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승민 사진展
영광 갤러리
2007. 5. 8(화) ▶ 2007. 5. 14(월)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1동 397-55 영광도서4층 | 051_816_9500
이승민-24시간 할인매장의 새벽풍경
박영택(미술평론, 경기대교수) 이승민은 24시간 운영하는 홈플러스의 야간매장을 촬영했다. 그곳은 낮의 매장과는 무척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모두가 잠들어있을 시간에 물건을 사러 나온 사람들이 매장을 돌아다니는 장면을 찍었는데 사실 낮의 분주하고 번잡한 시간대하고는 사뭇 다른 정경이다. 커다랗고 넓은 매장에는 하나 혹은 둘 정도의 사람만이 홀연히 돌아다니고 있다. 묘한 적막감과 황량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물건 사이로 부유하는 인기척들이 유령 같다는 생각도 든다. 어떤 사진은 아예 인기척도 없다. 물건들만이 침묵 속에 고즈넉한 장면이다. 진열대 역시 부분적으로만 채워져 있거나 아예 텅 비어있는 것도 있고 문을 연 곳과 닫은 곳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언제나 흘러넘칠 정도로 많은 물건들에 의해 점유되던 그 화려하고 풍성한 공간이 비어있는 것을 보면 이상한 느낌이 밀려든다. 그것은 풍족과 잉여를 대신해 고갈과 탕진을 순간 안기면서 모종의 불안을 심어준다. 물건이 없는 매장을 본다는 것은 갑자기 우리들 삶이 빈곤으로 추락할 것 같은 공포심 같은 것을 안긴다. 그래서 매장에는 물건들이 범람해야 제격이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물건으로 가득 찬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간혹 아찔한 공포 같은 것이 밀려들 때가 있다. 그 많은 물건들을 소모하면서 사는 것이 인간이라는 사실이 당혹스러울 때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결코 충족을 모르는 텅 빈 구멍들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고 이를 사고 소비하는 행위는 일종의 심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무언가 충족되지 못할 때, 불안할 때 사람들은 쇼핑을 한다. 그러나 이 할인매장은 사치와는 다른 맥락에서의 소비욕구를 창출한다. 이를테면 이 할인매장은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더 사둔다. 혹은 여러 개를 뭉치로 사면 절약이 되기 때문에 많이 사게 된다. 필요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필요하리라고 예상하면서 혹은 사두면 다 쓸모가 있다고 여겨 지금 당장 필요치 않아도 사둔다. 좌우간 어떻든지 사두게 되는 것이다. 아예 그 매장의 물건들을 고스란히 자신의 집안으로 옮겨두고 싶다는 듯이 사재기를 한다. 주말에 할인매장에 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곧 내일 전쟁이라도 터질 것처럼, 상점이 문을 닫을 것처럼 바삐 돌아다니면서 카트에 꾸역꾸역 물건들을 집어넣는 모습을 본다. 그들이 얼굴에서 앞날에 대한, 미래에 대한 까닭모를 공포심의 그늘을 만난다. 정해진 미래가 불확실할 경우, 현재의 소비와 충족은 필수적이다. 소비처럼 ‘바로 지금 여기서’ 자기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현재를 더 이상 불확실한 미래에 저당 잡히지 않고 바로 향유하려는 풍조가 현세주의적 생활태도와 소비지상주의를 잉태한다. 오늘날 쇼핑은 현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여가행위이며 스트레스를 풀고 자기만족을 심어주는 일이자 불안과 공포를 이기는 수단이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이 대형할인마트는 24시간 운영한다. 1982년 1월 6일에 통행금지가 해제된 이후 시간의 외연적 확산이 촉진되었고 1990년대 이후 소비주의와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오늘날 세대들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문화코드를 지니게 되면서 24시간 소비가 일상이 되었다. 현대한국인의 일상생활은 무엇보다 돈과 상품의 논리가 일상생활을 지배한다. 물론 돈과 상품의 논리는 자본주의의 보편적 특징이어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어느 나라에서도 이러한 양상은 있기 마련이지만 오늘날 한국에서처럼 구성원들의 삶이 돈과 상품의 논리로 적나라하게 규정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24시간 편의점이 한 집 건너 자리 잡은 이제 하루 종일 물건을 사고 싶은 사람들은 행복할 것이다. (우리 동네에 있는 편의점의 이름은 ‘25시 편의점’이다. 이제 24시간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셨나보다.) 백화점이 쉬는 월요일, 상점이 문을 닫고 있는 시간은 사람들에게 불안과 우울을 안긴다. 사람들은 자신이 소비의 욕망을 잠재울 수 없다. 그래서 우리들의 일상은 하루 24시간 모두를 소비의 대상으로 삼았다. 낮의 시간대를 연장해서 모든 시간이 소비와 욕망의 대상으로 전이되는 순간 삶의 라이프스타일도 바뀌었다. 오늘날에는 도처에 모든 것이 낭비다. 소비를 강요하는 현대사회에서 현대인들은 모든 잠재력, 모든 능력을 부단히 동원하여 그 소비에 매진한다. 