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임 회화展

 

- 색채의 행위와 조응 -

 

 

 

인사아트센터 2층

 

2007. 4. 11(수) ▶ 2007. 4. 16(월)

오프닝 : 2007. 4. 11(수) 오후5시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 02_736_1020

 

www.ganaartgallery.com

 

 

 

 

반복과 틈새, 색공간의 새 해석

김복영 | 홍익대 교수 철학박사

2007,  4

 

1. 역사상 색채화가들(colorists)의 색공간의 해석은, 한편으로는 색의 음악적 조성과 기하학적 패턴을 중심으로 하는 구성주의 경향과, 다른 한편으로는 색료의 질료성과 주관적 내면의 충동 간의 교호작용에 주목하는 표현주의 경향으로 대별해볼 수 있다. 전자의 예로 올피즘(Orphism)과 레이오니즘(Rayonism)을, 후자의 예로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를 들 수 있다.  하태임은 이번 전시를 통해서 이러한 색공간 해석의 틀을 버리고, 제 3의 방법을 제시한다. ‘반복과 틈새’(repetition and rifts)의 방법이 그것이다.

2. 앞서의 두 방법들은 색공간을 조성함에 있어서 형상화와 탈형상화라는 대극의 한 쪽을 선택해 왔다. 구성주의 경향이 음악적 율동과 기하학적 패턴을 통합함으로써 적극적 가시 형태를 지닌 볼거리를 제시했다면, 표현주의 경향은 이러한 구성주의적 경향과 대극관계에 있는 몰(沒)형태와 자동기술에 의한 내면심상풍경을 창출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

일견 이러한 합리와 비합리의 양단은 고전적으로는 형상충동(形相衝動, Formtrieb)과 재료충동(材料衝動, Stofftrieb)의 이항대립의 경우에 다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대립을 매개하는 쉴러(F.v.W. Schiller)의 종합을 찾을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제 3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하태임의 방법은 바로 이러한 방향을 모색하는 열쇠의 하나를 제시한다. 이 방법은 당연히 새로운 제 3의 방법을 택하되, 이를테면 색공간에다 형상 또는 몰형상을 주입하는 대신, 색료의 착색단위면들을 무수히 교차시켰을 때 색료의 층과 층 사이에서 발생하는 틈새들의 집합을 노리는 것이다. 틈새란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작위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부산물로서, 자의와 타의의 중간쯤에서 발현되는 신비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우연의 것은 아니며 필연적인 것은 더욱 아니다. 틈새들은 논리적 필연(logical necessity)과 탈논리적 우연(illogical contingency)의 중간 쯤에 존재한다.

틈새의 논리를 사용하는 하태임의 색공간 해석은 칠하는 행위와 지우는 행위의 중간에서 작동하는 무수한 미세차원을 증식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다. 이들의 미세차원은 일괄해서 무의식적 차원에서 작동되고 또 그럼으로써 상징적 의의를 띠게 된다.

 

 

 

 

~중략~

 

3. 틈새의 설정을 위해 작가는 기지의 패턴 문자 이미지를 등장시켜 이것들을 그리기보다는 지우고 다른 것으로 부각시키는 방법에 주목한다. 연속된 붓질과 붓질에 의해 기지의 것들을 엷음과 두터움의 틈새에다 분산시켜 가독성의 제로지점으로 몰아붙이는 한편, 이전의 색상마져 전복함으로써 종국에는 일체를 흔적으로 치환한다. 그럼으로써 그의 화면은 기지와 미지의 틈새, 이를테면 차연(差延, differance)이 만드는 기의(記意)와 기표(記表)의 중첩을 일깨운다.

 

이 경우 화면은 틈새가 야기하는 결과이자 부산물이다. <Un Passage>, <Une Porte>, <Une Impression> 등 세 명제에 의한 색공간의 출품작들은 비교적 대범한 틈새에서 시작해서 조밀한 틈새를 거쳐 미세의 극치에 이르는 여러 틈새들의 유발과정을 다루고 있다. 먼저의 경우는 마치 붉고 푸르고 노란 수목들로 채워진, 반쯤은 나무이고 반쯤은 가공물의 인상을 드러낸다. 이 작품들은 단위체의 컬러밴드(띠)들이 서로 엎고 엎힐 때 발현되는 사이와 사이에서 빚어지는 틈새의 빛깔들을 노린다. 가운데의 경우는 파랑과 빨강의 보색대비의 연기문양의 몰형상패턴들이 으깨어질 때 일어나는 틈새를 연출함으로써 태초의 카오스를 드러낸다. 그리고 나중의 것은 굵기가 다른 가로와 세로의 격자, 나아가서는 조밀한 필선들을 무수히 포갬으로써 보색대비의 짜임새에서 비롯되는 틈새의 긴장을 엿본다.

이들의 틈새연출 방식들은 모두 그리는 행위를 반복하는 데서 비롯되는 중첩과 교차, 그리고 병열에 의해 처음의 것들이 해체되고 흔적으로 잔존되는, 요컨대 그리기와 지우기의 간극(crack)을 연출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궁극적으로, 틈새들이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색공간에 내재되는 절차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구조를 가질 수 있고 구조 또한 그 자신의 호흡과 생명감을 부여받음으로써 색공간으로서의 자질을 가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차례로 색공간의 구조 내에서 틈새들이 만들어내는 조응들(correspondences)의 여하가 화면을 설정하는 핵심요소가 된다.

하태임의 색공간의 설정방식은 색채에 의한 회화공간(pictorial space)은 물론 회화예술의 방법을 제시하는 시야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 방법은 종래의 동일성의 원리(principia identica)에 의한 색공간이 아니라 차이의 원리(principia differentica)에 의한 색공간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vol.20070411-하태임 회화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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