 안고 등장하거나(도판 6), 지상 건물에서 아래로 낚싯대를 드리우는 장면(도판 7) 등이 고집스럽게 등장하는데, 현실적으로 존재할 것 같지 않은 낯선 상황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적이라 볼 수 있지만, 문제는 이 상황이 그렇게까지 비현실적이지는 않다는 데 있다. 실제로 하려고 마음 먹는다면 못할 것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의 전략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낯선 상황을 만들어 현실을 소외시킴으로써 생성되는 새로운 차원을 열어 보이겠다는 것이었지만, 민성식의 경우 ‘초현실주의적’인 방법이 드러나 보이는 이 시기의 생경한 장면들은 오히려 현실의 틈 사이를 비집고 설 자리를 만들고자 버티는 일인시위의 제스처로 보인다.

 회색으로 대표되는 도시의 건물들과 텐트, 침낭 등이 이 세계와 저 세계를 분리시키는 대립되는 요소인 반면, 실내가 투시되어 보이는, 민성식이 즐거이 지어내는 건물들은, 건물 그 자체가 그가 그려내는 꿈인 것처럼 보인다.(도판 8) 그의 건물들은 원근법의 도입을 요구하며 원근감의 왜곡에 적극적으로 기여한다. 때때로 땅이 일어서거나 하늘이 내려앉은 것처럼 어지러울 정도의 왜곡을 가한 그림들도 있지만(도판 9) 대체로 건물의 모서리 면이 부각되도록 사선을 강조하거나 부분적으로 시점이 맞지 않는 정도의 원근법이 사용된다. 모름지기 원근법은 화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으로, 반드시 그의 세계관이 투영되어 있다.

 민성식이 취하는 시점은 발을 땅에 디디고 선 자의 그것이 아니다. 그의 그림에는 새가 낮게 떠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건물들 사이를 날아 지나가면서 보는 것과 같은 시점이 채용되어 있다. 전통적인 동양의 그림들 속에서 보이는 부감법(俯瞰法)이 스케일 큰 산수를 대상으로 하여 먼 것을 보는 시각 양식인 반면, 민성식의 부감법은 세부가 자세히 보일 정도의 거리에서 내려다보는 부감이다. 굳이 말하자면 그의 그림 속 대상물들은 원경(遠境)도 근경(近境)도 아니고, 중경(中境) 쯤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먼 곳을 그린 그림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는 사물들이 그려진 그림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전체 작품에서 보자면 미미한 숫자이며, 대체로 그림 속 등장인물을 둘러싼 물건들이 식별되는 정도의 거리를 표현한 그림이 많다. 이러한 시점은 현대 도시인들이 어쩌면 흔히 접할 수 있는 시점이다. 땅에 비해 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사는 우리나라의 경우이겠으나, 대체로 우리는 높은 건물에서 살고 일한다. 아파트의 경우 건물들 사이의 간격도 그렇게 넓지는 않아서 앞동 남의 집 거실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높은 위치에서 내가 선 곳보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점은 그래서 아주 낯설지는 않다.

 그러나 민성식의 그림 속 상황은 이와는 좀 다르다. 보아서는 안될 남의 집을 몰래 훔쳐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하기보다는, 그림 속 상황에 보는 이의 위치를 이입(移入)하게 하는 쪽에 가깝다. 그의 그림 속 내려다보는 시각은 작은 집과 사람을 만들어 상황을 창조해 노는, 가지고 노는 이가 작게 축소되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노는, 일종의 놀이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그림 속에 보이는 등장인물이 곧 그림의 화자(話者)이자 작가 자신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옥상 귀퉁이에 시위하듯이 텐트를 치거나 아슬아슬한 난간에 침낭을 까는 자는 다름 아닌 작가 자신인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작가는 외로운, 지루한, 일하는, 실망한, 행복한 자기 자신을 만들고, 내려다보고, 관객은 그러한 작가를 내려다본다.

 

 

홍경택_연필1_259x58cm_oil on canvas 1995-1998

 

 

 중경에 건물과 인물이 배치되는 동안 배경이 되는 나머지 부분은 하늘인지 바다인지 모를 커다란 색면으로 채워진다. 때때로 담을 둘러쳐서 이 세계와 저 세계를 분리시키되 저 세계를 끝 모를 공간으로 만들어버린다. 일상의 차원에서 하늘이나 바다는, 비행사나 어부가 아닌 이상 현실의 반대편에 있는 초월적인 의미를 품고 다가온다. 인간에게 있어 무한하게 넓은 공간에 대한 욕구는 어떤 원초성을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하늘, 바다와 같은 공간은 건물이 가진 직접적인 실용성을 주지 않지만, 인간에게 실존적 의미를 일깨우고 형이상학적 본능을 자극한다. 예컨대 동양의 산수화와 서양의 종교화에서는 사람이 어떻게 사는 것이 마땅한가에 대한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 산림에 숨어 사는 동양화 속 인물이나 하늘로 승천하는 서양의 종교화 속 인물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산과 물과 하늘 그 자체가 의미를 품고 있는 것이다. 민성식의 그림 속 소시민은 건물 안에서(텐트를 치고 침낭을 펼지언정 건물 안에서!) 먹고 마시고 늘어져 쉬고 있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넓은 자연이고, 인공물들과의 대비 때문에 그 함의는 더욱 깊어진다. 집 밖의 넓은 세계가 존재하고 그 존재를 알고 있지만 집을 떠나지 않는 것, 다만 그 집이 넓고 아름답기를 바라는 것, 그야말로 현대 소시민의 바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전술했던 바, 최근의 <목수의 집> 연작은 그간 그림 속에 등장한 갈등 요소들이 어떤 계기를 만나서인지 화해모드를 이루고 있다. 텔레비전을 보고 하염없이 늘어져 있던 인물은 이제 일어나 도구를 들고 집을 고치고 나무를 벤다. 고립감과 외로움을 표상하던 노란 텐트는 이제 넓게 펼쳐지는 것으로 교체되어, 일을 하는 작업대나 바비큐 그릴의 차양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기증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평면적으로 막막하게 펼쳐져 있던 바다와 하늘은 이제 화면 속의 구체적인 결을 가지고 가까이 다가와 있다.  

