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개인展

 

 

 

쿤스트독 갤러리

 

2007. 4. 4(수) ▶ 2007. 4. 12(목)

서울시 종로구 창성동 122-9 | 02_722_8897

 

www.kunstdoc.com

 

 

재현, 독해, 그리고 해석

김승호 | 철학박시 | 쿤스트독 미술연구소장

김정희는 입체공간을 추구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조각의 세계에는 다양한 입체언어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이 잉태한 공간의 구조를 조각의 미로 독해한다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김정희의 조각미가 자연과 일상이 하나로 묶여 있던 모방론의 시대를 연상하게 하는 이유도 수세미의 공간구조 때문이다. 모방의 시대로 회구하려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박과에 속하는 수세미의 자연적인 외관이 철사로 재현되어 조각의 형태가 가능하게 되었고, 닫혀있어 볼 수 없던 수세미의 내부구조가 빛과 조명으로 가시화 되어 관객은 마치 미지의 세계로 안내되는 환영을 체험하게 된다. 고대와 현재가 자연과 조각이라는 공간구조에서 대화를 이루어 해석의 어려움이 있다.

 

이렇듯 조각가 김정희의 공간구조는 미와 자연의 대화방식에서 구체화 된다. 그렇다면 공간적인 대화방식은 어떠한 문맥에서 이해되는가? 삼차원의 세계가 이차원의 세계에서 그 존재가 드러난다는 사실이 현대조각에서 증명되었고, 그로 인해 조각세계가 모방에서 벗어나 볼 수 없는 공간과 인식공간이라는 새로운 화두로 모더니즘의 중심에 섰다. 이러한 진보적인 모더니즘조각에 김정희의 대화방식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탈하고 있으며 또한 어떠한 도구로 자연과 소통을 하고 있는지 의문시 된다. 작품의 외관이 어떠해야 한다는 규정이 사라진 현 시점에서 미술시대와 미술시대이전 그리고 모더니즘과 다원주의시대를 구분한다는 것이 식상하게 들릴 수는 있지만, 그것이 자연공간과 조각공간의 대화방식을 관통하여 인식과 독해의 관계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김정희의 대화빙식은 매우 독특하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철사로 만든 대형 수세미이다. 작품의 형태는 수세미의 자연적인 외관을 재현한 것이고, 중앙에서 분리된 네 개의 커다란 내부공간은 자연이 빚은 공간구조를 독해한 것이다. 겹겹이 층을 이룬 수세미의 형태는 감탄사를 유발하게 하고 굽이굽이 흐르는 긴 내부공간의 긴장감은 호흡을 멈추게 한다. 또한 은은하게 뿜어 나오는 빛은 내부 공간의 구조를 밖으로 표출하여 마치 실재(작품을 설치한 실재 공간)와 환영(파편화된 조각의 내부공간)이 교차하는 지점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온다. 이렇듯 눈으로 경험하고 몸으로 체험하고 미적인 해석을 요구하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독해한 공간구조와 재현한 작품의 형태가 경험의 폭을 넓히고 체험의 경계를 지적하여 더 그러하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내부에서 외부로 쌓아오는 끈질기고 집요한 작가의 손으로 자연의 생산법칙이 작품의 형태미로 녹아나 거칠기도 하면서 부드럽고, 차갑기도 하면서 은은하고, 기계적이면서도 자연적인 요소가 촉각의 세계를 인식하게 한다. 반면에 중앙의 비좁은 공간과 네 개로 각각 나누어진 자연적 내부공간이 철사와 조명 그리고 설치로 독해되어 조각미와 자연미는 대화를 하게 된다. 이렇듯 작가 김정희는 형태의 재현과 공간의 독해를 2006년 <자연미와 공간미의 변주곡>에서 선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원인이 촉각과 공간이 조각의 가장 기본적이자 근원적이라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가 자연의 재현이고 어디부터 공간의 독해가 시작하는지 그리고 실재와 환영의 모호한 경계를 공간해석의 문제에 담보하고 있어 이전과는 차이를 보인다.  

쿤스트독에 선보이는 작품은 자연의 재현과 공간의 독해 그리고 공간해석의 문제를 담보하고 있다. 자연의 외관을 재현하고 자연공간을 독해하는 방식이 조각 미와 대화를 이루어 김정희의 조각세계는 모더니즘의 공간수혈방식에서 이탈하여 고대와 현재 그리고 창작과 재현의 사이를 관통하게 된다. 이 시기가 안에서 밖으로 흘러나오는 빛의 흐름으로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한다. 모방론을 독해한 작가의 의지가 결국 모더니즘의 억압에서 이탈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조각 미의 기준이 공간을 인식하고 구조를 해석하는 작가의 태도에서 구체화 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작가 김정희의 이러한 태도가 재현과 독해의 대화방식에서 가시화 되고 그 방법과 도구가 탐구되는 한 해석의 문제는 지속될 것이다. 해석의 문제가 일반적인 비평의 지식을 초월하는 한 작가의 탐구도 또한 영원할 것이다. 영원성인지 아니면 지속성에 무게를 두어야 할지는 관객의 몫으로 남아있지만, 인간이 촉각과 시각으로 미를 경험하고 공간에서 체험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로서 고대와 현재가 단절이 아닌 소통을 하는 이유이다.

 

 

 
 

 

 
 

vol.20070404-김정희 조각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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