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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한국선면展
김은희_여심
인사아트센터
2007. 6. 13(수) ▶ 2007. 6. 19(화) 오프닝: 2007. 6.13(금) 오후 5시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88 | 02-736-1020
김희숙_마음꽃
모시는 글
이계길 | 한국선면예술가협회장 주변의 초록 물결은 벌써 여름의 시작을 알려옵니다.이맘 때면 창포향기 속에 부채 바람을 친구삼아 생활의 여유를 만끽하였을 옛 선조들을 떠올리게 됩니다.올 여름도 시원한 바람을 실은 <한국선면전>을 통해 여러 작가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열여덟 번째 전시를 열게 되었습니다. 이번 한국선면전은 서울 전시에 이어 예향의 도시인 광주시립미술관의 초대로 보다 많은 분들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쥘부채 속에 펼쳐질 다양한 작품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나날이 발전하는 선면회회의 전시를 기대하며 뜨거운 열정으로 출품해주신 작가 분들과 선면그룹을 초대해 주신 광주시립미술관장님과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07년 6월
문장호_추색만가
'한국선면전'을 축하합니다.
박지택 | 광주시립미술관장 광주시립미술고나 분관에서는 매년 미술단체의 활성화와 창작지원을 위한 초대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이번에는 '한국선면예술가협회'를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선면예술가협회'는 천여 년 전부터 우리 생활 속에 함께 살아 움직인 서선과 화선의 전통적인 예술성을 현대화하고, 선면이라는 우리의 조형의식을 소개, 연구, 발전시키고자 하는 취지로 1990년 창립되었습니다. 이들 단체는 초대회장 문장호 선생을 중심으로, 현재는 작가 160여 명이 전국 각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마련된 열여덟 번째 '한국선면전'은 부채의 화면 위에 펼쳐지는 한국화, 서양화, 서예, 일러스트, 판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시원한 부채바람에 마음을 담아 한여름의 무더위를 날려 보낼 수 있는 소중한 자리가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한국선면예술가협회'의 무궁한 발전관 회원들 각각의 예술적 성과에 큰 기대를 모아보면서 이번 전시를 위해 많은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관계자 여러분 모두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6월
박옥자_무위이화
서정철_훔쳐보기
선면전을 맞이하여
황효순 | 미술사가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단오는 일년 중 가장 생기가 왕성한 달로 천중가절이라 하여 예로부터 명절로 즐겨왔다. 이때는 씨름과 그네뛰기를 즐기고 음식을 나누기도 했으며 부채를 주고받아 부채의 효용성이 커지는 계정이기도 하였다. 흔히 낮잠이나 시원한 그늘, 서늘한 바람을 즐기면서 보내는 긴 여름 한낮의 한가로운 정경은 지루함보다 여유로움의 정서와 결합되어 유유자적한 풍류를 준다. 이것은 빠르게 가는 현대인들에게 어쩌면 느리게 사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 부채는 형태상 자루가 달려 있는 부채아 접는 부채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선면의 형태가 둥글면서 자루가 달린 부채를 '방구부채'라 하고 접는 부채는 손에 쥐고 다니기 편리한 형태로 '쥘부채'라고 불렀다. 쥘부채는 종이, 헝겊, 부들 등을 이용하여 부채면에 색지를 붙이거나 책색으로 태극선을 그려서만들기도 하였다. 방구부채는 그 용도가 다양해서 8덕선이라 칭하기도 했는데 휴대용으로 들고 다니며 바람을 일으키고 때론 햇빛과 비를 가릴 때 사용하였으며, 파리나 모기를 쫓고, 야외에서는 방석을 대신하거나 밥상이 되기도 하는 등, 때때로 변용하여 사용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부채 종류에는 아무 문양이 없는 소선과 임금이 들던 용선, 기녀의 화선, 백우선, 둥글게 접고 펴는 윤선, 무당의 부채(일월선, 삼불선, 팔선녀선)와 태극선 그리고 조선시대 선비들이 즐겨들던 합죽선이 있다. 합죽선에는 채색보다는 수묵의 산수나 사군자가 주로 많이 그려졌고 방구부채 종류에는 화려한 채색이 많았다.
신재남_감각의 제국
윤옥진
우리 민족이 사용하던 부채는 매우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최초로 발견된 부채로는 경남 창원에서 출토된 원삼국시대의 부채로 자루에 옻칠을 하고 있으며 이것은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로 전해진다. 그림 속에 부채가 등장하고 있는 예는 고구려 고분벽화 <안악3호분>의 주인공이 들고 있는 치우선<꿩의 깃털로 만든 신분용 부채>이며 그 후 기록을 보면, 고려 초에 후백제의 견훤이 왕건에게 축하의 선물로 공작선을 보내기도 했고, 문종 때는 이미 접는 부채가 발명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중국에서도 우리 나라에서도 선물로 가져간 부채를 보고 그 편리함에 반해 명의 성조가 조선의 부채를 그대로 따라하게했다는데서 접부채의 시작이 됐다는 기록이 있다.