  반복되던 모티프들의 이러한 변화된 양상은, 작가의 삶 속에서 구체적인 계기들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작가에게 캐물어보지는 않았다. 여전히 그의 그림은 건축물을 중심으로 생동감 있는 색채가 얹혀져 있고 그 광경을 조금 더 기분 좋은 거리에서 내려다보게 한다. 방법과 소재가 달라진 것이 아니고 그것들이 조합되는 방식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 광경은 조금 더 현실에 가까이 다가와 있는, 속세적인 유토피아이다. 밥벌이를 버리지 않는 한, 아니 밥벌이를 버린다 해도 이루기는 어려워 보이는 평온하고 풍요로운 삶, 언젠가는 그렇게 살고 싶다 생각하는 현대적 이상향의 이미지를 그는 <목수의 집>을 통해 보여준다.

 현실에 대한 비판이든 이상향에 대한 꿈이든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민성식의 그림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필요 없을 정도로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그림이라는 것이 가진 보편적인 힘에 대해 다시 생각케 한다. 감각에 기초하여 실제 세계를 그려내는 그림은 개념적인 일깨움을 주는 작품보다 우리의 눈에 쉽게 들어오며, 민성식의 그림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힘도 기본적으로는 이 점에서 온다. 또한 상당수의 젊은 작가들에게서 보이는, 초조함에 기인한 이미지의 학대나 무분별한 미술사적 차용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그의 그림이 가진 보편적 감흥에 일조할 것이다. 그의 그림은 현대미술의 동향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그림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나아가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다가갈 것이다. 나는 마음으로부터 그의 방식에 동의한다.

 

 

*박민준(Park Min Joon)의 회화 - 알레고리, 미술사를 사용하는 한 방법

 

고대 그리스 신화와 중세 기독교에 맑은 고딕을 둔 서양문명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개념어들의 풍부한 자산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정식화한 것이 도상학(이코노그래피)이다. 도상학은 말하자면 서양미술사에서의 온갖 수상쩍은 이미지들의 의미를 캘 수 있는 일종의 기호의 책, 수수께끼의 책, 상징의 책, 알레고리의 책인 것이다. 이미지가 텍스트와 동일시되던 시대에 화가들은 추상적인 관념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었을까, 또한 자신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사랑, 증오, 질투, 용기 등의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개념을 직접 표현하지 않으면서 다른 구체적인 대상을 이용하여 표현하는 것을 알레고리라고 한다. 상징의 한 형식이면서도 그 의미가 상징보다 더 유연하고 포괄적이다. 즉 개별적인 상징들이 모여 하나의 서사 내지는 격언 내지는 경구를 만들어낼 때 이를 알레고리라고 한다. 일례로 눈을 가린 처녀가 한 손에는 칼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천칭을 들고 있는 모습에서, 눈을 가린 것은 맹목을, 칼은 법을, 천칭은 공평무사를 각각 상징한다. 이러한 개별 상징들이 모여 법은 정의롭다는 알레고리가 생성되는 것이다. 이로써 법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으며 공평무사하게 적용되는 것임을 주지시킨다.

이처럼 고대 서양미술사에는 각종 의미 있는 알레고리화가 등장한다. 예컨대 유아와 처녀와 노인을 등장시켜 삶이 전개되는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 삶의 알레고리, 청춘을 상징하는 처녀와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을 대비시킨 죽음의 알레고리, 그리고 세속적인 사랑과 천상적인 사랑을 대비시킨 사랑의 알레고리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런 알레고리를 테마로 한 그림들은 추상적인 개념을 사람에 대입시킨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사물을 통해 정황을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 그 예로써 바로크 미술의 대표적인 장르화 중 하나인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를 들 수 있다.

