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암의 수행적 드로잉-難·好·髓 展

( 어려울 難, 즐거울 好, 마음속 髓 )

 

1943년, 도화지에 수채물감, 27×36.8cm, 드로잉, “이응노화백의 어머니 모습”

 

 

대전이응노미술관 전관

 

2007. 9. 11(화) ▶ 2007. 10. 30(일)

대전시 서구 만년동 396 | 042_602_3272

 

 

1946년,한지에 채색,50.3×66.5cm, 양색시

 

 

가을빛이 곱게 익어가는 계절에 5월3일 개관한 이후 이응노미술관이 첫 번째 마련한 기획 전시로 한국 근대화의 과정을 온몸으로 격어 내며 자기완성의 길을 이룩했던“고암의 수행적 드로잉-난·호·수” 전이 대전이응노미술관에서 9월 8일부터 10월 30일까지 50일간 개최된다.

어려울 난(難), 즐거울 호(好), 마음속 수(髓) 라는 전시 제목이 갖는 의미는 결국 고암이 마주해야 했던 어려운 순간순간 마다, 어려움을 기꺼이 마음속에 받아들여 예술로 부활시킨 그의 탁월함을 대변해보고자 함이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작가적 의지 외에 ‘사랑의 세계와 예술의 세계 사이엔 경계선이 없다’는 그의 철학을 보여주고자 한다.

1904년 대한제국의 기운이 다해갈 즈음 충남에서 출생한 고암 이응노는 1958년 프랑스로 건너가 1989년 파리에서 타계하기까지 한국 근·현대를 살며 새로운 한국화의 길을 개척한 거장이다.

고암의 예술세계는 무척 광대하다. 고암은 20년대 화가로서의 첫 발을 전통적 화법에서 출발했다. 그 후 32세(1935년)에 도일(渡日)하여 일본인 스승 마츠바야시 게이게츠의 화숙에서 자연물체의 사실주의적 탐구시기를 보낸다. 해방직후 귀국(1945년 3월)하여 동양적 사의에 천착, 자연사실에 대한 반추상적 표현시기를 가졌으며, 55세(1958년)에 도불(渡佛)하여 사의적 추상인 문자추상과 군상시리즈의 시기를 전개했다.

 

 

1951년,한지에 채색,40.3×55.3cm, 취 야

 

 

1955년, 한지에채색,42.7×55.3cm, 꽃장수

 

 

작고 힘없는 땅의 예술가로서 국제적인 화력을 인정받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격정적으로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쉬운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고암 이응노가 마주했던 세상마다의 어려움과 고난은 장애가 아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원동력이었고, 새로운 그림을 제작하게 하는 또 다른 길로 안내하는 통로이자 자극이었다. 예술을 道라고 생각하는 고암에게 사랑의 세계와 예술의 세계가 달리 나누어 있지 않듯이 그 앞에 펼쳐진 장애는 또 다른 차원의 예술로 나아가는 하나의 경계이며 조건이었을 뿐이다. 그것이 고암예술의 본질을 이루는 예술 혼이며, 자생적으로 길러진 생명력 그 자체였다.  

이번 <난·호·수>전시 작품들은 이응노 미술관 각각의 전시실에, 고암의 세상을 4시기로 분류하여 배치된다.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전·후기, 옥중시기, 다시 파리의 시기로 나누어지는 결코 쉽지 않았던 시절들을 담아내는 고암의 예술세계를 감상하게 된다. 1전시실에는 1940~ 50년대의 토속적이면서도 급박한 변화가 엿보이는 사회적 현실의 이미지가 해학적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고암의 드로잉 작품들 가운데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있다. 이응노가 어린시절을 보낸 그곳에 있었던 산과 어머니, 하나하나 산봉우리의 이름을 달아주며 즐거워했던 그곳의 모습이 어머니와 함께 고암의 마음 깊은 곳에 언제나 함께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예술정신도 개성도 모두 다 일본화풍에 빼앗겼다고 한탄했던 고암, 그는 화가들이 자신의 생활을 구하는 행동으로만 작업에 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새롭게 변화하는 세상의 호흡에 발맞출 수 있는 새로운 동양화의 길을 개척해야겠다는 투철한 작가정신을 잃지 않고, 작품에 반영하여 고난에 찬 시대의 격랑을 작품으로서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일본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인생에 눈뜨기 위해, 현실을 깨우치고 개척하기 위해선 항상 타고나는 것 보다 노력해야 함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67년 일본 동경에 도착하여, 동경 프린스 호텔 라운지에서 이른 아침시각에 그린 스케치

 

 

1968년,한지에 채색,67×43cm,“대전교도소에서”

 

 

제1전시실에서 보여지는 일련의 작품들은 <“취야”, 꽃장수“, ”재건현장“, ”영차영차”등... > 해방전·후의 혼란스러움과 전쟁직후의 고단함을 그림으로 풀어내고 있다. 재건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소리, 함께 모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리, 움직이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고암 이응노 자신의 모습이다.     