서양에서 부채의 기원은 이집트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나온 깃털부채라고 한다. 악마를 쫓는 바람을 불러일으킨다는 벽사 의미와 사랑의 징표로 사용하였다는 점에서는 동,서양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나 유럽에서는 부채의 사용이 사교계에서 일반화되어 부채의 조작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부챗말이 있었으며 그것을 배우기 위한 부챗말 학원과 사전도 생겨났다고 한다. 영구의 엘리자베스여왕 때에는 사랑하는 남자 앞에 부채를 떨어뜨려 줍게 함으로서 사랑을 표현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조선시대 기녀들도 부채를 들고 다니다가 마음에 두고 있는 남성에게 건네며 변심하지 말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혜원 신윤복의 <전모 쓴 여인>이 들고 있는 부채가 그런 예이다.
이계길_월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남여 모두가 차면용을 겸한 부채를 사용했지만 중기로 오면서 여염집 여자들은 부채 대신 장옷을 입어 얼굴을 가렸으며 기녀와 무녀들만 쥘부채를 가지고 다녔다. 특히 조선시대는 선비문화가 발달하면서 합죽선에 그림을 그려 지니고 다니는 풍류가 유행하기도 하였는데 양반들은 신분의 상징처럼 사계절 항상 휴대하였다. 또한 단오절이 다가오면 웃어른이나 친지에게 부채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어 조정에서도 나라 안에서 귀한 장인의 부채를 진상케 하여 대나무의 골수가 촘촘한 것을 기준으로 품급에 따라 신하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였다. 이 때 받은 부채의 끝에는 패물이 부착되기도 하였으며 내의원에서 만든 옥추단을 매달아 상비약으로 쓰기도 하였다. 이 무렵 주고받던 부채를 단오선이라 불렀으며 전주에서 만든 합죽선을 제일로 쳤다. 합죽선은 접는 부채의 한 종류로, 대나무의 겉껍질만 2개 맞붙여 만들기 때문에 합죽이라는데 변죽과 속댓살을 합해서 자연스럽게 붙여나가면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예술품이 된다. 이러한 부채가 한때는 사치화 되어 부채의 길이가 길고 절수 30 이상을 선호하는 바람에 죽전의 폐해가 컸고, 그 값도 무려 무명 400-500필에 달할만큼 부의 축재 또는 뇌물로써 효용이 커서 정조 때는 부채의 절수를 20, 길이가 6-7총을 넘지 못하게 하고 어기는 자에게 처벌까지 하였던 기록이 잇다.
이재숙_봄날에
홍상문_만추
부채의 용도도 다양해서 수령이나 무관들은 계절에 관계없이 부채를 휴대하여 지휘봉의 역할로 삼았고, 기녀들은 사람의 신표로 정인에게 부채를 선물했으며, 무녀들은 벽사기복의 의미로, 신랑, 신부의 혼례 때 쓰는 청, 홍의 부채는 깨끗한 순정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현대에 와서는 판소리나 창을 하는 소리꾼들은 무대에 설 때 접부채를 사용한다. 부채의 사용으로 소리의 극적 효과를 높이고자 함이다. 목청을 갑자기 높일 필요가 있을 때 부채를 순간적으로 펴들면 시각적으로 고성의 효과를 높여주며 서서히 접어나가면 감성효과가 보다 실감나게 발휘된다. 위에서 아래로 나려 접으면 단성 효과가 커지고 펴들고 하느적거리면 완곡 효과가 커지기 때문이다.
올해도 단오절을 맞이하여 <한국선면예술협회>에서는 열 여덟 번째 부채전을 갖는다. 1990년에 창립되어 해를 거듭하면서 회원 수도 증가하였지만 작품의 종류를 보면 산수, 화조, 서예뿐 아니라 누드인물가지 소재의 다양성을 이루고 있다. 법고창신의 정신으로 시대를 어루르는 전시를 이어가는 점은 높이 살만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를 상징할 만한 부채인데 가금씩 중국산 부채에 그려놓은 그림들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앞으로 계속되는 전시도 전통의 계승과 다양함을 함께 아울러 아름다운 우리 문화를 이어가는 한국선면예술협회가 되길 진심으로 기대하며 축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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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0070613-한국선면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