기독교의 도상학(특히 빛과 신과 선행이 동일시되고 어둠과 악마와 악행이 동일시되는 이분법적 틀을 강조한)이 엄격하게 요구되는 종교화나, 인격신을 알레고리로 표현한 신화 일색인 시대에 추상적인 개념은 그렇다 하더라도, 화가 자신이나 동시대인은 어떻게 그림 속에 구현될 수 있었을까. 이와 관련하여 화가들은 기지를 발휘하게 되는데, 신께 성물을 봉양하는 주체를 동시대인으로 그려 넣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이러한 해결 방법은 봉헌자를 기록으로 남기는 효과와 함께 무엇보다도 동시대적인 그림이라는 생생한 현장감이나 현실감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마저 낳는다. 뿐만 아니라, 정전화된 텍스트에 대해 일종의 끼어들기를 가능케 했다. 말하자면 종교화라는 본래의 맥락을 비틀어(탈맥락화) 세속적인 삶을 반영할 수 있게끔 재맥락화를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림 속에 화가 자신을 그려 넣은 대표적인 경우로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들 수 있다. 성 바로톨로메오(S. Bartolomeo)가 자신의 순교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벗겨진 피부를 손에 들고 있는데, 그러나 정작 그 피부에는 성 바로톨로메오가 아닌 미켈란젤로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미켈란젤로는 조각과 그림을 통한 자신의 봉사 역시 순교와 다르지 않다고 본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당대의 지배적인 패러다임 즉 신플라토니즘(기독교의 유일신 사상과 플로티누스 Plotinus의 일자 사상이 결합된)에 대한 자신의 신념이나 갈등 즉 신의 의지와 천재로서의 자의식이 서로 부닥치고 충돌하는 경험이 고스란히 투사돼 있다. 미켈란젤로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마저 투영하기에 주저함이 없다. 당시 그림의 내용에 대해 자신과 대립했던 추기경 비아지오 체세나를 지옥의 사신 미노스(Minos)로 그려 넣어, 지옥으로부터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러한 사례 역시 단순히 그림 속에 화가 자신을 그려 넣는 것 이상의, 탈정전화에 대한 실천논리를 엿보게 해준다.

 

박민준은 이러한 알레고리화를 그린다.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봄의 제전>의 세 여신을 모티브로 한 <삼미신>에서 세 여인은 각각 애욕, 순결,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작가에게서 이 개념들은 세 여신을 한 명의 동일한 여인을 모델로 그린 것에서 하나의 원리로 통합된다. 즉 이 그림은 미의 각각 다른 측면(이를테면 진, 선, 미가 하나로 통합된)을 암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타나토스와의 결혼>에서 작가는 프로이드에 의해 정식화된 에로스(Eros 삶의 충동)와 타나토스(Thanatos 죽음충동)를 대비시킨다. 그리고 그 경계를 넘나들거나 이어주는 매개자로써 꼽추를 등장시키는데, 이때 꼽추는 자신의 자화상으로 대체돼 있다. 말하자면 항상 경계를 인식하는 자, 경계의 이편과 저편을 중재하고 자기 내부에 통섭해 들이는 주체, 일종의 무당으로서의 예술가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리>에서는 이승과 저승을 가름하는 망각의 강을 소재로 하여 이런 경계에 대한 인식을 강조한다. 그리고 <날다>에서 그 인식은 현실세계와 이상세계의 경계 위에 서 있는 인간의 보편조건으로 변주되고 있다. 즉 인간은 비록 현실세계에 발을 디디고는 있지만, 이와 동시에 그 현실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이상주의자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이중성, 다중성, 분열성은 그 자체 비정상적 징후이기는커녕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인 것이다. 원전에서의 추락한 이카루스(Icarus)에 대해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은 재차 날개를 달고 비상을 준비하는 이카루스와의 대비가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준다.

이처럼 원전을 비교적 충실히 따르고 있을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그 의미가 읽힌다. 문제는 작가가 미술사로부터 부분 이미지들을 차용해서, 이를 하나로 편집한다거나 나아가 미술사에서 차용한 이미지와 미술사 외부의 일상적인 맥락 더욱이 사사로운 맥락으로부터 차용해온 이미지를 한자리에 짜깁기해놓은 경우에는 그 독해가 난해해진다. 미술사의 맥락과 일상적인 맥락 그리고 사적인 맥락이 연계성 즉 연속적인 개연성 없이 제시되는 경우, 더욱이 서양미술사 같은 알레고리를 읽을 수 있는 정전화된 텍스트가 없는 경우, 나아가 작가 자신이 정전화된 텍스트에 대해 의도적으로 무신경한 경우에는 그림을 읽을 수 있는 궁극적인, 결정적인, 최종적인 의미나 해석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그러니까 그림에 대한 모든 의미나 해석 그리고 독해행위를 임의적이고 자의적이며 부분적이고 잠정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박민준의 그림이 열린 예술작품(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 차연(differance 자크 데리다 Jacques Derrida), 저자의 죽음(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논의와 연결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어슷비슷한 차이를 만들어내면서 끊임없이 연기될 뿐 궁극적인 의미는 끝내 붙잡을 수 없다는, 그리고 의미가 최종적으로 완결되는 지점을 저자가 아닌 (궁극적으로 개별적이며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는) 독자로 보는, 소위 하이퍼텍스트의 상황이 열리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열린 텍스트(혹은 상호텍스트성 혹은 상호영향사 혹은 지평융합 현상)는 작가의 지금까지의 그림에서보다 앞으로 더 의식적인 층위에서 그것도 전략적인 차원에서 수행되고 실현될 것임은 자명해 보인다. 작가의 그림은 말하자면 그 대상이 손에 잡힐 듯 극사실적으로 그려진 전통적인 아카데미즘 풍의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실체가 쉽게 손에 잡히지가 않는다. 수수께끼와 퍼즐 그리고 일종의 의미 짜 맞추기 놀이로 나타난 고답적이고 흥미진진한, 그리고 낯선 놀이에 우리를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작가의 그림에는 케임브리지 킹즈 칼리지의 예배당(황금의 길), 숲의 요정 다프네, 라파엘로(Sanzio Raffaello)의 <아테네 학당>, 자크 루이스 다비드(Jacques Louis David)의 <마라의 죽음 La Mort de Marat>,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의 칼로 예리하게 찢겨진 캔버스 등의 미술사의 부분 이미지들이 차용되고 짜깁기되고 재구성된다. 그리고 근작에서는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의 <수태고지>와 안드레아 델 베록키오(Andrea del Verrocchio)의 <콜레오니 Bartolommeo Colleoni의 기마상>, 그리고 큐피드(Cupid)와 활로 무장한 디아나(Diana) 여신을 연상시키는 미술사와 신화적 이미지가 확인된다.