소비는 중독이 되고 해서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끝없는 소비를 하다 죽을 것이다. 사실 소비의 정의는 ‘우리의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실제 물건을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써버린다’는 의미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뭐든지 다 소비한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소비는 가능하다. 이승민은 24시간 소비가 이루어지는 대형할인마트의 새벽시간을 바라보았다. 새벽시간에도 사람들은 쇼핑을 한다. 깊은 새벽시간에 쇼핑을 하러 나온 사람들과 그 공간을 찍었다. 사람들은 드물거나 없기도 하다. 그나마 흔들리고 스치듯이 찍혀있다. 느리게 산책하듯이 매장을 거닐고 있는 몇몇의 사람들은 이 쇼핑몰에서 자신들만이 깊은 밤 시간을 즐긴다. 작가는 새삼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밤을 이기고 낮의 시간대를 연장해서 만든 쇼핑공간에 사람들이 어슬렁거린다. 쇼핑중독자일 수도 있고 늦은 밤에만 쇼핑할 시간을 낼 수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매장은 기꺼이 문을 연다. 분명 필요한 물건을 사러왔을 것이고 그래서 그들은 행복해하며 매장을 여유롭게 거닌다. 밤 깊은 시간에도 쇼핑에의 욕망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 환하게 불을 밝힌 매장은 언제나 사람들을 받아들일 자세를 하고 있다. 소비가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이 대형 쇼핑몰은 소비자의 욕망을 지배하는 장소이자 모두에게 가장 익숙한 장소가 되었다. 그곳에 욕망의 거푸집이 작동한다. 사람들은 자본의 촉수로부터 결코 빠져나갈 수 없다. 물건을 사는 소비형태로 끊임없이 욕망을 채워야 하는 거푸집인 이 인공의 풍경은 가장 보편적인 대중적인 소비의 장소, 산업적 스펙타클이고 물신화된 장소에 다름 아니다. 이승민은 바로 그 대형쇼핑몰을 기록했다. 얼핏 봐서는 할인매장의 광고사진 같기도 하고 혹은 산업사진 같기도 하다. 동시대 현대인들의 삶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 가장 핵심적인 장소/ 공간에 대한 탐색의 일환으로 보이기도 하고 도시의 특징을 포착하려는 사진에 해당하기도 한다는 생각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다소 스산함을 안기는 새벽 할인매장의 풍경이란 과연 무엇일까?
<작가 노트...> 어린 시절, 저녁 9시가 되면 잠을 청했고, 밤 12시면 TV 시청 조차 할 수 없었다. 흐릿한 기억 속에는 통행 금지도 있었던 것 같지만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시간이라는 개념이 달라졌다. ‘9 to 6’ 의 출퇴근 개념이 직업에 따라 다양하게 변했고, 바쁜 생활에 맞는 산업 형태들이 등장했다. 24시간 기계를 움직이는 중소기업, 24시간 할 수 있는 인터넷 상거래, 24시간 보도하는 뉴스 채널, 24시간 편의점, 새벽시장 등이 활발해지면서, 또한 그곳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해 심야 영화관, 심야 헬스클럽, 24시간 할인점, 24시간 미용실, 24시간 찜질방, 24시간 보안 시스템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곳에 종사하는 새로운 직업들이 또한 생겨났다.
내가 주로 활동하는 시간대가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러나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이관규천 以管窺天 (대롱구멍으로 하늘을 보지 마라)’ 은 이럴 때 쓰는 말 인 듯 하다. 내가 잠든 시간에도 삶을 위한 활발한 산업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어디를 가는지 일상 생활에 필요한 물건은 어디서 쇼핑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나와 다른 시간대에 산업 활동을 하는 그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은 다름 아닌 ‘24시간 할인점'이다. 나와 같았다. 하지만 내가 이용하는 시간대의 광경과는 너무도 다른 분위기이다. 물건과 사람으로 가득 찬 낮 시간대와는 달리 한산한 매장은 답답한 마음에 여유를 주고 숨을 쉴 수 있게 해준다. 구석 구석에서 보이는 쇼핑하는 사람들, 보이지는 않지만 이들을 위해 직원들은 상품을 준비하고 계산을 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상품으로 꽉 찬 낮 시간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경쟁하듯이 상품들을 담지만 새벽 시간대는 다르다. 멈춘 듯 하지만 움직이고 있다. 문을 닫은 듯 하지만 그 안에선 판매하고, 쇼핑 한다. 이제는 너무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린 할인매장이지만 어느 시간대를 가느냐에 따라 보여지는 모습과 느낌은 다르다.
|
|||
이승민 2001년 상명대 예술디자인 대학원 사진과 입학 | 2005년 상명대 예술디자인 대학원 사진과 수료 단체전 2004년 ‘거기에 있었다’(상명대 동숭동갤러리, 서울) | 2005년 Currently(상명대 동숭동갤러리, 서울) 개인전 2006년 새벽.마트(NOW갤러리, 서울)
|
|||
vol. 20070508-이승민 사진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