제 2전시실과 3전시실에는 옥중에서 제작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시대적으로 정치적으로 예민했던 시절에 6.25때 헤어졌던 아들에 대한 부모의 애절함이 이른바 동백림 사건을 부르고, 옥고로 이어진다. 고암에게는 인간의 실존과 조국에 대한 관심을 한층 더 높이는 계기가 되었지만 교도소의 열악한 환경에서 조차 전혀 사그라지지 않는 창작열은 교도소내의 각종 폐물을 이용해서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남기게 된다.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화가였던 고암 이응노.>

“나에게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형무소의 마당에서 못을 주워 알루미늄 세면기랑, 식기에 힘껏 구멍을 내어 마음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피의 관철을 조각하기도 했다. 그림은 벽에 거는 장식으로 끝나는 것은 되지 않아야한다. 그래서 그림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그림이 변하여 가는 과정 속에서 옥중체험은 한 번 더 나에 대해서 눈을 뜨게 했다”(옥중그림에 붙여)  

세상의 어려움과 고난은 장애가 아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원동력이었고, 새로운 그림을 제작하게 하는 또 다른 길로 안내하는 통로이자 자극이었다.

예술을 道라고 생각하는 고암에게 사랑의 세계와 예술의 세계가 달리 나누어 있지 않듯이 그 앞에 펼쳐진 장애는 또 다른 차원의 예술로 나아가는 하나의 경계이며 조건이었을 뿐이다. 그것이 고암예술의 본질을 이루는 예술 혼이다.  

  제4전시실에는 형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간 시기에 제작한 작품들과 입체작품들이 전시된다. 70~80년대의 대표적인 군상과 문자추상으로 이어지는 내용이다. 어려웠던 시대마다 고암의 작품성이 시대적 아픔에 좌절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시대적 아픔이 고암의 예술적 기량의 조건이 되고 있음을 알게 한다. 투철한 작가정신으로 무장한 고암은 진정한 자유로움을 찾아 나섰다. 세상을 예술로 담아내는 생명적과정은 진정 자유로운 자만의 권한이고 가능한 것이다. 땅위에, 벽에, 눈 위에 그리고 검게 탄 피부에 손가락이나 나뭇가지 또는 돌을 가지고서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지고서 그림을 그렸다. 항상 그림을 그리는 일, 그것만이 변함없는 고암의 행복이었다.

 

 

박성섭(충남미술협회장을 역임) 선생에게 고암이 준 작품.

 

 

「신작 무화를 발표하면서」- 중에서

“그림으로 밥을 먹는다는 게 쉽지가 않았지요.”

“돈은 언제고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림은 일생을 건 것이다.”

“걱정할 것 없어. 파리에 이렇게 많은 서양건축들이 있잖소. (웃음) 이렇게 빽빽하게 건물들이 있는데, 내 그림이 안 팔릴 리가 없어요...

충청도 시골에서 예술의 메카 파리까지, 사군자 묵화의 전통화에서 문자추상까지, 민족적인 것에서 국제적인 것까지, 전통과 현대를,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 등으로 나타내는 어휘들은 모두 고암을 이루어 낸 실체를 표현한 것이다. 그림이 좋아, 무작정 그려댔다는 고암, 서울로 가 사사를 받던 스승의 밑을 떠났던 이유도 더 많은 그림을 그릴 시간을 확보하고 싶었던 것이었고, 일본유학의 길도 세상과 사회가 변해가는 때에 더 넓은 세상에서 자신의 그림에 대한 욕심에서였다.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표구일도, 허드렛일도, 간판일도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던 이력이 결국 스스로 무엇이든 예술로 거듭 조형해 낼 수 있는 위대한 제작자로서의 능력을 갖추게 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 세상의 어려움과 고난은 장애가 아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원동력이자, 새로운 그림을 제작하게 하는 또 다른 길로 안내하는 통로이자 자극이었다.

 

이번 이응노미술관의 첫 번째 기획전시회<고암의 수행적 드로잉-난·호·수> 전시회를 통해 깊은 어두움 속에서도 예술을 추구했던 거대한 예술 혼을 조명하여 예술을 사랑하고, 추구해 가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정신적 울림을 선사함과 동시에 대중에게 보다 심도 있고 다양한 의미의 작품감상기회를 제공하며, 단지 국제적으로 역량 있는 작가의 예술적 힘의 전시가 아니라  대전문화예술의 저력을 엿볼 수 있는 전시이다.

 

 

 

1968년, 한지에 간장,131×34cm, 구성

 

 

 
 

 

 
 

vol. 20070911-고암 이응노 수행적 드로잉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