특히 근작들 가운데 대나무 숲 사이를 질주하는 처녀 그림은 추격해오는 태양신 아폴로(Apollo)를 따돌리며 달아나는 숲의 요정 다프네(Daphne)를 차용하고 각색한 듯하며, 대나무는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동양의 상징체계가 차용된 듯 보인다. 혹은 오르페우스(Orpheus)의 수금 소리를 듣고 오로지 앞만 보고 내달리는 에우뤼디케(Eurydice)를 소재로 한 것처럼도 보인다. 대나무로 상징되는 절개와 지조에도 불구하고 연인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미심쩍어서 오르페우스가 뒤돌아보는 순간 연인이 다시 저승세계로 끌려가버리는 정황을 상징한 듯 대나무 가운데에는 죽은 대나무도 보인다.

한편, 작가는 그림에다가 곧잘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 넣는데, 특히 <황금의 길>에서와 <수태고지>를 모티브로 한 그림에서의 경우가 흥미롭다. <황금의 길>에서는 자신이 꼭두각시 인형을 조절하는 주체로 나오다가, <수태고지>에서는 거꾸로 작가와 꼭두각시 인형이 동일시된다. 이 관계 즉 꼭두각시 인형과 이를 조절하는 주체간의 관계가 의식적인 자아와 무의식적인 자아와의 관계처럼 보인다. 따라서 인간의 이중성이나 다면성과 같은 존재론적 조건을 암시하는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어디까지나 임의적인 것이다. 얼마든지 다르게 읽힐 수 있는 것이다. 어차피 해석이란 저마다의 다르고 차이 나는 환경과 인문학적 배경의 틀 안에서 읽을 수밖에 없으며, 그 질량의 크기만큼 가능한 것이 아닌가. 박민준의 그림은 이런 임의적인 독해행위를 유도하며, 이를 통해 다름 아닌 열린 예술작품의 한 전형을 제시하는 한편, 이를 재확인시켜주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이렇게 작가가 그린 일련의 알레고리를 테마로 한 그림들의 이면에는 미술사와 미술비평사 그리고 해석행위와 주석행위가 중층화된 인문학적 틀이 놓여 있으며, 작가는 그 틀에다 자신의 사적인 경험에 연유한 개인적인 서사를 밀어 넣는다. 때로 그 서사는 개인의 경계를 넘어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을 밝혀주는 보편성을 획득하기도 한다(실제로 상징이나 기호는 통속적인 층위에서의 공공연한 합의에 맑은 고딕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로써 박민준의 그림은 서양미술사가 유산으로 물려준 서사의 망 속에다 자신의 개인적인 서사를 짜 넣는 식의, 거대서사에다 미시서사를 짜 넣는 식의 상호작용의 과정을 통해 일종의 거짓서사(허구적 서사)만들기로 나타난다. 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만들기로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홍경택의 회화 - 공백공포(Horror Vacui)가 잉태한 크리스티 슈퍼스타(Christie's Superstar)

 

 외부 방문객과 홍경택 사이 접견은 ‘오후 2시 이후로나 비로소 성사’된다. 동틀 무렵 잠들어 오후에 기상하는 그의 생활 패턴 탓인데, 정상인 견지에서 이는 자영 예술업자 일반에게서 관찰되는 한없는 나른함 쯤으로 간주될 법도 하다. 그런데 낮밤 뒤바뀐 생활 리듬은 꽉 짜인 공정마냥 빈틈없고 일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딴엔 이 생활이 꽤나 안정적인 일과인 셈이다. 오후 2시 전후 기상과 함께 오후 작업이 시작된다. 스튜디오에는 상시 조수 서넛이 그의 작업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자리를 지킨다. 조수들이 떠난 밤 10시 이후 홀로 천호동 소규모 공방의 불빛을 새벽 5시까지 지킨다. 일과라기보다 차라리 공정에 가까운 이 기계다운 리듬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거의 동일하며 365일 반복된다. 물론 일요일은 휴무일이다. 스튜디오 내부는 차기 작업 구상을 도울 밑그림과 기성 자료가 쌓였고 보고 그릴 원화를 조수에게 배부할 복사/스캔 겸용 프린터도 놓여있다. 훵케스트라 연작에서 눈부시게 반복되는 땡땡이를 위해 견출지가 사이즈 별로 더미 째 쌓여있다. 공장 가동과 더불어 훵키 사운드가 스피커를 타고 흐른다. 진척된 작업 중 완품 승인이 떨어지면 예약처에 납품되며, 또 다른 구상안이 이젤 위로 가지런히 배열된다. 여기까지 놓고 보면 홍경택의 천호동 스튜디오는 가내수공업 공방이나 소규모 제조업체와 기능적으로 대동소이해 보인다. 그렇지만 둘 사이의 편차를 만드는 것이 존재한다. 일단 그가 작업반장 이상의 과업을 총괄한다는 점인데 작업 구상, 설계안 완성, 업무 배당 및 조정, 돌발적 수정 및 최종 마감은 그의 몫이다. 특정 화랑 전속을 거부한 때문에 거래와 홍보 관련 업무도 결국 그의 차지다. 또 최종 결과물이 소비재가 아닌 과시재에 가깝다는 점과 소량 한정 납품되며 완성 속도도 더할 나위 없이 느린 것도 차이점이다. 이 따분하고 기계적 공정은 당분간 그를 피해가지 않을 듯 하다. 일인 중심 공동 제조사를 운영하는 홍경택의 스튜디오의 정경을 보고 있자니 패션 장갑 제조를 가업으로 삼은 부모 밑에서, 유년을 보낸 한 소년의 성장기가 이런 작업 배경과 무관해보이질 않는다. 이론가 특유의 강박적 연관 짓기로 비춰질까 망설이지만 필기구 연작(95- 현재), 서재 연작(94- 현재), 훵케스트라 1(2001-2005), 훵케스트라 2(2005-현재)까지 그의 주된 대표작을 카탈로그 레조네로 정리하면 요란 맞고 시끌벅적한 원색 조합이 어떤 질서 잡힌 프로세스를 통해 쏟아진 것 같으니, 전혀 근거없는 가정은 아닐 것이다. 더욱이 특정 미술 사조까지 연상되는 현란한 색채 감각을 감안하면, 그의 성장 배경설이 마냥 어깃장은 아닐 터다. 그렇지만 이 재기발랄한 초대형 색채의 난장판은 미대생 시절이던 88년~95년 무렵은 물론이고, 첫 개인전이 있던 2000년 전후로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학사학위 수여식이 있던 1995년 이후 홍경택은 “10년간 사실상 작품 한 점 팔지 못한 전업 작가”였을 만큼 이따금 ‘이머징 아티스트’로 거론되는 정도에 그쳤다. 이제는 화제몰이꾼이 되어버린 <연필 1>(1995~98)의 데뷔 역시 간단치 않아서 이 작품이 포함된 그의 첫 공식 포트폴리오를 Project Space 사루비아다방은 심사에서 떨어뜨렸다. 대신 인사미술공간(인미공)의 선택을 받아 2000년 8월9일부터 8월20일까지 <신전-神殿>이라는 다소 거창한 명칭의 첫 개인전이 개최되나 그 무렵 인사아트센터 입주시절 인미공의 벽면 높이는 당돌한 신출내기 작가의 120호짜리 6점이 3열 2단으로 이어진 초대형 포맷 <연필 2>(1994~98)를  원작대로 걸기에는 너무 낮았다. 해서 반쪽으로 나눠 일렬횡대로 거는 바람에 그것이 의도했던 시각적 충격은 완화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의 첫 개인전이 아무런 성과도 건지지 못한 건 아니다. 한 미술잡지의 리뷰에서 미술사가답게 김영나는 홍의 작업을 팝아트, 극사실주의, 중세미술의 Horror Vacui(지면에선 Horror Vacuum이라고 적음)을 짧게 연관 지었다. 리뷰에서 지목된 작품이 2007년 5월27일(일요일) 크리스티 홍콩 아시아 현대미술 경매(Christie's Hong Kong 'Asian Contemporary Art')에서 추정가의 10배 7억8천에 낙찰되면서 국외 옥션 출품 사상 국내 생존 작가로는 최고가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킨 <연필 1>(Lot 427)이다. (도판 1, 2, 3: <연필 1> <연필 2> <크리스티 홍콩 도록>)

 

2007년 쏠드 아웃 이전 소사(小史)

서울예고 재학 중이던 80년대 중후반 홍경택은 디자인 과목에서 가장 후한 점수를 얻은 예고생이었다. 이런 소질을 그의 주변에 널린 패션장감이 조성한 시각 문화 속에서 단련된 미감으로 연관짓는 것이 무리는 아닐 터인데, 그 이전에도 한 미술선생이 자신의 작업에 들어갈 패턴을 ‘중학생’ 홍경택에게 일임했던 일화가 있을 만큼 패턴화된 도안에는 감각이 남달랐다. 그렇지만 곧 논의할 공백 공포를 거론하기엔 여전히 미진한 수준이던 경원대 학부생 신분으로 내놓은 정물 연작은 1995년 졸업 후 일관된 변이 과정을 만드는 맹아였다. 주변 집기를 강박적으로 기하학적 구조 속에 재배열해 패턴화 하는 열정 면에서 그렇다. (도판4, 5, 6: <서재3>(1994), <해골>(1994), <컵이 있는 정물>(1993)) 이젠 그의 대표작으로 거명되는 필기구 연작과 그와 동시대 결과물인 서재 연작은 집적(集積) 강박, 기하학적 재배열, 총천연색의 더미들로서 초현실적 형상주의와 팝아트의 재기발랄이 한데 묶였다. 이 모두를 단순한 인상으로 요약하면 그래픽(graphic)이다. 인쇄미술과 도해를 연상케 하는 그래픽이라는 혐의는 그가 화단 진입장벽을 넘어서는데 가장 큰 낙인이 아니었을까 추정해본다. 2007년 늦었지만 대단히 성대한 예우를 받기 이전 그가 화단에서 거론되고 평가된 기점을 나는 2004년(제2기 가나 아틀리에 입주 작가로 2006년까지 입주) 혹은 2005년(제2회 개인전 <훵케스트라 Funkestra> 아르코 미술관 9월23일~10월23일 개최)으로 본다. 어떤 면에서는 2003년 이후 급등한 세계 동시대 미술의 작품가(도판7: 그래프), 2000년대 상반기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미술시장의 급성장, 팝아트와 극사실주의의 호조로 요약되는 동아시아 아트씬의 현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덕분에 그는 「art price」가 1945년 출생 작가 기준으로 선정한 2006/2007년 Top 500 부문 145위로 한국작가로 1위로 올려졌다.(도판8: 선정 리스트) <연필 1>이 낙찰된 장소로 국내 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된 크리스티 홍콩 경매는 2004년 10월 한국 작가의 작품을 경매에 처음 선보였는데, 전부 낙찰되었다. 한중일 미술시장의 흐름을 따르기 위한 조처라는 게 홍콩 크리스티 수석 부사장 에릭 창의 설명인데, 중국현대미술이 세계 시장에서 주목 받으면서 반사 효과로 동아시아 미술 시장 전체가 순항 하는 것이다. 중국 20세기 미술과 나란히 진행된 아시안 현대미술을 별도 섹션으로 분리해 한중일 작가만 출품하는 경매를 만들기까지 한다. 더욱이 대단히 그래픽적인 중국 동시대 작가들의 팝아트와 국내에서 2000년 전후 진지한 평가의 대상이 된 K-POP에 대한 평단의 접근도 기억하자. 2004년 이후 경매에 진출해서 인지도를 높인 여느 한국 작가와 마찬가지로 홍경택 역시 시장주도형으로 체질 변화 중인 코리아 아트씬의 구도 내에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한 좌담에서 평론가 이영욱은 “추상에 대한 강박관념이 없어지고 시각 환경의 변화등 기타 글로벌한 상황의 영향”에 따라 “형상 회화에 대한 논의의 필요가 새로이 대두”했고, 이런 당대적 요구에 어울리는 80년대 후반 학번 11명 중 1인으로 홍경택을 지명했다. 그게 2001년 11월의 일이다.

 

공백 공포의 도상 분석 01_ 정신분열적 책더미와 필기도구의 신전(神殿)

공백 공포(horror vacui)가 본래 물리학의 한 현상을 설명할 때 동원된 용어라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립한 이 이론에 따르면 자연은 여백을 허용하지 않고 채워가려는 속성이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자연이 공백을 두려워한 나머지 빈 공간을 메워간다는 얘기다. 물론 기원전 정립된 이 이론은 1644년 갈릴레오의 제자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Evangelista Torricelli)가 여백은 엄존하며 무게도 지닌다는 사실을 입증하면서 반박된다. 긴 세월 신봉된 자연과학이론이 폐기된 후, 곧잘 인문학이 재활용하는 예가 있는데, 공백 공포 역시 미니멀리즘에 정반대 개념으로 심리적 불안정 상태를 묘사할 목적으로 ‘인문학적 변용’을 거쳐 생존했다. 전 예술 장르에서 공백 공포는 양식 분석에 요긴하게 쓰인다. 빈틈없는 패턴으로 빼곡히 들어 찬 빅토리아풍 장식 문양, 이슬람 아라베스크 양식, 더 가까이는 동시대 비주류 시각 예술(Lowbrow art)의 일단에서 공백 공포를 읽어낼 수 있다. 어깃장 부리지 않고 이 이론을 홍경택에게도 뒤집어  씌울 수 있을까? 아마도 가능할 것이다. 먼저 ‘(신경쇠약 직전의) 책가도’ 연작과 ‘(정신분열 유발용) 필기도구’ 연작. 제목과는 달리 <연필 1>보다 한 해 먼저 착수한 <연필 2>는 여섯 개의 개별 화폭이 결합해서 완결미를 구현시키는 얼개를 취하고 있다. 개별 화폭마다 필기도구가 분수가 발산하는 모양처럼 생겼는데 삼등분된 초대형 화폭이 주는 첫 인상은, 신앙심 돈독한 작가의 정서적 토대를 염두할 때 삼면 제단화나 성삼위일체의 구현을 자연히 연상하게 만든다. 그림의 구도 면에서도 좌우대칭 비례의 안정감이 더해지지만, 용솟음치는 필기도구의 초현실적 발광이 압도적인 역동성을 만들면서 안정감과 충돌한다. 올-오버하면서도 옵아트적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으니 이론가들이 좋아하는 화면상의 이율배반이다. 95년 이전 미대생 시절부터 주변 집기와 사물함을 가지런히 재배열하는 손버릇이 남아있었지만, 95년 전후로는 그 규모와 양식 모두에서 전작에 비해 가히 증폭에 가깝게 터져나왔는데 까닭은 그 무렵 불면과 우울증에 시달린 병력의 영향 때문이다. 전 방위적 실험 예술을 단행한 일본작가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 草間彌生)를 보고 “강박적 ‘땡땡이 작업’의 본질이 진정으로 공감 갔던” 그런 시절이었다. 따라서 그가 어떤 연유로 필기도구를 택했는지는 명확히 규명하기 어렵지만 불안정한 정서가 조형적으로 ‘정렬된 방식으로’ 분출한 흔적이 필기구 연작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본래 여백을 문자로 채워나가는 필기도구가 본래 목적을 상실한 채 총기와 도검의 위협적 형상을 하고 화면 전체에 들어차서 여백을 내몰고 있다. 흔히 웅장한 자연 앞에 압도된 상태를 이를 때 쓰는 숭고(sublime)는 그 해석이 시대와 학자 마다 각기 다르지만, ‘두려움과 절망이 혼재된 상태’로 공포를 유발하되 그 공포가 결국 허구임을 깨달을 때 찾아오는 미적 쾌감이란 풀이가 있다. 초자연적 권위를 재현한 것은 아니어도, 현대인에게 친숙한 수성펜과 네임펜이 요란하고 현란한 색채 뭉치가 되어 대폭발의 장관을 연출한다. 그것이 필기구 연작의 본질이다. 이 모순적 필기구의 발광은 괴이하게 변형된 숭고의 가치를 주조한다. 어쨌건 초현실적 설정, 초대형 포맷의 위압, 팝의 대중성이 총화가 되어, 작가의 사사로운 상상이 삼면 제단화를 만들었다. 이 제단에는 이데올로기적 구호를 위한 여백은 남겨지지 않는다. 올-오버를 향해 패턴들의 기교가 창백하게 진열될 뿐. 연필 대폭발 연작은 ‘미국과 일본의 대중문화 세례를 받고 성장한 세대의 문화적 피식민성의 집요한 잔재’(요컨대 이동기의 ‘아토마우스’의 경우)같은 소위 담론을 던져주진 않는다. 그럼에도 이영욱이 지적한 바 “추상에 대한 강박관념이 없어지고 시각 환경의 변화등 기타 글로벌한 상황의 영향”과 “형상 회화에 대한 논의의 필요가 새로이 대두”된 시점과 맞물려 그의 10년 가까운 은둔은 구조될 수 있었다. 그리고 시장에서 예상을 초월하는 성공을 거뒀다. 이는 작품 소재를 시사적 이슈에서 구하지 않아도 되는 세대, 어깨 힘을 빼고 주변의 ‘일상 소재주의’에 몰입한 1970년대 전후 태생 미대생이 겪는 공통 정서이자 공유된 방황이기도 하다. 필기구 연작과 거의 대동소이한 수준의 공백 공포감이 표명된 서재 연작에선 서술적 개입이 다소 드러나지만, 일상적인 독백이 역시 주를 이룬다. 정중앙 구도와 좌우대칭성, 차기작 훵케스트라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양분된 성속(聖俗)과 선악의 발랄한 결합이 등장한다. 심지어 신약과 구약이 한 장면 안에 포개지고 그 사이로 뜬금없이 이교주의(paganism)가 별 고민 없이 ‘장식적으로’ 배치되기까지 한다.(도판 9: <서재2> 1995-2001) 95년 이전을 과도기로 간주한다면, 필기구 와 서재 연작을 내놓은 95~2001년은 의당 공백 공포의 징후성이 급진전된 시기로 분류되리라.

 

공백 공포의 도상 분석 02_ 펑키 에로티즘.

지난 인터뷰 일부를 살펴보면 홍경택의 첫인상을 ‘수줍은’이나 ‘겸손한’으로 뽑아놓은 예가 있다. 정말일까? 그렇다. 그런데 공백공포에 가려진 그 속내는 어떨지 나도 모른다. 2001년 시작된 훵케스트라는 그 자체로도 이미 이콘(icon)이다. 문화 예술계의 공인된 아이콘들을 화면 정중앙에서 만난다. 뿐만 아니다. 각 모서리에 배치된 활자 역시 세간의 형이상학적 가치를 담보한다. 그림 속 스타들의 면면은 필시 한 물 갔지만, 여전히 고부가가치를 요지부동 거머쥔 도그마에 가까운 아이콘들인데, 열거하면 마릴린 먼로, 반 고흐, 십자가 책형 된 예수, 존 레논이 등장한다. (도판 10, 11: <Gogh>2005, <Marylin>2007) 프레임의 네 모서리를 장식하는 활자는 LOVE, HOPE, SEXX, INRI, FUCK처럼 대중음악의 가사나 저널에서 우리가 가장 흔히 마주하는 문구들로 그 자체로 도상적 가치를 지닌다. 한 치 공백도 용인하지 않을 듯 빼곡하고 질서 있게 들어찬 훵케스트라는 비록 노동집약적 수고가 따르지만, 꽉 짜인 정형화된 틀 때문에 소재만 교체하면서 큰 재미를 누릴 수 있을 만한 연작이다. 필기구 연작, 서재 연작에서는 다소 불분명하게 나타난 성속과 선악 이분법이 이번에는 훨씬 격렬하게 혼재되어 나타난다. 상반된 가치가 동일한 포맷 속에서 한 몸이 되어 자태를 뽐낸다. 그러나 양립불가의 두 요소의 결합이 모종의 긴장감을 유발하진 못하는 것 같다. 타이틀이 말해주듯 60년대 후반 아프리칸 아메리칸(African-American) 고유의 질펀한 문화인 훵크(Funk)로부터 교감을 나눈 게 훵케스트라다. 같은 음의 지겨운 반복으로 청취자를 몰입과 도취로 유도하며, 세속 도시의 관능미를 거리낌 없이 담아낸 가사가 댄스풍의 선율 안에 담긴다. 펑키 뮤지션들의 복장은 노래에 버금가게 요란뻑적지근하다.(도판 12, 13: <부치 콜린스> <제임스 브라운 자켓>) 훵케스트라의 결실은 2004년 가나 아뜰리에 입주 시기와 2005년 9월 통산 2회 개인전의 이름으로 공개되었다. 훵케스트라의 시각적 충격 중 하나는 비록 기성 가사로부터 차용했다고는 하나, ‘수줍고 겸손한’ 작가가 Rape me, Fuck me처럼 수위가 결코 낮지 않은 구호를 완강한 타이포그라피에 담았고, 내용에 버금가는 비주얼을 나란히 배열했다는 데에 있다. 더욱이 훵케스트라 연작은 구성부터가 X자(보기에 따라서는 十자)포맷을 취해 시선이 분산되는 걸 차단하고 가지런히 관람 동선을 형성시킨다. 네 모서리에 새겨진 알파벳은 리듬감을 고양시키는데, 그 사이가 너무 벌어져서 가독성을 해칠 우려가 있지만, 모든 연작이 동일한 읽기 배열(Z자)을 채택하고 있어서 가독성에 문제가 되진 않는다. 또한 투시원근서체가 이끄는 방향을 향해 정중앙 도상을 응시케 하는(혹은 그 정반대 순서) 단조로운 감상법도 감상의 집중을 높인다. 이런 포맷의 그림들로 전시공간이 꽉 들어찼다고 가정해보자. 실제 2005년 9월 그런 일이 발생했다. 훵케스트라가 걸치고 있는 또 다른 이콘은 성화(聖畵)의 또 다른 이름, 동방교회의 이콘과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이콘이다. 다소 빤한 설정인 걸 알지만, 펑키 음악의 반복 소절과 펑키의 시각 이미지를 차용한 훵케스트라 연작은 결과적으로 기독교를 상징하는 십(十)자 형태를 정중앙에 품고 있고, 셀 수 없는 물방울 원형 무늬 역시 동방교회 이콘에서 관찰되는 광배(光背)와 닮아있다. 때문에 거부감과 저항을 느끼지 않고도 등가의 조형적 틀 안에서 ‘유대의 왕 나자렛 예수(INRI)’와 ‘겁탈해줘 - 결박하고, 먹어버리고, 가학하고, 빨아줘(RAPE ME - Tie, Fuck, Hit, Suck)’같은 상반된 이데올로기를 감상하고 소비한다. (도판 14, 15: <INRI>2005 <Fuck me>2005) 그림은 세상이 규정한 이분된 가치관을 한 화면에 혼재시키켜, 두 가치가 그저 일개 장식품에 불과한 것으로 만든다. 또 빽빽이 도안은 다시금 공백 공포를 ‘자행’하고 만다. 망각을 유발하는 공백공포. 이를 통해 그림을 완성한 이나 그것을 보는 이나, 그것을 구매하는 이나 양분된 가치관의 족쇄로부터 일시적 해방감을 맛본다.

 

다시 2007년으로

‘그래픽’ 질감은 홍경택의 데뷔 전후로 화단에서는 여전한 결격 사유로 간주되었으나, 디자인과 망가(manga)를 망라하는 전 지구적 트렌드의 유입과 아트시장이 선망하는 팬시상품 같은 예술품이 주도권을 쥐면서 완고한 미적 판단 역시 아성을 지킬 수 없었다. 전술한 바 2000년 전후 동아시아 아트의 호조는 이런 세계적 추세와 나란히 한다. 고작 새파란 20대 중반 신출내기가 국내보다 국제무대에서 오히려 각광을 받으며, 뜻 아니 한 ‘국의 선양’의 대열에서 언론을 타는 현상도 실은 이 같은 구조적 사정이 뒤받침 되어서다. 실존적 고뇌를 토해내는 과도한 관념 과잉의 작가군보다 재기발랄하고 아이디어에 충실한 작업도 평단과 시장 모두에서 환영받는 추세다. 2004년을 전후로 평단의 주목에서 외면 받던 지난 10여년과 집중 조명을 받는 2007년 이후의 근황과, 전작의 일관성에 관해선 본문에서 개괄했다고 믿는다. 대중 인지도와 시장 평가에 좌우되는 비평의 현실을 고려할 때, 그리고 시장 상황이 언제 건 유동적이라는 현실을 직시할 때, 꾸준한 경력을 통해 얻은 성과이지만 홍경택은 시장 변동에 늘 위기에 몰릴 위험도 없지 않다. 혹은 안주할 가능성도. 훵케스트라의 단조로운 조형 구조도 볼수록 첫 대면의 감동을 반감할 소지가 있고 실제 일부 연작은 지루한 느낌을 준다. 2001년 출발한 훵케스트라도 수정과 가감을 거쳐 이미 8살을 맞았다. 아주 느린 변화로 자신의 미학적 완성품을 내놓은 전력의 소유자이나, 뉴 버전을 기대할 때도 되었다. 또 기본적으로 자신의 안을 올곧이 지향해온 그의 관심이 자신의 밖을 향할 때 어떤 가공할 공백 공포가 초래될 지가 나는 궁금하다.

 
 

 

 
 

vol. 20080320-Korean Young Artists 1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